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동군영, 흑화!(3)2021.01.02.
문경새재의 관문을 통과할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그 때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보였어도 바로 들켰을 것이다.
“포구. 포구로 가라고 하셨지. 이보소. 동래 부산포구로 가려고 하는데 이 길로 가면 맞아요?”
동남이는 근처에 있는 아무나를 붙잡고 물었다. 부산포구 근처에 이 물건을 은밀하게 숨겨놓을 곳을 미리 준비해놓았다고 주인인 여의손이 말했다. 한 향리의 집인데, 여의손이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한양에 9품 주부 자리라도 알아봐 주겠다고 약조를 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몸이 피곤했지만 쉬는 것은 그 때 가서 임무를 다 끝내고 쉬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끄덕. 동남이는 주변에 선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여의손 집안의 심복들로 동남과 비슷한 처지의 머슴 출신들이었다. 여의손이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큰 재물을 내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다들 열의에 넘치고 있었다.
“시작하지.”
“알았네.”
“부디 무사하시게.”
동남의 눈빛을 받은 행렬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모두 소 달구지를 하나씩 끌고 세 갈래로 찢어졌다.
“그럼 나는 부산포로.”
동남이는 곧바로 부산포구로 향하는 길에 올라섰다. 다른 이들이 모두 제대로 갈라져서 사라지는 것까지 본 다음이었다.
“왔다. 연락해.”
동래 전역에는 파락호들이 쫙 깔려있었다. 눈 여겨 보지 않으면 파락호란 것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변장을 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눈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세 갈래로 나뉘었다. 어서 전해.”
단지 그들도 예상치 못 했던 부분이라면, 주인 없는 재물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싸움이 필요한데, 일이 복잡해진다. 세 개가 다 진짜인지, 아니면 그 중 하나만 진짜인지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직을 삼등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조직이 동래에는 없었다. 왜관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동래현에서 신경을 써서 치안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번 일이 근방에 쫙 퍼지면서 다른 지역의 주먹들도 흘러들어왔는데, 크고 작은 뒷골목 조직의 수가 서른이 넘었고 파락호들의 머릿수는 삼백이 넘어갔다.
“우리는 북쪽으로 간다.”
“우리는 남쪽으로!”
그 소식을 들은 파락호들이 술렁이더니 세 갈래 중 하나를 선택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 삼백이 넘는 파락호들이 뒷골목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의손은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해서 세 갈래로 나누는 것까지 생각을 해냈지만, 주인 없는 재물을 노리고 이렇게 많은 파락호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이다.
“여포. 여포가 나타나 채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차지하고 튄다!”
재물이 있는 곳에는 늘 활빈당과 여포가 나타났다. 파락호들은 여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여포와 조우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재물을 챙겨 튀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파락호들도 자신들을 쳐다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끌끌끌. 놀랍지도 않으냐? 천 년이나 살아온 노괴물이라는데.]
[……목숨의 은인 앞에서 어찌 놀란 모습을 보이겠습니까.]
[좋구나. 좋아. 그래. 네 녀석의 눈을 보면 지금까지 내가 한 실패와는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해야. 이 몸의 제자가 되겠느냐?]
어린 여포는 벌떡 일어나 흰 수염을 아랫배까지 기른 스승 앞에 무릎을 털썩 꿇고 앉아서는 이마를 땅에 받았다.
[받아만 주신다면, 저를 살려주신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창자가 베베 꼬이는 듯한 그런 굶주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아니, 대체 자신은 무슨 잘못이라고 못 먹는 이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한단 말인가. 그러니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여포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좋다. 내 이름은 세공이다. 지금부터 내, 너를 여포라 부르겠다. 여포란 대대로 제자에게 물려주는 이름이니, 이제부터 너는 여포다.]
[여포…… 여포…….]
여포가 눈을 반짝였다.
[제자 여포. 스승님을 뵙습니다!!!]
세공이라 불린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흡족한 듯 웃었다.
[마음에 든다. 너는 부디 첫째처럼 되지 말아다오. 흐허허헛!!!]
번쩍!!!!! 여포는 오랜만에 예전 꿈을 꾸었다는 것에 잠에서 깨어나서는 빙긋 웃었다. 철썩, 처얼썩!!! 눈을 뜨자 몸이 살짝 흔들린다는 느낌과 함께 배의 옆구리에 파도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쾌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성님! 부산포가 보입니다!!!!”
“그래. 들어가자.”
활빈당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적토선은 그 붉은 색을 그대로 드러낸 채, 보무도 당당히 부산포로 입항했다. 하지만, 부산포는 적토선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적토선은 항구 한 켠에 닻을 내리고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오셨습니까.”
여포는 적토선에서 하선을 하다가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나온 관리를 보고서는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오. 이 주부.”
이 주부라 불린 이는 여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가 해적이란 것은 알지만 그 전에, 그는 일개 향리에 불과한 자신을 진짜 해적들로부터 구해준 목숨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물건은?”
“곧 제 집에 도착을 한다 하였습니다.”
동시에, 여의손이 미리 사람을 보내 몰래 반출하려는 인삼을 보관하기 위해 섭외한 그 집의 주인이기도 했다.
“오시지요.”
*****
“만우. 만우!”
임수미에게 기천의 구결을 알려주고 있던 만우가 동군영의 급한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까지 알아서 잘 외우고 있어.”
“예, 대협.”
이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임수미가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였다.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 임수미의 얼굴이었다.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왜.”
근 사흘 동안 뒷골목 파락호들이 특별하게 움직이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움직이기 시작했네.”
“놈들이?”
“그래.”
만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쑤시던 참이었다. 역시 역마살이라도 낀 모양이었다. 며칠 방 안에 있었다고 이러니 말이다.
“대협. 여기.”
만우가 일어나 마당으로 나오자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척사영에 슌스케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동군영이 미리 모아온 모양이었다. 그때 김향이 만우에게 신이룡검을 내밀었다.
“……됐다. 네가 가지고 있거라.”
만우는 이룡검을 빤히 쳐다보다가 김향에게 내밀었다. 김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주변에 질 나쁜 놈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괜히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방매, 너도.”
“알았어. 향이는 내게 맡겨.”
김향과 방매, 그리고 임수미는 데려갈 수가 없었다.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력이라면 이놈도…….’
만우는 동군영을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동군영은 감찰이었기 때문에 놓고 갈 수가 없었다. 관아의 힘이라도 필요하면 동군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가 남아 있을게요.”
호선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하지만 동군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네. 파락호들이…… 세 갈래로 나뉘었어.”
“세 갈래?”
만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동군영 역시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래 부산포로 한 쪽이 갔고. 영도 방향으로 한 쪽이 갔고 나머지 한 쪽은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네.”
“……갑자기 왜?”
“여기저기서 수상쩍은 것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겠지.”
동군영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도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점이라면 만우 일행이 소수 정예라는 점이었다.
“남쪽, 영도 쪽은 척 무사님과 문 별감이 맡아주십시오.”
동군영이 문형일과 척사영에게 말했다. 척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장님.”
하지만 문형일은 그런 척사영이 껄끄러웠기 때문인지,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만우는 외면했다. 누구랑 가는 게 대수가 아니라, 이번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감령과 필두, 슌스케가 가시게.”
초절정 고수가 무려 셋이다. 영도 방향으로는 무려 화경의 고수가 갔다. 만우는 지금 이 일행의 면면이 웬만한 대문파나 거대세가에 맞먹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듯한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있었지만, 세 갈래로 나뉘었다면 이쪽도 삼등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만우. 자네는 나와 함께 가주시게. 부산포 쪽으로.”
“그쪽이 제일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지?”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으로 일본국에 가는 이는 정3품의 전서 여의손이라는 사람이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부산포에서 출발할 테니, 가까운 곳에 숨겨놨을 것이 분명할 터.”
“그 여포라는 놈은?”
파락호가 세 갈래로 나뉘었다면, 여포란 놈이 등장하는 곳이 바로 여의손이 숨겨놓은 물건이 있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워낙 신출귀몰한 자라, 나타나기 전까지는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네.”
“신출귀몰하다라…….”
만우는 새삼 그 여포라는 활빈당의 두목이 정보전에 능하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냥 해적 두목 정도로 만족할 재목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포라. 출발하지.”
만우의 말에 일행들이 세 갈래로 나뉘어 각기 찢어졌다. *****
“외칼이!”
“좋아서 손 잡는 게 아니다. 다른 놈들이 성가셔서 잡는 손일 뿐.”
“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은밀하게 세 갈래로 나뉜 소달구지를 따라 역시 세 갈래로 나뉜 조직들은 그 안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어차피 경쟁자가 많으니, 일단은 주인 없는 재물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여포. 그 자가 나오면 어쩔 텐가.”
“여포?”
외칼이 차갑게 웃었다. 여포란 자의 악명은 외칼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커다란 화극을 휘둘러 일합에 관군의 대장을 꺾었다는 소문이나, 두 번 휘둘렀더니 전선이 부서졌다는 허무맹랑한 소문들이었다.
“그 작자라고 해서 칼로 찔러도 피를 흘리지 않는대?”
원래 이 뒷골목은 별의별 소문이 다 떠도는 곳이다.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을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소문만 듣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 뒷골목의 소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봐. 나 외칼이야, 외칼. 이 칼 한 자루로 죽이지 못한 놈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외칼은 자신이 있었다. 이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 험한 뒷골목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칼 한 자루로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외칼은 자신감이 넘쳤다.
“크흐흐. 그렇지? 소문이 너무 과하다 했어. 역시 외칼이야. 흐하하.”
외칼은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을 힐끗 쳐다보고는 눈을 돌렸다. 동래 뒷골목에서 50명이나 되는 파락호들을 수하로 둔 큰 조직의 수장인 짝귀였다. 검게 물든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 게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못생긴 자였다.
“그러면 외칼만 믿으면 되지?”
반면 외칼은 부하가 고작 열 명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외칼처럼 독기로 똘똘 뭉친 이들이기 때문에 짝귀도 감히 이들을 건드리지 못 했다. 아니, 대부분의 조직들이 그랬다.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에 구역을 나누고 그 구역을 존중했다. 그 구역을 침범해 전쟁이 벌어지면 결국 노 나는 것은 근처의 경쟁 조직들이기 때문이다.
“네놈들의 부하들이 주의를 끌어. 그러면 뒤에서 콱.”
외칼은 살기가 어른거리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짝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둘이 연합하는 것을 본 다른 조직들도 서둘러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재물은 우리가 차지한다!”
짝귀가 씩 웃으면서 가장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그런데 그때, 앞서 나가던 소달구지 위로 하늘에서 누군가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턱
“누, 누구냐!!!!”
여의손의 머슴 중 하나가 달구지 위에 내려앉은 이를 보고서는 놀라 소리쳤다. 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