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마교, 살인진, 성공적?(1)2021.03.27.
“아흐으윽…….”
땀에 젖어 펄떡거리는 몸은 가히 예술품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늘에 빛나는 하얀 별을 그대로 몸에 담아놓은 것처럼, 잡티 하나 없이 반들거리는 피부는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백자의 결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아흑!!!”
계속해서 신임을 흘려대는 여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반면, 그것을 뒤에서 여자가 몸을 뒤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의 표정은 무표정하기 그지 없었다. 고오오오!!!!! 남자와 여자의 몸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가공할 만한 기세가 아니었다면,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 법한 선녀와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이야기였다.
“참아.”
“으흐읏…….”
만우는 혀를 한 번 쯧하고 차고는 찢겨져 나간 척사영의 세맥을 거의 신기에 다다른 내력 제어로 잡아내고 다시 붙였다.
“여포. 생각보다 무지막지한 놈이네.”
만우는 엉망이 된 척사영의 몸을 천천히 회복시키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만우의 얼굴은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진인의 경지에 오르기 전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인의 경지에 오른 만우에게 다른 사람의 신체를 관조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주 세밀한 내력의 제어가 필요한 일임에도, 마치 손발을 다루듯이 편안하게 공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마지막이다. 힘 제대로 줘.”
“으흐흑…….”
고통 어린 신음과 비음을 번갈아 내는 척사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속곳도 하나 남기지 않고 외간 남자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몸이 마치 뜨거운 용암 속에 들어갔다가, 그토록 차갑다는 백두산 천지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처럼 고열과 오한이 반복 됐다. 또한 항상 공력이 힘차게 내달리던 세맥은 곳곳이 막히고 찢어져 바늘이 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계속해서 안겨주었고, 만우의 공력은 그런 척사영의 몸 속을 휘젓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고수라고 해도, 몸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자. 이제 끝!!!!”
끊어진 세맥을 이어주는 건 대단히 고도로 훈련이 된 내력 제어술을 필요로 했다. 대다수의 무인들은 공력을 거칠게 질주시켜 파괴력을 극대화 되는 것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이런 내력 제어술은 내공을 익힌 의원이 아니면 거의 치료가 불가능했다. 만우도, 진인의 경지에 접어들지 못 했다면 못 했을 일이다.
“하악, 하악, 하악.”
만우는 땀으로 번들거리는 척사영의 백자 같은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흠흠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지만, 대단히 지금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선정적이란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러면 옷 잘 챙겨입고. 앞으로 며칠 간은 내공을 끌어올릴 생각은 하지도 말고. 잘 먹고 따뜻하게 있어야 하고. 몸을 보중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두 가져다 써라. 그래야 회복이 빨라.”
만우는 척사영이 벗어서 각이 잡히게 딱 접어놓은 옷을 척사영의 어깨에 걸쳐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은공…… 다시 한번 목숨빚을 졌습니다.”
만우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낀 것인지 척사영이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눌러붙어 있었고, 눈에는 고통을 참느라 매달린 눈물로 인해 눈이 초롱거렸다.
“어, 어험.”
거기에 그 아래로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기 때문에 만우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손을 내저었다.
“알면 됐어. 그리고 곡산척가라면서. 조선에서 빵빵한 가문. 나중에 돌아가면 알아서 잘 챙겨주고. 그러…….”
“은공.”
그때, 척사영의 손이 만우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힘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손이었기 때문에 차마 뿌리칠 수가 없어 만우는 고개를 돌렸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촉촉하게 젖은 척사영의 목소리가 만우의 귓가를 건드렸다. 방 안에 퍼진 척사영의 땀냄새가 달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만우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소녀. 은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나이다. 은공께 진 이 빚, 소녀가 평생 은공을 모셔도…….”
“워, 워워워!!!!”
만우가 다급히 척사영의 말을 막았다. 저대로 내버려두었다가 무슨 말까지 튀어나올지 겁이 더럭 났기 때문이다.
“다, 당연히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야 하는 거지. 무, 무슨 그게…….”
“그게 아니라…….”
척사영이 처연해졌다. 강철 같은 무인이던 척사영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도 만우 앞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은공께서 저를 한 번이라도 봐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고 있사옵니다.”
“……척사영.”
“제가 여인으로 보이시지 않으신가요?”
척사영의 말에 만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척사영에 개어놓았던 옷이 스스로 일어나 척사영의 드러난 몸을 가렸다. 척사영은 그런 만우를 슬픈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만우는 그런 착서영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냥…….”
만우는 쓰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단히 궁금해하여 문 밖에 귀를 붙이고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기척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척사영. 넌 충분히 아름다워. 거기에 강하기까지 해. 만약 내가 중원에 있었다면, 검주의 배필로는 척사영, 그대 같은 사람을 찾았을거야.”
여인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또한 무예를 대하는 자세도 항상 진지했고, 강한데다가 아름다웠다. 그 누가 그런 척사영을 배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난.”
만우는 이룰 수 없는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평화롭게 살고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게 그토록 어렵기에 만우는 그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도. 현경에 오르는 것보다, 이미 무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평화롭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만우는 깨달았다.
“조선으로 돌아온 나 검주(劍主) 만우는…….”
만우는 척사영을 척사영이 입었던 옷으로 꽁꽁 감싸 맨 살이 드러나지 않게 만들고 나서야 흡족하게 웃어보였다.
“검주란 이름을 버리고, 만우로 살아가고자 해. 그게 내 꿈이야. 그러니…… 검주의 배필로 합당한 그대를 옆에 둘 수는 없어.”
“……평범하게 살고 싶으신 겁니까.”
“꿈이지. 이룰 수 없는 꿈.”
척사영은 단박에 만우가 하려는 말을 눈치챘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둘이기 때문이다. 만우는 쓰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욕하겠지. 그대 같은 여인을 발로 차는 것이니까.”
“은공…….”
“그대의 감정, 그리고 방금 보내준 그대의 눈빛. 내 기억해 두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질 때마다 꺼내보도록 하지. 누군가 나를 연모하였다는 뚜렷한 증거니까.”
“…….”
만우의 부드럽지만 분명한 거절에 척사영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척사영은 만우를 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소녀, 그걸로 족하옵니다.”
만우에게 받아들여지지는 못 했으나, 만우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척사영은 사내가 다른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내에게 끝까지 매달릴 여인이 아니었다. 인연이 아닌 것은 단숨에 끊어버리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게 무인으로서, 그리고 여인으로서 척사영의 선택이다.
“그래. 그랬다면 됐다. 몸이나 잘 추슬러.”
“예, 은공.”
척사영이 달처럼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나가려다가 문득 척사영을 만난 이후로 오늘이 그녀의 표정을 많이 본 날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달칵
“……넌 뭐하냐?”
문을 연 만우는 기척도 숨기지 않고 화다닥 문에서 떨어져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척을 하는 방매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뭐! 지나가는데 망측한 신음이 들려서 지나갈 수 있어야 말이지!!!”
방매는 그런 만우를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할 짓도 없다. 언제 온 거야?”
“방금. 사람들 다쳤다고 해서 척 무사님이 어떤가 보러 왔던 것뿐이야.”
“그래? 혹시 뭐 들은 건 없고?”
만우는 이미 다 알면서 방매를 슬쩍 떠보았다. 그러자 방매가 딴청을 부리면서 모르는 척을 했다. 그 모습에 만우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그냥. 그럼 밤이 늦었다. 어서 들어가서 자라. 언제 바빠질지 모르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러던지.”
만우는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방매는 멀어지는 만우의 등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척사영의 방문을 쳐다봤다.
[검주의 배필로 합당한 그대를 옆에 둘 수는 없어.]
방매는 만우의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웃었다가 누가 볼 새라 금세 표정을 바꾸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 여포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흐음.”
여포는 엄연히 말해 일본국까지 와서 할 일이 있었다. 활빈당, 여포를 따르는 부하들을 위해 동군영과 약속한 대로 동군영이 일본국에 넘길 개성 삼을 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댓가로 여포는 동군영을 도와 마교를 상대한다고 약속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만우의 수하들을 두들겨 팼고, 한 여자를 쫓아 이곳까지 오게 됐다.
“이름이 여포라고 하셨습니까?”
주창을 구하러 간 옥령과 함께 돌아온 여포는 마일을 비롯한 나머지 투귀대 고수들과 면담을 가져야만 했다. 난데없이 툭하고 등장한 화경의 고수에 궁금증을 아니 가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님께서 그리 이름을 주셨소.”
“스승님이요?”
중원에서 온 이들이 여포를 모를 리 없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신으로까지 모시는 것은 관우였지만, 그 관우가 의형제인 장비와 함께 덤볐어도 거뜬히 상대했던 것이 바로 여포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초패왕 항우과 비교가 될 정도였고,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호사가들의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 바로 여포였기 때문에 자리한 웅풍이나 위문은 두 눈을 반짝였다.
“내게 은인이 되시는 분이지. 중원에서 오셨다고 듣기는 했소만.”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오래 전에 등선하셨소이다.”
“…….”
등선이란 소리에 마일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웅풍과 위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등선을 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신선이 되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여포는 굳이 스승인 세공도인의 일을 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담백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