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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동군영, 흑화!(4) (211/400)

211. 동군영, 흑화!(4)2021.01.05.

방울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옥면(玉面)에 걸맞는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 감령이었다.

16553242041724.png“누구긴.”

감령은 씩 웃으면서 소달구지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누군가 벌써 소 달구지에 도착한 것을 본 짝귀와 외칼의 얼굴이 급해졌다.

16553242041729.jpg“달려! 빼앗기지 마라!”

16553242041729.jpg“저건 우리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감령 때문에 마음에 급해진 파락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감령에게 달려든 여의손의 머슴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16553242041724.png“으음. 찝찝해.”

절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동군영의 신신당부 때문에 주먹으로만 적들을 쓰러뜨린 감령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무림에서, 누군가를 살려줘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감령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쿵!!!! 그런 감령을 향해 달려들던 외칼과 짝귀 앞으로 누군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놀란 짝귀와 외칼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스윽

16553242041743.png“돌아가거라. 너희 물건이 아니니.”

거대한 대부를 꼬나쥐고 모습을 드러낸 필두가 어깨를 쭉펴고 허리를 쭉 폈다. 그러자 다른 사람보다 족히 머리 두 개는 더 큰 필두가 위압적으로 외칼과 짝귀를 내려다보았다.

16553242041724.png“크하핫. 잘 어울린다 미꾸라지!”

16553242041743.png“시끄럽다 산강아지야.”

뒤에서 감령이 필두를 보고 겁을 집어먹은 파락호들을 보면서 웃어댔다. 필두는 인상을 살짝 쓰고는 외칼과 짝귀를 쳐다봤다.

16553242041743.png“덤빌 테냐?”

16553242041729.jpg“이익…….”

짝귀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고작 두 명이었다. 앞을 막아선 놈이 범상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결국 쪽수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16553242041729.jpg“쳐라!!! 외칼!”

짝귀가 뒤로 물러서면서 소리치자 파락호들이 와 소리를 내면서 필두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외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락호들 사이에 모습을 숨기고는 필두의 뒤로 돌아갔다.

16553242041724.png“흐하하하!! 역수교어도 다 죽었구나! 수적들의 대채주가 말이다!!”

감령은 그런 필두를 보면서 웃어댔다. 수적들의 왕이나 다름 없는 대채주를 향해 고작해야 뒷골목 양아치들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6553242041743.png“흥. 역수교어는 더 이상 없다.”

하지만 그런 중원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감령과 필두다. 이곳에서는 왕처럼 지낼 수 없지만, 언제 죽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근히 만우 곁에 있으면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 전에,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 불려도 모자라지 않은 만우 곁에 있으면서 귀동냥이나 곁눈질로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16553242041743.png“나리의 부탁이 있어 특별히 죽이지는 않으마!!!!”

필두가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파락호들을 향해 대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대부의 면으로 파락호들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쩍! 쩍! 쩍! 쩍!!! 필두의 대부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파락호들의 수준으로는 필두를 마주한 순간 끝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막으면 막은 무기가 부러졌고, 몸으로 때우면 어깨나 팔이 부러졌다. 그렇게 대부에 한 번씩 받힌 놈들은 초죽음 상태가 되어 다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쿵!!! 따라랑!!!! 필두가 대부의 자루를 땅에 쿵하고 박아 넣자 그 위로 파락호들의 검이 얽혀들었다. 필두는 인상을 살짝 쓰고는 소리쳤다.

16553242041743.png“슌스케! 죽이지 말라 하셨다!”

16553242073289.png“나도 안다.”

필두의 뒤로 돌아가 필두의 등허리의 칼을 박아 넣으려던 외칼의 눈이 커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슈각!!!!

16553242041729.jpg“허억!!!”

뭔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허연 섬광이 허공에 그어졌다. 동시에 외칼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칼이 검에 잘려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입을 떡 벌렸다. 퍼러럭!! 팔이 한 쪽이 없어 소맷자락이 펄럭이는 슌스케가 번개처럼 파락호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서거걱! 서걱!!! 슌스케의 검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빨랐지만, 그의 검은 단 하나의 피륙도 베지 않았다. 그저 파락호들의 허리춤을 잘라 바지가 흘러내리게 만들었고, 놈들이 머리에 두르고 있는 두건만을 정확하게 잘라내면서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까지 깔끔하게 잘라낸 것이다. 아예 차원이 다른 검술이다. 감령은 뒤에서 그런 슌스케를 보면서 휘익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16553242041724.png“대장님에게 배우더니 많이 늘었네?”

16553242073289.png“난, 약하지 않다!”

슌스케는 그간의 설움을 풀어내기라도 하는 듯 물 만난 고기처럼 파락호들 사이를 휘저었다. 그렇게 파락호들이 강제로 무장해제와 탈의를 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일다경도 걸리지 않았다. 쿵, 쿵, 쿵. 그런 파락호들 사이를 거침없이 파고 들어간 필두가 대부를 고쳐 잡았다. 그곳에는 벌벌 떨고 있는 짝귀가 있었다.

16553242041743.png“부하들을 앞에 내몰고 넌 뒤로 튀어? 넌 좀 맞아야겠다.”

쩌억! 초절정 고수 셋에 의해 초토화가 된 파락호의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하늘을 물들였다. ***** 남쪽에서도 비슷했다. 서거거걱!!!! 문형일의 곡도는 순식간에 파락호들의 저항의지를 앗아갔다. 아예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파락호들은 약자에게는 강하지만 강자에게는 한 없이 약하다. 그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파락호들은 문형일의 말에 빠릿하게 따랐다. 하지만 꼭 그 중에서도 기회를 보는 놈들은 나오기 마련이다.

16553242073312.png“척 무사님.”

16553242041729.jpg“다 됐습니까?”

16553242073312.png“예.”

척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형일은 그런 척사영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척사영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이, 악인들에게 얼마나 가차 없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형일은 기를 쓰고 자신이 나섰다. 동군영이 그 누구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법에 의해서 벌을 받아야 핳 죄인들이지, 검을 든 무인이 사사로이 벌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16553242073312.png“달구지쪽은…… 이미 깔끔하게 처리를 하셨군요.”

파락호들 중 몇몇의 두 눈이 살기가 감돌았다.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정확히는 척사영, 그러니까 여자가 나타난 이후부터였다.

16553242041729.jpg‘저 여자를 인질로 저 괴물 같은 놈을 견제하고, 재물을 우리가 가지는 거다.’

그 여자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16553242041729.jpg“여자를 잡아!!!”

16553242041729.jpg“끼요오오옷!!!!”

문형일의 눈이 커졌다. 제압한 파락호들 중 몇이 몸을 일으켜 척사영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문형일은 손을 들었다.

16553242073312.png“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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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거걱!!!!! 문형일이 과연 척사영을 걱정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었다. 문형일은 나름 파락호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라고 척사영을 우습게보고 달려든 파락호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척사영의 검과 도에는 자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좌검우도. 그녀의 허리춤에 꽂힌 검과 도가 한 번 춤을 추는가 싶더니, 달려오던 파락호들이 땅을 나뒹굴었다.

16553242041729.jpg“으, 으아아악!”

16553242041729.jpg“끄악!!!”

문형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척사영이 그들을 죽이지는 않고, 팔다리의 근맥을 끊어놓는 선에서 참았기 때문이다.

16553242073312.png“와 씨.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네. 다.”

문형일의 중얼거림을 들은 항복한 파락호들이 자신들이 저 꼴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팟! 팟! 가볍게 악인들의 피를 털어낸 척사영이 벌레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땅바닥에서 굴러다니는 파락호들을 차갑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

16553242138755.png“그런데 말이야.”

만우는 궁금하다는 듯 초조한 표정을 한 동군영에게 물었다. 동군영이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호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16553242138755.png“일본국으로 넘어가고 싶다면서.”

16553242138766.png“……그래.”

16553242138755.png“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16553242138766.png“맞아.”

16553242138755.png“그 이유는 너 혼자서 넘어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지?”

다른 나라와의 통상은 관을 통해 허락을 받은 상인들만 가능한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군영이 마교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일본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찰이 됐든 사신이 됐든 공적인 일로 넘어가는 것뿐이다.

16553242138766.png“맞네.”

16553242138755.png“그런데 보빙사를 공격해서 어쩌자고?”

동군영의 행위는 분명 보빙사인 여의손을 공격하는 일이다. 보빙사나 되는 이가 사사로이 이득을 챙기기 위해 사적인 재물을 챙겼다는 것은 탄핵까지도 가능한 사건이다. 감찰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사헌부에 보고를 하면 그게 곧바로 임금에게 보고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군영의 첫 번째 목적은 보빙사와 함께 일본국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16553242138766.png“설마 자네.”

동군영이 만우를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만우의 눈이 커졌다.

16553242138766.png“내가 여의손, 그 자를 고발하기 위해 이걸 확보하려고 하는 것 같은가?”

16553242138755.png“설마. 에이, 네가. 아니겠지.”

만우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하지만 동군영의 미간은 퍼지지 않았다. 그는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16553242138755.png“약점을 잡겠다고?”

만우가 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선 역시도 놀랐다는 듯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지금까지 순수한 편에 속했다. 아니, 순수하기 보다는 아직 세파에 찌들기 전이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동군영이 지난 몇 개월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바뀌긴 바뀐 모양이었다.

16553242138755.png“허, 허허허.”

16553242138766.png“여의손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약점을 잡아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네. 그래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그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확실히 보빙사 여의손에게 감찰인 동군영은 눈엣가시일 것이다. 그런 여의손이 사사건건 동군영의 일에 간섭을 하거나 견제를 하면 귀찮아지는 것은 동군영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여의손의 목에 목줄을 채울 생각인 것이다.

16553242138755.png“정3품 관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나중에 관직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16553242138766.png“부모님의 복수가 끝나면.”

동군영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동군영의 손바닥은 거칠었다. 만우가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검을 휘두른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마교를 떠올리며 복수심에 타올라 한 행동일 것이다.

16553242138766.png“낙향할 생각이네. 가문을 재건하면서 살아갈 생각이야.”

16553242138755.png“흐음…… 낙향이라. 뭐, 익주에서는 알려진 집안이라고 했지?”

16553242138766.png“알려졌다고 했던 것들이 다 불에 타버렸지만, 맞네.”

익주동가의 기둥이 불에 탔을지는 몰라도 아직 이름은 남아있었다. 거기에 장남인 동군영이 생존해 있으니, 가문을 재건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16553242138755.png“중앙 관직에 아무런 연줄도 없으면, 한계가 있을 텐데?”

익주동가가 유림에 영향력이 컸던 이유는 대대로 과거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임금에 맞서 선비의 기개를 지킨 두문동의 생존자인 동만익이 살아있었으니 유림에서 명망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동군영까지 중앙관직에 들지 못하고 거기서 낙향하면, 익주동가가 예전의 성세를 찾는 데에는 많은 애로가 뒤따를 것이다.

16553242138766.png“……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 참이네.”

16553242138755.png“뭐, 잠깐 현실에서 눈을 가리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지. 그 복수란 것도 결국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만우는 일부러 도발적으로 동군영에게 말했다. 동군영이 바뀌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로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마교의 살풍대에 의해 가문이 초토화가 되었다. 그래서 가문을 위한 복수를 하기 위해 만우 없이 일본국으로 가기 위해 나설 정도로 동군영의 의지는 확고했다. 하지만, 동군영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조선의 국법이 통하지도 않는 일본국에서 말이다. 마교에서 문지기나 하는 가장 하위 계급인 삼급 무사만 나와도 동군영은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날 것이다.

16553242138755.png“현실이 그런데, 과연 네가 하려는 게 진정한 복수일까? 개죽음 당하는 게?”

16553242138766.png“난 가서 개죽음 당할 생각이라고는 말한 적이 없네만.”

동군영은 갓을 고쳐쓰면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빤히 쳐다봤다. 동군영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지만, 만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16553242138755.png“그렇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마교주가 파놓은 곳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

16553242138766.png“왜에는 그런 자들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네.”

동군영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부산포를 보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2138766.png“낭인이라 부르는 자들. 슌스케 같은 그런 무사들 말일세.”

16553242138755.png“사무라이?”

16553242138766.png“그래. 왜어로 그렇게 부른다고 하지? 그자들 말일세.”

만우가 정말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군영이 무슨 이유로 그들을 거론한 것인지 눈치를 챈 것이다.

16553242138755.png“정말 변했구나!”

16553242138766.png“변할 수밖에 없었지. 더 일찍 변했다면…… 우리 가문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나 후회는 빨라도 늦은 법이다. 동군영이 저렇게 변한 게 가문 때문이라고 해도, 만우의 눈에는 지금의 동군영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이전의 동군영은 서책에서 자기가 보고 느낀 것에 따라 움직이는 온실 속 화초처럼 느껴진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16553242138766.png“보빙사 여의손이 팔려고 했던 재물을 팔아치우면 거금이 생기겠지. 그 재물로 왜로 넘어가 사무라이들을 사서 모을 생각이네.”

16553242138755.png“중원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중원에서 일본국까지는 바다를 두 개와 나라 하나를 거쳐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원이나 일본국이나 서로의 정보에 무지했다. 그러니 상대가 마교의 교주라고 해도, 중원이라면 그 어떤 낭인도 나서지 않겠지만 일본국은 다르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16553242138755.png“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16553242138766.png“내 복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셈이지. 그건 만우 자네에게도 마찬가지고.”

동군영이 청한 도움을 만우는 결국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가 이곳, 동래까지 내려온 것이다.

16553242138755.png‘아니.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지. 제……자 녀석이 도움을 요청하니까 스승된 도리로 내려온 것이기도 하고.’

동군영이 과연 만우를 스승으로 생각할지는 의문이었지만 만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자신이 동군영을 걱정했고, 거기에 한양에서의 평화 때문에 좀이 쑤셔서 보란 듯 움직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42138766.png“호선. 그대에게도 내 미안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네.”

16553242228326.jpg“호호홋. 무슨 그런 말씀을. 저도 갈 만한 일이 있으니까 가는 거랍니다. 이 지긋지긋한 낙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으니까요.”

호선이 웃으며 입가를 가렸다. 동군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동군영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주변의 지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는 그 무시무시한 살풍대대를 일개 전투집단으로 두고 부리는 거대한 조직이다. 중원에서 그들과 만우 사이에 악연이 있다고 하는데, 그 놈들이 함정을 파놓고 너무나도 만우를 도발했다. 정작 그 도발에 넘어간 것은 만우가 아니라 동군영이었지만, 만우가 함께 가고 있으니 어쩌면 자신은 만우를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르르 동군영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세게 쥔 것인지 피가 통하지 않아 주먹 전체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16553242138755.png“그렇게 죄책감을 느낄 놈이 무엇하러.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악마가 되기로 했으면 그런 죄책감 따위 버려.”

만우는 주변에서 수십 개의 기척이 저 앞에 털털거리며 부산포 안으로 사라지고 있는 달구지를 뒤따르는 것을 느꼈다.

16553242138755.png“괴물을 잡으려면 너도 괴물이 돼야지. 안 그래?”

만우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호선이 동군영을 허리춤에 껴안았다.

16553242138766.png“읏?”

16553242138755.png“뺏기기 전에 낚아채야 한다면서.”

만우가 피식 웃으면서 발을 굴렀다. 동시에 만우와 호선의 신형이 빛살처럼 변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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