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천외천(天外天)(1)2021.04.13.
쨍, 쨍, 쨍쨍쨍쨍!!! 부아아앙!!! 만우는 동군영의 뒤에서 홍포를 늘어뜨리고 따라 걸으면서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소리에 어깨를 들썩거렸다.
“야. 좋네.”
생각해보니 이런 떠들썩한 연회에 참석해 본 지 꽤 된 만우였다. 중원에 있을 때 이런 연회는 자리마다 꼭 참석했던 만우다. 술도, 음식도 공짜로 주는데다가 놀기도 좋으니 굳이 가지 않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를 가지고 만우를 초대한 곳이라면 모르지만, 만우는 중원을 유랑하고 다녔기 때문에 별의 별 연회나 잔치에 다 참석해 보았다. 작은 고을에서 벌어지는 잔치부터 시작해 황실에서 열리는 연회까지.
“어사 나으리.”
“왜 그러는가?”
앞서 걸어가는 동군영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만우를 돌아봤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긴장하지 그래. 동구녕. 그렇게 긴장했다가는 마교 놈들에게 복수를 하러 왔다는 것을 그대로 다 들키겠는데?”
“그, 그런가. 크흠.”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가문의 원수인 마교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조선에서 열리는 잔치에는 참석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조선이랑 여기랑 많이 다른가?”
“음…….”
동군영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 만우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악기가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바짝 긴장했던 동군영이다.
“만우, 자네도 옹주께서 입궁하실 때 동행했지 않은가.”
“에이. 그때는 그때고. 그게 무슨 잔치야.”
“음…… 비슷하지. 아니, 사람 사는 게 조선이나 여기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하긴. 그런가?”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군영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괜히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 사는 것까지 다르다고 생각했던 만우가 잘못 생각한 것일 것이다. 결국 사람이 즐기고, 웃고, 떠드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뭐. 대충 황제 생일일 때랑 비슷하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선에서 보빙사가 온 것은 꽤나 큰 일이었다. 예전부터 일본국은 조선이나 명의 문물을 동경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보빙사는 단순히 국가 수뇌부 간의 수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오사카에 내려 교토까지 오는 동안 들린 일본의 각 지방에서 그곳의 관리들에게 보빙사에 동행한 유림의 학사들이 글을 써주고, 지식을 교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빙사는 조선의 선진 문물을 일본국에 전파해주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일본국에서는 천황의 주재로 어소에서 큰 잔치를 벌여 보빙사를 환영했다.
“대장. 맛있는 음식도 많겠죠?”
괴검 문형일이 만우에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만우는 그런 문형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음식?”
“잔치하면 음식 아닙니다 대장님. 왜 기억 안 나십니까? 항주에서 그 지역 태수가 생일이어서 잔치를 크게 한 적 있지 않습니까.”
“아, 그때?”
만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검 문형일과 괴권 마익후는 다들 터부시하는 만우를 끝까지 쫓아다녔던 괴짜 낭인들이었다. 그 덕분에 만우가 수하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늘 중원을 유랑하는 만우와 그를 쫓아다니는 문형일과 마익후가 매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리 없다. 그 떄문에 항주에 들렸을 때, 그곳의 태수가 잔치를 벌여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들러 식사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독을 탔을 줄은 몰랐지. 난 괜찮았거든.”
“저흰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엄살은. 마익후랑 네가 자객을 다 도륙했으면서.”
그런데 문제는 태수를 죽이려고 자객이 음식에 독을 풀었던 것이다. 단지, 만우의 몸에는 그 독이 통하지 않았을 뿐이고, 마익후와 문형일은 간만에 포식을 하려고 했다가 그게 방해를 받자 열이 뻗쳐 태수의 호위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나서기도 전에 둘이서 자객들을 도륙을 내버렸다. 꽤 강한 독을 써서 그다음에 앓아누워야 하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때 음식이 참 맛있기는 했습니다.”
“건량과 육포에 질려갈 때였으니까.”
두런두런 과거를 나누는 만우와 문형일을 슌스케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때, 커다란 깽과리 소리 같은 것이 울려퍼지더니 어소의 문이 쿵하고 닫혔다.
“자. 이제 들어온 건가?”
“정말 긴장이 하나도 안 되십니까?”
문형일이 만우에게 물었다.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 만우는 마교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도인의 경지에 답보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진인(眞人)의 경지에 도달한 이상, 만우에게 혈세천마는 더 이상의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모순적이게도 치열한 중원을 떠나 조선에서 진인에 들었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너희나 몸 조심해. 슌스케. 알았어?”
“예, 대장님.”
만우가 자신에게도 신경을 써주자 슌스케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바짝 긴장한 동군영에게도 말했다.
“동구녕 나리. 일 터지면 알아서 몸 숨겨. 사는게 최우선이야.”
“이, 일이 터질 것 같은가? 그런 느낌이 나?”
“아직은.”
만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별 다른 움직임이나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군회의 수장이라는 신이치가 말하길, 오늘이 바로 작전이 시행되는 개시일이었다.
‘갑자기 바꿨을리는 없고.’
만우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관찰했다. 주변이 번을 서고 있는 무사들부터 시작해 어소에서 일하는 궁인들까지. 어디에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연회를 열기 위해 마련해 놓은 천단(天壇)의 문이 크게 열리고, 웅장한 어소의 앞에 오색창연한 천이 천막처럼 나풀거리며 드리워진 거대한 석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끝의 계단 위에는 화려하게 장식을 한 옥좌 위에 덴노가 앉아있었고, 그 아래로는 자연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대나무 숲과 울창한 수풀, 그리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 나무들이 석전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정원을 석전 위로 옮겨 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앉아서 연회를 즐길 수 있도록 주안상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는데, 몇백 명이나 되는 보빙사단이 전부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석전의 중앙에는 작은 호수까지 만들어놓아 그 위로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펴있었고, 석전 위로는 작은 고랑 같은 것이 파여 있었는데 그 안으로는 맑은 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물 위에는 술을 채운 술잔이 동동 떠다녔다.
“사치의 끝이로구나.”
“히야…….”
“이건, 별천지 아닙니까?”
동군영이 가장 앞에서 중얼거렸고 문형일과 슌스케는 차례대로 감탄했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수십 갈래로 나풀거리는 오색창연한 천과 어우러져 말 그대로 무릉도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흐음…….”
만우는 허리띠의 끝자락을 매만지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히죽 올라갔다.
“제법…… 중원의 진법은 아니고.”
만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슌스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만우에게 말했다.
“이, 이건. 닌자들이 즐겨쓰는 진법입니다.”
“닌자? 그 살수들?”
“예.”
만우가 눈짓을 하자 문형일이 동군영 근처로 바짝 다가갔다. 닌자라면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동군영이다. 만우 정도라면 모를까, 이곳의 닌자들은 공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비명횡사 당하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절정 정도가 되면, 그래도 치명상은 피하고 반격을 날릴 수 있었다.
“진법이라…….”
“이곳의 공가들, 조선으로 치면 양반들이 사는 곳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봤지. 성처럼 생겼던데.”
만우의 말에 슌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체 전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고, 문(文)보다는 무(武)를 중시하는 기조 때문에 툭하면 칼부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교토입니다.”
“어소가 바로 코 앞에 있고, 금각사가 있는데도?”
“……예.”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이미 여러번 교토에서 큰 사고라고 할만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따로 포졸들이 찾아온다던가 관병들이 찾아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관병들은 뭘 하고?”
“……사무라이. 사무라이들이 곧 관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병들이 관병의 역할을 한꺼번에 한다라…… 일반 양민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겠군.”
그나마 조선은 조선이 세워지면서 고려부터 내려오던 호족들의 사병이 혁파되면서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다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대놓고 날붙이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검계나 삼류 파락호들, 왈패들은 있었지만 포졸들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게 아니라는 소리다. 사무라이, 즉 공가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한 사무라이들이 관병 역할도 함께 한다는 소리다.
“몇몇 미친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 양민들에게 함부로 검을 휘두르는 건 삼류 소리를 듣기 딱 좋아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는 않습니다만…….”
“뭐, 그건 됐고.”
만우는 슌스케의 말을 딱 끊었다. 그리고는 어서 말해보라는 듯 슌스케에게 말했다.
“어쨌건, 그 때문에 조선의 양반들과는 달리 일본국에서는 저택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방어에 용이한가 입니다.”
“방어?”
“적이 쳐들어왔을 때, 적이 보낸 사무라이나 닌자가 쳐들어왔을 때 그를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상한 곳이군. 그래서?”
“그 때문에 성처럼 장원 주변에 높은 담벼락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안을 수비에 최적화가 되어있으면서도 공가의 일원으로서 풍류를 즐길 수 있게 해놓는 겁니다.”
“이렇게?”
만우는 지금 연회가 준비되어 있는 석전을 가리켰다. 슌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기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진법의 효과는?”
“닌자가 얼마나 숨어있는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다입니다.”
만우는 저택에 이런 진법을 설치한다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중원의 무가치고 본가 안에 그런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해 진법을 설치하지 않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황실이나 마교에도 그런 진법은 있었다.
‘팔문금쇄 같은 별 거지 같은 진법도 만들어내는 곳인데.’
그리고 그런 진법들 중 만우가 가장 고생을 했던 진법이라면 바로 정파의 오대세가 중 한 곳인 제갈세가에서 만든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이었다. 팔문금쇄진은 후한시대 제갈세가의 시조라 알려진 촉의 무후 제갈공명이 만들어내었다 알려진 진법 중 하나로 능히 일 백으로 십만, 백만 대군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려진 진법이다. 정확히는 생, 상, 두, 경, 사, 경, 개의 팔문 중 생, 경, 개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헤매다가 결국 고사하여 자멸하게 되는 진법이 바로 팔문금쇄진이다. 한 번 갇히면 사실상 진법을 발동한 자가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다 알려져 있는 이 진법을, 만우가 걸렸던 이유는 만우가 무림맹에 찾아가겠다는 서신만 남기고 그냥 무단으로 침입했을 때였다. 하북 무림맹 총단에는 제갈세가의 진법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었는데, 이런 만우의 서신을 받은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일개 동이족 낭인인 만우로부터 무림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팔문금쇄진을 가동시킨 것이다. 그것도, 만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만우가 찾아왔다가, 이기고 난 다음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팔문금쇄진을 발동한 것이다. 팔문금쇄진은 대단히 견고하고 생문을 찾아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만우도 그 안에서 꽤나 고생을 했었다. 물론, 기천의 4초식인 기천(氣天)을 연거부 열 번을 쏟아부어 팔문금쇄진 내부를 통채로 무너뜨리고는 나올 수 있었지만, 그 때 만우도 아찔함을 느꼈다. 그 때, 만우가 팔문금쇄진을 뚫고 나온 것을 본 제갈세가주 제갈명공은 그런 만우를 보고 알아서 일년간의 봉문을 선언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만우는 그런 제갈세가의 악독한 진법이 아니라면 이 정도는 귀여운 정도라고 생각했다.
‘다 보이니까.’
“끄응. 닌자가 있는 건가 그러면?”
“아마도.”
만우의 눈에는 여기저기 숨어있는 닌자들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이 넓은 석전에 숨어있는 닌자들이 수가 거의 기천은 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문형일과 슌스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다. 만우는 그것을 보면서 진법의 효과가 단순하지만, 의외로 수준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절정 고수의 기감은 그냥 이렇게 간단히 진법으로 속여넘길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곳이다.’
역시, 만우는 일본국이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진법이라니, 이것 역시도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놈들이 천은 되는 것 같은데. 그 놈들도 보이고. 요시미츠 놈이 데리고 있던 그 오로치란 놈들.”
“덴노가 여는 연회이니 덴노의 안위를 위해 닌자들이 있는 건 이해가 되지만, 천이나 되는 닌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슌스케가 중얼거렸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