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천외천(天外天)(4)2021.04.24.
어쨌든 그렇게 메마른 감성을 뒤로한 채 만우는 히죽 웃었다.
“느껴져?”
“예, 대장.”
“이게…….”
문형일과 슌스케는 춤을 꿀꺽 삼켰다. 무희들의 춤이 절정으로 가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음률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게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우웅!!! 기를 느낄 수 있는 슌스케와 문형일은 주변의 기(氣)가 공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의 기 자체가 쿵쿵거리면서 파동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파동. 기를 이용한 파동이야말로 음공을 배우는 자들이 가장 맨 처음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자 필수 중의 필수다.
“진혼대란 놈들. 이래서 무섭다, 무섭다 그러는 거구나.”
확실히 이런 수법이라면, 상대가 몇 명이건 간에 당할 수 밖에 없다. 음공을 준비해서 광역으로 뿌리게 되면, 어지간한 경지가 아닌 다음에야 당하고야 말 것이다. 거기에, 화경의 고수랑 알려진 곡왕 부고야까지 합세를 한다면? 몰살. 곤륜 꼴이 될 것이다. 거기에 지금, 이놈들은 영악하게도 연회가 열린다는 그 틈을 이용해 음공을 펼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잠입, 매복에 기습까지. 쨍!!!! 수십의 무희들이 박자에 맞춰 가검을 부딪쳤다. 그러자 쨍 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만우는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끄아악!”
“으악!”
“커어억…….”
그러자 황홀한 눈으로 검무를 관람하고 있던 이들이 코와 귀로 피를 쏟아내면서 쓰러졌다. 삽시간에 석전 위가 뜨거운 피로 덮였다. 동시에 비릿한 혈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찬탈자 요시미츠를 죽여라!!!!”
우와아아아아!!!!! 공가의 관료로 보이는 자가 일어나 소리치자 어소의 바깥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작은 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꾸며놓았던 석전의 구조물 속에서 숨어 있던 닌자들이 튀어 올랐다.
“덴노!!!!”
탕!!! 요시미츠가 분노하면서 의자를 뒤로 떨치고 일어났다. 스스슥!!!! 어느새 그런 요시미츠의 곁으로는 그가 거느린 오로치가 어느새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치들이 음공의 여파까지 막아냈기 때문에 요시미츠는 멀쩡했다.
“요시미츠!!! 찬탈자인 네 놈을 하늘의 이름으로 벌하겠노라!!!”
덴노도 뒤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덴노를 사무라이와 닌자들이 둘러쌌다. 요시미츠는 그런 덴노를 보면서 하늘을 보고는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고작, 고작 이런 걸로 나 요시미츠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덴노시여!”
“닥쳐라!!!!!”
덴노의 분노와 함께 사무라이와 닌자들이 오로치들에게 달려들었다. 오로치들은 분노도, 당황도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사무라이와 닌자들을 사이로 뛰어들었다.
“대, 대체 이게.”
동군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선에서부터 왔던 많은 보빙사 일행들이 땅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음공에 의해 내부가 진탕된 것이다. 내공을 가진 무인이 아니라면 모를까, 일반인에게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것이 바로 음공이다.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진혼대의 고수들이 펼친 음공이다. 촤아악!!! 어여쁘게 춤을 추었던 무희들이 손에 든 검으로 달려드는 요시미츠의 사무라이와 닌자들을 상대했다. 악공들로 분장했던 진혼대 고수들은 그런 무희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만우! 이게…….”
보빙사 여의손은 그가 데려온 무인이 말짱 꽝은 아니었던 것인지 무사해 보였다. 만우가 당황해하는 동군영을 보면서 말했다.
“전쟁이지. 서로 살고자 상대를 살육해야 되는 전쟁. 나으리. 나으리가 하고자 하는 복수도 이와 같아.”
만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음(音)과 기(氣)를 가볍게 갈랐다. 슌스케과 문형일은 만우가 가볍게 들어 올린 손에 어떤 무리가 담겨있는지 전부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덜커덩! 와아아아아!!!!! 석전 위의 싸움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애초에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요시미츠의 병력은 정예화가 되어 있었지만, 덴노와 공가가 동원한 사무라이와 닌자의 수가 워낙 많아 팽팽한 균형이 이어졌다.
“봉공중(奉公衆:호코슈)가 올 것이다!!! 버텨라!!!”
호코슈는 요시미츠가 교토 내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군대였다. 그곳에만 삼만이 넘는 병력이 모여있었다. 그들이 도우러 오면 일은 간단해진다. 하지만 덴노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다. 거기에 덴노에게는 마교 최고의 군사라 불리는 마군자 마원이 조언까지 해주었다.
“헛소리! 호코슈는 교토에 발도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교토 내에 없으니까!”
덴노가 득의에 찬 얼굴로 말을 했지만, 요시미츠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인생에서 이보다 더 심한 위기에서도 분연하게 돌파해 이곳까지 도달했다.
‘상관없다. 그자가 있으니까.’
거기에 요시미츠에게는 만우까지 있었다. 자기가 본 만우의 실력이라면, 이깟 오합지졸쯤은 몇만이 덤벼 들어도 대세에 지장을 끼치지 못한다.
“물러서지 마라!!!”
“죽여라!!!!”
으악!
*****
“끼요오오옵!!!!”
“힉!”
정면에서 사무라이가 왜도를 들고 짓쳐들어오자 놀란 동군영이 헛숨을 들이키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아무리 물러서려고 해도 몸이 뒤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나으리. 그거 알아?”
막상 자신을 죽이겠다고 사무라이가 왜도를 들고 달려오자 동군영의 소심증이 또다시 발동됐다. 가문의 복수를 하겠다고 분연히 자리를 떨쳐 일어서기는 했지만, 천성은 어디론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수련은 실전이라고 했어.”
“으, 으아아아!!!!”
만우의 태연한 목소리에 동군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도가 자신을 두 쪽으로 갈라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앙!!!!
“크윽!!”
“칙쇼!!!”
하지만 그래도 그간 만우의 훈련이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사무라이의 왜도에 동군영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검집째로 들어 올려 막았다.
“오~~~~ 막았어!!”
만우가 히죽 웃었다. 사무라이는 저 뒤에서 쫑알거리는 만우도 신경 쓰였지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놈이 자신의 도를 막았다는 것에 분노했다.
“끼야아아압!!!”
사무라이들의 기합은 굉장히 독특했다. 단전과 목을 동시에 쥐어 짜내면서 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돼지 멱따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마, 만우!!!!”
“에이 안 되지.”
만우는 동군영이 고개를 돌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동군영은 사무라이가 보내오는 광폭한 살기에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사무라이들의 인생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밑바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전쟁 세대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은 말 그대로 독기와 오기의 화신이다. 그러니 동군영이 그런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살기에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황하지 말고. 심호흡을 해. 가르쳐 준 거 있잖아. 단전호흡.”
사방이 진혼대의 고수들이 펼쳐내는 음공 때문에 시끄럽기 그지없었지만, 만우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동군영의 귀에 쏙쏙 틀어박혔다.
“이놈들, 익산동가를 무너뜨린 마교 놈들과 손잡은 놈들이야. 그러니까, 네 가문의 원수와 손을 잡은 놈들인 거지.”
만우는 동군영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동군영의 두 눈이 번쩍하고 불꽃이 튀었다. 차앙!!!! 다시금 동군영의 검이 사무라이의 왜도를 막아냈다. 동군영은 손아귀에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침음성을 흘렸지만, 아까 전에는 떨리던 팔이 떨리지 않았다.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간 것이다.
“봐봐. 생각보다 견딜 만하잖아.”
동군영은 아직도 검집에서 검도 뽑지 못한 상태였다. 워낙 경황이 없어 일단 검집을 들어 막고 본 것이다.
“끼야아압!!”
창! 창! 창! 창! 창! 동군영은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사무라이의 연격을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막아냈다. 그 뜻은, 동군영이 사무라이의 공격을 정확히 보고 막아냈다는 뜻이다. 만우는 씩 웃었다.
“소심증. 그거 좋아. 신중한 것 좋지. 신중하지 않으면 그냥 나대다가 목이 툭 하고 달아나거든.”
만우는 동군영의 소심증에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심하다는 것은 곧 겁이 많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것은 신중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신중함은 검이 마구 날아다니는 무림에서 장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성격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뭐, 때로는 과감해질 필요도 있지만 나으리는 무인이 아니니까.”
물론 무조건 신중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때로 무림인은 과감해질 필요도 있었다.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사선을 오가는 싸움판을 오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거뜬히 돌파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항상 약자만을 찾아다니고, 위험을 피해 다니면 언젠가는 피하지 못할 위험이나 강자와 조우해 죽게 된다. 하지만 동군영은 무인이 아니다.
“자. 어때. 그 신중함으로 판단해 봐.”
만우는 동군영을 지도하면서 동군영에게 속삭였다.
“당하지 못할 상대야?”
동군영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만우의 말대로, 침착함을 되찾고 상대의 살기를 벗겨내고 보니, 상대할 만하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신중함은 결국 확신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신중함이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곧 자신감으로 변한다.
“가문의 원수와 손을 잡은 놈들. 거기에 나으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야.”
만우는 동군영을 가르쳤다. 이런 곳만큼 동군영이 실전을 경험하기에 좋은 곳이 없었다. 주변에 워낙 혼란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동군영이 오롯이 눈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저 그런 사무라이와 닌자들까지 전부 몰렸다는 것이 주효하다.
“그러니까. 해 봐. 자신감을 가지고.”
캉!!!!
“칙쇼!!!!”
“넌 칙쇼밖에 못 하냐?”
만우는 동군영이 사무라이의 왜도를 검집으로 막아내자 핀잔을 줬다. 하지만 사무라이도 조선말을 모르니 마찬가지였다. 찰칵 서-컥!!!! 그 순간, 검집으로 사무라이의 왜도를 막아낸 동군영의 검집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동군영이 뒤로 물러서려는 사무라이를 따라붙으며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며 그대로 사무라이를 베어냈다.
“오! 좋은 일격!!!!”
촤아악!! 후두둑!!! 사무라이가 목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동군영은 숨을 몰아쉬면서 벌게진 눈으로 자신이 죽인 사무라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 모습에, 죽어나간 가문의 식솔들의 모습에 겹쳐졌다.
“이……이이!!!!!”
동군영이 그런 사무라이의 시체를 보면서 발작하려는 순간, 만우의 내공이 동군영의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억?”
“옆! 옆!!!!”
“흐억!!!”
만우의 한 수에 심마(心魔)에 빠져들 뻔했던 동군영이 제정신을 차렸다. 마침 그런 동군영을 노리고 다른 사무라이가 달려들었다.
“심마라니. 쯧. 정신력도 약한 제자라니.”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찼다. 내공도 없는 놈이 심마라니. 결국 심마란 마음속에 사는 악마이기 때문에 내공에 상관없이 심마가 깃들기도 한다. 갑자기 성격이 뒤바뀌거나, 그러는 경우가 심마가 깃든 경우다. 촤아아악!!!! 후두둑!!
“꺼어억!!!!”
만우는 슌스케와 문형일이 동군영에게 다가가는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을 베어내는 것을 보면서 팔짱을 척 하고 꼈다. 그 둘 때문에 동군영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 이거 좋은 곳이네. 어사 나리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겠어.”
서컥!!!!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쉬웠다. 만우는 동군영이 두 번째 사무라이를 금방 베어내는 것을 보고는 이마를 탁하고 쳤다.
“암. 누가 가르쳤는데. 개한테도 검 쥐어 주고 본주가 가르치면 금방 고수가 될 터.”
적절한 자화자찬으로 흥을 돋운 만우가 두 손을 펼쳤다. 슬슬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두 손을 뻗쳐 기감을 확장한 만우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이게 다라고?”
그제야 만우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곳은, 미끼였다. 그렇다면 마교의 본진은 어디로 갔을까.
“금각사!!!!!!!”
꽈르릉!!!! 만우의 주변으로 순간적으로 대기가 꽈릉하고 일그러졌다. 만우의 홍의가 펄럭이면서 홍의자락이 거꾸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