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마교, 살인진, 성공적?(3)2021.04.03.
“금각사를 공격해 주십시오.”
“……금각사? 킨카쿠지?”
천마신교의 책사인 마군자 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덴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는가? 사흘 뒤면 연회를 개최할 생각인데.”
덴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두르는 느낌이 없지 않아 들었기 때문이다. 사흘을 기다리지 못해 금각사를 공격하라니.
“물론. 지금 당장이 아니라 사흘 뒤에 말입니다.”
“그 무슨…….”
덴노의 눈이 커졌다. 덴노와 공가의 염원은 나라를 제 손아귀에 넣고 뒤흔드는 역적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요시미츠의 세는 덴노와 공가에 비해 너무나도 비대했다.
“이미 교토 내에는 호코슈 오만이 주둔하고 있네.”
현 덴노는 요시미츠에 의해 58년동안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던 조정의 분열을 종결하고 천황에 오른 고코마쓰(後小松)였다. 쇼군이자 태정대신이기도 한 아시카가 요시미츠에 의하여 옹립된 덴노는 자신의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해 요시미츠에 반대하는 귀족, 공가들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힘이 생긴 것은 아니다. 요시미츠는 치밀하게도 이미 과세권과 행정권은 물론이거니와, 혹시 모를 덴노파 슈고 다이묘들을 대비하여 호코슈라는 상비군 조직까지 채비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최대 삼만. 그나마도 교토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대부분이 차단될 것이다.”
마군자 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는 무림맹의 제갈만이 자신과 견줄 수 있다고 자부하는 마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덴노께서 말씀하신대로 금각사까지 도달할 수 있는 병력은 삼만의 일 할도 되지 못할 터.”
“그렇다면 그게 터무니없는 소리란 것도 잘 알겠군.”
덴노는 마원을 쳐다봤다. 다른 공가의 콧대 높은 이들은 이 마교라는 무리를 중원에서 넘어온 낭인이라 치부하여 터부시했지만, 덴노는 아니었다.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항상 곁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명을 좋아하는 그를 통해 중원의 소식들을 귓등 너머로 꽤나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눈앞에 있는 천마신교의 교주인 혈세천마의 군사라는 마군자 마원만 봐도 범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사람을 보는 눈에서만큼은 덴노는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하여 길목에서 덴노의 병력이 차단되는 것. 그게 저희가 바라는 바이옵니다.”
“우리가 파멸하길 바라는 것인가?”
덴노가 마원에게 물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분노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 손을 잡기로 한 이상한 쪽의 패배는 나머지 한 쪽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호코슈의 삼만이 움직일 테니까요. 일단 그들이 움직여야 저희도 내부에서 뭐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금각사를 먼저 치는 시늉을 해라? 그래서 호코슈를 움직이고, 그 틈에…….”
“덴노께서 원하시는 그 자. 아시카가 요시미츠. 그자를 죽여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직접.”
마군자 마원의 두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그렇지만 덴노는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미 마교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그곳에 행차했다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일전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소?”
“교주께서 침입자를 격퇴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주 정도 되는 무인을 습격할 수 있는 실력자라. 그대들도 만만치 않은 적을 둔 것 같아서.”
덴노는 끝까지 신중했다. 이건 요시미츠의 권세를 더욱 강화시켜 주느냐, 아니면 그 예봉을 꺾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덴노 측은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덴노의 편에 선 공가들은 모두 몰살당할 것이고, 덴노는 평생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일본국 전체가 아시카가 일족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신교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덴노께서 중원으로부터 먼 곳에 있으셔서 소문이 귀가 어둡다는 것은 이해하나…….”
번뜩! 마군자 마원이 두뇌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신교의 한 주축을 담당하는 마가의 일원이다. 신교의 주축이라는 뜻은 그들의 무공이 영 맹탕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머리를 육체보다 더 잘 쓰기 때문에 군사를 맡을 뿐, 마가의 무인들도 충분히 강했다.
“신교의 무인들이 금각사 주변으로 펼칠 천라지망은 설령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날개가 있다고 해도 결국 날개가 찢겨 추락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군회라는 조직이 있소.”
잠시 고민하던 덴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덴노의 말을 들은 마원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저희가 직접 만나보도록 하지요.”
“작전 개시일은?”
“가장 달이 작고 밤하늘이 어두울 때. 삼 일 뒤 축시(새벽 1~3시)로 하겠습니다.”
“……무운을 비오.”
“그러셔야 할 겁니다. 저희가 아니라면…….”
마원은 등을 돌리면서 덴노에게 말했다.
“덴노께서도 무사하시지 못할 터이니.”
달칵 덴노의 나지막한 한숨이 어소의 대전을 가득 채웠다. ***** 만우 일행이 교토에 들어온 지 사흘이 지났다. 하지만 그 사흘이 지나는 동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첫날과는 달리 별다른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으하아암.”
만우는 아침 늦게 일어나 기지개를 쭉 하고 켰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것과는 만우의 생활 방식이 사뭇 달랐다. 으레 동이 트는 새벽과 해가 지는 시간에는 일월이 교차하는 시간이라 온 천지의 기가 충만해진다. 그 때문에 무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동틀녘에 일어나 내공심법으로 내공을 증진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운기나 토납 같은 행위를 일절 하지 않았다. 창, 차자장!!! 끼익 만우는 금각사의 창문을 열며 아래 호숫가 옆에서 창창거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감령과 필두, 문형일을 보면서 한 마디를 했다.
“꼭 여기서 해야 돼냐? 잠을 못 자겠잖아.”
“대장님.”
“대장님은 아침에 수련 안 하십니까?”
감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만우에게 물었다. 만우의 머리는 까치집인 것이, 누가 보더라도 푹 자다가 방금 일어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귓구멍을 후볐다.
“아침에 수련을 왜 해.”
“아니 그래야…….”
“너네야 좌공(座功)을 익혔으니까 그런거고. 본주는 행공(行功)을 익혀서 그런건데.”
“……행공?”
만우는 하품을 하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늘에서 서책을 보고 있던 동군영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필두에게 물었다.
“행공이 무엇인가?”
“음…….”
무림인을 십으로 본다면, 십 중 구가 익히는 내공심법은 대부분의 좌공(座功)이다. 즉,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여 자연의 기와 나를 일체화시키는 것부터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몸 속과 몸 밖을 관조하여 그 기운을 일치시키는 것에서부터 공력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좌공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정성과 효율성에 있었다. 온 정신을 몸 속과 몸 밖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굉장히 세밀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그런 집중력 없이 함부로 자연의 기운을 몸으로 끌어들였다가는 큰일이 난다. 그래서 집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구결이다. 구결을 외움으로써 무공의 이해도를 높이고, 집중을 하게끔 인위적으로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행공은 다르다.
“서서, 앉아서, 누워서, 뛰면서, 걸으면서, 움직이면서 저절로 내공이 움직여 몸에 쌓이는 것이 바로 행공입니다.”
“그러면 행공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동군영은 필두의 설명을 듣고는 단박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필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요. 사람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운기가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안정성과 효율성이 다시 나옵니다.”
행공은 무의식이 계속해서 몸 속의 기운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공이 늘 주야를 가리지 않고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의 몸은 대단히 예민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없이는 위험성이 대단히 큽니다.”
잘못해서 내공의 흐름이 한 번 끊기기만 해도 바로 꼬이고 뒤틀리는 것이 혈도다. 그렇게 잘못 꼬인 혈도를 내공이 잘못해서 건드리면 그 혈도 자체가 찢어지는 수가 있었다.
“그리고 효율성도 내공심법보다 떨어집니다. 알려진 바로는요.”
거기에 좌공보다 행공이 내공을 모으는데 비효율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필두는 만우를 쳐다봤다.
“알려진 게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게 틀렸다는 증거가 바로 만우였다. 만우의 나이는 이들 중 방매와 김향을 제외하고는 가장 어리다. 하지만 무공으로 논하자면 만우의 경지는 천하제일을 다툴 정도.
‘어쩌면 고금제일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필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야! 들어와!”
그때 만우가 허공을 쳐다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감령과 필두, 문형일은 만우가 소리친 허공을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다음 순간, 만우가 연 창문 난간에 닌자가 발을 디딘 것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대체 왜의 살수들은 뭘 익히고 다니는 거야?”
“도통 눈치채지를 못 하겠어.”
감령과 문형일이 차례대로 중얼거렸다. 이곳의 살수들은 정말 말 그대로 귀신 같았다. 기존 중원의 무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은신술을 닌자들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기술은 평범한데, 은신과 잠행은 최고 수준이야. 거참.”
문형일이 혀를 내둘렀다. 은신과 잠행만을 놓고 보자면 중원의 살수들은 왜의 살수들 앞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기술과 기예는 중원 살수들이 훨씬 더 뛰어났다.
“그런데, 대장이 왜 살수를 만나는 거지?”
문형일은 창문 안으로 사라진 닌자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
“덴노? 일본 황제?”
“황제……라고 하기는 실권이 없지만. 정통성을 가진 덴노이기는 하지.”
신이치는 마교가 덴노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만우에게 알려주었다. 만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의문이란 말이야. 마교가 왜 덴노와 손을 잡았을까. 나 같으면 요시미츠란 놈과 잡았을 텐데.”
일본국, 즉 왜의 실권은 덴노가 아니라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쥐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조사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마교의 목표가 만우라면 그들은 왜 요시미츠가 아니라 덴노의 손을 잡았느냐는 것이다.
“아마 명나라 때문일 것이다.”
신이치는 만우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명나라?”
“마교라는 그 낭인들. 알아보니 무인 집단이 아니라 그 근원은 종교집단이더군.”
“그렇지. 그래서 교(敎)를 쓰니까.”
“명나라에서는 그 마교란 집단을 종교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고. 그 때문에 명 황실로부터 먼 곳에 숨어 있다고 하던데.”
“아.”
만우의 눈이 커졌다.
“요시미츠 그놈은 명 황제로부터 덴노를 제치고 일본국왕으로 왕위까지 받은 놈이지. 그놈은 명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명을 좋아하기도 하고.”
만우는 문득 고개를 돌려 3층을 둘러보았다. 내부 장식들이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난다 했더니, 명나라 양식이었다.
“그래서 손을 잡지 않았다?”
“이미 삼만이나 되는 신센구미가 있는데, 굳이 낭인과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겠지.”
“낭인…… 크크큭.”
만우는 큭큭거리며서 웃었다. 중원에서는 그 이름만으로 공포의 대상인 마교가 이곳 일본국에서는 낭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아마 조만간 덴노가 공식적으로 조선에서 온 보빙사 일행을 어소로 불러 연회를 개최하기로 계획이 선 모양이야.”
“연회. 아 맞다. 나 보빙사에 껴서 온 거였지.”
만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보빙사 여의손의 약점을 손에 쥐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동군영도 감찰인데 그런 연회 자리에 빠질 수는 없었다. 감찰인 동군영은 어명으로 보빙사 여의손이 하는 일을 감시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소 바로 옆에 있는 숲에 마교란 놈들이 똬리를 틀고 있고.”
“으흠…….”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자신이 금각사에 있다는 것까지 밝혔는데 사흘이나 쥐새끼도 보이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마교 놈들은 처음부터 만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교의 군사라는 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