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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일본국에 가다(1) (216/400)

216. 일본국에 가다(1)2021.01.23.

16553243305953.jpg“대감님. 최가이옵니다.”

16553243305953.jpg“왔느냐?”

안에서 어서 감찰 동군영을 데려오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여의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이내 퍼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흠흠하면서 헛기침을 한 뒤 여의손이 자리에 앉았다. 상대가 감찰이라고 해도, 자신은 정3품 전서에 보빙사로 어명을 받은 몸이었다.

16553243305953.jpg“들라하라!!”

16553243305953.jpg“…….”

여의손이 근엄한 목소리로 들라고 말했지만, 최가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하인의 기척도 문 밖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여의손이 주춤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3243305953.jpg“들라하라!”

혹시나 못 들었을까 싶어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소리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쯤이 되면 수상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여의손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당겨 문을 연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여의손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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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영을 데려오라고 보낸 최가을 비롯한 사병들과, 여의손이 대동했던 가노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이가 없는 것은, 열 명이 넘는 장정들이 딱 두 명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고 있다는 점이었다.

16553243305953.jpg‘저 허여멀건한 놈이 동군영이로구나.’

여의손은 단박에 동군영을 알아봤다. 비밀감찰로 위장을 해 동래에 들어온 터였기 때문에 동군영의 신색은 간촐하다 못해 초라했다. 누더기 같은 허름한 두루마기에 찌그러진 갓을 쓴, 영락 없는 가난한 선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16553243305953.jpg‘저놈은 뭐지? 평범하게 생긴 놈인데.’

여의손은 동군영 옆에서 씩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병들과 가노들을 쳐다보고 있는 만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아래 위로 아무리 훑어봐도, 양반 같지는 않았다. 검은 무복을 입고, 머리를 묶지 않은 것을 보니 그냥 양인인 것 같았다.

16553243305953.jpg‘감찰의 호위?’

그러하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최가는 작은 무관을 운영했지만 그 실력이 한양에도 소문이 난 유명한 무인이다. 그런데 저 어려 보이는 남자가 혼자 최가를 비롯한 사병들과 가노들을 제압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윽 그때, 만우가 고개를 돌리더니 여의손과 눈이 마주쳤다. 씨익. 자신과 눈이 마주친 만우가 씨익하고 웃자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여의손이 문을 박차고는 나갔다. 그리고는 두 눈으로 고리눈을 뜨면서 소리쳤다.

16553243305953.jpg“이게 뭐하는 짓인가!!!”

쩌렁!!! 자신은 정3품 전서다. 거기에 어명에 의해 보빙사로 임명을 받은 몸이다. 조회 때 대전에 들을 수 있는 당상관인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이리 행패를 부리다니.

16553243305953.jpg‘그래.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일개 감찰 따위가.’

여의손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그렇기 치부하기로 했다.

16553243305953.jpg“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내 아랫사람들을 핍박하는가!!!”

여의손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그 소리가 제법이었다. 그때 고개를 돌린 동군영이 공손하게 여의손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16553243341977.png“전서 여의손 대감. 맞으십니까?”

16553243305953.jpg“그래. 내가 정3품 전서이자 주상전하께서 보빙사로 임명하신 여의손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동군영이 머리를 조아렸다.

16553243341977.png“신 감찰방 소속 장령 동군영이라 하옵니다.”

16553243305953.jpg“장령?”

장령이면 정4품이다. 바로 아래인 것이다. 생각보다 높은 직위에 여의손이 움찔했지만, 전서와 장령은 차이가 크다. 품계는 바로 아래라고 할지라도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의손은 당황을 감추고는 엄하게 동군영에게 물었다.

16553243305953.jpg“동 장령.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내가 물어봐야 하는가?”

16553243341977.png“저희는 죄인을 벌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16553243305953.jpg“죄인이라. 이 여의손의 머슴과 가노들이?”

여의손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칼자루는 동군영 쪽에서 쥐고 있었다. 여의손이 부정을 저지르려는 것의 증거를 동군영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43341977.png“여인을 희롱하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헌데, 어찌 죄인이 아니라 하시는지요.”

동군영은 차분한 어조로 여의손에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할 말이 없이 궁해진 것은 여의손이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뻐끔거리는 여의손에게 동군영이 말했다.

16553243341977.png“그래서 국법에 따라, 이들을 관아로 압송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16553243305953.jpg“지금 나를 우롱하려 하는 것인가!”

쿵! 여의손이 발로 대청마루를 쾅하고 찍었다. 동군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16553243305953.jpg“내 아랫사람의 허물은 곧 상관인 나의 허물. 나의 허물을 들춰서 동 장령, 자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의손이나 동군영이나, 그 이유를 알면서도 그 누구도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만우는 양반네들의 머릿속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16553243372668.png“그러니까 거기 계신 대감님.”

만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자 여의손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의심할 나위가 없는 유학자다. 사대부로써 반상의 도리를 중시 여기기 때문에 여의손이 두 눈을 부릅 떴다.

16553243305953.jpg“어디 미천한 작자가 양반들이 말하는데 끼어든단 말인가.”

16553243372668.png“아. 미천해서? 아이고 이거 어쩌나. 미천해서 죄송합니다 대감님.”

만우가 히죽 웃었다. 반상의 도리니, 양반이니 하면서 화를 내봤자 만우의 눈에는 우스울 따름이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동군영이 씩 웃었다.

16553243305953.jpg“저 미천한 자의 무례한 행동을 보니, 상관인 동 장령, 자네의 인성도 알 수 있겠군. 쯧쯧.”

여의손은 혀를 찼다. 동군영이 그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 것이다.

16553243305953.jpg“뭐가 웃긴가.”

16553243341977.png“그렇다면, 여인을 희롱하고 약자를 괴롭힌 이 파락호 같은 놈들을 보니 이 자들의 윗사람이신 대감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어서 말입니다.”

16553243305953.jpg“나를 놀리는겐가!!”

여의손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여의손은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오소소. 그와 함께 여의손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여의손은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만우와 동군영을 쳐다봤다.

16553243372668.png“자.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시고. 대감님.”

만우가 아주 약간의 기세를 일으킨 것만으로 주변의 온도가 뚝하고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아혈과 마혈이 짚인 최가의 눈이 커졌다.

16553243372668.png“우리 나리와 이야기나 하시죠. 그 왜 있지 않습니까.”

만우가 씩 웃어보였다.

16553243372668.png“대감님께서 장난친 어인이 찍힌 상자. 우리 쪽 사람한테 물어보니 그게 위조라네? 궁에서 쓰는 염료와는 다르다고 하던가.”

방매가 그게 위조임을 알아본 이유는 간단했다. 어인은 붉은 염료를 사용하는데, 도화원에서 특별하게 제조한 염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방매는 그 어인을 보면서 피식 웃으며 말 했다.

16553243372668.png“연지로 쓴 거라던데. 우리 쪽에 화장품 전문가가 있거든.”

만우의 말에 여의손의 안색이 헬쑥하게 변했다.

16553243305953.jpg“그럴, 그럴 리가 없다. 설마, 어인이 붙은 상자에 손을 댄 것인가!!!!”

여의손이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만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43305953.jpg“반역이다. 주상께서 내리신 물건을…….”

16553243341977.png“괜찮소.”

동군영이 여의손에게 말했다. 어느새 여의손의 말투는 반존대로 바뀌어 있었지만, 여의손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이다.

16553243305953.jpg“괜찮다니. 그 무슨. 내 일을 조정에 알…….”

16553243341977.png“그 어인이 가짜라고 하신 분. 그분이…….”

동군영이 히죽 웃어보였다.

16553243341977.png“주상전하의 동생 되시는 분이오.”

16553243305953.jpg“동생? 헛소리 마라. 그런 분이 왜 이곳에…….”

16553243341977.png“아시오? 상왕께서 새로이 사성하여 들인 옹주.”

동군영의 말에 여의손이 입이 헤 벌어졌다. 한양에서 거하게 행차까지 선보였기 때문에 옹주에 대해서 모르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동군영은 놀라 입을 뻐끔거리는 여의손을 보면서 쐐기를 박았다.

16553243341977.png“그리고 이자는…….”

동군영이 만우를 힐끔 쳐다봤다. 만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중원에서는 검주 하나면 못 알아먹는 무림인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된게 검주보다 이 이름이 더 잘 먹혔다.

16553243341977.png“삼한제일검.”

16553243305953.jpg“허, 허억!!”

옹주와 그 곁을 지켰던 호위무사. 삼한제일검(三韓第一劍). 여의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동군영은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16553243341977.png“하필이면 저기 최가란 작자가 희롱한 것이 옹주인지라…… 뭐, 어쩌겠소. 그분께서 진노하셨으니 이 놈들을 잡아가는 수밖에. 혹시 대감께서 시키신 일은 아니시오?”

16553243305953.jpg“아니네. 아니…… 내가 어찌 그런 망측한…….”

여의손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최가의 눈이 흔들렸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었지만 마혈이 짚인 상태에서 최가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움직이는 것밖에 없었다.

16553243305953.jpg“허, 헛소리 하지 마라 여가야!!!”

그런데 그 때, 최가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놀란 최가가 눈을 부릅 떴다. 분명 아혈까지 짚여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옹주를 희롱한 죄로 자신만 능지처참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혼자 죽을 수는 없다. 혹시 누가 아는가. 자신이 벌인 단독 행동이 아니라면, 자신의 죄를 경감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16553243305953.jpg“여가야! 네 이놈! 네놈이 시켰지 않느냐! 여기 계신 감찰 어르신께 못할 짓을 해도 된다고. 말만 잘 듣게 만들면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다급한 최가의 외침에 동군영이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16553243341977.png“저 말이 사실이옵니까?”

16553243305953.jpg“아니네. 그건 사실이 아니네! 내게 충성 맹세를 하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것이야!”

여의손은 빠르게 최가를 손절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최가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16553243305953.jpg“내 말이 사실입니다 나리! 저 여가가! 저 죄인이 제게 시킨 일이옵니다.”

16553243341977.png“흐음…… 그게 사실이라면 대감.”

동군영이 능숙한 표정으로 여의손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여의손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의 목에 목줄을 채울 차례다.

16553243341977.png“이야기를 좀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16553243305953.jpg“좋네. 내 무고를 증명하도록 하지. 안으로 들 텐가?”

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 하게 된 여의손이 동군영에게 손짓을 했다. 동군영이 만우를 쳐다보자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16553243372668.png“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리.”

16553243341977.png“부탁하네.”

16553243372668.png“저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놈이 있어서요.”

만우가 최가를 보면서 히죽 웃어 보였다. *****

16553243463871.png“일본국이라니. 그리고 배라니!!”

보빙사 일행이기 때문에 관선(官船)을 타고 가게 된 방매가 흥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16553243463871.png“크다. 마포나루에서 본 배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걸?”

부산포에서 배를 타고 가면 일본국에는 사흘이 넘게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관선이 크기는 강안을 지나다니는 조운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견고했다. 만우는 이리저리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방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도 돌아다녀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43372668.png“필두야.”

1655324349399.png“네, 대장님.”

일행들 중 유일하게 승선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필두가 유일했다. 그는 장강을 오르내리는 수적들의 수괴였기 때문에 땅보다는 물 위가 더 편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6553243372668.png“알아서 잘 챙겨.”

1655324349399.png“네. 보빙사에게 말해두겠습니다.”

16553243372668.png“그래.”

보빙사를 마치 옆집 김씨를 부르는 것처럼 대하는 만우와 필두였다. 하지만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6553243341977.png“만우.”

16553243372668.png“어, 나으리. 왜?”

동군영이 부르자 만우가 뒤를 돌아봤다. 동군영이 쓰게 웃으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3341977.png“적당히 자극하시게. 그러다 만약 수 틀린다고 같이 죽자고 나오면…….”

16553243372668.png“그러면 그놈이 죽겠지.”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보빙사 여의손은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다. 그는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했지만,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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