244. 불청객 대(對) 불청객(2)2021.05.01.
“호오…….”
혈세천마는 저 앞에서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금각사를 내려다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대단한 기도로다. 어려 보이는 여아인데.”
“헌데 불안정합니다, 지존.”
곡왕 부고야의 말에 혈세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교 고수 앞에 나선 척사영을 보고 있었다. 좌검우도를 쳐든 척사영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군. 조선이란 작은 나라에 저런 무골이 있었을 줄이야.”
혈세천마는 척사영을 보면서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툭 내뱉었다. 자신은 늙어가는데, 찬란한 재능을 가진 젊은이를 보니 질투심이 났기 때문이다. 나도 저 나이였으면. 내가 저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쥔 것이 많고, 누릴 것이 많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혈세천마는 먼저 움직이지는 못하고 결사항전의 기세를 불태우는 척사영과 그 뒤의 일행들을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검주. 원래 인덕이 있는 자였던가?”
혈세천마나 곡왕 정도의 고수라면 한눈에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결사항전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만우의 일행들 대부분이 수는 적지만 대단히 빼어난 인재들이었다.
“화경이 하나. 초절정이 둘. 그에 준하는…… 영물이 하나.”
선기를 풍겨대는 호선의 정체까지 혈세천마는 꿰뚫어 봤다. 마기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운이 있어 찾아보니, 선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둘은.”
“저 둘이 검주의 약점이옵니다.”
마군자가 대답했다. 혈세천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검주를 뒤쪽에 묶어놓았으니, 살인진의 준비만 끝마치면 된다. 그다음에 약점을 손에 쥐면 된다. 쾅!!!!! 그런데 그 때, 한 쪽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갑자기 터져나온 굉음에 혈세천마의 고개가 돌아간 순간, 혈세천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반역자들이다!!!!!”
“교주. 속하와 천마대가 나설테니 대계에 집중하소서.”
파바바밧!!!!! 혈세천마의 뒤에 서있던 마존이 천마대를 이끌고 경공을 이용해 한 쪽으로 짓쳐드는 투귀대를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혈세천마는 교의 신물인 마련검으로 눈부신 천마검의 성취를 보이는 주창을 보면서 눈을 차갑게 빛냈다.
‘주창.’
그런 혈세천만의 눈은 도저히 제 자식을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없었다. 혈세천마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일렁이는 검은 광기가 주창과 투귀대에게로 향했다.
***** 쾅!!!! 주르륵!!!
“마존!!!!”
주창이 뒤로 물러서면서 가해진 검력을 해소하며 마존을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마존 남요명은 그런 주창을 보면서 묵묵히 검을 들어올렸다.
“반역자 주창!”
“난 반역자가 아니오 마존!”
주창은 이를 악물었다. 주창이 맨 처음 검을 쥐었을 때, 기초를 가르쳐줬던 이가 바로 마존 남요명이다. 그는 혈세천마의 호위였기 때문에, 주창이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봐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반역자 소리를 듣는 것은 주창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교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냐!”
“마존! 이게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우리는 천마신교요. 대(大)천마신교!!!!!”
“…….”
주창은 마련검에 마기를 불어넣으며 마존을 향해 소리쳤다.
“강자존, 약육강식! 상대가 강하다고 하여 검을 꺾지 말라는 것은 그대가 나에게 해준 말이오. 헌데! 상대가 강하다고 하여 이런 함정까지 파놓고, 검주 그자를 불러들인다?”
“……교주도 교주님만의 생각이 있는 법이니.”
“생각이 아니오! 그건 신교답지 않은 방식이니까! 교주는 신교의 방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오!”
우르릉!!!! 마존의 두 눈에서 마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존의 검에서 검사가 일렁이며 일어났다.
“반역자. 반역자의 말은 듣지 않겠다. 모든 것은 교주님의 뜻대로.”
마존은 한 명의 무인이기 전에 혈세천마에게 절대충성을 바치는 충복이다. 다른 사람이 혈세천마를 손가락질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교주를 믿을 사람이 바로 마존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창은 이를 악물었다.
“마존!!! 그대를 베고 교주도 베겠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스스로가 지존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소!!!”
꽈르릉!!!!! 주창의 마련검에서 천마검의 마기가 노도처럼 일어났다. ***** 퍼벙!!!!! 천마대 고수의 몸에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장력에 직격 당한 천마대 고수가 시뻘건 피를 토해내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절명이었다. 하지만 옥령은 그 자리에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서거거걱!!!! 옥령의 궁장의가 검 끝에 걸려 날카롭게 잘려나갔다. 옥령은 천마대 고수들을 상대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천마대.’
전원 절정의 고수들로 구성된 천마대는 혈세천마의 친위대다. 그렇다는 뜻은 교에서도 최정예 중에 최정예란 뜻이다. 그들의 대장인 남요명은 무림십좌의 일인이었으니, 천마대가 강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퍼버버벙!!!! 옥령의 손에서 시뻘건 혈장이 천마대의 고수들을 덮쳤다. 하지만 천마대의 고수들은 힘이 모자르면 서로 힘을 합쳐 옥령의 혈장을 거의 전무한 피해로 받아넘겼다.
‘우리도 힘을 합쳐야 돼.’
투귀대의 고수들은 전원이 초절정 고수들이다. 거기에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강해 합격술이란 것을 펼쳐본 적이 없었다. 아니, 마교의 고수라는 자존심에는 누군가에게 협공을 가한다는 것 자체가 용남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성계나 만우를 상대하기 위해 둘씩 협공했던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질지라도, 살아남은 자가 복수를 다짐하게 만드는 계기이지 강자와 맞서다가 죽었다는 것은 마교 고수들에게 있어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정! 일산! 파천서생! 폭혈도! 뭉쳐요!!!”
옥령이 소리를 쳤다. 지금은 가장 무공이 떨어지는 파천서생도 함께 싸우고 있었다. 가장 무공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천마대 고수 하나 둘 정도는 상대가 가능했지만 말이다.
“흡!!!”
동시에 옥령이 장력을 강하게 뿜어냈다. 천마대 고수들을 물러서게 하기 위함이다. 서컹!!!!
“큿?”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옥령의 혈장을 뚫고 날카로운 예기가 옥령의 목을 노리고 쏘아져 들어왔다. 대경한 옥령이 금나수로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쳐냈다. 텅!! 찌르르 옥령은 손등에 통증을 느끼면서 자세를 바로했다. 옥령은 자신의 손등에 맞고 튕겨져 나간 것이 창이란 것을 발견하고는 얼굴 표정을 굳혔다.
“창마(槍魔)!”
“오랜만이오. 나찰사화.”
옥령이 이를 악물었다. 창마라 불린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옥령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교에서 옥령에게 지분대다가 개처럼 깨졌던 적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창마란 별호처럼, 그는 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는 고수다.
“검마, 도마, 부마, 궁마까지…….”
오마장(五魔將)이라니. 옥령은 얼굴을 굳혔다. 천마대의 대주가 남요명이라면, 천마대를 각 스무 명, 다섯 조를 이끄는 이들을 오마장이라 불렀다. 그들이 모두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역자들. 살아나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거요.”
창마가 창을 휘리릭 돌리면서 옥령에게 말했다. 그사이 오마장이 옥령의 사방을 포위했다. 옥령은 이를 악물었다. 오마장의 합격술이라면 초절정인 옥령도 쉽게 깰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투귀대 만으로 천마대와 진혼대, 그리고 교주님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창마는 비릿하게 웃으며 창을 들어 올렸다. 옥령은 공력을 끌어올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대답할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하군. 사화, 네년은 역시 도도해.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내 밑에 깔리고서도 그럴 수 있을까?”
창마가 음담패설을 내뱉으면서 옥령을 도발했다. 옥령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교에 있었다면 감히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할 놈이었다.
“어디, 사화의 손속이 얼마나 더 매워졌는지 한번 볼까?”
창마를 비롯한 오마장이 옥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옥령의 두 손에서 혈기가 슬금거리며 세어나왔다. 옥령이 혈장을 내지르려는 순간, 옥령의 머리 위로 하늘 위에서 인영(人影)이 뚝하고 떨어져 내렸다.
“어디 버러지가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서거거거걱!!!!! 촤아아악!!!!! 옥령을 향해 달려들던 오마장 중 창마를 제외한 네 명의 고수들의 목에 혈선이 일어나더니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잘려진 그들이 목에서 핏줄기가 높게 치솟았다.
“무, 무슨!!!!”
놀란 창마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순간, 번쩍하는 빛과 함께 창마의 두 눈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머렸다.
“마, 말도 안 되는…….”
쩌억 푸화아아악!!!!! 창마의 목이 허무하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천마대에서 마존 다음으로 강하다는 오마장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은 것이다. 그에 천마대가 움찔거린 순간, 옥령의 눈이 커졌다.
등을 돌린 남자, 오마장을 일격에 베어버린 사내, 여포가 방천화극을 빗겨쥔 채 옥령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다시 볼 것이라 생각했소. 옥 소저.”
여포가 옥령을 쳐다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
“적이다!”
“쳐라!!!!”
만우는 나뭇가지를 밟고 날아오르며 이미 그가 가는 길목에 진을 치고 있던 진혼대의 고수들과 사무라이들을 마주했다. 슥!! 서거거걱!!!!! 하지만 그들 모두 만우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하고 육편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손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 달려들던 사무라이와 마교 고수들이 그대로 두 동강으로 갈라진 것이다.
“괴물!”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죽음은 신교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무라이들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진혼대의 고수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마교와 사무라이의 차이가 여기서 나는 것이다. 마교의 고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마신교에 대한 광기로 휩쌓인 진혼대의 고수들은 섶에 뛰어드는 부나방이란 것을 알면서도 거침 없었다. 만우는 그런 진혼대 고수들에게 1초라도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듯, 주먹을 말아쥐었다. 기천은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의 말아쥔 주먹 주변으로 공력이 모여들었다.
“혈세천마!!!!!”
만우는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일본국까지 직접 행차해, 살인진이라는 진법까지 준비한 혈세천마다. 자신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모두 던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마교가 자신과 정정당당하게 부딪칠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바보같이.’
만우는 이를 악물었다. 물론 만우는 강했다. 그 어떤 함정도 홀로 뚫고 나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우에게는 김향과 방매가 있었다. 얼마든지, 자존심과 모든 것을 내던진 혈세천마가 자신이 아니라 그 둘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