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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일본국에 가다(2) (217/400)

217. 일본국에 가다(2)2021.01.26.

그런 놈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단박에 달려들어 목줄기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16553243579146.png“이제 와서 나약해지지마. 그놈을 이용하려고 한 건 나으리가 먼저니까.”

만우는 동군영이 먼저 여의손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동군영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3579153.png“좋아.”

16553243579146.png“그러면. 그 삼을 처분할 곳은 알아놨어?”

일본국으로 가는 선단 중 가장 후미에 위치한 관선에 올라타며 만우가 동군영에게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조선의 관선이 아니었다. 왜의 선박이었다. 동군영은 여의손에게 그가 위조한 어인과 몰래 밀수로 내다 팔려던 개성 삼을 들이밀면서 그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16553243579153.png[불문에 부칠테니 그걸 찾아가려 하지 마라. 그럴 기미라도 보인다면 곧바로 한양으로 파발을 띄울 것이다.]

여의손은 아깝고 억울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우기고 싶어도, 힘과 명분이 모두 동군영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한제일검의 유지를 이어받은 후계자라고 한양에 소문이 난 만우와 새로운 옹주로 얼굴을 알린 방매가 버티고 있는 순간 여의손의 모든 변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간 셈이나 마찬가지다.

16553243579153.png“음. 몇 군데 알아놓기는 했네만. 한 곳에 전량을 매매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네.”

16553243579146.png“얼마만한 규모길래?”

16553243579153.png“금병 천 개.”

16553243579146.png“……금병 천 개?”

만우가 입을 떡 벌렸다. 개성 삼을 담은 상자의 크기가 조금 크기는 했다. 아마 그곳에 삼 수백 뿌리가 들어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게 금병 천 개라니. 은병 열 개가 모이면 금병 한 개가 된다. 금병, 혹은 금자라 불리는 황금 덩어리가 천 개면, 은병이 무려 만 개라는 소리다. 은병 한 개, 즉 은 열 냥에 한양에서 쌀이 무려 서른 가마다. 은병 만 개라는 것은 쌀이 무려 삼십만 가마라는 소리다.

16553243579146.png“쌀이 삼십만 가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 어떤 것이든 천 개 이상 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삼십만 석이라니.

16553243579146.png“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16553243579153.png“그러니 명에서 그토록 조공품으로 삼을 보내라는 것이겠지. 명에 가면 왜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비싸질 테니까 말일세.”

16553243579146.png“……그럼 조선에서는?”

16553243579153.png“1/10 가격이지.”

그러니, 여의손이 가져온 삼이 조선에서는 금병 백 개의 가치라는 소리다.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큰돈이다.

16553243579153.png“대략 열 개 정도의 상단에 나눠서 팔 듯하니, 왜에 도착하면 상인들을 수소문할 생각이네.”

16553243579146.png“믿을 수 있을까?”

16553243579153.png“그래도 어쩔 수 없지.”

동군영은 쓰게 웃었다. 거기서 삼을 판 돈으로 낭인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모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그렇게 해서라도 가문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16553243579153.png‘마교.’

절로 이가 갈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만우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멀어지는 부산포를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43579146.png“상인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어.”

16553243579153.png“방법?”

만우는 턱짓으로 바로 옆에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는 배를 가리켰다. 왜의 사신선단 중 가장 큰 장군선이 그곳에 있었다. 맨 앞에 물길을 잘 아는 왜의 선단이 나아가고, 그 뒤를 조선의 수군이 뒤따르는 형태였다. 동군영이 만우가 가리킨 곳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43579153.png“저자는…….”

16553243579146.png“막부의 부마라고 하더군. 왜의 군주의 사위.”

16553243579153.png“알고 있네. 옹주께 불경한 짓을 하다가 치도곤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 덕분에 만우와 옹주가 팔자에도 없는 연기를 해아만 했다. 만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3579146.png“맞아. 그 아래에 있는 놈이기도 하고.”

탁. 만우와 눈이 마주친 우즈히코가 화들짝 놀라서는 창문을 탁하고 닫았다. 하켄이라 불린 타케노 역시 만우의 눈을 슬쩍 피했다. 괜히 잘못 엮였다가 고생을 오지게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우 일행이 떡하니 자신의 선단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으니, 1도 편할 리가 없었다.

16553243579146.png“조선에서야 그랬지만, 왜에서는 꽤나 방귀를 뀐다는 놈들 아니겠어? 무려 군주의 사위라는데.”

16553243579153.png“저자들에게 부탁을 하자?”

16553243579146.png“부탁이 아니라.”

만우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부탁이 아니었다. 부탁은 내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 상대방의 선의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부탁이다. 하지만 저들은 만우와 방매에게 저지른 죄가 있었다. 그 귀찮음을 감수한 대가를, 만우는 아직 저들에게 청구하지 않은 상태였다.

16553243579146.png“본주의 비싼 몸을 움직이게 했으니, 그 대가를 치뤄야지. 톡톡히.”

16553243579153.png“어떻게…….”

16553243579146.png“슌스케!!!!!”

만우가 슌스케를 불렀다. 그러자 놀란 슌스케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만우는 손가락으로 우즈히코와 타케노가 타고 있는 장군선을 가리키고는 배의 난간에 발을 얹었다.

16553243641786.png“대장님?”

16553243579146.png“따라와라. 와서 말을 전해. 저놈들에게 받아내야 할 것이 있으니.”

16553243641786.png“타케노……예! 알겠습니다!”

슌스케가 씩 웃으면서 만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슌스케도 저들, 특히 그중에서도 하켄 타케노에게 쌓인 것이 많았다. 휘리릭!!! 만우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난간을 밟고 날아올랐다. 턱, 터덕, 터더덕!!! 선박과 선박 사이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만우는 허공을 밟아가며 장군선에 내려섰고, 슌스케는 출렁이는 파도 위에 나무 조각 몇 개를 던져놓고는 그곳을 밟아 장군선에 올랐다. 확실히 파도에 익숙한 슌스케는 물 만난 고기처럼 배 위에 올랐다.

16553243579146.png“난 왜어를 하지 못하니, 내 말을 똑똑히 전하거라.”

만우는 자신이 배에 오르자 바짝 긴장을 한 왜의 수군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슌스케에게 말했다.

16553243641786.png“예, 대장님.”

16553243579146.png“변태새끼 나오라고 해!!!”

16553243671454.png

  우릉!!! 만우의 고함소리 한 번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장군선 위에 울려퍼졌다. *****

16553243671459.jpg“상인……?”

16553243579146.png“그래. 상인.”

만우의 말을 슌스케가 전했다. 그러자 우즈히코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만우가 인상을 쓰자 금세 펴졌다.

16553243579146.png“그래. 그렇게 웃고 살아야지. 응?”

만우가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점점 깊은 바다로 나아가면서 선박에 너울에 한 번씩 흔들렸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16553243579146.png“삼을 거래할 수 있는 상인. 삼의 규모는 약 금자 천 개.”

16553243671459.jpg“처, 천 개!!!”

타케노가 입을 떡 벌리며 기함했다. 그 규모에 놀란 것이다. 우즈히코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바닥부터 사무라이들의 왕이 된 타케노는 아니었다.

16553243671459.jpg‘상단 한 개가 전부 소화할 수 없는 물량!’

거기에 조선의 삼(蔘)이라면 본토에서도 구할 수가 없는 귀한 약재다. 본토에는 해풍이 심하고 토지가 좋지 않은 지역이 많이 늘 질 좋은 약초가 부족했다.

16553243671459.jpg“우리가 사겠다!”

우즈히코가 만우의 말에 단박에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순간 만우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16553243579146.png“사, 산다고? 그걸 전부?”

16553243671459.jpg“그래. 우리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단이 있으니, 그걸 통해 사마. 그러면 해결되겠지.”

우즈히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상재(商材)는 제법 준수한 축에 속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혹은 부마로서의 정치적 역량은 떨어질지 몰라도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돈 계산에 밝았다.

16553243671459.jpg“막부에서 가장 부유한 것이 바로 우리 가문이다. 그래서 쇼군께서 나를 부마로 들이신 것이고.”

16553243579146.png“…….”

만우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저곳에서 오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적토선과 활빈당. 동군영과 모종의 협의를 했기 때문에 이 뒤를 은밀하게 따르는 여포와 활빈당이었다. 그런데 우즈히코의 가문에서 삼을 전부 구매해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6553243579146.png“그건 조금 더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16553243671459.jpg“어, 어째서!”

16553243579146.png“너희 때문에 내가 고생한 게 얼마인데.”

만우가 쓰읍하는 소리를 내자 우즈히코가 움찔했다. 여전히 우즈히코에게 만우는 오니(鬼)처럼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

16553243671459.jpg“그, 그래도 반드시 생각을 해봐. 여러 군데에 나눠서 파는 것 보다는 낫잖아?”

16553243579146.png“흠. 그렇기도 하겠지.”

만우는 우즈히코를 힐끗 쳐다보고는 창밖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타케노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3243579146.png[넌. 아는 거 없어?]

16553243671459.jpg“허억!!!”

갑자기 머릿속에서 만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분명 만우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16553243579146.png[씁. 놀라는 척하지 말고.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슌스케가 이상하다는 듯 타케노를 쳐다봤다. 사무라이들의 왕이라는 이름답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타케노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자리에 앉았다.

16553243579146.png[아니. 전음도 몰라? 내공을 그렇게 쌓고 있는 놈들이?]

보아하니 전음(傳音)이란 것 자체가 없는 모양이었다. 만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바다가 가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이나 조선이나 왜나 무(武)가 너무나도 달랐다.

16553243579146.png[어쨌든. 내 말 잘 들어. 있어, 없어.]

타케노는 우즈히코를 슬쩍 쳐다봤다. 우즈히코는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만우가 말한 그 물량이 꽤나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16553243579146.png[우리는 돈만 받으면 돼. 그걸로 네가 무슨 장사를 하건 관심 없어.]

번쩍! 타케노의 눈이 뜨였다. 결국 사무라이들, 남북조 전쟁이 끝나고 무로막치 막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된 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돈이다. 타케노도 마찬가지다. 돈을 마다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16553243579146.png[그러니까 네놈들이 사건, 상인들을 데려오건 해서 수수료를 받건. 그건 네놈들 마음이란 소리지.]

16553243671459.jpg“…….”

타케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3579146.png[아니면, 내가 말한 삼의 주인, 그러니까 우리 나으리가 너희 애들을 쓰고 싶다고 할지도 몰라.]

타케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금자가 무려 천 개다. 그 엄청난 돈으로 낭인, 사무라이들을 고용하려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돈이면 거의 천 명이 넘는 사무라이를 끌어모을 수 있다.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16553243671459.jpg‘전쟁이라도 벌이려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조선의 관리가 본토에서 왜 굳이 낭인들을 끌어모아 전쟁을 벌인다는 말인가. 그것도 누구와 하느냐는 말이다.

16553243579146.png[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어차피 거리는 멀잖아?]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막부의 쇼군과 일왕(日王)이 머물고 있다는 경동(京東:교토)는 편도 3개월은 족히 걸리는 길이다. 배로 대판(大阪:오사카)까지 가고, 그곳에서 육로로 경동까지 가야 하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배 위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만 두 달 정도 된다. 물론 중간 중간에 들리는 곳이 있기는 했다.

16553243579146.png[그러니까, 중간 기항지에 들리거든 불러모아. 오사카에. 너희들이 나와서 사건, 아니면 다른 상인들을 부추기건 간에.]

타케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즈히코 가문에서 돈을 많이 줬기 때문에 일하고 있었지만, 그들과 지켜야 할 의리 따위는 없다. 애초에 황금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건 어떻게 보면 신센구미가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16553243671459.jpg‘나도 다이묘가 된다!’

그는 쇼군을 도와 남북조 시대를 평정하고 무로막치 막부가 실세가 되게 만드는데 있어 가장 선봉에 섰던 사무라이다. 비록 출신이 한미했지만, 그에 준하는 전공을 쌓고 그 전공으로 신센구미 3만 사무라이를 이끄는 대장이 된 것이다. 거기에 출신을 무마해 줄 수 있는 재물까지 손에 쥘 수 있다면, 자신도 다이묘가 될 수 있었다. 전쟁의 시대가 지난 터라 주인 없는 땅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16553243579146.png“뭐, 그럼 생각해 보도록 하지.”

16553243671459.jpg“이, 이봐. 삼한제일검. 그러니까…….”

16553243579146.png“아우. 붙지 마, 변태야.”

만우가 소맷자락을 흔들어 우즈히코를 떨쳐낸 후 자리에서 나갔다. 슌스케가 그런 만우 뒤를 따라 나가려는 순간, 타케노가 슌스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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