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동군영, 흑화!(2)2020.12.29.
여포의 오른팔인 가동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포는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사임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래까지 가서 알아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헤헤. 고생은요 성님.”
동래에는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동래에서 잡히는 물고기 중 몇 가지가 왜관에 있는 이들에게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좋은 식량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잡힌 물고기를 말리면, 그 중 몇 가지는 임금님에게 진상이 될 정도가 된다. 그렇다는 것은 관에서 비싸게 사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여포가 이끄는 활빈당은 동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영도 인근의 군도에 뿌리를 내렸으면서도 들키지 않고 해적질을 버젓이 할 수 있었다.
“성님. 정말 터실 거예유?”
사임이가 소처럼 순박하게 생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여포에게 물었다. 여포는 구릿빛 피부 위로 미소를 씩 지어보이며 오히려 사임에게 되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너는?”
“엣. 저유?”
사임이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게 퍽이나 순박해 보여 여포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털어야지. 털어야 되고말고. 제 배 불리려고 양반 나리가 그 많은 재물을 준비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겠느냐?”
여포는 거친 바다사나이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도, 완고한 유학자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게 다 여포가 배운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게 여포란 이름을 물려주신 스승님께서 그리 살라 하셨으니, 그래야지. 너희도 그런 삶이 좋지 않으냐?”
여포의 말에 사임을 비롯한 가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비록 백 명 남짓한 해적이지만 여포를 기꺼이 주군으로 모셨다. 자신들처럼 가난해서 가족을 잃는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는 겪게 하지 않겠다는 여포의 의지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포는 자신의 말을 훌륭하게 지켰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가난이, 영도와 동래 인근에서만큼은 구제가 가능했다. 그게 전부 활빈당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중앙에서부터 시작해 동래까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그러니 모두 무리하지 말아라.”
여포는 스승을 모셨었다. 그 스승은 여포에게 이름과 함께 가르침을 내려주면서 그렇게 백성을 위한 삶을 살아달라고 유언을 남긴 뒤 타계했다. 여포 또한 가난에 의해 가족들을 모두 다 잃고, 굶어 죽을 뻔한 것을 스승이 살려준 것이니,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활빈당을 만들었다.
‘스승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등선하신 것이니까. 위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여포는 솥뚜껑만한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골격을 타고난 여포는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해 용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기(氣)라는 것을 익혔기에 여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물 위에서도 날래게 움직일 수 있었고 몇날 며칠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도 쌩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활빈당 안에서 여포의 존재는 거의 해신(海神)급이었다.
“자. 준비해라. 뒷골목의 무뢰배놈들이 재물에 눈이 먼 사이에 그 재물을 우리가 가져올 것이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한 곳에서 자게 해줄 수 있는 재물이다. 움직여라!”
여포가 일어서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가동과 사임이 허리를 숙였다.
“예!!!”
그리고 얼마 후, 군도의 한 섬 기슭에 숨겨져 있던 붉게 칠한 배 한 척이 돛을 펴고 바다 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혼자서 관선 십여 척을 격파했다고?”
“정보가 사실이라면.”
“무슨…….”
만우는 고개를 돌려 필두를 쳐다봤다. 필두는 장강수로이십팔채의 대채주다. 그러니 수전(水戰)에 있어서는 필두가 가장 믿을 만했다.
“필두.”
“예, 대장님.”
만우가 부르자 필두가 쪼르르 달려왔다. 만우는 그런 필두에게 동군영에 해준 말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필두의 눈이 커졌다.
“홀로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내가 얻어온 정보에 의하다면. 그리고 그것뿐이 아닐세.”
활빈당의 두목이라는 여포에 대한 증언들이 많았다. 실질적인 증거가 없고, 모두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동군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거대한 방천화극(方天畵戟) 한 자루를 사용하는데, 한 번 휘두르면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두 번 휘두르면 전선(戰船)이 반파가 된다고 하더군.”
“…….”
“출렁이는 파도 위를 내달릴 수 있고,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쓰러지거나 비틀거리지 않으며 한 번 소리를 내지르면 관병 백 명이 귀를 부여잡고 주저앉을 정도라고…….”
동래현이 바보가 아니라서 활빈당을 가만히 내버려둔 것이 아니다. 워낙 그들의 배가 날래고, 이 근방의 수로(水路)를 앞마당처럼 훤하게 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빈당의 두목인 여포의 무위가 믿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거의 일당백, 천을 넘어 만부부당(萬夫不當)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방천화극이라면, 과(戈)와 모(矛)를 합쳐놓은 게 아닌가? 걸고 당기고 찌를 수 있게. 삼국지에…….”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가 쓴다고 알려졌던 그 무기네.”
나관중은 원말명초에 살았던 소설가다. 만우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수호지> 등이 명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만우가 조선으로 들어오기 직전, 그러니까 한 2-3년 전에 죽었다. 그가 지은 <삼국지연의>는 조선으로 들어와 조선의 사대부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필두. 이게 가능해?”
만우는 필두에게 물었다. 필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동군영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뭐 수적의 경우에는 물질에 능한 절정, 초절정 정도라면 배를 망가뜨리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물 위에 떠있는 배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부수기가 쉽지 않았다. 더 큰 배로 들이박아서 부순다면 모를까, 무기를 한두 번 휘두른다고 해서 박살이 날 정도는 아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대장님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무기를 휘둘러 전선을 박살 낼 정도면 만우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필두의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화경은 돼야 한다는 소리다.
“화경이 누구 집 개이름도 아니고.”
은거고수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림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합쳐도 열 명을 약간 넘을 것이다. 그러니까 화경의 고수들을 따로 모아 무림십좌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만우의 손에 의해 비명횡사한 낭황 우결지만 봐도 그랬다. 화경의 고수가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그 화경의 고수를 꺾기만 해도 별호에 황제의 황(皇)자가 붙을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해적질을 하고 있는 해적두목이 화경 수준이다?
“허풍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네.”
“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동군영과 필두가 차례대로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만우는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무언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육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특이한 건?”
“진짜 삼국지 여포를 따라는 건지, 여포라는 자가 끌고 다니는 배에 온통 붉은 칠을 해놨다고 하네.”
“적토마가 아니라 적토선인가?”
그 정도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동군영이 이어서 말했다.
“아. 아마 지금까지 관에서 전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게, 그 여포라는 자가 단 한 명의 관병도 죽인 적이 없다고 하네.”
“……한 명도?”
“그래. 단 한 명도.”
동군영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그 순간 필두의 안색이 변했다. 필두는 무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군영이 한 말의 뜻을 단박에 이해한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열 배는 더 어렵다. 그것도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때는 더욱 그런 법이다. 그런데 그 여포라는 놈은, 자신을 잡겠다고 달려드는 관병의 전선을 파괴하면서도 관병을 한 병도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짜 실력 있는 놈일 수도 있겠는데?”
만우는 필두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군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실력이 있다고?”
“어. 그게 아니고서야 간 크게 자신을 잡아가기 위해 온 관병들을 살려보낼 리 없지. 실력이 되니까 하는 거야. 다시 와도 안 된다는 자신감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을 죽이러 온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그만큼 풀어주는 사람이 강자라는 뜻이다. 그렇게 돌려보내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베푸는 관용과 자비인 것이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귀찮게 자신을 잡으러 오는 자들도 줄이고, 살아 돌아간 자들이 자신의 무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포 스스로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소문에 의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소문을 이용해 먹었어. 만약 주인 없는 재물도 그놈이 한 거라면 머리가 좋은 놈이야.”
소문을 이용해 정보를 조작한다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여포란 놈은 해적이면서도 그런 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다. 그냥 일반 해적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놈이 왜 해적을 하고 있는 거야?”
동군영이 만우에게 물었다. 하지만 만우가 알 리 없다. 결국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글쎄. 만나보면 알겠지. 그 재물은?”
“아직 찾고 있어. 그런데 쉽지 않아. 간 크게 사신 행렬에 넣어서 보낼 생각이면 그냥 쉽게 들여오지는 않을 거니까.”
“그러면…….”
만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결국 감찰방의 감찰이라고 해서 동원할 수 있는 정보망은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직접 정보망을 재물이 오는 모든 길목 쪽으로 돌려놓고는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뒷골목 무뢰배들. 걔네 움직임이나 면밀하게 파악해줘. 아무래도 냄새는 걔들이 빨리 맡을걸?”
나쁜 짓도 해본 놈이 더 잘 안다. 그러니 그놈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우르르 몰려갈 때 그 뒤를 따라가다가 앞지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여포라. 여포. 이거 궁금해지는 놈인데?”
만우가 여포를 생각하면서 씩 웃어보였다. 만나면 왠지 재밌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여의손의 집안에서 대대로 머슴 노릇을 해온 동남이는 작금이 여의손 대에 들어 그의 하수인 격으로 신분이 반계단 정도 올라섰다. 다른 머슴들처럼 집안이나 쓸고, 잡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의손이 처리하기 힘든 그런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일을 하고 그 때마다 재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잡일이나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여의손을 따라다니면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는 것이 나았기 때문에 동남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하셨으니께.’
특별히 여의손이 동남이를 그렇게 써먹을 요량으로 무사까지 초빙하여 몇 가지를 가르쳤기 때문에 동남이는 살벌하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덜그럭 덜그럭 소달구지가 덜그럭거리면서 걸을 때마다 수레 안 쪽에 있는 물건에 신경이 갔지만 동남이는 안간힘을 쓰며 그곳을 쳐다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