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성악과 성선(2)2020.12.12.
꽈르릉-!!!!
“아고고. 비가 오려나.”
방매는 창문 밖을 힐끔 쳐다봤다. 하늘에 안개가 잔뜩 낀 것이 비가 올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천둥소리가 들릴 리 없기 때문이다. 끼익, 탁. 방매는 문을 닫았다. 그러자 방 안에서 맴도는 약재 냄새가 한층 더 강해졌다. 방매는 절로 손으로 코를 부여잡았다.
“이게, 약방인지 객잔인지.”
방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분명 객잔의 방을 빌렸는데 약방인지 객잔인지 구분이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싸매고 드러누운 사람이 세 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된통 얻어터지고 온 호선과 탈진한 동군영, 거기에 아직 기천의 기초를 쌓은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행군을 거듭해 드러누운 임수미까지. 다행히 이곳 객잔은 물물교환의 장터이기도 했기 때문에 약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약재를 잔뜩 구해 탕약도 끓이고 별의 별 짓을 다했다. 안국방 조씨 할아범과 지낸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방매도 간단한 탕약 정도는 끓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여기요.”
“어구구. 그래. 고마워.”
거기에 김향까지 있었다. 싸울어미의 투술을 배운 김향은 쉽게 지치지 않았다. 거기에 몸이 날래졌기 때문에 잔심부름을 하는데 있어 최고의 일꾼이었다. 덜컥 우당탕
“어억.”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문형일과 감령, 필두와 슌스케가 굴러들어왔다. 다들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이 누군가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감령이 부들거리면서 손을 들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 멍이 크게 들어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눈 부분이었다.
“사, 살려줘. 방매야.”
“부, 부디 치료를…….”
“이…… 이 화상들.”
방매는 그런 네 남자를 보고는 이마를 턱하고 짚었다. 하지만 마음 착한 김향은 문형일을 일으켜세웠다.
“괜찮으세요?”
“고, 고맙다. 크흑.”
문형일이 서러운지 크흑하고 코를 들이켰다. 온 몸이 쑤시듯이 아팠다. 문형일은 태어나서 대장인 만우보다 더 한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우우…….”
필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머리를 처박은 채 온 몸을 꾸물거렸다. 방매는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길 수도 없는거 왜 자꾸 덤벼!”
방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맨날 이렇게 얻어터지면서도 뭐가 좋다고 매일 대련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강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런 네 남자의 뒤로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척사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남자와는 달리 잔머리 하나 삐져나오지 않은 척사영이다. 초절정 고수인 이 넷이 상대해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척사영이었다. 방매는 그런 척사영을 쳐다봤다.
“강해진다구요? 이렇게 몸을 상하게 하는데?”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입니다.”
척사영은 곡산척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신분으로만 따지면 양반이었다. 저명한 무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사영은 방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일행 중에 가장 안 친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척사영과 방매였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만나기만 하면 서먹거려서 도저히 친해지질 못 했다. 그게 전부 만우 때문이라는 것을 두 여자는 알고 있었다. 기침과 방심(芳心)은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나 당사자들끼리라면, 은애(隱愛)는 더 이상 은애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이. 몰라요. 이리와요!”
철썩! 방매가 감령의 등짝을 팡하고 때렸다. 그러자 감령이 입을 떡 벌리고 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좌검우도를 휘두르는 척사영에게 적당히란 없었다. 흠씬 얻어맞은 곳 위로 방매가 때렸으니 감령이 소리도 못 지르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후. 이 웬수들. 웬수들.”
방매는 씩씩거리면서 그런 네 남자의 몸에 약초를 발랐다. 지금은 상태가 중해보이긴 해도 이렇게 끙끙대다가 운기조식이란 걸 하고 나면 쌩쌩해지는 인간들이다. 세 명이던 환자가 일곱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덜커덩.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만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만우의 몰골이 정상이 아니었다. 놀란 척사영과 방매, 김향이 벌떡 일어났다. 머리카락이 타서는 오그라들어 있었고 가슴팍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뺨은 벌겋게 부어오른 상태인 만우가 퉷하고 입 안이 터져서 난 피를 뱉어냈다.
“더럽게도 세네 진짜.”
만우는 입 안이 아파죽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방매에게 말했다.
“약, 있어?”
그 날, 일곱 명이던 환자가 여덟 명으로 늘어난 객잔의 한 구석에서 퍼진 약재 냄새에 그곳에 머무는 모든 이들이 밤잠을 설쳤다. ***** 혈사를 처치했고 속세를 어지럽히려던 악수의 준동은 만우에 의해서 진압을 당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쩌려고.”
만우는 무릉도원으로 직접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리겠다는 동군영을 붙잡고 물었다. 동군영은 쓰게 웃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다.”
동군영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는 유학을 배운 유생이다. 공자의 말씀을 배워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려는 군왕에게 도움이 되고자 과거에 나가 장원급제까지 한 인재다. 하지만 동군영이 읽은 수십, 수백 권의 서책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아마 동구녕 나으리가 가서 말하면 나으리가 그런 줄 알고 폭동을 일으킬지도 몰라.”
“화전민이라고는 하나 가난과 폭정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네. 악한 사람들이 아니야.”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법이지.”
공자 다음으로 유자(儒子)들이 떠받드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떠올랐지만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의 선악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동군영은 믿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네.”
“아니, 그냥 현령한테 말하고 가자니까? 이런 일은 현령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지. 그러라고 녹봉을 주는 관리들인데.”
동군영은 감찰관이다. 그렇다면 동군영은 현령들이 어떤 폭정을 벌여 화전민들이 산 속으로 숨어들었는지를 찾아내어 그것을 왕에게 고하는 것이 동군영의 역할이다. 화전민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그의 일이 아닌 것이다.
“도망친 화전민들을 현령에게 넘기면, 그들이 멀쩡할 것이라 믿는겐가?”
“안 그러면? 나으리가 거기 있던 꽃사슴 대신 돌보기라도 하시게?”
“…….”
녹산이란 이름의 산록은 혈사의 손에 잡혀 그의 주구가 되어 결국 만우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니 무릉도원은 그들의 구심점을 잃은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법을 어긴 죄인들이지.”
만우는 차갑게 말했다. 지금 동군영은 지나치게 인정에 얽매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릉도원에서 얼마간을 지내면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정이 든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건 간에, 법은 인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니까.
“일단 다녀오겠네.”
“제기랄. 말귀는 지지리도 못 알아 처먹는 인간 같으니라고.”
만우는 얼굴을 구겼다. 동군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욕이라곤 하지만 증오해서 내뱉는 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 때 척사영이 나섰다. 그나마 동군영은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나았지만 호선이나 임수미는 치료가 더 필요했다. 방매와 김향이 바쁘게 약재를 달인다고 부산을 떠는 것을 본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지.”
그런데 그 때, 객잔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더니 방매와 김향을 찾는 객잔 주인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동군영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만우가 입을 열었다.
“피냄새다.”
“피냄새요?”
“부상자가 온 모양인데.”
하늘재의 객잔에 의원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김향과 방매가 맨날 약재 냄새를 풍겨댔기 때문에 객잔 주인이 급히 그 둘이라도 찾는 것이다.
“무슨 일인데?”
만우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방매와 김향에게 물었다. 방매가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부상자가 온 모양이야. 산적에게 당했다고 하던데.”
“산적?”
만우는 고개를 돌려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문경새재는 무릉도원이 있는 곳이다. 무릉도원에 소속된 이들은 산적이 아니다. 그들은 의적으로, 빼앗겨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자들의 곳간만을 턴다. 그런 그들에게 하늘재를 넘는 보부상들은 도적질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늘재는 보부상들이나 천민들이나 오가는 험준한 길이기 때문이다.
“봐봐.”
하지만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봤던 무릉도원. 그게 진짜 무릉도원일지. 가서 보면 되겠지.”
***** 하늘재의 객잔에서 무릉도원까지 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가본 길이기 때문에, 만우가 동군영을 들쳐 업고는 단숨에 산길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군영의 표정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럴 리가 없네. 내가 직접 보고 겪어보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사람은 원래 약한 동물이거든.”
하늘재를 넘다가 산적들에게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기고 부상까지 입은 보부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다. 하늘재 길에 산적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산적들이 나타난 지점이 무릉도원으로부터 멀지 않은 하늘재 길이었다.
“여기다.”
만우는 경신법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하늘재 길을 내달리다가 멈춰 섰다. 그곳에 피가 흐른 흔적과 함께 주변의 풀들이 짓눌린 흔적이 보였다.
“발자국이 저 쪽으로 이어집니다. 은공.”
척사영이 손가락으로 풀이 옆으로 누운 길을 가리켰다. 하늘재는 좁고 험준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재에 난 길로 움직이지 않으면 흔적이 남게 되어있다.
“쭈욱 이어집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동군영을 들쳐 업은 만우의 발끝이 땅을 가볍게 두드렸다. 쏴아아-!!! 만우의 머리카락이 풀럭였다. 척사영은 풀떼기의 끝을 밟고 쭉쭉 벋어나가는 만우를 보면서 감탄했다. 절정의 초상비(草上飛)였다. 척사영도 할 수는 있지만, 성인 남자 하나를 업고 저렇게 깔끔하게 나아가는 것은 자신 없었다. 만우에게서 느껴지던 태산 같은 존재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 확실히 만우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원래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벽이었는데, 이제는 벽이 앞에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만우가 성큼 나아간 것이다. 그렇게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저 멀리 한 동굴 앞에서 모닥불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만우는 동군영에게 손짓을 하고는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왜?”
“나으리가 보고 느껴야 하니까. 봐봐.”
만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팔짱을 꼈다. 동군영은 책 속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만우는 책은 읽어본 적 없지만, 직접 몸으로 세상의 풍파와 부딪쳤다.
‘인간이 그렇게 착하지만은 않다는 거.’
그렇게 해서 만우가 깨달은 것은 인간성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