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성악과 성선(5)2020.12.22.
방매는 그런 만우를 끌고 근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양의 국밥집과는 다르게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다. 생선을 넣어 끓인 국밥을 내놓는 곳이었다.
“두 그릇이요!”
“잡어 수육도 하나!”
만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이내 국밥 두 그롯과 함께 바닷가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잡어 수육이 들어왔다. 해안가에서 어부들이 잡은 생선 중 작은 생선들을 쪄낸 것이다. 방매는 만우가 생선을 넙죽넙죽 집어먹는 것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척을 하면서 만우를 데려오긴 했지만 방매도 생선류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맛있어?”
“이 맛이거든.”
만우는 씨익 웃었다. 거대문파와 명문세가가 내놓은 해산물 요리들은 전부 일품이었다. 실력 있는 숙수가 갖은 양념과 조리법으로 해서 내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담호혈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고, 만우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옆에서 치근덕대니 그 자리가 편할리 없다. 그런데 지금은 화려한 숙수의 솜씨와 훌륭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했다.
‘동군영. 그놈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확실히 주작을 만나고, 혈사와 생사결을 펼치면서 쌓였던 정신적인 피로가 국밥과 잡어 수육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후르륵, 후륵 만우와 방매는 국밥을 빠르게 비워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해산물 향도 그릇을 다 비울 때쯤 되자 독특한 감칠맛처럼 느껴졌다.
“야.”
만우는 그릇의 바닥을 긁다가 방매에게 말했다. 방매는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네 꿈.”
만우는 궁금한게 있었다. 그 때문에 방매에게 물었다. 움찔. 방매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객주를 차리는게 꿈이라고 했지?”
“그런데?”
달그락 방매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뜨끈한 것을 먹었기 때문인지 방매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왜?”
“왜긴. 돈 벌려고.”
“돈을 벌려면 객잔이 아니라 무역을 해야지. 상인을 해야 되고.”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객주를 세운다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않은 생각이다. 그리고 방매는 재물에 있어서만큼은 대단히 현명했다.
“중강(中江)에 객주 세울꺼야.”
“중강? 패수에 있는 섬?”
“응.”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방매는 그런 만우의 시선을 받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쳐다보는 눈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방매는 잘 알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다.
“왜. 뭐가 궁금해서 그런데.”
“부모님 때문이지?”
“……왜?”
만우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군영을 왜 도와주지 않냐고 따지러 왔을 때, 방매는 동군영이 자신처럼 부모님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방매는 삐져서 만우를 보러 찾아오지도 않았다.
“중강은 중원으로 넘어가거나, 중원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섬이니까. 사신도 거기 머물렀다가 간다면서.”
연경에서 육로로 조선으로 넘어오는 길은 험하기 그지 없다. 그 힘든 길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오는 길에서 마주한 중강은 명과 조선을 오가는 사신들이 머물러서 휴식을 취할 정도로 입지가 좋은 곳이다. 조선과 명을 오가는 이들이 많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객주를 열고, 중개무역을 하는 것처럼 거래를 도와주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큰 돈이 흘러드는 곳에서는 정보가 흘러드는 법이다.
“네가 그렇게 애를 써가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게, 부모님 때문이 아닌가 했지. 그게 아니고서는 너한테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
“어릴 때 헤어진 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부모님 행방을 찾으려고 돈을 버는게 아닌가 했고.”
만우는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방매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중원으로 넘어가신거야?”
“우리 어머니는 공녀였어.”
만우의 눈이 커졌다. 공녀라하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조공품으로 여자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나라까지만 해도 공녀들로 정든 고향을 떠나 조선의 처녀 수천 명이 중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것이 명나라 들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녀들이 버젓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 중 하나가 방매의 모친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공녀?”
“그래. 공녀.”
방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에 저 멀리 바다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저 바다를 건너가셨대. 내가 어릴 때. 원래 공녀는 처녀만 보내는데, 사람이 부족했던 모양이야. 결국 어머니가 눈에 띄었고, 그래서 끌려가셨대.”
“…….”
방매의 말에서 만우는 극심한 혼란기이던 여말선초의 시기를 눈으로 그릴 수 있었다. 처녀가 아님에도, 자식을 놓고 끌려가야만 했던 모성애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울려퍼지는 듯 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찾아오겠다면서 명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으셨대. 난 안국방 조씨 할아범에게 맡겨졌고.”
방매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방매는 천애고아가 되었다. 아니, 부모님의 생사를 정확하게 모르니 엄밀히 말하면 고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 하고 누군가의 손에 대신 길러졌다는 점에서 방매는 부모가 없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방매의 아버지는 부성애 대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택한 셈이니까.
“사실 나, 부모님 얼굴도 몰라.”
“그런데 왜 찾으려고?”
부모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만우도 마찬가지다. 노비인 머슴은 원래 그런 경우가 허다했다. 만우가 주변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을 때부터 만우는 머슴이었고, 부모가 없었다. 그나마 노비와 머슴은 양반댁의 재산이기 때문에 보살핌을 받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우는 단 한 번도 부모가 궁금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만우를 낳은 것은 부모였으니 독보하여 오롯이 홀로 선 데에는 만우 스스로의 노력이 구할이었으니까. 부모, 그래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모순적이게도 만우를 머슴으로 부린 김약항 어르신 뿐이었다.
“그냥. 한 번 보고싶지 않아? 그래도 내 부모님이란 사람이 있는데, 날 이 세상에 놓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방매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만우는 턱을 괴었다.
“흐음…….”
“살아계셨으면 좋겠어. 군영 나리의 부모님을 보니까 우리 부모님이 생각이 났거든.”
“그래서 중강에 객주를 세워서 정보를 모아보겠다고?”
“응. 아니면 내가 넘어갈수도 있고. 그렇게 알음알음 사람들을 알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소식이 들리지 않겠어?”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을 위해 그토록 악착같이 방매는 돈을 모으고 있었다. 만우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너도 그랬어?”
만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는 놀란 듯 눈을 토끼처럼 떴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왜. 나는 머슴이었는데?”
“그렇구나…… 난. 몰랐지. 그러니까 몰랐다고 정말.”
방매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태어날때부터 없었으니, 굳이 누가 내 부모인지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 뭐, 생각해보니 나도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을테니 궁금할 것 같기는 하네.”
만우는 자신이 나이가 더 많이 들고, 감상적이 되면 그 때쯤이면 궁금해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런 만우를 보면서 방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매의 눈에 문득 만우가 몹시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부터 만우는 홀로 있어왔던 것일지 가늠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몇 살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중원을 떠돌다 조선으로 돌아온 만우가 홀로 보낸 시간은 방매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방매 자신에게는 안국방의 조씨 할아범이 있기라도 했으니까.
“그런 적 없어? 외롭다거나, 뭐 그런거.”
“외롭다?”
만우는 비어버린 국밥 그릇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외로움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었다. 어차피 혼자였기 때문이다. 김약항 어르신을 따라 명을 전전할 때에도, 어르신이 돌아가신 뒤에 홀로 중원을 독보할때도 만우는 늘 혼자였다. 언제나 혼자이니, 외로움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 머무르는 바람 같은 존재였다.
“글쎄. 모르겠는데.”
“난 그렇거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있을거고.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하시고서는 돌아오시지 않았지만…….”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팔짱을 꼈다.
“나중에 가보면 되지.”
“응?”
만우의 말에 방매가 고개를 휙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궁금하면 가면 된다. 가서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오면 된다. 그리한다 하여 과연 인생이 더 나아질지는 알 수 없을테지만 말이다.
“중원으로 가셨다면서. 그러니까 중원으로.”
“그, 그게 아니라…… 만우 너 중원에서 조선으로 온 거잖아. 조선에서 살려고.”
만우가 중원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는 이미 간접적으로 문형일과 감령, 필두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들어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대단했던 만우가 조선으로 돌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방매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중원에 가자고 하다니. 방매는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것 같은 기분에 가슴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누가 아주 가쟤? 잠깐 다녀오자는 거지.”
“날 도와주려고?”
만우의 말에 방매의 얼굴에 은은한 홍조가 떠올랐다. 그런 방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만우가 피식 웃었다.
“나한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날…… 왜 도와주려고?”
방매가 묻자 만우는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만우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방매를 도와주고자 하는지.
“너, 널 도와주려는게 아니라.”
그러니 말이 횡설수설 나왔다. 만우는 드물게 당황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행동하는데 있어 지금껏 제대로 된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움직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중원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오고 그러려고 그러는 거지. 조선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널 도와주는게 아니라. 조선에 오니까 음식이 통 입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만우는 험험하며 헛기침을 했다. 방매는 그런 만우를 빤히 쳐다봤다. 여전히 방매의 가슴께는 간질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우를 쳐다보던 방매는 벌떡 일어나 만우 옆으로 와서는 만우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손을 턱하고 올려놓았다.
“착하다.”
슥슥 방매의 손에 의해 만우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방매의 조막만한 손에서 머리 전체를 감싸는 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뭐야. 내가 개야?”
잠깐 기분이 좋을 뻔했던 만우는 정신을 차리고는 손을 탁하고 쳐냈다. 방매는 웃었다.
“고마워. 정말로.”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니까?”
끝까지 틱틱댄 만우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우는 국밥의 값을 치루고 난 뒤 앞장 서서 주막을 나왔다.
“같이 가. 혼자 가려고?”
“아 몰라! 빨리 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