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여포와 만우(1)2021.01.09.
“저 안으로 들어간다.”
“미리 약속해 놓은 곳이 있었던 모양인데?”
달구지를 따라 부산포까지 도달한 파락호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달구지가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는 저자를 지나 웬 집 안으로 쑥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긴 어디야?”
“이 주부라고. 선창 관리하는 향리 하나 있어.”
“향리? 그러면 건드리기가 좀…….”
향리란 소리에 파락호들 몇이 난색을 표했다. 향리면 그래도 글공부를 했다는 사람이다. 그렇다는 것은 양반이라는 뜻인데, 양반은 건드리는 것은 위험했다.
“잘못 건드리면 관에서 나선다고.”
“거기에 주부라면서.”
파락호들 몇 몇이 꺼려하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서자 그 중 재물에 욕심이 가장 많은 이가 나섰다.
“그러면 빠질 놈들은 빠져. 나눠 먹을 몫이 줄어들면 더 좋으니까.”
동래읍성을 통과한 달구지가 세 갈래로 나뉘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 없는 재물이 향리의 집으로 들어갔으니, 결국 자신들이 세 갈래 중 제대로 된 하나를 골랐다는 뜻이다. 당장 어마어마한 재물이 눈앞에 있는데, 파락호들 중 몇몇의 눈이 돌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재물만 있으면, 그걸 챙겨서 동래를 뜨면 그만이야. 한양으로 갈 수도 있다고. 주인 없는 재물이라잖아!”
소문이 어디서 어떻게 퍼지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는 파락호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한 번쯤 의심을 해볼 법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막 들어갔으니까, 빨리 처리하고 나온다. 되도록이면 향리 양반은 건들지 마. 하지만…….”
파락호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막으면 죽여. 뭐 잘 처리하고 이럴 시간 없어. 바로 챙겨서 튄다. 우리끼리 나누면 돼. 그런데 꾸물거리다가 다른 놈들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끝장난다.”
다른 쪽으로 간 파락호들이 허탕을 쳤다면 승냥이 같은 놈들은 제대로 고른 쪽의 파락호들의 것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챙길 만큼 챙겨서 동래를 뜨는 것이 현명했다.
“가자.”
파락호들이 복면을 뒤집어쓰고는 일제히 담벼락을 넘었다.
“……어?”
“뭐야 얘네들은?”
파락호들의 눈이 커졌다. 이미 먼저 온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여포는 담을 뛰어넘어 들어온 파락호들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이 파락호란 놈들은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하는 것이라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밖에 없는 해충들. 여포가 손짓을 하자 그의 오른팔인 가동이 사람 머리통만 한 추를 휘두르며 파락호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머지는 적토선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이 주부의 집에 온 것은 여포를 비롯한 열 명 남짓이다.
“미친놈들. 이 수에? 죽여!!!”
“놈들을 죽이고 재물을 뺏어라!!”
반면 파락호들의 수는 서른이 넘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파락호들이 담을 넘었다. 하지만 가동을 비롯한 활빈당의 해적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모두 여포에게 무술을 배운 해적들이다. 퍼억!!! 가동이 휘두른 추에 파락호 하나의 머리가 움푹 패이며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어수룩해 보였던 사임은 돌팔매로 한 번에 한 명씩 머리를 터뜨렸다. 그 외에도 활빈당의 해적들은 모두 일당백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밀리지 마라! 우리가 수가 더 많아!”
“밀어붙여!!!!”
하지만 재물에 눈이 뒤집힌 파락호들은 불나방처럼 해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해적들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여포에게 무술을 배웠어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드는 파락호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큿!”
“크아아아!!”
가동이 황소처럼 날뛰면서 분투하고 있었지만 해적들의 몸에 나는 상처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파락호들이 기세를 타고 더욱 거세게 밀어부쳤다. 아니, 밀어붙이려고 했다. 쿠웅-!!!
“억?”
“어으으윽.”
“모, 몸이.”
“안 움직여!!!!”
여포가 나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포가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파락호들 수십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을 파르르 떨더니 몸을 움직이지 못 했다. 가동이 헐떡이면서 여포에게로 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두목.”
“다친 애들을 데리고 뒤로 빠져라. 제대로 추스를 수 있게 잘 봐주고.”
“그냥 긁힌 정도입니다. 더 싸울 수 있습니다.”
가동이 추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여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패기는 좋으나 그 상태에서 더 싸우면 체력만 고갈 된다. 이 이상은 무리야. 잘 싸웠다. 이 좁은 곳에서.”
마당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좁은 곳에서 수가 몇 배는 많은 파락호들과 이 정도로 싸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동은 창피한 듯 고개를 숙였다.
“진짜 주인이 찾아오기 전에 어서 챙겨서 가자꾸나.”
여포는 나무 옆에 세워두었던 화극을 손에 쥐었다. 모와 과가 합쳐진 형태의 방천화극이었다. 여포는 스승님이 물려준 방천화극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명복은…… 뭐. 빌어줄 필요도 없겠지.”
파락호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포의 기세만으로 파락호들의 본능이 완전 얼어버린 것이다.
“으, 으으…….”
“사, 살려.”
여포의 장대한 체구와 범상치 않은 눈빛, 거기에 무시무시한 방천화극까지 본 파락호들은 겁에 질려 여포에게 빌었다. 하지만 여포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들을 살려보낼 필요가?”
“서, 선생님!”
“잠깐만!!!!”
후웅!!!! 여포가 방천화극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방천화극 끝에서 바람이 칼날이 되더니 칼날 폭풍이 파락호들을 향해 몰아쳤다. 서거거거걱!!!!! 그러자 파락호들의 몸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무수히 울려 퍼졌다. 하지만 피가 튀거나 비명소리가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시뻘건 피가 튄 것도 아니다. 후르르륵 여포가 일으킨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 폭풍은 깔끔하게 파락호 수십의 옷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속곳까지 잘라낸 절묘한 한 수에 파락호들은 기겁하며 다리가 풀려 땅에 주저앉았다.
“썩 꺼지거라!”
여포는 그들이 오줌까지 지리자 인상을 쓰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공력이 담긴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자 놀란 파락호들이 다리가 풀려 쓰러지면서도 안간힘을 쓰면서 다시 담벼락을 넘었다.
“흉한 몰골을 보여주었군.”
“아닙니다. 여 두목.”
이 주부라 불린 향리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여포는 그런 이 주부에게 말했다.
“보빙사에게 해코지를 당할 터인데, 괜찮겠는가?”
“괜찮습니다. 저들이 목격자와 증인이 되어줄 테니까요.”
“흐흐흐. 간 크게 보빙사를 건드린 해적이라. 본의 아니게 더 유명해지겠군.”
여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뒤에 있을 가동과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됐다. 이제 돌아가자! 채비를 하거라!”
조용. 그런데 가동과 부하들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포가 한 마디만 해도 째각 대답을 했던 가동과 부하들이다. 고개를 갸웃한 여포가 뒤를 돌아본 순간, 여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오. 특이한데?”
달구지 위에 누군가 태연하게 쭈그리고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달구지 주변에 마혈과 아혈이 짚어진 가동과 해적들이 허수아비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이런 강자들이 중원이 아니라 왜 다 조선에 있는 거야?”
권희달, 척사영에 이은 또 다른 숨은 고수의 등장에 만우가 환하게 웃으며 여포에게 말했다.
“너. 몸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일부러 막아놓은 거야? 혈도?”
여포의 얼굴이 더욱더 굳었다. 자신의 비밀을 한 순간에 파훼된 여포는 표정관리를 하는데 실패했다. 척.
문답무용(問答無用). 여포의 방천화극이 만우에게로 향했다. 휘오오오오!!!! 여포의 방천화극이 또 다시 바람 칼날 폭풍을 머금으며 거세게 떨쳐 울었다. *****
“검주 만우가, 진정 오리라 생각하느냐?”
철썩!!! 일본국으로 가는 선박의 뱃머리에 하얀 포말이 부딪혔다가 사정없이 깨져나가며 위로 튀어올랐지만 주창의 옷자락 끝에 닿지도 못하고 중간 부딪쳐 떨어져 내렸다.
“예.”
마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주 만우가 중원에서는 독보하였다 하나, 조선에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일 년도 채우지 않은 조선에서, 그를 움직일 만한 이가 있다 보았느냐?”
“결국 만우도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마일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목적지를 쳐다봤다.
“우스운 꼴이로구나. 내 이 나이에 화경에 오른다면, 상대할 자가 없다 생각했건만.”
주창은 자신의 경솔함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하지만 조선에서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진 않았다. 성장을 막고 있었던 오만을 꺨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명. 조선에서만 자신과 비등하거나 뛰어난 이를 둘이나 봤다.
‘좌검우도를 쓰는 여자 하나. 그리고…… 검주 만우.’
마련검이 부르르 떨었다. 주창의 투기에 절로 반응을 한 것이다. 주창은 쓴웃음을 짓고는 투기를 갈무리했다. 만우와 척사영을 떠올리자 저절로 투기가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정과 광호검, 웅풍도 같은 생각인 듯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강자존(强者存)의 율법을 따르는 신교가 세간의 눈이 어두워 왜까지 온 것이 아니더냐. 만우 하나를 상대하자고.”
만우를 잡기 위해 일패, 일왕, 일존이 나섰다. 거기에 숨겨진 화경의 고수인 주창까지 합류하는 셈이다. 사실상 신교 전력의 사할 이상이 일본국에 집결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곡왕과 마존은 혼자 움직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진혼대와 천마대. 거기에 투귀대까지. 사실상 마교주인 혈세천마의 친위대와 후기지수 중 최강인 투귀대, 거기에 진혼대까지 만우를 잡겠다고 나선 셈이다.
“신교는 약해졌다.”
주창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혈세천마는 일패(一覇)가 된 후 호승심을 잃었다. 그는 최강의 자리를 사수하는 데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모략으로 고꾸라뜨렸지, 그가 일패에 오른 이후 직접 손속을 겨뤄 꺾은 강자는 없었다.
“천마께서는 나가 싸우기는커녕 십만대산을 방패 삼으셨으니, 만우 그 자는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주창은 마일에게 말했다.
“한 명. 검주 만우를 상대하려 신교 전력의 사할이 나섰다. 마일. 너는 이것이 천하일통을 꿈꾸는 신교의 모습이라 믿는가?”
“…….”
마일은 침음성을 삼켰다. 당연히 아니었다. 투귀대에 자원한 고수들은 강자존인 천마신교의 율법에 따라 제 목숨을 기꺼이 바치기로 자원한 유명 가문들의 자제다. 마일도 마군자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투귀대에 자원한 이유는, 신교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일. 과거의 일패는 더 이상 신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창의 두 눈에서 서늘한 마기가 풍겨져 나왔다. 마일이 놀라 주창을 쳐다봤다. 주창은 저 멀리서 느껴지는 웅대한 마기에 고개를 돌려 백영과 웅풍, 위문과 옥령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떠날 이들은 떠나도 좋다. 난.”
주창의 마련검이 마기에 반응해 웅웅거리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