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여포와 만우(2)2021.01.12.
“천마신교의 옛 광영을 되찾기 위해 싸우겠노라.”
“대주!”
“소교주!!!”
마일이 황급이 주창을 불렀다. 주창이 며칠 새 조용한가 싶더니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반역입니다.”
“신교인이 아닌 자를 몰아내고 신교를 신교로 만들겠다는데, 그게 왜 반역인가.”
주창은 투명한 눈으로 마일을 쳐다봤다. 한순간의 분노로 인해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일은 그런 주창에게서 더욱 차가운 분노를 느꼈다.
“설령, 반역이라 주장하는 이가 있어도 그것이 무에 문제란 말인가.”
주창은 마련검을 허리춤에서 떼어냈다. 마련검은 마교의 상징이자 신물이다. 마교의 시조인 천마가 마련검으로 펼친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다. 그때부터 천마신공은 대대로 마교주의 독문무공이 되었으며, 천마의 이름은 이어져 내려왔다.
“마교는 강자존의 율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 다음 대 교주인 내가 현 교주에게 도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굳이 나서지 않으셔도 물려받으실 자리입니다!”
마일은 주창에게 말했다. 주창은 그런 마일을 보면서 웃었다.
“파천서생의 총기가 많이 흐려졌군. 과연 그러한가? 받아야 할 빚은 받아내지도 못하고, 테무르와 기무만 잃었거늘.”
원로원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소교주인 주창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미는 후계자가 소교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면 나는 끝이다. 그러니 차라리.”
주창은 마련검으로 선박의 뱃머리를 쿵하고 찍었다. 촤자자자자작!!!! 그러자 선박의 뱃머리를 향해 달려들던 파도가 부딪치기도 전에 마기의 폭풍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것을 본 백영과 웅풍, 위문과 옥령이 무릎을 꿇었다.
“경하드립니다, 대주.”
“경하드립니다!!!”
주창의 무공이 한 단계 더 진일보했다. 투귀대 고수들의 얼굴에 벅찬 감정이 떠올랐다. 이미 고강한 주창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를 주군으로 모신 그들에게도 홍복이다.
“마교주. 그 자리를 내가 취하겠노라.”
주창이 가까워지는 포구를 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읏차!”
카가가각!!! 만우는 불똥을 튀기는 싸구려 철검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야. 너만 좋은 무기 쓰지 말고 부하들도 좋은 무기 하나씩은 줘라.”
“네놈.”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여포의 무시무시한 눈빛에도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덧댄 만우는 손을 뻗어 다른 철검을 손에 쥐었다. 따앙!!!! 쨍그랑! 따다다닥!!! 만우가 손에 든 철검에 공력을 불어넣어 던지자 이미 실금이 가 있던 검이 장독대가 깨지는 것처럼 수십 조각으로 깨지며 여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여포도 기다렸다는 것처럼 방천화극을 한 바퀴 휘둘러 모든 조각을 튕겨냈다.
“그것 참. 무식한 무기일세.”
만우는 순식간에 치고 들어와 검을 낚아채 가려고 했던 방천화극을 떠올리면서 감탄했다.
“그 화극이라는 거. 엄청나게 까다로운 무기구나?”
“헛소리하지 말거라!”
여포가 다시 바람처럼 만우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만우는 빛살처럼 날아드는 여포의 방천화극을 피해내면서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살벌하기도 해라.”
만우의 소맷자락이 칼날 폭풍의 범위 안에 들어 걸레짝으로 변했다. 방천화극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검기, 아니 화극이니 극기(戟氣)가 휘몰아쳤다. 이토록 패도적인 기는 무림을 독보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만우였다.
“어디에 숨어 있었길래 이 실력으로 해적질이나 하는 거냐?”
만우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만우의 발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그런 만우를 여포가 폭발적으로 땅을 박차며 따라잡았다.
“흐압!”
“흣!”
촤아아악!!! 만우가 허리를 뒤로 꺾으며 검면으로 화극을 빗겨내자 불똥이 파르륵하고 튀었다. 그냥 주변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철검으로는 방천화극을 일합조차 제대로 버텨낼 수 없었다. 대단히 패도적이고 파괴력이 강한 여포의 무공에, 그의 방천화극마저 평범한 철로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제 아무리 만우가 휘두르는 것이 보통 철검이라고 해도 일합에 부서져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쩡!!! 만우가 다시 금이 간 철검을 깨뜨려 여포에게 날려보냈다. 만우의 손이 다시 비었지만 만우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네 스스로가 걸어놓은 그 제약. 그 제약을 풀어야 할 것 같은데.”
“헛소리. 네놈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여포가 다시 파도처럼 만우를 향해 짓쳐들었다. 만우는 삭풍처럼 몰아치는 여포의 극기를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나면서 피해냈다. 콰아아!!!! 만우가 피해낸 공간 전체를 삭풍이 할퀴고 지나갔다. 호선은 뒤에서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저런 괴물이 또 하나 나온 거지?”
선주(仙株)를 잃어버린 호선은 짙은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그간 만우의 도움으로 원래의 선기를 많이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낙선이 되면서 잃어버린 선주가 없는 호선은 여포란 인간의 힘을 당해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게 다가 아니라고?”
거기에 만우는 여포의 전력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호선은 혀를 내둘렀다. 여포란 인간에게서 미증유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 때문인 듯 했다.
“그러면 꺼내보이게 하는 수밖에.”
만우는 손에 검이 없었지만 몰아치는 여포의 방천화극을 보면서 위축되지 않았다. 만우가 농익은 현경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손에 검이 없어도 상관 없었다. 심검(心劍)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가 오른 기천의 진인(眞人)은 무림에서 말하는 현경과는 조금 다르다. 강기(剛氣)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에 현경임에는 맞지만, 심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진인의 극에 달해야 한다. 콰악!!!! 만우의 손이 방천화극을 움켜쥐었다. 여포는 놀란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의 손은 칼날 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굳건하게 방천화극의 극을 낚아챘다. 여포의 방천화극이 매의 발톱처럼 만우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네놈.”
방천화극을 낚아챈 만우의 손 위로 덧씌워진듯 고요한 강기가 이글거렸다. 검기처럼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그 불꽃을 압축시켜 만든 것이 바로 강기다. 티디딩!!! 당연히 극기로는 강기를 깨부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우는 자신의 손 위로 극기가 만들어닌 칼날 폭풍이 불똥을 튀기는 것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이러다 이거. 나한테 빼앗긴다?”
“헛소리!”
패액!!! 여포가 있는 힘껏 방천화극의 창대를 잡고 회전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나선의 힘이 만우를 뒤로 밀어냈다. 만우는 여포가 방천화극을 다루는 기예가 거의 하늘에 도달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무기 휘두르는 기술 하나만큼은 천장(天將)에 버금가는구나!!”
“크아압!!!”
여포가 몸을 낮추면서 양 손으로 방천화극을 움켜쥐고는 만우를 향해 내뻗었다. 거기에 방천화극을 회전시켜 나선의 묘까지 먹인 일격이 날아들자 주변의 대기가 방천화극 주변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콰아아!!!!! 검의 경지에 신검합일(身劍合一)이 있다면, 여포가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신극합일(身戟合一)이었다. 만우는 그런 여포의 나선 찌르기를 직시하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중원 무예의 냄새가 나는구나!!!”
여포의 나선 찌르기는 특별한 초식이 아니었다. 초식은 형체가 없는 인간의 움직임을 식(式)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인의 최종 목적은 이 식(式) 속에서 자신 만의 움직임을 찾아내어 그 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포의 움직임에는 그런 식(式)이 없었다.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것, 그렇다는 것은 여포가 배운 것이 무공이 아니라 무예라는 뜻이다. 콰가가각!!!!! 강기에 휩쌓인 만우의 손이 방천화극을 잡아챘다. 하지만 여포의 나선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강기에 휩쌓인 만우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찰력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여포의 눈이 커졌다.
“왜!”
꽈악!!! 꽈드득! 파앙!!!! 여포가 돌리려는 힘과 만우의 멈추려는 힘이 맞부딪치면서 방천화극의 창대에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경력의 여파가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동시에 만우가 발을 굴렀다. 우르릉!!!! 그러자 주변으로 뻗어나가려던 경력이 땅의 진동을 통해 솟아오른 만우의 발구름에 상쇄되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만우는 금세라도 빠져나갈 것처럼 꿈틀거리는 여포의 신력을 느끼면서 미소를 빼어물었다.
“이 근방을 모두 날릴 셈이 아니라면, 힘을 빼는게 좋을꺼야.”
드드드드!!!
만우가 딛고 있는 발 주변으로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물기가 많은 진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땅에 드득거리며 모양이 변하고 있었다.
“…….”
여포는 만우의 근력이 자신보다 강해 자신의 나선 찌르기를 잡아챈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만우가 한 것은 그 나선에 자신의 몸이 휘말리지 않게 호신강기를 두른 것 뿐이다. 그 외에, 만우의 손을 통해 몸으로 전해진 여포이 나선을 만우는 모두 땅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병장기를 다루는 기예는 네가 위일지 모르나, 힘을 다루는 것은 본주가 위다.”
만우가 땅에 선명하게 남은 흔적을 쳐다보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상대의 힘에 맞서지 않고 그것을 모두 흘려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서 조금만 삐끗하더라도 상대의 힘이 모두 자신의 몸 속으로 밀려들어와 내장이 곤죽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포 정도의 신력(神力)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모두 흘려보낸 건가.”
“아무리 본주라고 해도 네 힘을 받아낼 수는 없겠더군.”
만우는 솔직하게 여포의 힘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포는 고른 만우의 호흡을 보면서 만우가 보여준 모습이 전력이 아님을 깨닫고는 입술을 말아올렸다.
“재밌는 놈을 만나게 되다니.”
“본주 역시 마찬가지다.”
만우는 뻐근한 손목을 돌리면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이 정도로 무식한 힘을 맞상대 해보는 것은 만우도 처음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둘이서 전력으로 맞부딪쳤다면, 아마 부산포구는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나마 힘을 억누르면서 싸웠기 때문에 이 정도에 그친 것이다.
“허나.”
만우는 눈을 찡긋했다. 뒤에서 동군영이 어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상을 멸망시킬 기세로 부딪치던 만우의 기세가 삽시간에 봄바람 같은 살랑거리는 기세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아!”
동군영은 그제야 제 입에서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군영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신인(神人)들 같구나.’
동군영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만우는 동군영을 가리키며 여포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건 두고 가. 본주가 쓸 곳이 있는 것이니.”
여포는 만우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런 여포의 팔뚝에는 핏줄이 불뚝거리며 솟아올라 있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우는 그런 여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심전심이다.
“넌 누구지?”
여포가 만우를 향해 물었다. 여포는 자신의 이름을 들을 자격이 충분이 됐다.
“만우. 현 역졸, 전 검주.”
“역졸?”
만우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 스스로가 역졸이라 부르는 날이 오다니. 만우는 몸을 반쯤 비틀어 동군영을 보여주었다.
“저기. 저 나리가 감찰방의 감찰이시거든. 저 나으리를 수행하는 역졸이다.”
“하. 내가 해적을 하는 것 만큼이나 어이가 없군.”
여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역졸이면 역참에서 일하는 가장 천한 계급에 속하는 천민이다. 노비인 것이다. 노비가, 천 년을 살았다고 한 스승인 세공도인의 무공을 이어받은 자신과 대등한 실력자다?
“조선제일검이라 해도 내 적수가 안 된다고 자부했거늘, 역시 세상은 넓군.”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희달도 직접 만나본 만우다. 하지만 그는 반쪽자리 화경이다. 제 몸을 바쳐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외에는 화경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