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 감령과 필두(2) (225/400)

225. 감령과 필두(2)2021.02.23.

그 순간 만우는 다른 기척을 감지해냈다.

16553245472905.jpg“나서야지. 그래. 그래도 동료인데.”

스윽, 스윽. 슈각! 슈각!!! 만우가 다리를 차례대로 하나씩 들자 그 자리로 사슬끝에 달린 낫이 매섭게 반원을 그리며 훑고 지나갔다. 다리를 들지 않았더라면 농부가 벼를 수확하는 것처럼 다리가 댕강하고 잘렸을 것이다. 만우는 어느새 허공에서 나타나 사슬낫을 휘두르는 또 다른 오로치를 쳐다봤다. 그러자 만우의 눈에 서린 흥미가 더욱 짙어졌다.

16553245472905.jpg“네놈들. 형제냐?”

만우는 똑같은 두 오로치의 기도에 혹시 형제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때, 그런 만우의 정수리를 노리고 허공에서 은밀하게 조(爪)를 착용한 닌자가 손을 아래로 그었다. 콰악!! 맨손인 만우가 손을 들어 떨어져내리는 조(爪)를 그대로 움켜쥐었다. 손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조였지만 만우의 손에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 했다. 그렇게 깍지를 끼듯 조의 칼날 사이에 손가락을 깍지 낀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16553245472905.jpg“삼형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오로치 셋. 그 셋 모두를 처음 보게 된 슌스케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저 오로치들은 왜에서는 사신(死神)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치들이 다녀가면 살아남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오로치들이 만우 앞에서는 어른 앞에 선 아이들과 같은 격차가 느껴졌다.

16553245472962.jpg“꺽…… 꺽…….”

오로치가 셋이나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시미츠에게 가해지고 있는 압박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보면 분명했다.

16553245472966.jpg‘오로치를 가지고 놀고 계셔!’

만우는 오로치를 가지고 놀고 잇었다. 아니, 정확히는 닌자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오로치를 만나 새로운 무공을 즐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16553245472966.jpg“대장님! 오로치의 인술을 조심하십시오! 인술!”

16553245472905.jpg“인술?”

촤라락!!!! 그 순간, 만우에게 조를 잡혀있던 닌자가 조를 풀어내고는 뒤로 빠지더니 손으로 수인을 짚었다. 동시에 만우는 기와는 미묘하게 다른 기운이 닌자의 몸에서 일어나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모래가 자신의 발목을 덥썩하고 붙잡는 것을 느꼈다.

16553245472905.jpg“주술?”

16553245472966.jpg“비슷합니다 대장님. 조심하십시오!”

슌스케가 뒤로 물러나 동군영 앞을 가로막으면서 이를 까득 깨물었다. 동군영을 지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슌스케가 나설 수가 없었다. 자칫하다가 저 싸움의 여파가 동군영에게 미치기라도 하면, 동군영은 그냥 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촤라락!!! 동시에 사슬낫을 든 닌자가 사슬낫을 던지자 그 사슬낫이 만우의 양손을 묶었다. 만우가 코웃음을 치면서 풀어내려는 순간, 사슬낫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만우의 양손이 떡하고 붙었다.

16553245472905.jpg“어?”

포박(捕縛)의 술에 걸린 만우는 다리와 팔이 모두 봉쇄돼자 어느새 뭉친 오로치의 몸에서 기운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16553245472905.jpg“저게 차크라구나. 기랑은 다르네?”

만우는 내공과는 다른 차크라의 기운을 느끼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하지만 슌스케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16553245472966.jpg“대장님! 조심하셔야합니다!”

16553245472905.jpg“어, 어 알았어. 챠크라는 내공처럼 성질이 사람에 따라 갈리지 않는건가? 어떻게 챠크라를 셋이서 같이 공유하는거지?”

만우는 슌스케긔 걱정어린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려넘기고는 눈을 반짝였다. 세 오로치의 몸에서 일어난 차크라가 각자 공명하면서 뭉쳐지는 기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무공의 경우에는 타인의 기운과 내 기운을 융합한다는 것은 거의 주화입마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성질의 내공이 폭주를 일으켜 몸이 터져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심지어 같은 무공을 익힌 사제지간이나, 사형제지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어도 사람마다 모두 공력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챠크라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인지, 세 오로치는 서로의 차크라 기운을 받아들이고 키워가면서 점점 더 거대한 챠크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앗!!!! 화르륵!!!!

16553245502607.jpg

  세 오로치들이 서로 융합한 챠크라의 기운이 극에 달한 순간, 눈부신 빛이 터져나오더니 만우의 몸에 불이 붙었다. 슌스케는 그것을 보면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45472905.jpg“화룡?”

요시미츠의 숨은 검인 오로치들이 오로치(大蛇), 큰 뱀이라 불린 이유는 간단했다. 저 셋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위의 인술은 사람을 포박해놓고 셋의 챠크라를 모아 화룡을 소환하는 인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만우의 몸에 불길이 치솟는 것처럼, 거대한 불길이 날름거리며 사람을 먹어치운다. 그 불길이 화룡의 혀 같다고 하여 화설(火舌)이라 불렀다.

16553245502616.jpg“만우!!!!”

놀란 동군영이 만우를 불렀지만 만우의 몸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쌓였다. 슌스케는 황급히 동군영을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저 화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에서도 화상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슌스케는 만우가 저런 인술에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16553245472962.jpg“꺽, 꺼억…….”

요시미츠. 만우의 기세에 짓눌려 꺽꺽대고 있는 요시미츠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쐐애애액!!!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세 오로치들이 각자 무기를 꼬나쥐고는 치솟아오르고 있는 불길을 향해 날렸다. 그러나 쿠나이와 사슬낫이 허공을 날았고 수십 개의 표창이 높이 치솟은 불길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슌스케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로치들이 추가 공격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불안하다는 증거다. 즉, 그들이 소환해낸 화설의 술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푸확!!!!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물을 쏟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세 오로치가 챠크라를 모아 쏘아낸 불꽃이 삽시간에 꺼졌다. 언제 불이 붙었냐는 듯, 불똥 하나 남기지 못하고 불이 꺼진 것이다.

16553245472962.jpg“커헉!!”

16553245472962.jpg“크윽.”

16553245472962.jpg“쿨럭!”

동시에 세 오로치들의 복면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렸다. 인술이 강제로 거대한 힘에 의해 파훼되면서 그 반동이 고스란히 시전자들의 몸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16553245472905.jpg“따숩다.”

16553245472966.jpg“대장님!!!”

16553245502616.jpg“만우!!!”

슌스케와 동군영이 태연하게 따뜻했다며 중얼거리는 만우를 보고는 소리쳤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슌스케와 동군영을 보고는 씩 웃었다.

16553245472905.jpg“설마. 이런 군불에 내가 당하기라도 할 줄 알았어? 그렇게 생각했다면 조금 서운한데?”

16553245472966.jpg“아닙니다 대장님!”

16553245502616.jpg“만우! 뒤! 뒤!!!”

동군영이 만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핏물을 흘리던 오로치 중 손등에 조(爪)를 낀 오로치가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45472905.jpg“눈요기는 제법 되었지만.”

턱!! 만우는 휘둘러져 오는 놈의 조를 다시 맨 손으로 붙잡았다. 흡사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조가 잡히자 오로치의 눈이 흔들렸다.

16553245472905.jpg“그것이 다라면 더 이상 볼 것은 없겠구나.”

닌자들 중 최고라는 오로치들이 익힌 인술의 정수도 만우에게 통하지 않았다. 아니, 만우는 차라리 그런 인술보다 이 오로치들이 살수로써 싸우는 방식이 더 재밌었다고 생각했다.

16553245472905.jpg“주인의 무례함을 너희들이 받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으마.”

팍!!!! 만우의 손에 잡힌 조를 포기하고 아까처럼 몸을 날리려던 오로치는 만우의 손이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있다는 것에 두 눈을 부릅 떴다.

16553245472905.jpg“한 몸 같은 삼형제니 한꺼번에 상대해주마.”

후웅!! 만우는 손을 휘둘러 자신의 손에 잡힌 오로치를 두 오로치에게로 쏘아보냈다. 두 오로치가 서로의 발을 박차면서 양 옆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사르륵!!! 그와 함께 허깨비처럼 두 오로치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만우가 날린 오로치도 마찬가지였다. 펑!!! 뭉게구름과 함께 통나무가 땅에 툭하고 떨어졌지, 날아간 오로치는 다시 모습을 감춘 것이다.

16553245472905.jpg“이제 질린다. 잔재주는.”

콰악!!! 우지끈! 만우가 양손을 뻗자 금각사의 벽이 우지끈하고 부서져 나가면서 그 사이로 사라진 오로치 두 명이 허공을 날아 만우의 양손에 목줄기를 가져다 댔다.

16553245472962.jpg“커헉!”

16553245472962.jpg“케흑!!”

불가항력적인 힘에 두 오로치는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만우의 손에 자신의 목을 상납한 셈이 됐다. 그와 함께 만우가 발을 들어올렸다. 우지끈!!“ 그리고는 발을 구르자 진동이 금각사 3층 바닥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만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멀지 않은 곳에서 땅 속에 숨어있던 오로치의 신형이 솟구쳤다.

16553245472962.jpg“커헉!!!”

만우가 발을 구르자 퍼져나간 진동이 오로치의 내부를 진탕시킨 것이다. 오로치가 핏물을 뱉으며 땅 속에서 튀어나온 순간, 그 오로치의 위로 만우가 떨어져내렸다. 우지직!!! 버둥버둥 만우는 가차없이 오로치의 머리를 발로 밟아 땅에 처박았다. 그러자 다다미 바닥이 깨지면서 오로치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만우의 다리는 뿌리내린 천년 거목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만우는 세 오로치를 눈 몇 번 깜박할 사이에 제압하고는 고개를 돌려 요시미츠를 쳐다봤다.

16553245472962.jpg“요, 용서를…… 케흑…….”

그런 만우와 눈이 마주친 요시미츠는 그를 압박하는 만우의 기세에 기도가 턱턱 막히는 것을 느끼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만우는 오로치 셋의 목숨을 쥔 채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45472905.jpg“슌스케!!”

16553245472966.jpg“예, 대장님!”

요시미츠는 슌스케가 몸을 일으키자 눈가를 떨었다. 만우는 슌스케게 말했다.

16553245472905.jpg“저자. 어찌 하였으면 좋겠느냐?”

슌스케는 고개를 돌려 요시미츠를 쳐다봤다. 그에 대한 감정이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만우는 그런 슌스케에게 말했다.

16553245472905.jpg“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허나 머물러 있겠다면 간단한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지금처럼.”

만우는 턱 끝으로 요시미츠를 가리켰다. 명 황제와 조선의 임금과도 만났던 만우다. 그런 만우에게 태정대신인 요시미츠 따위는 간단한 일에 불과했다.

16553245472966.jpg“살려주십시오, 대장님.”

고민하던 슌스케는 만우에게 요시미츠를 살려달라 말했다. 그러자 만우가 눈을 크게 떴다. 살려달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요시미츠는 슌스케의 원수다. 슌스케의 실패를 빌미삼아 일월조의 수하들과 그 가족들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6553245472905.jpg“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자도 슌스케 널 살려둘 것 같지 않은데.”

만우니까 오로치들을 간단하게 제압했지 슌스케라면 오로치 중 하나 정도가 최선이다. 그나마도 오로치들이 슌스케를 노리고 암살행이 나선다면 슌스케는 하나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 할 것이다. 누군가를 암습하는 데 있어 오로치들은 만우가 보기에도 대적할 자가 없는 최고의 살수들이었으니까.

16553245472905.jpg‘아, 그놈 빼고.’

만우는 광문자를 떠올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은월루주 어리의 호위인 광문자를 빼면 이 놈들이 만우가 본 살수들 중 최고였다.

16553245472966.jpg“괜찮습니다. 그리고 대장님의 손을 빌어 복수한들, 제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슌스케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만우는 왜 슌스케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것인지 그제야 이해했다.

16553245593138.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