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일본국에 가다(4)2021.02.02.
우즈히코와 타케노에 대해 슌스케에게 물었다. 부마인 변태의 가문인 우즈히코는 일본국에서도 유력 가문 중에 하나라 오사카에도 별장이 있다고 했다. 수도인 교토까지는 오사카에서 일직선상으로는 백오십 리 남짓이었지만, 가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고 한다.
“왜상을 모아놓겠다고 합니다.”
“우즈히코 별장 먼저?”
“예, 대장님.”
슌스케가 고개를 숙였다. 만우는 턱을 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동군영에게 물었다.
“반반?”
동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즈히코에게 반, 나머지 반을 타케노에게 팔겠다는 소리였다.
“칼잡이한테는 칼잡이들로 대금을 받으면 될 거고. 그럼 나머지 금자 오백 개는 어떻게 하게?”
동군영이 여의손의 개성 삼을 빼앗아 여기서 팔아넘기려고 하는 이유는 가문의 복수를 하기 위해 무사를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다행히 일본국에는 할 일이 없는 노는 손들이 매우 많았고, 그들은 동군영이 내미는 황금을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슌스케. 이곳의 정치 상황이 복잡하다고 했지?”
“예.”
슌스케는 동군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국의 사정에 밝은 것은 슌스케가 유일했기 때문에 동군영은 슌스케에게 일본국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다.
“일본국의 실세는 현 쇼군이 아니라고 하더군.”
“……그게 무슨 소리야?”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일본의 천황이라 불리는 덴노의 대리인으로 쇼군이라는 자가 일본국 전체를 통일하여 다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쇼군이 실세가 아니라니.
“아시카가 요시모치는 전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적자입니다.”
“그런데?”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 승려가 되었는데, 이 일이 상당히 복잡한 축에 속합니다.”
“승려? 출가를 했다고?”
단박에 상왕이 떠오르는 만우였다. 상왕은 현 주상의 독심에 질려 함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출가한 의동생을 기리며 아들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상왕이 실존한다는 것은 같지만 슌스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전 쇼군께서는 출가하셨지만 최고 관직인 태정대신(太政大臣)을 겸직하고 계십니다. 그저 쇼군이라는 껍데기만 현 쇼군에게 물려주었고,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전 쇼군께서 휘두르고 계십니다.”
“뭐 그런 게 다 있어?”
만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쇼군께서 남북조 시대를 통일하신 영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출가를 했냐, 이 말이야.”
조선에서 출가란 속세를 떠나겠다는 뜻이다.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은 채 산으로 들어간다는 뜻인데, 일본국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본토를 통일했고, 무가의 최고자리인 쇼군에도 올랐으며 조정에서도 최고관직인 태정대신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종에서도 최고 자리에 오르기 위함입니다.”
“……선종? 굳이 왜?”
“쇼군이나 태정대신은 전부 덴노의 신하들이지만…… 선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를 모시기 때문에?”
“예.”
슌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양반이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게 뭔데?”
“전 쇼군, 요시미츠는 명의 건문제로부터 일본국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줄기차게 명나라와 교역을 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일본국왕? 일왕이 있지 않나?”
덴노라 부르는 일왕, 자기들끼리는 천황이라 부르는 그 왕이 있는 것으로 만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슌스케는 쓰게 웃었다.
“이미 쇼군에 의해 군사권부터 시작해 모든 권한을 잃은 자리가 바로 덴노입니다. 유명무실한 자리지만, 정통성이 필요해 쇼군에 의해 옹립이 된 덴노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통성…….”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으니,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껍데기뿐인 왕을 옹립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했다.
“그런데, 명나라에서 쇼군을 일본국왕으로 임명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애매한 것이지요. 귀족들 중에 전 쇼군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정도면 의심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한 것이 아닌가?”
“어찌하였건, 그래서 출가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명으로부터 칭왕을 허락 받았으니, 덴노의 신하가 될 수는 없고 그래서 출가를 하면 덴노와 관련이 없게 되니 말입니다.”
“야심이 많은 양반이라 이거지. 그런데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만우는 동군영에게 물었다. 왜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이게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우. 명에서 마교가 어떤 존재라고 했지?”
“……꺼려하는 존재? 정파라 불리는 구파일방과 척을 지고 있는 곳이니까. 늘 혈겁을 일으켜 치안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던 놈들이기도 하고.”
거기에 마교는 너무 강했다. 당연히 명 황실에서도 자신들에게 협조적인 구파일방과는 달리 마교를 경계하고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치워버리기에는 십만대산을 방패 삼아 숨어있어 건드릴 수가 없으니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마교가 여기 들어와 있다는 걸세. 그것도 교토에 떡하니 검주, 자네를 잡겠다고 함정을 파고.”
“음…….”
만우가 아미를 좁혔다. 무언가 머릿속에서 간질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쇼군이란 자는 명으로부터 일본국왕이라는 정통성을 받았네. 덴노 밑에 있기는 싫어서 출가를 했고. 그런데, 그 상황에서 명에서 싫어하는 마교가 떡하니 교토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 성 싶은가?”
“……싫겠지. 명에 생색을 내고도 싶을거고.”
“거기에 그 마교 고수를 덴노와 귀족들이 불러들였다는 소문을 낸다면? 요시미츠를 치워버리기 위해서 말일세.”
“명분까지…… 야. 너 설마.”
“그렇네.”
동군영이 씩 웃었다.
“관군을 움직일걸세. 마교를 치기 위해서.”
만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동군영의 흑화가 만우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
“오지 않았다?”
“예.”
마군자(魔君子) 마원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보였다. 혈세천마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알싸한 맛이 느껴지는 말차를 입에 머금었다.
“본좌를 믿지 못 하겠다는 것이구나.”
“소교주께서 그러실 리가…….”
“야망이 큰 놈이다. 하지만 야망이 큰 놈이 하늘을 봤으니, 그럴 수도 있지.”
“교주.”
마원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魔)의 하늘(天)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혈세천마다. 무림십좌 중 최강인 일패(一覇)가 바로 마의 하늘이다.
“마원.”
혈세천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실을 직시하게. 현실을.”
혈세천마의 두 눈에서 마기가 스멀거리거 흘러나왔다.
“검주. 검주 만우는 본좌보다 강해.”
“교주님.”
“하지만!”
혈세천마가 검주와의 대결을 피한 이유는 간단하다. 검주를 이길 수 없음을 혈세천마가 직감했기 때문이다. 패배가 뻔한데, 굳이 그 비무 신청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마의 하늘은 무너져서는 안 된다. 마교가 계속해서 공포로 군림해야만 정파와 사파가 함부로 준동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번 꺾인 명성은 다시 되살릴 수 없다.
“강자라고 해서 언제나 약자가 지는 법은 없지. 아니 그런가?”
신교의 교주로써, 자신이 누군가보다 약자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하지만 혈세천마는 오히려 마원보다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언젠가는 누구보다 약해지기 마련이지. 세월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겠는가.”
한때 혈세천마는 단연코 천하제일인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힘은 이길 수 없는 법이다. 혈세천마가 노쇠해져 약해졌다고 하기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장강이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이 당연한 법이기 때문이다. 단지,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천하제일인이 나왔을 뿐이다. 중원무림이 그 누구도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고 있어도 외면하고 있지만 천하제일인은 분명 존재했다.
“교주님…….”
“그러니 자네가 이곳, 왜까지 오자고 한 것이겠지. 아닌가?”
마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교의 군사인 그도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지만, 천마의 위엄에 대해서는 의심한 적이 없는 신교인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은 군사다. 현실을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봐야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인 천마보다도 더더욱 냉정하게.
“후우우우.”
마원은 심호흡을 했다. 냉정함을 되찾기 위해서다. 그런 군사의 모습에 혈세천마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배가 나온 평범한 아저씨 같은 모습의 천마는 냉정함이 돌아온 마원이 눈을 보면서 말했다.
“곡왕과 마존은?”
“진법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진법이라. 크크크.”
혈세천마는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신교가 중원에서 만우를 잡을 수 없어 왜까지 교주와 두 개의 대대가 움직였다. 그러기 위해 황실의 도움까지 받았고, 조선에 낭황과 살풍대를 받쳐 만우를 도발까지 했다. 신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 교주와 친위대인 천마대, 곡왕의 진혼대까지 동원된 것도 모자라 만우를 확실하게 이곳에서 죽이기 위해 마원이 천마서고에서 찾은 고대의 진법까지 꺼냈다.
“살인진(殺人陳)이라.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이야.”
진법의 이름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붙어있지 않았다. 그냥 단순했지만, 그래서 더욱 천마의 마음에 쏙 들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진법. 그 진법을 위해 천마대 백 인이 고수와 진혼대 오백 명의 고수가 모두 동원됐다. 신교의 최강자와 최고 정예들이 모두 동원이 된 것이다.
“아무리 검주 그 자가 강하다고는 하나 빠져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검주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일패와 무림십좌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무림십좌가 있고, 서열로 나뉘어있지만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진짜 일패, 혈세천마가 최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 검주, 만우의 존재 때문이다. 검주의 존재 자체가 견고하던 천마의 아성에 쓸데없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중원에 본좌 이외의 최강자는 필요가 없음이다.’
혈세천마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무인이기전에 자신은 신교의 교주다. 신교의 교주로써 신교를 천년만년 부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비겁하게 함정을 파 검주를 죽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주창, 그 아이가 그러했다……란 말이지.”
혈세천마는 피식 웃었다. 주창은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동시에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천마 스스로도 주창이 나이에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리고 천마는 아직 교주의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반역이다. 마원.”
“교주!”
천마의 말에 놀란 마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투귀대 안에는 천마의 아들뿐 아니라 자신의 들 역시도 있었다.
“본좌의 명령을 수행치 않고, 연락을 끊은 뒤 자취를 감추었다. 군사.”
“…….”
“이게 반역이 아니라면 뭐가 반역이지?”
마원은 입을 열지 못 했다. 혈세천마가 검주를 죽이기 위해 천마대와 진혼대를 끌고 온 이유는 그들이 제일 충성스러운 자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에는 혈세천마가 검주의 비무를 피했다면서 불만을 품은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투귀대의 고수들이 불만을 품었다면,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려나갈 것이다. 천마는 잘못하면 자신이 아들과 교를 놓고 싸워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른의 나이에 화경에 오른 주창이라면, 그를 따르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은 자명했다. 늙은 천마보다는, 젊은 천마의 후계자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일아. 마일아. 어째서 네 주군을 설득하지 못 한 것이냐. 어째서!’
마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투귀대를 잡아 근맥을 끊어 교로 보낼 것이다. 그리 알려라.”
“존명!!!”
하지만 천마가 의지를 천명한 이상 그것은 하늘의 뜻이다. 마의 하늘이 내린 명령이기 때문이다. 마일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