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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여포와 만우(3) (214/400)

214. 여포와 만우(3)2021.01.16.

16553242809217.png‘척사영. 그 여자보다도 강하니까.’

거기에 직접 손속을 겨뤄본 여포는 척사영보다도 강했다. 여포가 모든 힘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해 봤을때, 여포는 최소 화경의 극의에 다다른 고수다.

16553242809217.png“그러니까 두고 가. 이걸로 좋은 일 하려는거 아니야?”

만우는 여의손의 삼이 담긴 소 달구지를 가리켰다.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2809217.png“하지만 본주를 이기고 가져갈 수 없지? 네 뒤에는 부하들도 있는데.”

만우가 기절시킨 가동과 수하들이 신경 쓰였다. 여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짐이 있는 상태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16553242809217.png“거기에 이 쪽은 국법을 지키는 감찰이라는 감투도 있어. 그러니까…….”

만우는 손가락으로 활짝 열린 뒤쪽의 문을 가리켰다.

16553242809217.png“나가. 활빈당인지 뭔지 하는 애들 데리고.”

16553242809243.jpg“…….”

여포는 방천화극을 갈무리했다. 여포는 바보가 아니었다. 해적의 두목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가 바보라면 정보전 같은 것은 떠올리지도 못 했을 것이다.

16553242809243.jpg“이번에는 물러나도록 하지.”

16553242809217.png“다음 번에도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우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여포에게 말했다. 하지만 여포도 만만치 않았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척하고 어깨에 걸치며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2809243.jpg“글쎄. 그게 바다 위에서라도 그럴 수 있을까?”

16553242809217.png“…….”

만우는 멈칫 했다. 만우는 산지이건 절벽이건 초원이건 늪지이건 싸우는데 있어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물 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육지보다 더 큰 바다 위에서라면, 만우에게는 많은 변수가 있는 반면 여포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른다.

16553242840244.png“잠깐.”

그 때 동군영이 앞으로 나섰다. 동군영이 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포는 단박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16553242809243.jpg“해적과 감찰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상대군.”

여포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동군영은 그러지 말라는 듯 손으로 홰를 쳤다.

16553242840244.png“여포라고 했나? 자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네.”

16553242809243.jpg“무슨…….”

16553242840244.png“난 이걸 군자금으로 삼아 일본국에 넘어가 낭인을 고용할 생각이네.”

16553242809243.jpg“군자금?”

만우의 눈이 커졌다. 동군영은 여포의 기세에 어깨를 벌벌 떨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16553242840244.png“하지만 여포, 그대가 백성들을 위해 힘 쓰고 있다는 것은 내 귀가 있으니 들어 잘 알고 있지.”

16553242809243.jpg“……이상한 감찰이군.”

여포는 동군영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만우만큼이나 동군영도 이상했다.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히죽 웃어보였다.

16553242840244.png“솔직히 그대의 무력이 탐나네. 수백의 낭인보다는 여포, 그대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동군영은 기절해있는 여포의 부하들을 힐끗 쳐다봤다. 잠깐 봤지만 여포란 자의 성격상 부하들을 내팽개치고 돈에 움직일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16553242840244.png“조선의 삼을 판 돈이 일본국 낭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우스운 꼴이지. 그 놈들이야 말이야 낭인이지만 실제로는 왜구들도 있을 테니까.”

왜구들은 고려 시대때부터 지독히도 백성들을 괴롭혀오던 해적들이다. 일본국 내의 전쟁이 극에 달하면서 그에 밀려난 이들이 조선으로 넘어와 백성들을 살육하고 재물을 취해갔다.

16553242809243.jpg“왜구. 그 쓰레기 놈들.”

해적이라고 하지만 여포와 활빈당은 의적이다. 산적이 아니라 해적이란 것이 특이했지만 바다에서 활동을 하다면 활빈당이 가장 자주 만나는 것이 바로 왜구 놈들이다. 왜구들은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지금에도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해악들이었다.

16553242840244.png“그러니까.”

동군영이 만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여포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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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42840244.png“낭인들에게 넘긴 재물. 활빈당이 다시 가져가 쓰는 것이 어떻겠는가?”

16553242809243.jpg“……뭐?”

16553242809217.png“엑?”

여포와 만우의 표정이 동시에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 이야기를 꺼낸 동군영만이 의미심장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

16553242809243.jpg“뭐……뭐!!!!!”

며칠 뒤. 보빙사 여의손과 왜 사신단의 대표인 우즈히코, 그리고 그의 호위인 타케노가 동래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의손은 남 모르게 저녁에 보고 받은 내용에 뒷목을 턱하고 붙잡았다.

16553242809243.jpg“그, 그게. 그러니까 감찰의 손에 들어갔다?”

16553242809243.jpg“예, 나리.”

소 달구지를 끌던 머슴 동남이가 굵은 눈물을 주륵거리며 오체투지를 했다. 그런 동남의 얼굴은 여기저기 얻어터져 정상이 아니었다.

16553242809243.jpg“도적들이 그걸 노리고 먼저 달려들었는데, 그 뒤를 따라 감찰이 등장해 가져갔다, 이 말이냐?”

16553242809243.jpg“예 나리.”

16553242809243.jpg“이, 이 쓸모없는 노옴!!!!”

여의손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발로 동남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여의손이 발로 동남을 걷어찼다. 동남은 윽윽거리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몸을 공처럼 말았다.

16553242809243.jpg“버러지 같은 놈. 내 그리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늘. 설마. 전부 다 빼앗겼다는 말이냐?”

여의손은 눈 앞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보빙사로 위촉이 되면서 여의손은 제대로 한 몫을 잡기 위해 큰맘 먹고 송상을 통해 개경 인삼을 잔뜩 샀다. 안 그래도 주로 명에 가는 조공품으로 쓰이거나, 궁에 들어가는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비싸기 그지 없는 삼을 뮈리해서 사느라 가문의 재산 절반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에게 들켰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재산을 잃었다는 것을 너머,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16553242809243.jpg“아니지. 아니야. 어인이 찍혀있으니 감찰 놈이라고 해도 함부로 열지 못했을 터.”

감찰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다. 품계는 정3품 전서인 자신보다 낮을지라도 어명을 받고 감찰의 노릇을 하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찰이라고 해도, 자신이 보낸 상자에는 어인(御印)이 찍혀있다. 머리가 제대로 붙어있다면 제 아무리 감찰이라고 해도 함부로 열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16553242809243.jpg“그러면 우기면 돼. 늦어질까봐 먼저 보냈다고 하면 되는 일이다. 암. 그렇고 말고.”

억지였지만 자신이 그렇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보빙사이니,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은 전부 보빙사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16553242809243.jpg“멍청한 놈. 멍청한 놈!”

여의손은 씩씩거리면서 동남을 발로 걷어찼다. 얻어맞다가 기절한 동남의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여의손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16553242809243.jpg“이놈을 끌어내라!”

16553242809243.jpg“예, 나리.”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바깥에 서있던 다른 하인이 들어와 동남을 끌어냈다. 여의손은 손가락을 딱딱하고 두드리다가 바깥에 소리쳤다.

16553242809243.jpg“감찰. 미리 동래에 도착해 그 삼을 가져갔다는 그 감찰에게 기별을 보내라! 만나자고 말이다!”

16553242809243.jpg“예, 나리!!!”

우렁찬 하인의 목소리가 여의손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약간이나마 가라앉혔다.

16553242809243.jpg“아무리 제깟 놈이라고 해도, 감찰 정신이 투철해도 결국 재물에 이기는 놈이 없으니까, 한 몫 챙겨준다고 하면…….”

여의손의 중얼거림이 나지막하게 방 안에서 울려퍼졌다. *****

16553242809217.png“이게 그 유명한 삼이라고?”

16553242932063.png“그래. 바보야. 이게 개경 삼이라고, 나라에서 최고로 쳐주는 삼이야. 명나라에 조공품으로 가거나 나랏님께서 드신다니까.”

16553242809217.png“나랏님이라니. 네 오라버니인데.”

16553242932063.png“야!”

방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만우는 이크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방매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상자를 탕하고 닫았다.

16553242809217.png“이거 어인(御印)이라면서. 이렇게 막 뜯어도 되는거야?”

임금의 명으로 타국으로 가는 조공품이나 하사품 등이 든 상자에는 임금이 보내는 것이라는 뜻의 어인(御印)이 붙은 봉인지가 붙는다. 이건 임금, 혹은 이 물건을 받는 이들만이 열어볼 수 있다는 뜻으로 그런 권한이 없는 이가 함부로 뜯으면 경을 치는 것이 바로 어인인 것이다. 그런데 방매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쭉하고 뜯었다.

16553242932063.png“아니, 무슨 소리 들은거야. 이거, 어인 위조한 거라니까. 조공품을 빼돌려서 가져다 파는게 아니라.”

16553242809217.png“아. 그렇다고 했지?”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만우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방매는 방금 말해준 것을 까먹은 만우를 바보 쳐다보듯 쳐다봤다.

16553242809217.png“됐고. 그런데 신기하네. 확실히 좋은 삼이긴 삼인가봐.”

만우는 상자 너머로 짙게 느껴지는 삼의 잔향을 맡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42809217.png“영약도 아닌데 저렇게 영기가 쌓여있는 건 처음 보네.”

16553242932063.png“영약?”

16553242809217.png“어. 천년설삼이나 만년설삼, 아니면 영물의 내단 같은 거.”

만우는 손가락으로 호선을 가리켰다. 삼이 품고 있는 영물이 자신도 모르게 옆에 와있던 호선이 만우를 보고는 흠칫 했다.

16553242809217.png“쟤. 호랑이 쟤도 내단 가지고 있어.”

16553242961872.jpg“내, 내단이 아니라.”

16553242809217.png“선주인지 뭔지, 그걸 잃어버려서 반쪽짜리긴 하지만.”

16553242961872.jpg“반쪽짜리…….”

호선이 만우의 말에 상처를 입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때문에 중원에는 영물의 씨가 말랐다. 정해진 수명을 뛰어넘어 오랜 기간 수양을 쌓은 영물의 내단은 무림인에게는 보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먹으면 내공을 증진시켜주고, 특이한 성질을 품고 있는 경우에는 한서불침이나 백독불침 같은 부가적인 효과도 생겼기 때문이다. 무림인에게 있어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귀한 영단이나 영약은 혈겁을 일으키기도 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16553242809217.png“거기에 그 영단이나 영약 같은 건 일반인이 먹어도 무병장수하고 그러거든.”

만우는 혀를 쯧쯧하고 찼다. 무식하기 그지 없다고 만우는 늘 생각해왔다. 정도가 아닌 지름길을 찾아서 갔다가는 언제고 후회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런 점에서 내공을 영약이나 영단 따위로 쌓았다가는 결국 거대한 벽을 마주하게 된다. 제 내공이 아니고 제가 쌓은 기가 아니니, 일정 수준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이상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두 배, 아니 열 배의 노력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 귀한 영약을 먹고도 결국 일정 벽을 넘지 못해 고꾸라지는 무림인들이 부지기수였다.

16553242809217.png“달콤해 보이면, 결국 독이 든 셈이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

만우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물론 그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연단술로 대환단이니 태청단 같은 것들을 만들지만 그런 것들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물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구하기 힘든 영약이나 영단을 구하는 것만해도 거의 집채만한 금이 필요한데, 그걸 연단하여 부작용을 없애는데 또 다른 집채만한 금이 필요한 것이다.

16553242809217.png“진시황이라고. 저기 명나라 이전에 예전에 첫 황제가 된 양반이 있거든. 그 양반이 오래 살겠다고 이거 저거 좋은거 집어먹다가 훅 갔어.”

일반인도 무병장수를 할 수 있고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는 것에도 결국은 공짜가 없다. 무병장수? 가능했다. 단, 그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가능했다. 그 약효가 사라지면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뭐, 병의 경우에는 그로 인해 차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장수를 하기 위해, 불로초(不老草)를 대신해서 먹는 경우는 더 큰 부작용을 보인다. 그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 약효가 끝나면 한꺼번에 세월을 얻어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대로 대국의 황제들이나 왕이 급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경우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몸에 좋다고, 안 늙는다고 영약 같은 것을 줏어먹었다가 미뤄두었던 세월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16553242809217.png“딱 뚝방 같다고 보면 돼. 물을 막아놓으면 처음에는 쫄쫄거리면서 물이 줄어들지? 그런데 그 물이 뒤에 잔뜩 쌓여서 둑이 깨져봐. 그럼 홍수가 나는거지.”

그렇게 미뤄두었던 세월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영약이 필요한데 그걸 구하는 것은 황제들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16553242809217.png“어쩄든.”

만우는 말이 길어졌다고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말을 하다 보니 방매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16553242809217.png“내가 본 것 중에, 영단이나 영약 다음으로 영기가 많이 쌓여 있는 거네. 고작 삼이.”

중원에서 삼(蔘)이 없지는 않았다. 가장 흔한 영약이 백년설삼(百年雪蔘)이나 하수오(何首烏) 종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삼이나 하수오가 백년 동안 묵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경에서 나온 인삼(人蔘)은 그 연차가 오래 되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쌓여있는 영기가 상당했다.

16553242809217.png“지기(地氣)가 좋은 곳인 모양이네. 그 개경이라는 곳.”

만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호선이 만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16553242961872.jpg“그런데 정말 저기 명나라에는…… 영물들이 씨가 말랐나요?”

만우는 피식 웃으며 호선을 쳐다봤다. 그래도 같은 영물들이라고,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16553242809217.png“맞아.”

하지만 만우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섭취하는 것만으로 내공이 증징되는 영물들의 내단은 무림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이자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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