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혼돈의 소용돌이(2)2021.03.13.
그런데 그 때, 방매와 김향의 방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저씨! 아저씨! 문형일 아저씨이이이!!”
“아저씨 아니라니까.”
문형일이 한 번 투덜거리고는 슬찍 일어나더니 의자를 밟고 비조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 문형일의 몸놀림을 본 츠쿠야의 눈이 한차례 번뜩였다. 사뿐
“왜?”
2층에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올라선 문형일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문형일의 몸이 딱 굳었다.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말이다.
“벌레 잡았어요, 벌레!!”
버둥버둥. 김향의 손에 들린 신이룡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력에 쥐도 새도 모르게 제압이 된 닌자 하나가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게 어떻게…….”
“그냥 느껴져서요?”
김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문형일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닌자들의 은신술은 어지간해서는 알아채기가 힘들었는데, 이제 막 무공 비슷한 것을 익히기 시작한 김향이 닌자를 찾아낸 것도 모자라 깔끔하게 제압까지 해버렸기 때문이다.
“싸울어미의 투술이란거, 대단하구나?”
문형일이 감탄하자 김향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1층에서 벽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쩌저적! 쩍!
“살군회의 개들이구나!!!!”
그리고 그 사이로 츠쿠야의 광기 섞인 목소리가 섬짓하게 울려퍼졌다.
“살군회?”
크아악!!! 문형일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아래에서 피보라가 자욱하게 일어나면서 사람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문형일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김향에 의해 제압당한 닌자의 뒷덜미를 낚아채면서 김향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어. 모르는 사람 들어오면 그냥 냅다 갈겨버리고.”
“알았어요 아저씨!”
방매가 김향의 손목을 붙잡고는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방매과 김향이 방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가 들리자 문형일은 2층 난간으로 걸어갔다. 1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기 위함이었다. 서거거걱!!! 끄아악? 끄억! 딱 보아하니 우즈히코 가문으로 가던 길에 자신들을 선공했던 그 암살자들, 이곳에서는 닌자라 불리는 이들 같았다. 눈 빼고는 그 어디도 드러내지 않은 복장에, 긴 왜도 보다는 짧은 왜도와 비수로 무장한 이들이 여기저기 피를 흘린채 죽어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형일이 눈 여겨 본 것은 이미 한번 봤던 닌자가 아니라,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츠쿠야라는 사무라이였다.
“처절하구나. 처절해.”
츠쿠야는 스스로를 인간백정이라 불린다며 소개했다. 그리고 츠쿠야가 닌자들과 싸우는 모습을 본 문형일은 왜 그가 인간백정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싸움은 처절하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푹! 푸북!!! 츠쿠야는 그 짧은 시간에 혈인이 되어있었는데 자신이 죽인 상대의 피 뿐만 아니라 제 몸에서도 피가 꽤 많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차캉!! 쨍그랑!!! 쇄도하는 닌자의 짧은 소검을 츠쿠야는 긴 왜도를 휘둘러 감아내고는, 자유로운 손을 뻗어 그대로 검을 부러뜨렸다. 부러진 검을 맨 손으로 움켜쥔 채 그대로 달려들어 검이 부러진 닌자의 목에 박아넣은 것이다. 푸부북! 그리고는 날아드는 표창을 시체를 휘둘러 막아낸 뒤, 그 너머에서 달려드는 닌자를 발견하고는 죽은 시체의 귀를 물어뜯었다. 퉤엣!! 그리고는 그 귀를 달려오는 닌자의 얼굴에 핏물과 함께 내뱉은 후 달려들어 쓰러뜨린 것이다. 써걱!! 그리고는 그대로 왜도를 그어 목을 잘라낸 사이, 츠쿠야의 허리춤을 닌자들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며 소검으로 그어댔다. 움찔.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문형일은 그런 츠쿠야를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일부러 맞는다고?”
츠쿠냐는 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그냥 몸으로 떼웠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상처를 입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적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촤자작! 촤작!!!! 닌자를 죽이면 제 몸에도 검상이 나니, 혈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 박력이 더 컸다.
“끙. 누가 보냈는지는 들어야 하니까.”
이 닌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한 패는 아니다. 자신이 ‘주군’이라 부르는 자의 말을 전하러 왔다고 했으니 문형일은 끄응하는 소리를 내고서는 난간에 발을 얹었다. 푸욱!!! 마침 닌자 하나가 사슬낫으로 츠쿠야의 손을 꿰어 땅에 박아넣어 한 손을 봉인하고 있을 때였다.
“죽어라!”
“오라! 살군회의 개들아!!”
본래 닌자들은 츠쿠야를 습격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정보 수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김향에 의해 닌자들 중 하나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잡혀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를 그냥 두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죽여야 할 인간백정을 노리고 닌자들이 일거에 들이닥친 것이다. 사악!! 츠쿠야는 상체를 있는 힘껏 뒤로 젖혀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피해냈다. 하지만 한 손에 묶인 나머지 츠쿠야는 볼이 갈라지는 것을 느꼈지만,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왜도를 닌자의 목에 꽂아넣었다. 푸욱!!! 꽈악!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손이 묶인 바람에 흔들린 츠쿠야의 검끝이 닌자의 목이 아니라 어깨를 찔렀다. 그리고 어깨가 찔린 닌자가 두 손으로 츠쿠야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죽어라 백정!!!”
츠쿠야가 인간백정이라 불린 이유는 그가 그만큼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죽인 것은 바로 이런 닌자들이었다. 요시미츠가 적절하게 쓰다 버린 가문들의 삭초제근을 맡은 것이 바로 츠쿠야였기 때문에, 닌자들과 가장 많이 싸웠던 것이다. 츠쿠야는 용맹하고 뒤로 물러설 줄을 모르는 맹장이었기 때문에 요시미츠가 칼잡이로 그를 타케노 다음으로 아꼈다. 그러니, 츠쿠야를 죽인다는 것 자체가 닌자들, 살군회의 닌자들에게는 큰 훈장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설령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도 말이다. 땅!!!!
“자아. 거기까지.”
서컹!!!!
하지만, 닌자의 검은 츠쿠야에게 닿지 못 했다. 땅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이 산산조각이 나 부서졌기 때문이다.
“흐우. 흐우.”
동시에 문형일은 사슬낫을 두부처럼 잘라냈다. 문형일의 손에는 어느새 그의 애병인 곡도가 들려있었는데, 닌자들은 문형일을 마주하자 등골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초절정 고수. 같은 초절정인 타케노, 슌스케가 일본국 최고의 사무라이라 불리는 환경에서 닌자들에게 문형일은 그들보다 더 큰 벽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실력자다. 이미 괴검(怪劍)으로 중원에서 이름을 휘날렸던 문형일은 여유로워 보였지만 동시에 닌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손가락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문형일의 곡도에 의해서 목이 떨어질 것이다.
“이 친구는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아. 못 알아듣나 내 말?”
문형일은 츠쿠야를 쳐다봤다. 츠쿠야는 한어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전에도 말이 통한 것이다. 거기에 문형일은 츠쿠야를 보고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중원에서 살다 왔나봐? 그 검, 남방애들 검 같은데.”
교주나 운남은 사시사철 무덥고 늪이 많은 밀림이나 산악지대였다. 그곳에서 사는 이들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라도 자라나면서 저절로 호전적인 성격과 독특한 무공을 발전시켰는데 그들의 움직임과 츠쿠야의 움직임이 비슷했다.
“개싸움. 견투공(犬鬪功)이라 불렀지.”
늪이 있고, 나무가 빽빽한 밀림이거나 산악에서는 중원의 화려한 초식들이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형지물 자체가 중원과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니 중원인들이 보기에 운남이나 교주에서 발전한 무공은 완전 개싸움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처절할 정도로 구르면서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싸우는 견투공은 실전에서 어마무시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 견투공을 보고 깊이 감영받아 만우에 의해 비명횡사한 낭황 우결지도 그의 실전무공에 견투공을 접목시켰다.
“크흐흐. 언제 한 번 해적질을 나갔다가 배가 부서져 그런 곳까지 흘러들어간 적이 있었지.”
“어쩐지. 남방 사투리가 좀 있더라. 너 한어에.”
문형일은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닌자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닌자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뭐, 이미 죽은 애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럴 생각 아니었잖아?”
문형일은 닌자들에게서 그 어떠한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뭐, 닌자들이야 원래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순간까지도 살기를 내보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만역 습격할 생각이 있었다면 조금 더 은밀하게 거리를 유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수없게 김향에게 닌자가 제압당할 정도였으니, 애초에 습격을 할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운 좋은 줄 알아.”
문형일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는 닌자들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너네가 한 한 시진만 빨리왔어도, 여기 그 덩치 크고 대머리인 사람에게 걸렸으면 전부 아작이 났을 거거든.”
이미 닌자들에게 한 번 습격을 당해 닌자들을 모조리 손으로 패죽였던 필두가 있었다. 만약 필두가 있을때 저들이 왔었다면 아마 다들 뼈도 제대로 못 추렸을 것이다. 스스슥!!! 서로 눈치를 보던 닌자들이 스윽하고 몸을 빼 사라지자 츠쿠야가 스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왜도를 납검했다. 문형일은 피를 주룩주룩 흘리는 츠쿠야를 보면서 혀를 한 번 쯧하고 차고는 그에게 말했다.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알아서 한다. 난 주군의 전언을 전하러 왔으니.”
츠쿠야는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꼿꼿했다. 그가 싸우는 모습이 퍽이나 감명스러웠기 때문에 문형일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주군이자 일본국의 태정대신이신 요시미츠 님께서 그대, 동군영의 일행들 전원을 금각사로 초청하셨다. 일본국 최고의 사찰이니 몸가집을 단정히 한 후에 가야하는데…….”
츠쿠야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이미 혈인이 된 이후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차림새에 대해서 뭐라고 할 처지가 되지 못 했다.
“지금 갈 처지는 안 되는 것 같군.”
“그렇지. 아직 다 오지도 않았거든. 우리 일행도.”
“그게 아니라 나 때문이다.”
츠쿠야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문형일은 그런 츠쿠야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런 꼴로는 못 가지.”
“이런 꼴 때문이 아니라.”
츠쿠야는 고개를 들어 문형일을 쳐다봤다. 문형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가 곧 기절할 것 같거든.”
쿵!!!!!
“……어? 야, 야!!!!!”
츠쿠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완전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당황한 문형일이 다급히 그를 불렀지만 츠쿠야는 이미 기절한 뒤였다. 문형일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하는 애야 얘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