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계략의 소용돌이 속으로(1)2021.02.06.
금각사(金閣寺). 태정대신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쇼군 자리를 적자에게 물려준 뒤 출가하면서 교토에 지은 거대한 사찰이다. 무려 3층으로 이뤄진 이 거대한 사찰은 요시미츠의 야심이 집약된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층은 귀족 양식으로 지어졌고, 2층에는 무가의 양식으로 내부가 지어졌으며 3층은 선종 불교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금각사의 꼭대기에는 황금 불사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요시미츠는 이 금각사를 지으면서 자신이 이 모든 것의 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겉에는 금을 둘러 지극히 호사스럽고 화려한 금각사가 완성됐다. 그리고 그 금각사 주변으로는 거대한 정원을 만들었고, 금각사 뒤로는 산 위에 석가정(夕佳亭)을 지어놓았다. 그 위에 올라 금각사을 비롯한 전경을 내려다보며 극락정토를 본 따 정원 안이 모든 것을 조성했다. 산과 정원을 깎아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금으로 장식한 거대한 사찰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요시미츠의 권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후릅. 요시미츠는 2층에 앉아 찻잔을 들어 마시며 입을 우물거렸다. 2층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셔둔 곳이다. 그 때문에 정좌하고 앉은 요시미츠의 뒤로 관세음보살이 앉아있는 형국이다.
“덴노께서?”
“하이.”
요시미츠는 출가해 머리가 파르스름했지만, 치켜 뜬 눈에서는 정광이 흘렀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해 그의 앞에서 어려워하지 않는 수하가 없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그럴리가. 헛소문이 아니더냐?”
선종 불교로 출가한 그는 금각사 안에 있는 듯 했지만, 태정대신이기도 했기 때문에 금각사에는 대소신료들이 어소보다 훨씬 더 많이 드나들었다. 요시미츠를 거치지 않고서는 조정 회의에 상정되는 안건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의 권력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대국(大國)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지 않느냐.”
죽고 없어진 건문제는 요시미츠에게 덴노 대신 일본국왕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실질적인 일본국의 통치자로 명나라에서는 요시미츠를 인정한 것이다.
“듣자하니 마교라는 사이한 집단은 대국 내에서도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그런 이들과 덴노가 연락을 취했으면 내게도 그 내용이 들어와야 하는 것이 옳은 일.”
요시미츠는 찻물이 묻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헌데, 이제야 내 귀에 들어왔다? 수상한 이들은 이미 이 교토에 들어와있는 상태고?”
탕 요시미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찻상을 내려쳤다. 그러자 부하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덴노와 귀족들이 나, 요시미츠를 암살하려 한다?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주군. 단지 속하는 그런 우려가 있어 조사를 해보심이…….”
“안 그래도 비슷한 소리를 하는 놈들이 있더구나.”
요시미츠가 염소수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타케노. 타케노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더구나. 조선인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고. 허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선인 말씀이시옵니까? 이번에 오사카에 입성한 보빙사?”
“그래.”
요시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 강력해진 조선에게 잘 보이고자 왜구들을 직접 잡아들여 조선으로 보내라 명한 것이 바로 요시미츠다. 요시미츠는 약자에게는 엄하지만 강자에게는 정중하다. 무조건 뻗대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지만, 다른 이들 중에는 요시미츠를 겁쟁이라 몰래 비웃는 이들도 상당했다. 그런 조선에서 보내온 보빙사다. 요시미츠는 아직 일본국의 힘이 조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인 요시모치에게 말해 향후 양국의 교역에 힘쓰자는 식으로 먼저 서신을 보낸 것이다.
“보빙사는 아니나 감찰이라는 자라더군. 벙상치 않은 이들이라고 했다.”
하켄 타케노, 3만 사무라이의 수장인 신센구미 타케노는 요시미츠의 오른 팔이다. 그를 도와 남북조를 통일하는데 칼잡이 노릇을 한 것이 바로 요시미츠다.
“우즈히코, 그 놈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지만 타케노가 하는 말은 믿어볼만 하지.”
“하이!”
우즈히코는 그의 가문이 아니라면 요시미츠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놈은 권력을 짊어지기에는 지나치게 그릇이 작은 반면 욕심은 컸다. 딱 권력으로 패망하기에 좋은 성격이다.
“육백이나 되는 고수라. 그것도 금각사에?”
“하지만 요시히로의 자식들이나 이미가와 사다요의 수하들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토키 기문의 생존자들 역시.”
“전부 잡아죽였어야 하거늘.”
요시미츠는 혀를 쯧하고 찼다. 요시히로의 이름은 요우히 요시히로로, 큐수를 평정하고 그 지역을 장악하여 조선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지배자 중 하나다. 그를 경계한 요시미츠는 그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여 자신이 토벌해버리고 그의 이득권을 요시미츠가 손에 쥐었다. 또한 이미가와 사다요는 요우치 요시히로처럼 큐수를 평정했던 지배자지만 그를 실각시킨 것이 바로 요시미츠다. 토키 가문은 요시미츠가 유력한 슈고다이묘였던 시바 일파와 그로 인해 실각했던 호소카와 파벌을 요시미츠가 부활시켜 둘 간의 상잔을 통해 제 몸집을 키운 후, 팽한 가문이었다. 이제는 남북조를 통일한 강력한 쇼군이 된 요시미츠지만, 그에게 가장 큰 원한을 품은 이들을 꼽으라면 이들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러니 수하가 그들을 견제하며 대국에서 들어온 마교란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요시미츠에게 간언한 것이다.
“만약 정녕 나를 해하기 위해 그 잔당들과 귀족들, 덴노가 손을 잡고 마교라 불리는 이들을 들여온 것이라면.”
요시미츠가 찻물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대국의 황제폐하로부터 인정받은 일본국왕인 나를 해하려는 것이다. 이는 곧 반역이니, 내가 군을 일으켜도 아무 말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요시미츠의 두 눈이 뱀처럼 번뜩였다. 이미 출가해 덴노의 신하라는 명분도 끊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일이 진실이라면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덴노를 몰아내고 진정한 일왕이 된다. 쇼군 그 너머를 바라보는 요시미츠에게 있어 탐이 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
“타케노에게 연통을 넣어라. 교토에 들어오는 즉시 그 조선인을 데리고 오라고. 내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은 후 판단할 것이다.”
“하이!!”
“그리고 수하들을 풀어라. 교토 근처에 마교라 불리는 사이한 이들이 있는지, 진위여부를 파악한 뒤 보고하라.”
“하이!!!!”
요시미츠는 열린 문 너머로, 자신이 조성한 무릉도원을 내려다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무릉도원도 만든 나다. 그러니, 내가 덴노가 되지 못할 것은 무어라 말인가.”
***** 왜의 이국적인 문물에 느끼던 어색함이 이제는 익숙해질때 즈음, 오사카에서 이틀을 쉬고 다시 출발한 일행은 무사히 교토에 도착했다. 그리고 교토에 도착한 만우 일행은 눈을 크게 떴다.
“연경이나 한양 못지 않은데?”
연경과 한양은 각기 명과 조선의 수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연경은 주로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 컸고, 모든 것들이 다 높았다. 황제야 말로 하늘이 내린 천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황제를 우상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연경은 사통팔달로 거대한 대로들이 뚫려있었고 도로의 폭이나 건물의 크기, 특히 황궁의 크기는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굳이 불필요하게 이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양은 그런 연경과는 사뭇 달랐다. 규모는 연경보다 훨씬 작았지만, 모든 것이 꽉 압축되어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사대문과 성곽 안의 한양은 건물들의 층고가 낮았지만 산과 언덕, 강과 천이 어우러져 나라 하나를 그 안에 꽉 채워놓은 것 같은 밀도감이 있었다. 거기에 궐 역시 북악산과 인왕산을 끼고 있어 두 산이 궐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것처럼 웅장했다. 그 때문에 굳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자연 자체가 크고 웅장했기에 연경 못지 않는다고 만우는 생각했다.
“여긴 두 곳을 섞어놨네.”
만우는 교토의 전경을 보면서 연경과 한양을 적절히 섞어놓은 곳이라 생각했다. 시원시원하게 길이 나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넓어보이지 않았다. 건물이 2층짜리들에 제법 있어 밀도감이 높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좁은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둔 귀족들의 장원을 보니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거기에 자연 기물들도 한양만큼은 아니지만 적절히 어우러져 있는것이, 분위기가 독특했다.
“이봐. 변태. 이번에는 조금 제대로 된 놈들을 데려와. 그런 허접들 말고.”
만우가 옆을 스쳐지나가려는 우즈히코에게 말했다. 우즈히코는 움찔했다. 만우가 얼마나 무지막지함을 넘어선 무식한 인물인지를 질리도록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작 이런 놈들로? 다른 놈들 데려와. 이런 무뢰배들 말고.]
조선에서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상인들이 제일 천한 취급을 받았지만 일본국에서는 아니었다. 땅 덩어리가 조선보다 더 크고, 산악 지형이 많은데다가 아래 위로 길게 늘어져 있어 물류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인들이 활발히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인들은 중원처럼 표국을 차렸는데, 표국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무력이 필요한 곳이었다. 중원에서야 구파일방이나 사파, 마교가 있어 표국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무력이 아니었지만 왜는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시장에 쏟아져 나온 사무라이들이 그런 상단에 호위무사로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사무라이들은 얼마전까지 전쟁을 치뤘던 낭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무력이 왜에는 관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태다. 그러니 우즈히코가 상인이랍시고 데려온 놈들이, 만우의 눈에는 그냥 파락호들이나 삼류 양아치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상인들. 돈 냄새 잘 맡고, 거래 잘 할 수 있는 애들. 너네 가문, 유명한 가문이라면서. 그러니까 잘 좀 해라.”
“아, 알겠다.”
우즈히코는 만우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앞으로 얼른 걸어나갔다. 만우와는 잠시도 같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넌?”
“내가 안내할 것이다. 요시미츠님을 뵈러 간다고 했을텐데.”
“아. 네 상관?”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군영이 꾸민 계획 중 일부분이다. 이미 개성 삼을 팔아 번 돈으로 다이묘가 될 생각에 부푼 타케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본국을 통일하신 위대한 군주시자 최고 권력자인 분이시지. 대단하신 분이다.”
“그러냐.”
타케노는 자신이 모시는 요시미츠에 대한 찬송을 늘어놓았지만 만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거물이라고 해봤자 만우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그냥 동군영이 원하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찾아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무라이를 소집하실 수 있는 분이시자 전쟁에 있어서는 물러섬이 없으신 분이지.”
만우는 피식 웃었다. 임전무퇴, 언제적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타케노는 그런 만우의 고소를 봤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말했다.
“그 분께, 직접 설명을 해야겠지. 그 쪽에서 말하는 마교라는 놈들.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이고, 그 놈들이 진짜 요시미츠님을 노리고 있다는 걸.”
“그러면, 그 댓가로?”
타케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만.”
타케노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다. 슌스케가 옆에서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데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신센구미의 삼만 사무라이 전체의 출진을 건의드릴 생각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삼만이란 소리에 만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만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얻는게 큰 모양이네.”
“크지. 아주 크지.”
무려 다이묘가 되기 위한 일이다. 타케노는 적어도 이번 일이 그 정도 크기는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마교의 고수들이, 최고대신인 요시미츠도 모르게 은밀히 본토에 들어왔다면 문제는 얼마든지 크게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쇼군의 암살 계획을 미리 무마하는 일이다.’
만우의 무력이 타케노로 하여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전제 자체를 배제하게 만들었다. 아주 일부분이라고는 하지만, 타케노는 그래도 일본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사무라이도 칭송을 받는 사무라이다. 그런 그가 눈 하나 깜짝하지도 못하고 만우에게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것만으로도 만우는 이런 번거로운 계략까지 쓸 필요가 없어보였다.
‘마교라는 놈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고 해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마교란 놈들이 무섭다고 말을 하지만, 결국 타케노도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반면 만우의 무력은 몸으로 겪어봤다. 그러니 당연히 만우의 무력을 더 높이 쳐줄 수 밖에 없었다.
‘만우란 자를 이길 수는 없어.’
정보의 부재, 그리고 무지가 타케노로 하여금 이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것이다.
“좋아. 그럼……가지.”
만우는 동군영이 여의손에게 다시 한 번 경고를 주고는 합류하자 타케노에게 말했다. 타케노가 앞장을 섰다. *****
“미리 도련님으로부터 분부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만우와 동군영, 그리고 슌스케가 타케노와 함께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게 된 나머지 일행들은 우즈히코 가문의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주춤, 주춤. 허리춤에 긴 왜도를 찬 사무라이들이 일행들의 앞을 열어주자 주변 양인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김향은 방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그것보다도 난 길거리에 이렇게 대놓고 칼 차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더 신기한데.”
조선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이다. 공식적으로 조선이 들어서면서 사병 혁파가 일어나 포졸을 비롯한 관병들을 제외하고는 날붙이를 지니고 다닐 수 없었다. 기껏해야 뒷골목이나 전전하는 검계들이 몰래 검을 가지고 다녔다. 대장간에서도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를 제외하고는 병장기를 팔 수 없었다. 모든 병장기들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