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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동군영, 흑화!(1) (208/400)

208. 동군영, 흑화!(1)2020.12.26.

전서(典書) 여의손은 정3품의 관리로 어명을 받아 일본국(日本國), 즉 왜(倭)의 보빙사로 임명이 되어 답례하는 의미로 많은 하사품을 가지고 영남로를 따라 동래로 향하고 있었다. 동래의 부산포구에서 배를 타고 왜로 가기 위함이었다.

16553241302456.jpg“준비는?”

16553241302456.jpg“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6553241302456.jpg“좋아. 내 인생에 두 번 없을 절호의 기회야. 보빙사거나 사신으로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한 몫 제대로 잡아야 해. 알지?”

정3품의 관리로 그가 받는 녹봉도 적지 않았고, 그의 가문도 가난하지 않았지만 재물이란 아무리 많아도 항상 아쉬운 법이다. 그리고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아랫것들 관리할 때도 재물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16553241302456.jpg“삼은?”

16553241302456.jpg“먼저 보냈습니다.”

16553241302456.jpg“제대로 관리해. 왜놈들에게 팔면 스무배는 더 받을 수 있으니까. 어인(御印)은?”

16553241302456.jpg“제대로 찍어 두었습니다.”

16553241302456.jpg“그래. 좋아.”

여의손은 씨익 웃었다. 그는 자신이 사사로이 일본국에 가져가서 팔 물건들을 상자에 넣어두고 그 위에 어인을 찍었다. 어인은 임금의 표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그 어인을 뜯고 상자를 확인할 수 없다.

16553241302456.jpg“감찰방 놈들은?”

16553241302456.jpg“뇌물을 적당히 먹여두었습니다. 안 받으려고 하는걸, 가족에게까지 주니 어쩔 수 없이 받았습니다.”

16553241302456.jpg“좋아. 아주 좋아. 아주 잘했어.”

여의손은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사헌부 산하의 감찰방의 감찰관들이 가장 껄끄러운 놈들이었다. 놈들은 보빙사와 관계가 없음에도, 국법에 따라 보빙사인 자신을 감찰하고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 놈들에게도 결국은 재물이 약이다.

16553241302456.jpg“가자고. 어서. 으허허허.”

저 뒤에서 따라오는 우즈히코라는 일본국 군주의 부마라는 놈과 그의 호위인 타케노를 힐끗 쳐다본 여의손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여의손은 이미 어마어마한 재물을 쥔 듯한 기분에 인자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마구 터뜨려댔다.

16553241302456.jpg“흐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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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241332697.png“야. 이거 개판인데요?”

문형일이 기척을 숨긴 채 뒷골목을 돌아보고 난 다음 옆에 선 척사영에게 말했다.

16553241302456.jpg“이리도 도적들이 많았다니.”

척사영은 숫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동래의 뒷골목은 지금 파락호들과 무림으로 따지면 삼류 흑도 방파들의 무뢰배들로 들썩이고 있었다. [주인 없는 재물이 동래로 오고 있다!]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재물이니 그건 먼저 털어먹는 사람이 임자다!] 이런 소문이 뒷골목에 은밀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문형일은 그 주인 없는 재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그건 척사영도 마찬가지였다.

16553241332697.png“군영 나리가 말한 대로 보빙사가 사사로이 재물을 챙기긴 챙겨오는 모양입니다.”

문형일은 사람이 셋만 모이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척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1302456.jpg“관리란 자가 그러니, 파락호들과 무뢰배들이 설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척사영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척사영은 대쪽 같은 성격에 기본적으로 정의로웠다. 곡산척가에서 나고 자라면서 조선을 지킬 최후의 보루로써 그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척가에서 지켜야 할 나라에 이런 타락한 관리들과 파락호, 무뢰배들이 많다는 것은 척사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6553241332697.png“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척사영 곁에 문형일을 붙여준 것은 동군영의 한 수였다. 문형일은 기본적으로 중원무림에서 크고 작은 이런 더러운 꼴을 많이 봐왔다. 그렇기 때문에 척사영이 정의감과 의협심에 경거망동을 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훌륭한 고삐 역할이 가능했다.

16553241302456.jpg“이상한 점?”

척사영은 딱딱하게 말했다. 그나마 만우나 동군영에게는 경어라도 써서 괜찮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들에게는 말을 전부 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투만 들었을 때 척사영은 여인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딱딱한 군관 같은 말투를 고수했다.

16553241332697.png“소문. 대체 이 소문을 누가 퍼뜨렸을까요.”

16553241302456.jpg“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흘렸다고 생각하는 건가?”

문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41332697.png“일본으로 파견되는 사신이라면 그 직급이 낮을 리 없습니다. 그런 사신이 직접 재물을 빼돌리려고 계획을 한 일입니다. 이런 뒷골목 파락호들과 무뢰배들이 그 사실을 무슨 수로 알아내겠습니까. 보름이나 떨어진 한양에서 계획된 일인데요.”

16553241302456.jpg“그렇다면…….”

16553241332697.png“네.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흘린 겁니다. 아마…… 그들 역시도 이 주인 없는 재물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척사영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문형일의 의심이 합당했기 때문이다. 그에 척사영의 투기가 가라앉았다. 만약 이걸 의도적으로 흘린 배후가 있다면 그 배후를 잡는 것 역시 이 일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16553241332697.png“일단 돌아가서 군영 나리와 말을 다시 해보시지요.”

16553241302456.jpg“……그러지.”

척사영이 몸을 돌렸다. 문형일은 그런 척사영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의미로 척사영은 무서웠다.

16553241332697.png“이러다 수명이 줄어들겠어.”

만우에 이어 척사영이라니. 문형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1655324136098.png“동래의 여포?”

16553241360984.png“그래. 마침 문 별감과 척 무사님께서 뒷골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군.”

그날 저녁, 주막의 봉놋방에 모인 일행에게 동군영 안가에서 얻어온 정보들을 풀어놓았다.

1655324136098.png“그러니까, 스스로 의적이라고 하는 해적놈들이 동래 바닷가 근방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그 놈들이 퍼뜨린 소문이다?”

16553241360984.png“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네.”

문형일이 말대로 감찰방에서도 지금 동래에서 퍼지고 있는 이 소문들의 출처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동래의 여포였다.

1655324136098.png“여포라니. 그 여포를 말하는 건가? 마중적토(馬中赤土), 인중여포(人中呂布)?”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포라면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삼국지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무장이다.

16553241360984.png“그래. 그 여포다.”

1655324136098.png“해적이?”

16553241360984.png“용력이 대단한 놈이 스스로를 여포라 부르는 모양이야. 그리고 그 의적이라는 놈들은 스스로를 활빈당(活貧黨)이라 부르더군.”

1655324136098.png“가난을 구제한다?”

16553241360984.png“그래서 주변에서는 인망이 높은 놈들이다.”

만우는 그 말을 하면서 동군영의 표정을 유심하게 살폈다. 무릉도원도 의적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동군영은 의외로 표정이 괜찮았다. 동군영은 그런 만우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피식 웃었다.

16553241360984.png“이제 괜찮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

1655324136098.png“진짜?”

16553241360984.png“완전히 괜찮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내가 서책에서 봤던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네. 그러니 걱정 마시게.”

1655324136098.png“뭐 그렇다면야…….”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1655324136098.png“소재지는?”

16553241360984.png“해적이기 때문에 특정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 하지만 확실히 그렇게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주변에 나눠주는 건 맞는 것 같네.”

1655324136098.png“주인 없는 재물이라.”

만우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슌스케가 그런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41418935.png“뒷골목 파락호들만 움직이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1655324136098.png“그렇다면?”

16553241418935.png“포구 근처에 있는 왜관(倭館)에서 사무라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봤습니다.”

1655324136098.png“왜놈들까지?”

슌스케의 말에 만우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로 가는 사신이란 놈이 제대로 한 탕을 할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걸 보고 주인 없는 재물을 채가기 위해 이렇게 난리였으니 말이다. 왜관(倭館)은 왜국에서 넘어온 것들을 팔고, 조선의 물건을 사가기 위한 곳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5일마다 한 번씩 장이 열리고 배가 들어오면 또 상시적으로 시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그곳에는 늘 상주하고 있는 왜상(倭商)들이 있었는데, 그들 휘하의 사무라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16553241360984.png“자. 그럼 우리는.”

동군영은 손뼉을 딱하고 치면서 주변을 환기시켰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동군영이 씩 웃어보였다.

16553241360984.png“이 땅 위에 주인 없는 재물이 어디 있는가. 주상전하께서 계신데. 그러니 주상전하의 재물을 찾아와야지. 다른 놈들보다 먼저.”

1655324136098.png“……저 난장판에 뛰어들라고?”

만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파락호들이나 무뢰배들이 난리를 치는 똥통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41360984.png“비등비등한 조직들이 모여서 그걸 두고 싸움을 벌이면 죄 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입는 법이지. 그럴 바에는 검주, 자네 같은 강자가 떡하니 그 위에 앉아 있는 게 낫지 않겠는가?”

동군영은 만우에게 기름칠을 했다. 만우는 큼큼하고 헛기침을 했다.

1655324136098.png“그렇긴 하지만…….”

16553241360984.png“기왕 도와주시려거든, 끝까지 도와주시게. 왜국까지 말일세.”

동군영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만우에게 말했다. 그러자 만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척사영이 뜨거운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고, 모두의 시선이 만우에게로 쏠렸다. 만우가 결정하는 대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결정권자가 된 만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1655324136098.png“빌어먹을. 너. 똥구녕. 이러려고 나한테 말한 거지?”

16553241360984.png“아닐세. 아니야. 난 그저 무림의 영웅인 검주 자네에게…….”

1655324136098.png“시끄러! 하면 되잖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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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만우를 보고 있던 동군영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비로소 동군영이 만우 사용법을 약간이나마 깨닫는 순간이었다. *****

16553241302456.jpg“여포 성님. 여포 성님!!”

동래의 남쪽에는 영도(影島)란 섬이 있는데 말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목도(牧島)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말들은 명마가 많아 그림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고 하여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영도에서도 남쪽, 이름 없는 무인도 몇 개가 모여 군도를 이룬 곳에 그들이 있었다. 활빈당.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가난을 구제하겠다고 모인 의적들. 그들은 백 명 규모의 해적이었지만 배가 크고 날래 남쪽 바다를 돌아다니며 왜상과 왜국으로 넘어가 무역을 하려는 상인들의 배를 털었다. 그리고 그런 배들이 없으면, 동래 인근 고을의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화전민을 비롯하여 가난에 신음하는 이들을 기꺼이 도왔다.

16553241302456.jpg“왜?”

그들은 모두 가족이 없는 이들로, 가족들이 모두 가난에 의해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의 곳간을 열어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강제적으로 집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여포다.

16553241302456.jpg“들었슈? 왜 요새 우리가 흘린 소문 때문에 동래 뒷골목이 떠들썩해유.”

여포는 피식 웃었다. 그는 삼국지 속 여포처럼 준수한 외모에 곰의 어깨, 표범의 허리와 호랑이의 허벅지를 가진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가 여포라고 불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16553241302456.jpg“뒷골목 무뢰배들? 떼로 몰려와봐라. 결국 우리 활빈당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진 착한 놈들이 될 테니까. 으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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