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혼돈의 소용돌이(1)2021.03.09.
그런데 여포가 그렇게 몸을 돌리는 찰나, 여포는 이상함을 느꼈다. 뒤로 튕겨져 나간 감령과 필두가 땅에 구르면서 만들어내는 우당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악!!! 그와 함께 여포의 등골에 소름이 우수수하고 솟아올랐다. 그와 함께 여포가 방천화극을 지지대 삼아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쯔걱!!! 티잉!!! 여포는 자신이 방금까지 서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간 예리한 검기를 느끼고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함께 방천화극의 반탄력을 이용해 여포가 거리를 벌리며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바닥에 착지했다.
“저, 저자는!!!”
그리고 동시에, 주창의 눈이 커졌다. 주창의 눈에 잊을 수 없는 여인의 얼굴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법?”
검기가 폭풍처럼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척사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반대로 착지한 여포가 척사영을 보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는?”
“문답무용. 은인의 수하들을 건드렸으니 필시 아군은 아닐 터.”
“은인? 검주?”
“문답무용!!!!”
쯔거억!! 콰가가가각!!!! 여포가 방천화극을 꼬나쥐고는 덮쳐오는 좌검우도의 폭풍 속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것을 본 옥령이 앞으로 나섰다.
“대주님. 먼저 몸을 피하세요.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옥령!”
“대업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옥령은 그렇게 주창에게 말하고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자신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여포를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옥령은 여포에게 도달하기 전에 허공에서 자신을 덮쳐드는 하얀 바람에 기겁하며 보법을 밟아 옆으로 미끄러지듯 밀려났다. 크와아앙!!!! 척사영과 함께 나타난 호선이 옥령을 향해 크게 포효했다. 호선은 옥령을 보면서 두 눈을 빛냈다.
[혈성! 혈성을 타고는 자를 없애면 내 남은 업보를 씻을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다시 등선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호선은 옥령을 쫓아 일본국에까지 왔다. 또한, 혈성 같은 악업을 지고 태어난 자들의 기운은 호선이 다시 도를 쌓는데 있어 도력을 쌓을 가장 중요한 보구인 선주(仙珠)의 재료가 된다.
“치잇!!!”
옥령은 거대한 백호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와 함께 옥령의 양 손에서 시뻘건 혈장이 허공을 격하고 백호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호선이 코웃음과 함께 내리그은 발톱에 혈장이 찢겨져 나갔다. 꽈가가강!!!! 동시에, 척사영이 만들어낸 폭풍을 여포가 방천화극으로 받아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주창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옥령. 부디 죽지 말거라.’
수하를 놓고 등을 돌린 비겁자가 된 주창이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
“츠쿠야? 그 인간백정이?”
“하이.”
신이치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조선에서 돌아오던 요시미츠의 부마인 우즈히코를 생포하기는커녕 닌자들이 잔뜩 상했다. 우즈히코를 생포하고, 조선 보빙사를 상하게 하여 조선의 분노를 일으키겠다는 것이 살군회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조선 보빙사, 그 일행이 괴물 수준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때문에 보빙사를 노리는 안건은 보류가 되었는데, 츠쿠야, 인간백정이라 불리는 이가 보빙사 일행이 짐을 푼 객잔으로 향했다는 첩보가 날아든 것이다.
“첩보! 수장. 성 한복판에서 정체 모를 무인들 간의 다툼이 벌어져 주변 양인들이 피해를 입고 기물 파손이 일어나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정체 모를 무인들? 우리가 모르는?”
“하잇!”
“크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인간백정 츠쿠야가 보빙사 일행이 묵고 있는 객잔에 갔다는 것도 절대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인간백정 츠쿠야는 그가 직접 죽인 이가 백 명이 넘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섬뜩한 별호와는 달리 성격이 모나지 않은 자였기에 전령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성 한복판에서 웬 무인들끼리 난리를 피우고 있단다.
“혹시 그 자들이 아닌가? 덴노께서 들여오셨다는, 그 명의 낭인들.”
“마교라 불리는 낭인들이 먼저 누군가를 공격한 것은 맞사오나, 정체 모를 무인에게 모두 전멸을 당한 뒤 또 다른 무인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하옵니다.”
“또 다른 무인들?”
들어오는 정보만 가지고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신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타즈노 요시히로와 타다카 사다요에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우려한대로, 요시미츠가 덴노와 우리, 그리고 마교의 낭인들을 우려하여 조선에서 무인들을 부른 것이라면 우리의 승산은 없네. 그러니 타다카, 자네는 닌자들을 총동원해 인간백정이 객잔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 와야 하네.”
“조선의 무인…….”
신이치의 추측은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타다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업을 하는 데 있어 얼마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 조선의 무인들이 보빙사와 함께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법.”
“제기랄. 지독히도 운이 없군. 하필이면…….”
요시미츠가 작정을 하고 조선의 무인을 불러들인 것이라면, 닌자들의 습격이 실패한 것도 설명은 됐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이냔 것이다. 타즈노는 지독히도 운이 없음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타즈노. 자네에게도 맡길 일이 있네.”
“무슨 일인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간악한 요시미츠만 없애면 되는 일. 덴노가 마교의 낭인들을 데려와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크게 의미가 없어.”
타즈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말하는 살군회의 군(君)은 덴노가 아니라 요시미츠다. 덴노는 진정한 군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미츠,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그만 죽이면 그들 가문의 복수도 할 수 있을 뿐더러 모든 부조리한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걸 위해 살군회는 덴노마저도 이용할 의사가 얼마든지 있었다.
“금각사. 지금 교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혼란의 무대를 금각사로 옮길 방법이 없는지 찾아봐주시게.”
“…….”
“최소한 현재 교토에는 마교의 낭인들과 요시미츠. 요시미츠가 불러들인 조선의 무인과 또 다른 하나의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있네.”
“거기에 우리도 있고.”
살군회도 빠질 수 없었다. 끼어들어 분쟁을 일으키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바로 닌자들의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덴노, 마교, 요시미츠, 만우, 투귀대 그리고 살군회까지.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집단들이 한 둘이 아니라 무려 여섯 개나 작은 교토에 모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판국이었다.
“어떻게든, 그 소요를 금각사로 옮겨놓을 수만 있다면…….”
“요시미츠, 그놈을 죽일 틈이 생긴다 이건가?”
신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타즈노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일리가 있어.”
“그러니 부탁함세.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니 정보도 게을리 수집하지 말고.”
“자네는?”
“난…….”
신이치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냥 가만히 이곳에 앉아만 있다가는 밖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휘말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켜보다가 그냥 휘말리느니, 그 안으로 뛰어들어 직접 흐름을 만드는 것이 더 나았다. 신이치는 그 때문에 굳게 다짐했다.
“흐름을 만들어야지. 내 손으로 직접.”
*****
“한가로우니 좋기는 좋은데…….”
문형일은 객잔에 남았다. 객잔에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방매와 김향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호선이 혈성을 느끼고, 마교 고수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후에 떠난 터라 문형일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객잔에 앉아 홀로 술병을 기울였다. 쪼르르. 낮이었기 때문에 객잔 안은 상당히 한산했다. 중원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객잔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일본국만이 이국적인 운치가 있었다.
‘이국적이라. 중원도 내게는 이국인데.’
쓸데없는 생각에 킥킥거리며 웃은 문형일이 슬그머니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이어,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온 허여멀건한 얼굴의 남자가 허리춤에 왜도를 덜렁거리며 걸어왔다. 길고 넓은 소매와 품이 넓은 바지, 그리고 짧게 깎아 정수리 부근에서 틀어 올린 머리까지. 문형일은 남자에게서 흐르는 기도에 콧잔등을 슥슥 하고 손으로 문질렀다.
‘절정. 경지는 절정이지만 검을 쥔 자세나 그런걸 보면 난전에 능한 자인가?’
문형일은 순식간에 남자를 아래위로 훑었다. 그러자 남자는 저벅거리며 다가와 문형일의 건너편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앉으라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자리에 주인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남자의 한어는 꽤나 능숙했다. 의외라는 듯 문형일이 눈을 치켜뜨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내 한어가 능숙한 것에 놀라는 게 우습지 않나? 그대도 마찬가지일 텐데.”
“뭐, 그런가?”
문형일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술을 마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한 손은 크게 휜 문형일의 애병인 곡도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자가 접근을 했으니, 경계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츠쿠야라고 한다. 인간백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 뭐, 사람을 이리저리 많이 죽여서.”
츠쿠야, 인간백정 츠쿠야가 문형일에게 자기 이름을 밝혔다. 문형일은 츠쿠야를 힐끗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백정? 거창한 별명이군.”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지. 하지만 이런 별명을 가지고 있으면 귀찮은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츠쿠야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문형일을 쳐다봤다. 문형일은 눈을 들어 츠쿠야를 쳐다봤다.
“싸우러?”
“아니. 주군의 말을 전하러. 사실 손도 근질거리지만, 참아야지.”
츠쿠야는 씩 웃어 보였다. 문형일은 그런 츠쿠야를 보면서 피식하고는 웃었다. 그런데 그 때, 츠쿠야가 눈을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귀찮은 손님이 온 것 같은데.”
“여긴 귀찮은 손님이 너무 많아. 오늘만 해도 이게 벌써 두 번째인데.”
이미 한 번 닌자들의 습격을 받았던 문형일이다. 그리고 그 닌자들은 꽤나 까다로웠다. 지금까지 겪어본 살수와는 달리, 공격을 가해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상한 주술 같은 것까지 썼으니, 방심하다가는 그냥 한 순간에 어? 하고 당해버릴 가능성이 높았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쯧. 다른 데서도 난리가 났다더니, 오늘이 날인가?”
“난리?”
“마교라 불리는 낭인들과 누가 한판 붙었다고 하던데.”
츠쿠야는 귀찮은 손님이 나타났다면서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문형일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을 할 정도로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끙.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척사영과 호선이 갑자기 튀어나간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문형일도 아마 방매와 김향만 아니라면 같이 따라 나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