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계략의 소용돌이 속으로(2)2021.02.09.
“그런데 여기는 온통 검차고 다니는 놈들이네.”
“그래봤자 실력이 형편 없어.”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주변에는 사무라이들이 많았다. 통일이 끝나고 실직한 사무라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길거리에서 행패를 많이 부렸기 때문에 일반 양인들이 사무라이만 봐도 겁에 질리는 것이다. 예전에야 사무라이들이 선망 받았던 때도 있다. 문보다 무를 중시하는 풍조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가짜 사무라이들이 많아지면서 존경보다는 공포가 짙게 깔린 것이다.
“잘해야 삼류네. 삼류.”
감령과 필두, 문형일은 사무라이들의 수준에 혀를 쯧하고 찼다. 이곳은 차라리 조선보다는 중원에 더 가까운 풍경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칼을 차고 다니는 놈들은 대부분 겉멋든 놈들 뿐이었다. 실력이라고는 해봤자 거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 삼류가 대부분이다.
“그 변태 가문이 유명한 가문이긴 가문인가보네. 실력이 그나마 제일 나아.”
감령이 그들을 호송하듯 이끌어나가고 있는 우즈히코 가문의 사무라이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류 정도는 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배에서 호선과 친해진 임수미는 호선과 함께 걸었고, 척사영은 따로 뒤에서 혼자 걸었다. 그녀는 가문에서 어릴 때부터 무예만 수련해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배를 두 달이나 탔으니, 척사영은 도저히 다른 사람과 어울릴 정신이 없었다. 싸악-!
“응?”
그러데 그 때, 척사영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어디선가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지?”
척사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느꼈다 생각했는데, 돌아본 순간 기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척사영은 자신의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럴 때 만우가 있다면 확실하겠건만, 만우가 없는 이곳에서는 척사영 그녀가 최강자였다.
‘은공에서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신이 어느새 만우를 떠올렸다는 것에 척사영은 고개를 저었다. 강하다고 해서 지금껏 누군가에게 기대본 적이 없는 척사영이다. 난생 처음 자신보다 강한 만우를 봤으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조선이 아닌 왜의 영토. 어쩌자고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말이냐 사영아!’
척사영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삼류 살수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 우우웅-!! 척사영은 지쳐있던 몸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이곳은 안방인 조선이 아니라 왜의 영토다. 한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강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살수들의 기예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곳이 왜다.’
왜. 동영, 혹은 일본국이라고도 부르는 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살수들이다. 중원에서 이름을 날렸던 살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끝에는 항상 왜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식과 내공이 발달한 중원, 예(藝)가 발달한 조선과는 달리 인법(忍法)이라 부르는 술(術)이 발달한 곳이 바로 왜다. 그리고 그 인법은 살수와 궁합이 아주 잘 맞았기 때문에, 왜에는 인자(忍者)라 부르는 살수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척사영은 머릿 속에 상기시켰다. 살수들이 득시글 거리는 곳에서 하마터면 방심한 채 돌아다닐 뻔했다.
“척 무사님?”
진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세 초절정 고수가 뒤를 돌아봤다. 척사영은 재빨리 소주천을 한 번 해 여독을 풀어낸 후 제 빛이 돌아온 눈으로 감령과 필두, 그리고 문형일에게 말했다.
“사주경계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인자들의 나라가 아닙니까.”
“인자…… 살수들 말씀이십니까?”
“에이. 너무 걱정이 크시오!!!”
문형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감령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험하게 살아온 걸로 따지자면 필두와 함께 만우 일행에서 첫 번째에 꼽히는 감령이다. 녹림의 대채주로 살아온 감령은 별의 별 방법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휘하 채주들의 모략을 수도 없이 견뎌왔다. 그러면서 늘어난 것이 눈치와 기감이다.
“이, 내가 십 년이나 대채주로 있으면서 늘어난 이 살기에 대한 기감은 대살객이라도 피할 수 없소! 결국 아무리 뛰어난 살수라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살기가 드러나기 마…….”
쉬릿!!! 컥!!!!
“……엥??”
감령이 두 눈을 꿈벅였다. 잘 생긴 그의 얼굴이 단박에 멍청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 사이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습격이다!”
“인자!!‘
차자자장!!!! 우즈히코 가문의 사무라이들이 왜도를 빼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졌다. 그 사이 양인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방매와 김향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감령을 쳐다봤다.
“살기, 뭐?”
“이런 쓰레기 같은 기감이…….”
“내,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고! 이놈들! 살기 안 느껴졌어!”
감령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암기가 날아들기 직전까지 아무런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두와 문형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비웃었다.
“아저씨들! 그냥 그러고 있을거야? 습격이라잖아!!”
피비비빙!!!! 주변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암기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중원과는 다른 형태의 암기들이었다. 중원에서 암기라고 하면 겨우 비도거나, 침 종류가 전부였다. 독과 암기로 유명한 사천 당가에서는 얇은 침을 주로 암기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암살자들도 그것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는 아니었다. 쉬리릿! 쉬리릿!!
“어잇쿠!!!”
필두가 커다란 대부를 화들짝 놀라며 기울여 갑짜기 코앞에서 방향이 바뀐 암기를 쳐냈다. 기기묘묘하게 안쪽이 휘어있어 마치 구부러진 단검 같이 생긴 모양새였다. 그런데 바람을 타게 만들어놨기 때문인지 코 앞에서 바람을 타고 암기가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억?”
휘익!!! 문형일은 팔락거리며 날아드는 암기를 곡도로 쳐내려는 순간, 곡도의 바람에 암기가 휙하고 방향을 바꾸며 몸통으로 날아드는 것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야이씨. 독도 발랐잖아.”
타닥! 탁!!! 촤악!! 손등에 권기를 둘러 호접비를 쳐냈지만 문형일은 얼굴을 찡그렸다. 손등이 화끈해지더니 금방 시퍼렇게 부어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형일은 순식간에 손의 혈도를 막아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놓고, 손등을 곡도로 그어 피를 빼냈다. 그러자 시꺼먼 피가 나오더니 금세 선홍빛 피가 흘러나왔다.
“아오. 따가워라.”
문형일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암기에 당해 독에 중독이 되다니.
“아가들은 내 뒤로 오렴.”
호선이 선기를 일으켜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날아들던 암기들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만우 일행은 문형일 빼고는 별 피해가 없었지만, 길 가다가 습격을 받은 사무라이들은 아니었다.
“컥!!!”
“크억?”
파바밧!!!!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거나 갑자기 지붕 위에서 튀어나온 인자들이 사무라이들의 빈틈을 노려 기기묘묘한 무기들을 꽂아넣었기 때문이다.
“후웁!!!!”
화아아악!!!!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사무라이를 통채로 태워버리는 놈들도 있었다. 스스슥!!! 그 때 척사영의 뒤로 인자 하나가 거의 소리도 내지 않고 접근했다. 그림자가 꾸물거리더니 척사영의 뒤에서 스르르거리면어 일어난 것이다. 스윽!!! 그렇게 일어난 인자는 아주 천천히 송곳같이 생긴 긴 검을 척사영의 심장을 향해 내밀었다. 속도가 빠르지도 않고, 느릿느릿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욱 기척이 드러나지 않았다. 상대가 척사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써컥!!!!
인자는 송곳 같은 검을 내밀던 자세 그대로 머리와 허리가 분리되어 피분수를 내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좌검우도가 한 번에 인자를 세 토막을 내버린 것이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렇게 공격을 한다고? 그것도 수도라면서. 일왕이 있는. 이게 말이 돼?”
방매는 호선의 방어 속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감령이 소리쳤다.
“맞잖아! 맞지? 살기 안 느껴진다고!”
“허어…….”
필두가 팔뚝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인자도 마찬가지였다. 척사영에게 그런 것처럼 그림자에서 일어나 검을 휘두른 것까지는 똑같았다. 그런데 쇠로 만들어진 검이 사람의 육체를 가르지 못한 것이다. 필두의 외공은 그의 신체적인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중요하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거의 모든 무림인들이 외공이 아니라 내공에 집중하는 것을 볼 때, 특이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하지만 필두는 소림사의 무승들 수준으로 외공을 익혔다. 외공을 익힌 필두의 강인한 육체는 파도의 급류도 몸으로 거뜬히 이겨낼 정도였기에 역수교어라는 별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수적인 그가 장강에 빠진 채 세차게 흐르는 급류를 거슬러 오르며 감히 그를 공격한 수적들을 배와 함께 모조리 침몰시켰기 때문에 얻은 별호다. 수적들이 필수로 익히는 수공(水功)은 강한 물살에 버틸 수 있는 외공이 필수였다. 그 때문에 필두는 물 속에서만큼은 화경도 이길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게 전부 외공과 수공, 그리고 내공을 조화시켜서 익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자의 검이 필두의 팔을 잘라내지 못하고 피부만 긁어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짜네. 땅강아지 말이 맞았어.”
덥썩! 필두는 당황한 인자의 머리통을 손으로 움켜쥐고는 끌어당겼다. 필두의 손 크기는 웬만한 성인의 머리통보다도 컸다.
“살기가 안 느껴져.”
필두가 팔을 긁힌 것은 감령이 말한 것처럼 인자들의 살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도 모르는 채 일단 한대 맞은 것이다. 인자들은 살기를 숨기는 법을 알았다.
“재밌어.”
꽈직! 필두가 손아귀 힘으로 인자의 머리통을 으깨버리고는 대부를 치켜들었다. 감령은 그런 필두를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대머리 화났다! 대머리 미꾸라지 화났다아!!!”
쿠오오오-!!!! 화난 대머리 미꾸라지가 사무라이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인자들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
“대주. 대주!”
주창의 옆에 앉아 계책을 짜내고 있던 마일이 일어섰다. 위문이 호들갑을 떨면서 뛰어들어왔기 때문이다. 본대에 합류하지 않은 투귀대 고수들은 교토에 안가를 구했다. 원래 살던 이들에게 돈을 몇 푼 쥐어주고는 허름한 집 하나를 통채로 빌린 것이다.
“검주. 도착했나?”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주님.”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이 없으니까.”
혈세천마와는 다른 노선을 걷기로 한 주창이다. 주창은 투귀대 고수만을 대동한 채 혈세천마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혈세천마를 꺽지 않고서는, 마교로 돌아가도 그에게 드리워질 멍에는 반역자의 굴레 뿐이다. 그것을 넘기 위해서는 진혼대와 천마대를 대동한 혈세천마의 목을 베어내야만 한다. 그것도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소교주인 주창의 실력으로만 혈세천마를 꺾어야 한다.
“천마대와 진혼대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진법을 연습하는 것 같은데…….”
초절정 고수들로 이뤄진 투귀대지만 그들이 감시하는 대상은 일패 혈세천마와 마교 전력의 사할이라는 천마대와 진혼대의 고수들이다. 그 때문에 일정거리 이상 가까이 들어간다는 것은 웅풍이나 백영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어서, 멀리서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진법이라. 검주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천마께서 그리도 많은 준비를 해오셨단 말인가?”
주창은 쓰게 웃었다. 혈세천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강력한 적수인 검주를 꺾고 신교의 교수이자 일패로서의 명성을 공고하게 다져놓고 싶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