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성악과 성선(4)2020.12.19.
“무슨 부탁이요?”
“시전과 저잣거리에 나가 왜와 거래를 하는 왜상이나 보부상, 혹은 상단에 대해서 알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주로 거래가 되는 품목들도 부탁드립니다.”
시전과 저잣거리에서 상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방매가 전문이다. 매분구의 가장 큰 덕목은 유행을 시킬 수 있는 화장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유행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같이 시전이나 나루터에 나가 상인들을 만나야 한다.
“음…… 네. 뭐, 어렵지 않아요.”
방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이런 곳에 오면 방매는 늘 시전과 저잣거리를 싸돌아다녔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 별감님. 부탁드립니다.”
“네, 나리.”
동군영은 그런 방매를 수행할 사람으로 문형일에게 부탁했다. 애초에 동군영을 수행하기 위해 별감으로 파견이 된 것이니 거부할 리 없는 문형일이다.
“이 아저씨는 안 돼요.”
하지만 방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저씨란 소리에 문형일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왜 그렇습니까?”
동군영이 되묻자 방매는 문형일의 얼굴을 가리켰다.
“조선사람이 아니잖아요. 상인들에게 뭘 묻기 위해서는 친근한 인상이 최고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기. 필두 아저씨도 안 돼요.”
“…….”
“사납게 생겼잖아요!”
필두가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감령이 그런 필두를 비웃었다. 방매는 그런 감령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령 아저씨도 안 돼요. 너무 기생 오라비 같이 생겼어요. 사람들 이목을 끄는 얼굴은 안 돼요. 슌스케도! 눈이 너무 쭉 찢어졌어!”
문형일은 천축국 사람으로 이목구비와 피부색이 달라 탈락. 필두는 산적 같이 험상궂고 사납게 생겨서 상인들을 주눅들게 할 것이니 탈락. 감령은 잘 생겨서 탈락이었다. 슌스케는 그냥 탈락이었고.
“그러면…….”
방매가 혼자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옹주다. 절대로 혼자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향이는 어려서 안 돼고. 척 무사님은…….”
“싫어요!”
동군영이 척사영을 거론하자 방매가 고개를 팩하고 내저었다. 방매는 동군영을 향해 눈을 흘겼다.
“왜 그러십니까. 척 무사님이 가셔야 별로 불편하시지 않을…….”
“안 된다니까요. 딱 봐도 지체 있어 보이는 사람인데. 상인들이 더 얼어서 아무 말도 안 할걸요?”
방매는 척사영을 쳐다보면서 눈을 흘겼다. 그게 십할의 이유는 아니지만 어쨌든 없는 말도 아니다.
‘그냥 싫어.’
만우를 쳐다보는 척사영의 시선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순간부터 방매와 척사영의 사이는 서먹해졌다. 방매는 척사영이 괜히 껄끄러워서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이 사람도 안 된다, 저 사람도 안 된다. 척사영이 안 되고, 향이도 어려서 안 되고 호선은 다쳐서 안 된다. 임수미도 정상이 아니니 안 됐다. 그러자 자연스레 남은 사람은 하나 뿐이었다. 동군영은 난처한 표정을 한 채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 자네밖에 없는데?”
“엑? 나?”
만우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현경에 든 만우는 일주일동안 기운의 수발에 자유로워졌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만우의 거대해진 존재감에 어려워하던 다른 이들도 이제 와서는 예전처럼 만우를 대했다. 만우 역시도 현경에 올랐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익살스럽게 굴었다.
“난 왜. 쉬고 싶은데.”
현경이 된 만우는 열흘 밤낮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자지도 않아도 거뜬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만우가 힘들어한다는 것 자체가 엄살이었다.
“그래도 옹주마마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는 필요하네.”
“아 왜! 너도 있잖아!”
만우가 동군영을 가리켰다. 감찰관은 동군영이다. 동군영은 피식 웃었다.
“역졸은 자네이네만.”
“그거야…… 끄응.”
어쨌거나 동군영이 어사이든 감찰관이든 역졸은 만우였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동군영이 시키면 만우는 부지런하게 해야했다.
“그리고 난 안가(安家)를 찾아가봐야 돼서.”
“안가?”
“감찰관들이 사용하는 안가가 있다고 들었네. 그곳에 가서 보빙사에 대한 면면과 얽힌 이권들에 대한 정보를 받아봐야 되네.”
“끙…….”
감찰방은 사헌부 산하의 청사로 24명의 감찰들이 속해있다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조선 산천이 얼마나 넓고 큰데, 고작 24명으로 감찰 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감찰들이 엄정한 눈으로 감찰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신분이 어느 정도 감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등재가 된 24명의 감찰을 제외하고서도 비밀리에 임명이 된 감찰들이 더 많았다. 안가를 마련해 놓은 것도 그런 비밀 감찰들의 활동을 지원해주기 위함이었다.
“어쩔 수 없지.”
동군영도 할 일이 있다고 하니 만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매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향아. 환자들 부탁해. 약재는 여기 놓고 갈 테니까.”
“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김향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끄응하는 소리를 내고는 이룡검을 풀어 김향에게 건네주었다.
“소서논지 뭔지. 귀신 하나가 엄청 떽떽거리네. 옛다.”
“고맙습니다, 대협.”
만우는 씩 웃어 보였다. 자신을 귀신이라고 했다고 소서노가 난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가자. 후딱 다녀오자고.”
방매가 만우를 질질 끌고 나갔다. 만우는 따땃한 아랫목을 쳐다보면서 불쌍한 얼굴로 끌려 나갔다. 동군영은 그런 방매와 만우를 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두 분께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왜국으로 넘어가 가문의 복수를 하는 것이 동군영의 목표였지만, 그래도 임금이 내려준 일을 게을리 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보빙사가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공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옹주마마와 만우가 양지를 조사하는 동안 음지를 조사해 주십시오.”
동래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어야 한다. 문경새재는 험준하기 때문에 그곳을 넘어오는 데에는 크고 작은 길이 많았다. 만약 보빙사가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다면, 물건을 대놓고 들여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조사하는 일을 문형일과 척사영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죠.”
문형일과 척사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군영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둘이 나가고 나자 감령과 필두가 자리에서 주춤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는 나갔다 오겠습니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둘을 보면서 동군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들 오시게.”
“오.”
“대신.”
동군영이 엄하게 말했다.
“사고는 치지 마시게. 사고를 치면…… 내 만우에게 직접 말을 해버릴 테니.”
초절정 고수 두 명을 말 한 마디로 얼굴을 하얗게 질려버리게 한 동군영이 웃으며 주막을 나섰다. *****
“왜상이 좋아하는 거?”
“네. 왜인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판 한번 벌여볼까 하구요.”
“처자가 한양에서 왔다고 했지?”
“네!”
방매가 귀엽게 웃어보였다. 어린 나이에 보부상을 한다고 한 어린 방매를 보면서 시전의 상인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인삼이나 직물, 면화를 좋아하지. 왜 얼마 전에 왜 사신이 들어온 거, 알고 있남?”
“네. 한양이 그것 때문에 떠들썩했거든요.”
그 놈들과 얽혔던 것이 자신이지만, 방매는 내색하지 않고 넉살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 사신단 편에 왜상들이 함께 들어왔는데, 인삼을 그렇게 찾았지 뭐야. 그런데 인삼이 어디 동래에 흔한가?”
인삼 중 최고는 개경의 인삼이다. 반면 동래는 인삼을 키우기에 적합한 풍토가 아니었다.
“인삼이요?”
“그래. 인삼.”
“음. 인삼.”
“그런데 나라님이 아니면 인삼은 구할 수가 없으니, 이걸 어쩌겠느냔 말일세. 허헛.”
그 후로 몇 마디를 더한 방매가 상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상인의 배웅을 받으며 만우와 방매는 상인으로부터 멀어졌다.
“다 똑같네.”
저 상인이 만우와 방매가 돌아다니면서 말을 건 첫 번째 상인이 아니었다. 방매는 벌써 열 명도 넘는 상인들에게 넉살 좋게 말을 걸면서 왜상에 대한 것들을 물었다. 왜의 상인이 원하는 것, 왜로 넘어가면 비싸게 팔리는 것들을 물어본 것이다. 왜에 가기 위해서는 대마도를 거쳐 가야하기 때문에 중간무역을 물론이거니와 사무역도 성행했는데, 상인들의 의견이 모두 같았다. 조선의 특산물 중 왜로 넘어가면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바로 조선의 삼(蔘)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인삼은 이미 명에도 그 효능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왜에서도 인기가 있었는데, 대부분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조선에서 사용이 되고 명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특히 왜로 들어가는 물량이 적어 큰 돈을 벌수 있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인삼이야. 만약 왜로 가는 사신이 가져다 팔려면 인삼일 거야.”
“그런데 인삼이면 나라에서 사사로운 거래를 금지한 품목 아니야?”
명나라에서 가장 조공품으로 선호하는 것이 바로 인삼이다. 그 때문에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에서는 국법으로 인삼의 사거래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걸 나라 밖으로 빼돌리다가 걸리면 곧바로 모가지다.
“큰 돈이 된다면 이것저것 안 가리는 게 상인들이야. 아마 지금도 조금씩 몰래 나가고 있을걸?”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아주 작은 틈도 파고드는 독한 상인들을 모두 나라에서 관리할 수는 없다. 만우는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됐네, 그럼. 여기서 죽 치고 앉아 있다가 딱 잡아내면 되는 거 아니야?”
보빙사가 딴 생각을 품고 있다면 어떤 것을 몰래 왜로 반출할 지, 품목까지 구체적으로 좁혀졌다. 그러니 최초에 동군영이 방매에게 부탁한 일은 끝난 것이다.
“그럼 돌아가자.”
방매만 쫓아다니느라 심심했던 만우는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애초에 시전이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 안 고파?”
“배?”
꾸르륵. 방매가 만우에게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만우의 배꼽시계가 울렸다. 만우가 배를 문지르자 방매가 씩 웃어보였다.
“밥 먹고 들어가자. 동래에는 해산물이 유명하대.”
“해산물?”
“응.”
한양에서 생선이나 어패류를 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먹어봤자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인 장국밥이 고작이었다. 양반들이면 또 모르지만 만우는 조선에 오자마자 북쪽으로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해산물이란 소리를 듣자 만우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맛있지. 해산물.”
중원을 독보할 때 만우는 그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무수히 많은 명문세가나 거대문파의 초대를 많이 받았다. 늘 그들은 만우를 초대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이 황제나 막는다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차려놓았는데 그 중 최고는 항주(杭州) 서호(西湖)에서 잡은 잉어로 만든 잉어찜과 산동성의 해안가에서 잡은 전복으로 만든 전가복(全家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