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혼돈의 소용돌이(4)2021.03.20.
“호오…… 하긴. 요시미츠란 놈. 적 만들기 딱 좋은 관상과 성격을 가지고 있던데.”
신이치는 요시미츠를 ‘놈’이라고 부르는 만우를 보면서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느꼈다. 신이치가 만우를 찾아온 이유는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대는 조선에서 온 보빙사인가?”
“그 일행이긴 하지만…… 나도 다른 목적이 있거든.”
“다른 목적?”
덴노가 불러모은 마교라 불리는 명의 낭인들이 만우를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저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신이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게 정상이었다.
“저기. 저기서 쥐새끼처럼 숨어서 지켜보는 놈들에게 관심이 있거든.”
만우가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있는 건물의 지붕을 가리켰다. 신이치가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봤지만, 신이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는 놈들이라 하면…….”
“마교. 그 겁쟁이들.”
꾸욱 만우가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의 지붕을 향해 손가락을 말았다가 튕겼다. 그러자 파앙하는 소리와 함께 신이치의 눈이 커졌다.
파바박!!! 저 멀리 있는 전각의 처마 끝이 퍼억하고 부서지더니, 그 위에서 놀란 개미떼처럼 도망을 치는 검은 인형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하여간. 마교란 놈들이 저리 겁이 많아서야.”
만우는 혀를 쯧쯧하고 찼다. 하지만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수일 내로 어떻게든 답신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만우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리로 오라고 해야지.’
만우는 자신이 일본국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양보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건방지게 먼저 함정을 파두고, 자신을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아니. 마교가 그리도 자신을 넘어서고 싶다면, 그러고 싶다면 도전자가 찾아와야 하는 법이다. 그 때문에 만우는 마교의 간자들에게 정확하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린 것이다. 금각사로 와라!! 그 의지를 정확하게 전달한 만우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곳에 거꾸로 마교가 들어오면 잡을 그물을 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요시미츠는 간악한 자다. 그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가 손 자체를 베어버리는 악독한 짓을 수도 없이 해온 자다.”
“배신을 많이 때린 놈이라고?”
“그렇다. 첫 만남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리란 것을 알고 있지만…….”
살군회 입장에서는 굳이 조선의 보빙사와 척을 져서 좋을 일이 없었다. 요시미츠가 그들을 귀하게 대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무위과 대단한 것을 안 이상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 이미 사다요 가문의 닌자들을 손쉽게 처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요시미츠, 그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등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자이니까.”
신이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그래서 무너진 곳 중에 하나가 바로 토키 가문이다. 요시미츠가 배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신이치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인생을 망친 주범.’
신이치는 요시미츠에 대한 적의를 맹렬하게 불태웠다. 만우는 그런 신이치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뭐, 충고는 고마워. 참고할 테니까 그 말을 하러 온 거라면 이만 가도 되겠는데?”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만우는 애초부터 요시미츠를 신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처음 본 불청객인 신이치의 말을 믿을 생각도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아무도 안 믿는데 뭐.’
만우는 애초에 처음부터 신이치건, 요시미츠건 둘 다 믿지 않았다. 요시미츠도 만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찾아온 것뿐이다. 이용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충분히 자신의 무력도 증명을 했으니,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런데도 만약에 자신을 배신한다?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물을 사람도 있는 법이다. 만우는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들어주겠다. 대신, 우리와는 반목을 하지 말아다오.”
신이치는 만우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만우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꿍꿍이가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직설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효율적으로 말을 돌리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딱 들이미는 것이 효과적인 사람인 것이다.
‘사무라이들이란.’
신이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만우의 입을 쳐다봤다.
“여기, 마교란 놈들이 와있지?”
“……중원에서 온 그 낭인들?”
“낭인? 뭐 생각하기 나름이긴 한데.”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중원에 대한 소식에 어두울 수 있었다. 중원에서 명은 거리상 매우 멀리 떨어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놈들에게 볼 일이 조금 있거든. 그러니까 그놈들에 대한 정보를 모았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이야?”
요시미츠의 수하들이 사실 이미 움직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요시미츠만을 믿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만우는 신이치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그래서 너희들이 좀 알아 왔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그에 합당한 부탁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지.”
만우의 말에 신이치가 멈칫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신이치의 살군회는 현재 덴노를 비롯한 귀족측과 밀월관계 중이었다. 그리고 신이치가 알고 있기론, 그 마교라 불리는 낭인들은 덴노가 요시미츠의 사무라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부른 이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정보를 만우에게 넘긴다?
‘넘긴다.’
하지만 신이치의 판단은 빨랐다. 그의 장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추진력이었다.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면 살군회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변수에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이치가 판단하기에 만우를 그 정보로 포섭하는 것이 덴노와 손을 잡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었다.
‘이런 자가 요시미츠를 암살하려는 우리들을 막는다?’
이미 만우가 마교의 척후대에게 가한 경고를 본 순간 신이치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정보는 가져다 주도록 하지. 근시일 내에.”
“좋아.”
만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이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만우는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전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
“금각사?”
“예…… 커헉.”
곡왕 부고야는 항상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는 남자였다. 곡왕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음공뿐만 아니라 악(樂)에 대한 조예도 상당해 무대를 즐겼다. 마교에서는 부고야가 정기적으로 여는 음악 공연이 상당한 명물로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런 부고야는 무림십좌에서도 일패 혈세천마에 이은 이왕(二王)의 하나였다. 부고야는 척후로 내보냈던 진혼대 소속의 마교 고수가 피를 입으로 한 됫박이나 토해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음악을 즐긴다고는 하지만 그 근원이 피와 죽음에 무던한 마교 고수란 것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알았다. 그만 나가봐라.”
“존명!!!”
쿨럭! 쿨럭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땅에 흩뿌려졌다. 간신히 도망쳐 와 보고를 한 그자는 존명을 외친 이후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부축을 받으며 나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곡왕의 눈은 차게 식어 있었다. 어차피 진혼대의 고수는 오백이나 됐기 때문에, 하나 정도 없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정이란 것을 알면서도, 일본국까지 와서는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안 그래도 어젯밤 잠입한 반역자, 주창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물론 혈세천마의 건재함을 알린 계기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건방진.”
부고야의 눈이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음공은 천하일절이어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이상 절대로 피해낼 수 없다고 그는 자부했다. 그의 음공을 파훼할 정도면 혈세천마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부고야는 이제 스물다섯 정도 됐다는 새파랗게 어린 검주의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어린 놈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니, 이를 어찌할꼬.”
거기에 그놈이 혈세천마처럼 막대한 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곳에 동원된 진혼대의 고수가 무려 오백이나 된다. 거기에 최고 정예라는 천마대도 백이나 동원됐다.
‘살인진까지 갖춰졌고.’
마군자 마원이 쓸데없는 노파심을 부린다 생각했지만, 교주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둘인 진혼대주 곡왕 부고야와 천마대주 마존 남요명은 쓸데없이 의견을 표출하지 않았다. 혈세천마가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결국 교주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는 뜻이다.
“유비무환. 준비를 해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고작 한 명의 고수를 상대로 이 정도로 준비를 하는 것을, 부고야는 절대로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받아들였다.
“이건 군사에게 말을 해둬야겠군.”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만우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것을 부고야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상적으로라면, 오히려 은밀하게 구는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교에 있어야 했다.’
만우가 마교에 방문했을 때, 그때 부고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폐관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혈세천마가 검주를 두려워해 피했다는 것 같은, 그런 발칙한 소문은 나돌지도 못 했을 것이다. 검을 아무리 잘 다뤄도, 귀가 달린 이상 음(音)을 피해갈 수는 없으니까.
“군사. 군사!”
곡왕 부고야가 군사를 찾아 교주의 대전으로 향했다. *****
“뭐야. 너네 꼬락서니가 왜 그래?”
만우는 지붕에서의 여유를 만끽하고는 밤공기가 차가워지자 아래로 내려왔다. 금각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은 요시미츠가 아니라 바로 만우와 그 일행이었다. 만우가 요시미츠를 금각사에서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여기, 오늘 우리가 쓴다. 어디 딱히 짐을 풀 곳도 없고. 응?]
전설적인 닌자인 오로치를 가볍게 요리한 만우가. 그런 만우가 요청하는 것을 요시미츠가 무시할 수 있을 리 없다. 그 때문에 전설을 써내려 간 일본국의 전 쇼군인 요시미츠는 눈물을 머금고 금각사를 만우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걸 거부했다가 만우의 심기라도 거스르면, 그것을 만회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장님.”
만우는 엉망이 된 몰골의 감령과 필두, 그리고 혈흔이 보이는 호선과 내상을 입은 듯 창백한 안색의 척사영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척사영. 네가 당한 거라고?”
척사영은 만우보다는 못 했지만 그래도 일행 중에는 최고수다. 그런 척사영이 당했다는 것은 상대가 만우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여포…….”
척사영이 여포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만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감령과 필두를 쳐다봤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대장님…….”
감령이 그런 만우의 표정을 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분노가 끓어올라 감령의 목소리가 거칠어진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거의 빼놓지 않고 감령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주창을 만나던 순간부터 해서 옥령과 여포의 난입,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까지.
“여포가 거기 붙었다고?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