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혼돈의 소용돌이(3)2021.03.16.
콰가가강!!!
[역시, 흉악하기 그지없는 기운이로구나!]
호선은 옥령이 날린 장력을 발톱으로 찢어발기면서 선기를 일으켰다. 거대한 집채만 한 백호는 덩치와는 다르게 바람처럼 빨랐기 때문에 옥령은 마주 공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가지고 싶어서 이런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는 줄 알아?”
콰가가가가!!!! 혈마공(血魔功)은 단순 파괴력만 따지자면 무림 역사 전체를 뒤져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공이다. 하지만 반드시 혈성을 타고나야만 하는 운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옥령은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혈마공을 익혔다. 아니, 정확히는 혈성 그 자체가 혈마공의 주인이가 스승이었기에 옥령은 한 번씩 살성이 발동하고 나면 무공이 크게 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 정신을 잃은 동안 옥령은 자신이 제 손으로 죽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것뿐인데, 지워지지 않는 피비린내가 늘 맴돌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네가 일으킨 혈겁! 네가 타고난 운명 때문이기는 하나 악업인 것은 분명하다!]
쫘자자작!!!! 바람 속에 모습을 숨겼다가 옥령의 지근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호선이 발톱으로 삭풍의 칼날을 만들어내 쏘아보냈다. 옥령이 어두운 장포 자락을 펄럭이며 두 손에서 음울하게 이글거리는 붉은 장력을 쏘아냈다. 콰광!!!! 호선과 옥령은 백중지세였다. 혈마공과 선기가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누가 더 지치지 않느냐, 누가 더 기운이 약간이라도 정순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크와아앙!!!! 호선이 만들어낸 풍조(風爪)가 옥령의 장력과 충돌하면서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어난 찰나, 호선이 충격파를 무시하고 짓쳐들어 옥령을 몸으로 들이받아 쓰러뜨렸다. 콰악!
“크윽?”
호선의 크기는 웬만한 집 서너 채를 이어놓은 것만큼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옥령은 차마 물러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육탄전으로 나오는 호선에게 밀려 그대로 쓰러졌다.
[혈성을 타고난 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다 결국은 비명에 갈 운명이니. 운명에 순응하라!]
크와아아앙!!!! 호선이 입을 쩌억 벌렸다. 호선의 앞다리는 옥령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무게와 덩치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옥령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호선이 입을 벌려 옥령의 머리를 통째로 물어뜯으려는 찰나 극기가 쇄도했다. 촤아악!!! 스팟!! 크와앙!
[크윽!]
그 찰나의 순간에 축지를 이용해 몸을 빼낸 호선이지만 약간 부족했다. 극기가 훑고 지나간 호선의 옆구리에서 피가 뭉클거리며 새어나와 하얀 백호의 털을 물들었다.
“크으윽!!!”
그 순간 여포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여포가 눈을 호선에게 돌린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척사영의 좌검우도의 강격이 여포의 방천화극에 그대로 작렬했기 때문이다. 부르르
“한눈을 팔 정도로 여유로운가?”
척사영은 불쾌하다는 듯 검기와 도기로 인해 웅웅거리는 검과 도를 다시 고쳐 쥐면서 여포를 향해 말했다. 여포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눈가를 찌푸리면서 척사영을 쳐다봤다.
“여유로울 리가. 그대가 그리 쉬운 상대도 아니고.”
“그렇다면…….”
척사영의 투기가 치솟았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척사영의 주변으로 둥그런 파동이 일어났다.
“우습게 본 것이로다.”
척사영은 여포가 자신과 싸우는 와중에 옥령에게 시선을 돌렸다는 것에 분노했다. 척사영 그녀를 무시하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여포는 분노하는 척사영을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드센 여자는 별로인데.”
“난 무사다.”
콰과광!!! 여포의 방천화극 위로 척사영의 강격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여포는 방천화극으로 강격의 충격을 흘려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무사지. 흡!!!”
파아앙!!!!
“무슨…….”
척사영의 두 눈이 커졌다. 여포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1.5배 이상 강해졌기 때문이다. 여포는 고의적으로 막아두고 있던 공력에게 마침내 자유를 줬다. 소주천이 아니라 넓게 닦인 경맥을 통해 대주천을 한 공력이 여포의 몸에서 날뛰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긴다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을…… 숨겨두었다?”
척사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늘어난 여포의 기세에 스스로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실력을 숨겼는지 몰라도, 제 실력을 드러낸 여포에 비해 척사영은 부족했다.
‘아니. 어차피 같은 화경.’
하지만 척사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지고한 경지인 화경이라고 해서 그 안에 고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만우만 해도 같은 화경인 권희달이나 주창, 척사영을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고한 경지이고, 많은 사람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니 다들 몰랐지만 그 안에서는 삼류부터 초절정까지의 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또다시 실력이 세세하게 나뉜다.
“특별히 그대들을 상하게 하지는 않겠다. 뭐, 만우 그자와 약조한 바도 있으니.”
“만우? 은공?”
“은공? 흠. 무슨 은혜라도 입은 모양인데 어쨌건…….”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그러자 강맹한 기운이 척사영의 전신을 옥죄듯 조여들었다. 여포는 옥령과 호선이 비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어서 끝내자.”
스팟!! 여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동시에 척사영의 눈이 커졌다. 방천화극이 척사영을 위에서 아래로 쪼갤 것처럼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바뀐 속도와 기세에는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포는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척사영을 몰아붙였다. 콰과과광!!!! 퍼억!!
“…….”
척사영의 두 눈에 핏줄이 섰다. 그리고 그런 척사영의 배에는 여포의 주먹이 꽂혀 있었다. 방천화극으로 척사영의 방어를 뚫은 여포가 척사영의 복부를 후려친 것이다.
“우웩!!”
척사영이 피를 토해냈다. 내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포가 주먹이 아니라 다른 무기였다면, 아니면 제대로 공력을 실어 때렸더라면 척사영은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크으으…….”
그것을 알기 때문에 척사영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척사영의 두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여포가 안겨준 피해가 컸다는 뜻이다.
“그대는 충분히 강했으니, 굳이 움직이려 하지 마라. 몸만 더 축나니까.”
옥령 때문에 다소 비겁하게 척사영을 상대했지만 여포는 개의치 않았다.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어떻게 이기느냐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콰앙!!! 그리고 그때, 호선이 옥령을 뒤로 힘껏 밀어낸 뒤 허공을 날아 척사영의 옆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때 간신히 정신을 차린 감령과 필두도 그런 호선과 척사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저.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아요. 헌데…….”
옥령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포를 쳐다봤다. 여포는 그런 옥령의 표정을 읽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다들 한둘씩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
“어쨌든 일단 이 자리를 피하시지요. 저들과 완전히 척을 질 것이 아니라면…….”
“그럴 생각 없었어요. 가요.”
옥령은 고개를 돌려 척사영과 호선, 감령과 필두를 한 번씩 바라보고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여포도 등을 돌리기 직전, 척사영이 입가에서 피를 연신 흘려대면서 여포에게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포. 활빈당의 여포. 기억하거라. 난 곡산척가의 척사영이다.”
“곡산척가…… 이거. 귀찮은 가문과 척을 지게 되었군. 다음에 봅시다, 그러면.”
스팟!!! 곡산척가란 소리에 여포의 표정이 변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다. 여포가 미련을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지자 척사영이 입에서 피를 다시금 토해냈다.
“커헉…….”
“가만히 있어요. 척 무사님. 몸이 엉망이에요 엉망.”
백호에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호선이 선기를 뿜어냈다. 몸이 저절로 떨릴 정도로 큰 충격을 입은 상태지만, 척사영은 검과 도를 놓치지 않았다. 부들부들
“다시 기회가 올 겁니다.”
“쳇. 빌어먹을 놈. 강하다더니 그냥 뜬소문이 아니었잖아?”
창백한 안색의 감령과 필두가 척사영에게 한 마디씩을 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
“여기도 달은 똑같네.”
조선에서도, 무림에서도, 그리고 이곳 왜에서도 만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달이 보이는 지붕 위였다. 한서불침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만우는 벽이 있고 문이 닫힌 방을 답답해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역마살이란거지.”
만우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무림에서 평범한 삶, 평화를 부르짖으며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그런 평화가 자신에게 안 맞다는 것만 확인했다. 이미 부평초처럼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어떻게 머슴살이를 했나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사실 머슴살이도 한 곳에서만 한 것이 아니다. 어르신을 따라 그 당시에도 중원 곳곳을 유배 다니느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
“…….”
만우가 고개를 돌리자 처마 끝에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살군회를 이끄는 신이치 토키였다.
“명나라 사람인가?”
“아니. 조선사람. 그런데 한어가 유창하네?”
만우가 피식 웃으며 딱딱한 표정의 신이치에게 말했다. 신이치는 딱딱한 목소리로 만우에게 말했다.
“한어를 모르고서는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
“가문의 후계자. 이거 어디 도련님이셨던 모양이구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달을 등지고 처마 끝에 선 신이치는 자신의 은신술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눈치챈 만우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요시미츠에 의해 토키 가문이 망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된 신이치는 살기 위해 닌자들의 은신술을 익혔다. 그걸로 요시미츠의 추격대를 따돌린 적이 얼마인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그 때문에 은신술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파훼당했다.
“킨카쿠지가 오늘 떠들썩했다고 해서 와봤는데 그대의 짓이었군.”
“주제를 모르고 달려드는 놈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줬을 뿐.”
살군회의 수장인 신이치가 범의 아가리나 다름없는 킨카쿠지, 금각사까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동군영과 만우, 오사카에서 내려 교토로 향한 보빙사의 일행들 중 우두머리들이 금각사로 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어느 쪽이야. 이쪽? 아니면 저쪽?”
만우는 이 오밤중에 은밀하게 찾아온 신이치를 보고 그가 일본국에 와서 만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눈치챘다. 요시미츠 쪽의 사람이라면 굳이 은밀하게 찾아올 필요가 없고, 마교에서 보낸 자라면 조금 더 실력이 뛰어난 이를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각사의 주인에게는 볼일이 있지만, 당신에게는 볼일이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