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마교, 살인진, 성공적?(4)2021.04.06.
“마군자?”
“그렇게 자신을 밝히더군.”
“그리고서는 이야기를 해줬다?”
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요시미츠를 제거하기 위해 안 그래도 그쪽과 손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던 살군회다.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만우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턱 밑을 긁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치에게 말했다.
“삼 일 뒤, 너희들이 요시미츠를 죽이건 말건 방관하도록 하지. 대신 우리 쪽 애들은 건드리지 말고.”
“반드시 그렇게 주지시키도록 하지.”
만우의 확답을 받아낸 신이치의 눈이 반짝였다. 만우라는 거대한 벽이 사라졌으니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만우는 그렇게 기쁜 얼굴로 사라지는 신이치의 기척을 느끼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사흘 뒤, 연회라 이거지.”
만우가 피식 웃어 보였다. *****
“두목!!! 괜찮으십니까!!”
적토선에서 자나 깨나 여포를 기다리고 있던 가동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노심초사를 하고 있던 사임도 뛰어나왔다.
“괜찮아.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 소란들이야?”
“다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저자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 말입니다!”
“두목이 사라진 다음에 그런 소문이 돌았으니, 두목님이 나서신 거지유?”
가동과 사임의 예리한 추측에 여포는 씩 웃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아이고. 어쩌려고 그러셨습니다, 두목.”
여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지난 며칠 동안 왜 계속 나가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저희에게 말도 안 해주시고.”
가동이 여포에게 말했다. 여포는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사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어두운 경장을 입은 낭자 때문이에유?”
사임은 말투는 비록 어눌할지 몰라도 눈치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빨랐다. 여포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니 사임이 다른 것이 어눌하더라도, 활빈당에 있어 중요한 인재였다. 재빠른 눈치라는 것은 생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수이기 때문이다. 움찔. 옥령의 이야기가 나오자 여포가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사임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멋있게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나왔지만, 사흘 내내 눈앞에 옥령의 잔영이 일렁였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어 일어나기만 하면 저자에 나갔다. 비록 수확은 없었지만. 그러자 가동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쿠! 그게 진짜입니까? 헌데 어찌하여 빈 손으로 돌아오십니까.”
가동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여포가 그 낭자를 데려왔을까 봐였다. 여포는 그런 가동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쿵
“어딜 그리 보느냐?”
“아이코…… 왜 때리십니까 두목. 설마……!!!”
가동의 눈이 커졌다. 여포의 눈도 같이 커졌다.
“차이신 겁니까? 우리 여포 두목이 여자한테 차인 겁니까 설마???”
벌컥!! 벌컥!!
“뭐라고?”
“여포 두목에게 여자?”
“진짜? 드디어 여포 두목에게도 봄날이!!!!”
가동의 목소리는 조선 으뜸이었다. 목청이 하도 큰 나머지 봉화가 없이 가동만 놔둬도 옆 산에서 가동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런 목소리로 떠들었으니, 안에 있던 다른 활빈당 부하들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아…….”
여포는 얼굴을 턱하고 덮었다.
“진짜입니까? 어떤 낭자이길래 우리 여포 두목을 찬 겁니까? 예? 예?”
가동은 그런 여포를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여포에게 처음으로 마음에 든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 차였다니.
“아니! 우리 여포 두목이 어때서! 키도 크고, 쌈박질도 잘하고. 저자에만 나가면 여인네들이 얼굴을 사르르 붉힐 정도로 잘 생겼고. 그리고 거시기도 내가 개울가에서 한 번 봤는데 어마…….”
“이 자식이 진짜.”
퍼억!! 여포가 손날로 가동의 목을 내려쳤다. 그러자 난동을 피우던 가동이 눈을 까뒤집으면서 허물어져 내렸다. 눈치가 빠른 사임은 입을 턱하고 막고는 멀리 떨어진 뒤였다.
“두목! 두목! 진짜로…….”
“그래. 어디 오늘 한번 제대로 푸닥거리를 해보자고.”
여포가 한발 늦게 호들갑을 떠는 부하들에게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내려놓고는 두 팔을 걷어붙이며 뛰어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양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 같았는데, 사임은 그런 소동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더욱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신나게 부하들을 두드려 패는 여포를 보면서 사임은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우리 두목이 상심이 크신가 보네. 마음에 참 드는 낭자였던 것 같은데.”
사임은 여포가 자신들을 뿌리치고 홀리듯 따라간 옥령의 얼굴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하게 생긴 것도 꼭 양반집 규수처럼 생긴 아가씨였다.
“지체 높은 집안의 여식이려나?”
입고 있는 옷이나, 바른 자태와 고운 얼굴을 봤을 때 그냥 여염집 여식은 아닌 것 같았다. 사임은 괜히 신분 차이 때문에 여포의 사랑이 꺾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여포가 부하들을 개 잡듯 후드려 패는 것을 지켜봤다.
“와. 뭔 일로 저렇게 다 패고 다니는 거야? 다 부하들 아니야?”
“그러게 말이에유. 우리 여포 두목이 웬 낭자에게 반했는데 그걸 가동 성님이 놀리…… 흐어어억!!!”
“반해? 여자한테? 쟤가?”
사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만우에게 대답을 해주다가 화들짝 놀라서 갑판 위를 네 발로 기었다. 만우는 부하들을 후드려 패고 있는 여포를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분명 사임이 한 말을 똑똑히 두 귀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유. 제가 실언을…… 그런데 누구…….”
“에이. 왜 그래. 다 들었는데. 사랑이라…… 뭐 한창 그럴 나이지. 누구 보면 한눈에 좋아하고 말이야. 어? 그런데 그렇게 예뻤대?”
“두, 두모오오옥! 여포 두모오오오옥!!!”
사임이 숨 넘어가는 소리로 여포를 불렀다.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대임을 그 특유의 비상한 눈치로 알아챈 것이다.
“야! 여포! 너 연애하냐?”
퍽!
“꽥!!!”
부하 하나를 개구리처럼 갑판 위에 내팽개친 여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빙글빙글 웃으며 그런 여포에게 손을 까닥였다.
“오랜만이네?”
“너…… 네놈이 어떻게…….”
“아. 쟤가 말해주던데?”
만우는 손가락으로 사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임이 열심히 고개를 도리질을 하며 갑판 위에서 뒤로 기어갔다. 여포는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네놈이 알 바는 아니고!”
여포는 만우를 보면서 도끼눈을 떴다.
“왜 온 거지? 네 부하들을 건드려서 복수라도 해주러 온 건가?”
“아. 걔네들?”
만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 그대로 눈을 가늘게 좁혀 뜨며 기세로 여포를 압박했다. 쿠구궁!!!! 고오오오!!!! 그런 만우에게 뒤지지 않고 여포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여포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찰나의 순간에 만우의 몸에서 느껴진 기세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주가 해코지를 하러 왔으면. 그걸 막아낼 수는 있고?”
“너…….”
사아악!!!! 여포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만우가 깔끔하게 발산했던 기운을 몸으로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아직 기세가 성성한 여포의 기세를 만우가 손부채로 갈라내면서 투덜거렸다.
“휴우. 남자들만 있어서 땀냄새가 장난이 아니네. 안 그래?”
“…….”
여포는 만우가 손부채만으로 자신의 기세를 흐뜨리는 것을 보면서 기운을 갈무리했다.
‘나보다 위라고?’
여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만우가 방금 보여준 그 한 수(手)는 여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슨 기세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물살을 가르듯 손으로 그것을 어떻게 가른다는 말인가.
“그냥. 약속이나 지킬 날짜를 이야기해 주려고.”
“날짜…….”
여포는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히죽 웃었다.
“그 전에, 저자에서 마교 애들 만났다면서. 어땠어?”
여포는 투귀대의 대주라는 주창과 옥령을 떠올렸다.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의 무인들이더군. 네 부하들도 그렇고.”
“그런 놈들이 수백. 그리고 거기에 그놈들이 일본국 황제와 손을 잡고 군을 동원할 계획이래.”
“……약조한 그건가?”
“그래. 뭐, 나도 한 손보다는 열 손인 게 더 나으니까.”
“내가 할 일은?”
“사흘 뒤. 일본국 황제가 있는 어소에서 연회가 열려. 아마 그곳에 무슨 짓을 해두었던가, 그곳에서 빈틈을 만들려고 하겠지. 그러니까.”
여포는 걷어올렸던 소매를 내렸다. 만우는 그런 여포에게 말했다.
“준비해 놓고 있어.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일 터진 것 같으면 바로 알 테니 달려오고. 그냥 도망치는 애들만 잡아둬.”
만우의 말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만우만을 위해 진법까지 연습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마교의 정예들을 앞에 놓고도, 만우는 자신이 승리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만하군.”
“아. 그리고 이거. 받아두고.”
만우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허공섭물로 공중에 둥실하고 띄웠다.
“고약?”
“일 끝나고 어쨌든 우리 애들 그렇게 만든 대가는 치러야지. 딱 한 대만 맞아라. 지금은 거사 전이니까 본주가 참는 거고.”
“하.”
여포는 피식 웃었다. 참으로 재밌는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경지에 도달한 이후 자신보다 제대로 된 강자와 싸워보지 못한 여포는 호승심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거 타박상에 좋은 거야. 멍 같은 건 하루 만에 없애주거든. 너도 네 부하들에게 멍 들고 이런 거 보이면 네 권위에 금이 갈 테니까, 내 작은 배려라고 할까.”
스르륵 허공에 떠올라 있던 금창약이 여포에게로 느릿하게 날아갔다. 그냥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천천히 금창약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지만, 여포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식.’
여포는 공력을 끌어올려 만우가 날려보낸 금창약을 받아들었다. 여포가 손에 금창약을 받는 순간, 여포는 이를 악물었다. 카가가가각!!!!! 그냥 허공에 가만히 둥실 떠 있는 줄 알았던 금창약에 어마어마한 공력을 덧씌운 회전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악!!!! 여포는 공력을 십성 끌어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창약에 담긴 공력이 되레 여포에게 내상을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포는 손바닥이 얼얼해지는 통증과 함께 금창약을 받아들었다.
“거기. 소림이나 무당에 늙은이들은 이렇게 하는 거 좋아하더라고. 뭐, 내공 자랑하는 것 같아서 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이야.”
만우는 피식 웃었다. 정파에서 전형적으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거나, 기를 죽이기 위해 하는 내공 자랑이었다. 여포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이를 뿌득 갈았다.
“고맙군.”
“천만에. 그 정도쯤이야. 더 있으니까 원하면 더 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