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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계략의 소용돌이 속으로(3) (222/400)

222. 계략의 소용돌이 속으로(3)2021.02.13.

16553244830221.jpg“늙으셨어. 늙으셨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겠지.‘

주창은 화경에 들고 난 후부터 아버지인 혈세천마를 몇 번 뵙지도 못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부터 이미 아들인 자신조차도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6553244830221.jpg“내가 직접 나서겠다.”

16553244830235.jpg“대주님.”

16553244830221.jpg“내가 아니고서는 알릴 길이 없지 않나.”

주창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련검을 집어들었다. 그 와중에도 항상 날만은 날카롭게 벼려놓은 마련검이다. 무인에게 있어 무기는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6553244830235.jpg“대주!”

마일이 그런 주창을 말리려고 했지만 주창은 마일을 쳐다봤다.

16553244830221.jpg“전서구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저들을 격돌시킬 셈이지?”

16553244830235.jpg“…….”

16553244830221.jpg“검주나 마교가 만반의 준비를 하기 전에 부딪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끼어들 틈이 생기는 법이니까.”

모든 만반의 준비를 끝마쳐 놓은 다음에 부딪친다면, 오히려 자신이 끼어들 순간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빈틈이 생기고, 그곳을 파고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주창은 저들이 준비를 하기 전에 부딪치게 만들 속셈이었다.

16553244830221.jpg“마일. 고수들을 둘로 나누어 각기 만우와 천마를 감시하도록 배치하라. 절대로 잡히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고.”

16553244830235.jpg“대주…….”

주창이 뒤를 돌아면서 씩 웃었다. 그라고 해서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쨌거나 한 몫은 해야했기 때문에, 주창은 무사히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16553244830221.jpg“함께 돌아가야죠. 신교로.”

16553244830235.jpg“……다녀오십시오 대주.”

마일이 주창의 말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

16553244830235.jpg“타케시카미(武神)의 아들?”

16553244830235.jpg“철혈왕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더군. 그러니 딱 적당한 상대일세.”

타즈노 요시히로의 반문에 타다카 사다요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각기 요시히로 가문과 사다요 가문의 생존자인 둘은 큐슈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에 손을 잡았다. 본래라면 그들도 경쟁자 관계였겠지만, 요시미츠라는 포식자의 등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6553244830235.jpg“무신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마지막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장대한 어깨에 짙은 눈썹을 한 남자였는데, 그 남자가 입을 열자 타즈노와 타다카가 입을 다물었다.

16553244830235.jpg“본토에서 넘어간 도적들을 남김없이 잡아죽인 무장이 고려에 있었는데, 그 자만 나타나면 여진의 잔당은 물론, 사납다는 해적들까지 벌벌 떨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아주 오래 전에.”

신이치 토키. 큐슈 지방의 권세가였던 요시히로 가문이나 사다요 가문과는 달리 토키 가문은 중앙 권력을 다퉜던 대가문 중에 하나다. 비록 요시미츠에 의해 시바 일파와 호소카와 일파를 상대하다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이 간다고 했다. 대토호였던 토키 가문의 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퍼져있었고, 토키 가문의 몇 안되는 생존자 중에 하나인 신이치는 그 덕분에 이 모임의 수장을 맡고 있었다. 시군카이(殺軍會), 살군회. 오로지 요시미츠를 죽이고자 모여든 이들이 만든 음지의 단체였다.

16553244830235.jpg“그의 아들인 현 국왕은 그 무신보다 더 하다고 하네. 형을 죽이고 동생을 죽였다고 하던가.”

16553244830235.jpg“그런 잔혹한 자가 조선의 국왕이라니.”

신이치의 말에 타즈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다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16553244830235.jpg“그렇다면 쿄토 한복판에서 조선의 국왕이 보낸 보빙사가 몰살을 당한다면…….”

16553244830235.jpg“조치가 취해지겠지. 조선의 국왕이란 자의 성정을 보아할 때, 그냥 가만히 넘길 것 같지 않으니까.”

만약 이 일로 인해 외교적인 분쟁이 벌어진다면, 시군카이, 즉 살군회의 행동 반경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금상첨화다. 전쟁이 터진 순간, 요시미츠의 호위는 느슨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6553244830235.jpg“마교라는 자들과 연락은 취해 보았는가??”

토키가 타다카에게 물었다. 사다요 가문이 요시미츠에 의해 멸문을 당할 때, 타다카 사다요는 상당수의 인자들과 함께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그 인자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명의 마교라는 곳에서 무인들이 교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살군회였다.

16553244830235.jpg“연락을 취하기는 하였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백이 넘는 사무라이들을 모아놓고, 무슨 훈련을 하는 것 같았는데…….”

16553244830235.jpg“훈련?”

16553244830235.jpg“집단 훈련이었습니다.”

타다카는 인자들을 통해 이 정보들을 입수했다.

16553244830235.jpg“어소 근처에 있다고 했나?”

16553244830235.jpg“예. 남방 건례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에 있다고 했습니다.”

16553244830235.jpg“……덴노께서는?”

16553244830235.jpg“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신이치는 작게 침음했다. 전율적인 무력을 지녔다는 마교란 곳이 중원에 있다는 것은 중원에서 넘어온 상인들을 통해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과 연락을 취해 요시미츠 일파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53244830235.jpg“아무리 교토가 요시미츠의 손에 있다고는 하나, 덴노께서 허락치 않으셨다면 마교의 무리가 어소 남쪽에 터를 틀지는 못 하였을 것이다.”

교토의 중앙에는 덴노가 생활하는 어소(御所)가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황족과 귀족들이 사는 저택들이 즐비했는데, 남쪽에는 큰 숲이 있었다. 그곳에 마교 무리가 터를 잡았다는 것은, 덴노가 그곳을 내어주었다는 뜻이다.

16553244830235.jpg“허나 그렇다면 그 사실을 요시미츠가 모를리 없습니다. 명과의 친교가 두터운 요시미츠이지 않습니까.”

타즈노가 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신이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44830235.jpg“모르는 일이다. 명은 본래로부터 우리를 탐탁치 않아했다. 그런데 요시미츠, 그 작자가 간이나 쓸개를 내어줄 것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니 일본국왕이란 이름을 하나 건네 준 것이지. 하지만 그것도 이전의 황제때 임명된 것이 아니더냐.”

현 황제인 영락제와 요시미츠가 어떠한 친교를 맺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 황제인 건문제가 황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영락제와 요시미츠가 건문제 때처럼 사이가 좋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6553244830235.jpg“만약 요시미츠가 마교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명에서 왜 요시미츠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지, 덴노나 다른 귀족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6553244830235.jpg“그러니 다시 이번에는 덴노께도 연통을…….”

벌컥!

16553244830235.jpg“크, 큰일 났습니다.”

16553244830235.jpg“큰일?”

그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사무라이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신이치를 비롯한 타즈나와 타다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사무라이가 말했다.

16553244830235.jpg“조, 조선 보빙사를 습격하러 갔던 닌자들이 실패하였습니다.”

16553244830235.jpg“실패? 어떻게. 우즈히코 가문에서 붙여둔 사무라이 실력이라고 해봤자 별 볼일 없는 놈들 뿐인데!”

타다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살군회 소속 인자들은 거의 전부가 사다요 가문 소속이다. 그런 인자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건 고스란히 사다요 가문의 피해로 돌아온다.

16553244830235.jpg“미리 알아놓고 실행한 계획이 아니더냐! 대체 어떻게…….”

16553244830235.jpg“그…… 보빙사. 보빙사라고 했던 조선인들. 그 조선인들이 괴물이었습니다.”

16553244830235.jpg“괴물?”

신이치의 두 눈이 번뜩였다. ***** 만우는 동군영, 슌스케와 함께 산 하나를 거대한 자신만의 세상으로 조성하여 만든 금각사 부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덴노가 생활하는 어소 주변으로는 담장이 쳐져 있었고, 이곳에는 그런 담장이 없었지만 산 하나를 통째로 자신만의 정원 삼았다는 것 자체가 요시미츠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16553244830235.jpg“이쪽으로.”

만우는 어여삐 생긴 시녀가 총총걸음으로 타케노를 안내하는 것을 보면서 동군영에게 말했다.

16553244948613.jpg“용담호혈이군.”

16553244948618.jpg“용담호혈? 보기에는 그냥 예쁜 산사(山寺) 같은데.”

동군영은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 없었다. 복잡한 교토의 저자와는 달리 금각사는 조용하고 정갈했지만, 그 정갈함 속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세심함과 세밀함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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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분인 것 같던 것이, 자세히 보면 전부 인간의 손이 닿은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6553244948613.jpg“산사라.”

만우는 피식 웃었다. 슌스케가 그런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4948633.jpg“전 쇼군에게는 적이 많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가 대단히 삼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6553244948613.jpg“알고 있습니다?”

만우는 슌스케를 쳐다봤다. 슌스케는 펄럭이는 소맷자락을 늘어뜨린 채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44948613.jpg“너도 안 느껴진다고?”

16553244948633.jpg“……예, 대장님.”

만우는 슌스케의 대답에 놀랐다. 이 주변이 그냥 나무와 풀이고, 석등과 연못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경계병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가히 천라지망이 금각사 전체에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오지도, 들어왔다고 해도 나가기도 쉽지 않아보였는데, 실력이 만우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모양이었다.

16553244948613.jpg“저기 연못 속에. 석등 뒤에. 나무 위에. 수풀 속에.”

만우는 손가락으로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모조리 가리켰다. 슌스케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쓰게 웃었다.

16553244948633.jpg“쇼군이나 덴노의 곁을 지키는 인자들은 전 영토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최고의 인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들의 은신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우 앞에서는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만우가 짚어내는 것에 슌스케는 쓰게 웃었다. 저런 인자들 때문에 왜에서 칼잡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사실상 같은 인자가 아니라면 알아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초절정 고수인 슌스케만 해도 인자들의 기척을 하나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16553244948633.jpg“인자들은 가공할만한 수련으로 인해 사무라이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기술을 씁니다. 그러니, 주술을 쓰는 살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6553244948613.jpg“주술을 쓰는 살객?”

만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내공이 아니라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나 싶더니, 그게 내공이 아니라 주술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힘인 모양이었다.

16553244948633.jpg“저희는 그것을 챠크라라 부릅니다. 부적과 챠크라의 힘을 통해 인자들은 주술을 쓰는데, 아마 제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주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술의 힘을 빌렸다면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그것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저들이 챠크라라 부르는 주술의 힘은 내공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었기 때문이다. 화경에는 들어야 공력과 다른 기운의 이질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슌스케가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6553244948633.jpg“그 때문에 하루 아침에 주인을 잃고 떠도는 사무라이들이 수두룩 합니다. 사실상 전선의 최전방에 나서는 것은 저희 같은 사무라이들이지만, 전쟁을 끝내는 이들은 저들이기도 합니다.”

일본 다이묘나 쇼군들의 진정한 힘은 사무라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문보다는 무를 숭배하지만, 사무라이보다는 인자를 더욱 대우한다. 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몸이 날래고 빠른 것외에도, 챠크라에 대한 민감도가 좋아야 하고 주술을 익히는데 있어 머리가 비상해야 한다. 그 때문에 인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인자가 되면 그건 상대 세력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공포가 된다.

16553244948633.jpg“그림자에 스며들기도 하고, 먼 거리를 인술로 건너뛰기도 합니다. 분신술을 쓰기도 하며 대화구를 쓰기도 하고, 모래를 다루기도 합니다. 자연만물을 전부 인술로 다스리니, 그 주술과 함께 파고드는 살객을 사무라이들이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키지 않는 인자, 살수라는 것은 표적이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다.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인 것이다.

16553244948613.jpg“그러니까 지금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인술이란 주술 때문이다?”

16553244948633.jpg“예.”

슌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무라이였고, 전공을 세울 정도로 유능한 사무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죽이기 위해 오는 인자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봤다.

16553244948633.jpg“인자에게서 살아남는 길은 딱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슌스케는 본토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4948633.jpg“수비하는 쪽에서도 인자로 막아내거나 아니면 죽도록 경계하고 준비해서 막아내는 것.”

16553244948613.jpg“내가 아는 살수와는 차원이 다른 모양이네.”

만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중원의 살객들에 비해 재주와 기예가 더 나아보였다. 중원의 살객들은 독기가 있기는 하지만 왜의 인자들처럼 세련되지 않았다. 주술로 기척과 살기까지 죽일 수 있으니, 결국 마지막 순간에 살기를 들킬 수 밖에 없는 중원의 살객들과는 임무의 완성도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6553244948613.jpg“어쨌든 그 수가 많은데?”

16553244948618.jpg“몇 명이나 있는가?”

동군영이 궁금해졌는지 만우에게 물었다. 만우는 대충 눈으로 세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44948613.jpg“최소한 백 명 이상.”

16553244948618.jpg“배, 백?”

동군영이 눈을 크게 떴다. 만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16553244948613.jpg“그것도 꽤 돼는 놈들로만. 이 정도면 진짜 중원의 살수들보다 더 나은데. 이 정도 살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면…….”

살수들은 밤의 손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원 무림에서도 그들을 경원시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서로 정체를 드러내고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이라면 그 어떤 무림인들도 살수를 두려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정면에서 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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