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동군영의 용기(5)2020.12.05.
콰악!!! 하는 수 없이 만우는 천근추(千斤錘)를 사용해 흔들리는 몸을 고정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아룡의 꼬리가 만우를 후려쳤다. 천근추를 이용하면 경신법이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노린 것이다. 촤아아악!!!! 기면을 통해 막아냈지만 만우는 전신에 찌릿거리는 통증이 느껴지자 인상을 썼다. 불가사리가 화한 이룡검은 이무기의 공격에도 멀쩡했지만, 만우의 몸에 전해지는 부담이 보통이 아니었다. 화르륵!!!! 만우는 이룡검에서 검기를 일으켰다. 미미하게 진동하며 타오르는 검기였다. 만우는 심호흡을 하며 팔을 뒤로 뺐다. 사아아악!!!! 동시에 기로 만들어진 하늘이 만우와 이무기 주변을 물들였다. 기천의 4초식인 기천이었다. 하지만 혈사는 그런 만우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같은 수에 당할 것 같으냐!”
휘익!!!! 혈사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흑술이 기천을 거세게 밀어냈다. 아룡은 거센 콧바람을 내뿜고는 주변으로 검은 번개 수십 줄기를 떨어뜨렸다. 쫘자자자작!!!! 이무기가 천년동안 도를 닦아 여의주를 만들어 승천하는 용(龍)이 되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무기는 악수가 되고 다른 악수 네 마리를 흡수하면서 그에 준하는 권능을 얻게 됐다. 쿠오오오-!!! 악수가 된 이무기는 날 수 없는 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수의 악의가 담긴 포효가 주변을 휩쓸었다.
“죽어라!”
동시에 혈사도 마흑술을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기천을 향해 쏟아 부었다. 인간일 때보다 훨씬 더 정순한 악기로 사용하는 마흑술은 이 거대한 이무기를 불과 몇 달 만에 완벽하게 지배할 정도로 강력했다. 쩡-!!!! 이무기가 불러낸 수십 줄기의 검은 번개가 기어코 만우를 찾아냈다. 백색 검신이 빛을 발하는 와중에도 만우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쿨럭.”
만우가 핏물을 뱉어냈다. 결국 피하지 못하고 검은 번개를 막아낸 순간, 주변의 모든 검은 번개가 일거에 몰아쳤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내부가 진탕이 됐다. 그것을 본 혈사가 광소를 터뜨렸다.
“거기까지더냐?”
만우는 턱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핏물을 슥 닦아내고는 높은 곳에 서있는 혈사를 보면서 이를 드러냈다. 핏물 때문에 붉게 물든 만우가 혈사를 비웃었다.
“무인도 아니게 된 놈이 말이 많다.”
“뭐라?”
혈사의 두 눈에서 악기가 폭사했다. 만우는 그런 혈사를 보면서 이죽거렸다.
“이무기와 삼두호, 성성이. 악수를 다루는 주술사가 다 되었구나. 네가 바라는 영생의 결과가 겨우 그것이라니.”
“이제 와서 본좌를 격동시키겠다는 것인가?”
혈사의 두 눈이 번뜩였다. 만우는 혈사의 약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불사마공으로 이백 년을 살아온 혈사이지만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새 주술사가 다 된 그다. 무인으로써의 궁극을 보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연명했던 대가다.
“필요 없다. 어차피 다 죽이면 그만이다. 크흐흐. 중원으로 돌아가 모든 것들을 죽여 버리면 그만이란 말이다. 죽어라!”
혈사가 쌍장을 내뻗었다. 악기가 담긴 장력이 만우를 향해 짓쳐들었다. 동시에 이무기가 다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만우는 사방에서 짓쳐드는 검은 번개와 장력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만우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씨. 더럽게 쓰라리네. 너무 세게 깨물었나?”
콰과과광!!!! 만우의 신형이 이무기와 혈사의 공격에 가려졌다. *****
‘이대로는 안 돼.’
크와아앙!!!!! 호선이 악전고투하는 것을 보면서 동군영은 정신없이 흔들리는 호선의 등 위에서 이를 악물었다. 인간을 벗어난 영물과 악수의 전투에서 동군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촤악!! 호선의 몸에 상처가 하나 더 생기자 동군영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호선도 결국 패배할 것이다. 콰과가가가강!!!! 더군다나 만우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지막지한 괴한이 쏘아 보내는 장풍과 날뛰는 이무기뿐이었다. 동군영은 찰랑거리는 피웅덩이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안에 있던 심장.’
심장은 모든 생명체들의 약점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그리고 동군영은 그 심장에 반드시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위 말하는 육감인 것이다. 동군영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호선이 산록과 흑미호에 의해 뒤로 한 차례 밀리는 순간, 호선의 등을 잡고 있던 손을 놨다.
[아, 안 돼!]
풍덩!!!!! 호선의 목소리가 뒤늦게 울려 퍼졌지만 동군영은 이미 피웅덩이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다급해진 호선의 발톱과 이빨이 흑미호와 산록을 노리고 한층 더 강하게 몰아쳤다. ***** 시작은 가볍게 손목부터였다. 콰과가강!!!!! 만우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이무기와 혈사의 장력을 검 끝으로 받아내면서 자신이 넘지 못하던 벽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만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서 상대해야 할 강적이었던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만우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만우는 벽을 넘지 못 하고 있었다. 돈오와 깨달음만으로 넘는 것은 만우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가가강!!!! 만우는 평온해진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벽이 깨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혈사와 이무기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한층 더 공격이 강해져야 벽이 확실하게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떄문에 스스로 입술까지 짓씹어 피를 냈던 만우다. 그런 희생이 효과가 있어, 이무기와 혈사는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자신들의 공격이 만우의 몸 주변으로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괴물. 이런 와중에도 성장을 하는 것인가.]
소서노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괴물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만우를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골백번은 죽었을 이런 상황에서도 만우는 성장하고 있었다. 카가강! 카가강!!! 기천의 5초식, 기천무(氣天舞)를 추기 시작한 만우는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연약해 보였다. 하지만 점점 만우의 주변으로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우의 기천무가 점점 혈사와 이무기의 공격을 받아내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치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맨 처음에는 받아내던 혈사와 이무기의 공격이, 어느새 만우의 주변 1장으로 멀어졌다. 만우의 검은 쏘아져 들어오는 수백 발의 검은 번개와 악기가 담긴 광풍의 수백 개의 칼날, 그리고 혈사의 마흑술이 담긴 장력을 받아내고 흘렸다. 부르르! 이룡검에서 솟아오른 만우의 검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진동의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반개한 만우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홀로 검무를 추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였다. 혈사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
“마, 말도 안 된다! 어찌, 어찌하여!!!!”
검은 번개와 광풍, 그리고 마흑술 12성이 담긴 장력이 기천을 흩어내지 못하고 먹히는 것처럼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일찍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하면 만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조급함에 잡아먹혀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 챈 것이다. 그런데 손끝에 반탄력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반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만우가 자신들의 공격에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쳐내고 있다는 뜻이다.
“말도…… 말도…….”
혈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중원에서 악명을 떨쳤던 대마두, 대악인이 작은 반도에 들어와 대재앙의 귀환을 꾸미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만난 것이 만우라니.
“그럴 수 없다. 나는 무적이다. 나는 중원으로 돌아가 피의 탑을 쌓을 무적이란 말이다! 이 몸은 무적이란 말이다!!!!!!”
혈사가 두 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순간, 혈사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악몽이 일어났다.
쩌저저적!!!!!! 우뚝!! 미친 듯이 혈사의 마흑술에 사로잡혀 번개와 광풍을 불러일으키던 이무기가 우뚝하고 멈추더니,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검이 이무기의 전신을 난도질한 것이다. 쩌어억
“수백 년에 대한 복수는 내가 해줄 테니, 잠 들거라.”
파아아앗!!!! 그리고, 이무기의 검게 물든 전신이 수백 조각으로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만우의 신형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게 폭발적인 신법이 아니었다. 고요하면서 부드러운, 동시에 허공을 밟고 선 만우의 고고한 자태. 허공답보(虛空踏步). 혈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공을 들여 마흑술을 쏟아부은 이무기가 저토록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검강(劍强)…….”
혈사는 신음을 흘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만우의 이룡검은 더 이상 검기로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멀리서보면 그저 이룡검의 검신이 넓어지고 길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위에 흐르는 것은 타오르는 듯한 검기가 아니었다. 검강(劍强). 검기를 응축하고 압축하다보면 어느 순간 한계를 넘는다. 그렇게 된 검기는 한 번 분노한 바다가 그러하듯 고요함 속에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린 검강이 된다.
“현경(玄境). 현경이란 말인가.”
전설을 마주한 혈사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우는 이무기를 수백 조각으로 잘라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무기를 위한 위령제를 지내준 이후 전신에서 타오르는 충만한 힘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진인(眞人)의 경지.’
기천의 6품계인 진인의 경지다. 기천의 경지 구분은 무림의 것과는 달랐다. 만우는 자신의 주변으로 세 개의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더니 꽃잎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삼화취정(三花聚頂). 천화난추(天花亂墜)의 경지.’
만우는 이룡검을 휘감고 고고하게 흐르고 있는 검강을 보면서 웃었다. 동시에 생각만으로 검강이 아니라 다시 타오르는 듯한 검기가 이룡검에 깃들었다. 검강은 강력하지만, 내공소모가 극심하다.
“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될 혈사와 이무기를 만나 만우는 한 단계를 넘었다. 화경에 오를 때처럼 극적인 환골탈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우는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눈이 생겼음을(開眼).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육체의 환골탈태가 아니라, 만우의 정신이 한꺼풀을 벗고 성장한 것이다. 이 세상은, 명과 조선은 인간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만우은 느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것들. 피와 육체를 가지지 않은 생명들을 말이다.
“네 놈이 이백년간 품은 원귀(冤鬼)의 한(恨). 역겹다.”
만우는 혈사의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을 느꼈다. 원귀들의 한이었다. 원귀들이 얼마나 많이 들러붙어있는지 끔찍할 정도였다. 그렇다는 것은 혈사란 놈이 죽인 이들의 원한이 크다는 뜻이다.
“…….”
만우가 자신을 가리킨 순간, 혈사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불사마공과 마흑술을 대성했지만, 견뎌낼 수 없었다. 무공을 대성하였어도, 이백 년을 살아왔음에도 혈사는 만우처럼 격이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피와 목숨을 앗아간 살인귀인 혈사의 한계였다. 이백 년. 혈사가 보낸 이백 년은 만우가 보낸 이십오 년만도 못 했다. 키엑! 끼익!!! 만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만우의 존재감에 얼어붙었던 산록과 흑미호가 한 줌 재로 변했다. 별 다른 무공의 초식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검강이면 충분했다.
“아!”
그것을 본 혈사의 눈이 번뜩였다. 만우가 현경에 오른 것은 분명했지만 검강 이외의 또 다른 것, 심검(心劍)을 이용하지 못 한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기천의 진인은 화경의 극인 삼화취정과 현경의 초입인 천화난추를 뜻했다. 하지만 만우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는 혈사를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심검이 없다면 네 놈은 나를 죽이지 못해. 킥킥킥. 그래. 현경이라도 말이다. 그게 네 놈의 한계란 말이다!”
혈사는 만우를 보면서 미친듯이 웃었다.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 만들었던 모든 영물이 죽었지만, 영물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혈사 자신이 죽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만우는 흉물스럽게 몸이 여기저기가 썩어 들어가고 있음에도 생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는 혈사를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과연 그럴까?”
“그래! 그렇다. 죽지 않으면 되는 법이니까. 킥킥킥.”
마흑술의 정수를 이미 깨달은 그다. 하지만 만우는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웅덩이로 향했다.
“저 곳에 있는 것이 부셔져도?”
“…….”
혈사의 눈이 커졌다. 만우가 마흑술의 약점을 단박에 파악해냈기 때문이다. 만우의 기감은 화경일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저 피웅덩이 안에, 놈이 쌓아올린 마흑술의 정수가 있었다.
“어사 나으리. 뭐해. 빨리 부셔!!!!”
“뭐, 뭐???”
놀란 혈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피웅덩이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더니 동군영이 그 안에서 기어 나왔다. 그런 동군영의 한 손에는 저절로 펄떡거리는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혈사의 눈이 커졌다.
“아, 안 돼!!”
“으아아아아!!!!”
피로 온 몸이 젖은 동군영이 싸구려 철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심장을 내려쳤다.
“꺼흑!!!!!”
혈사의 눈이 커졌다. 고통을 느낄리 없는 몸이다. 그런데 혈사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혈사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흑술의 정수인 저건 무인에게는 단전이나 다름없는 것일터.”
“크으으…….”
혈사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만우는 손을 까닥해 혈사의 몸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이룡검에 찬란한 검강이 피어올랐다. 서거거걱!!!!! 퍼억, 퍼억! 퍽!!!
“끄아아아악!!!!!”
동군영이 여러 번 내려치자 심장이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줌 혈수로 녹아내렸다. 그와 함꼐 공중에 떠오른 혈사의 사지가 검강에 의해 끊어지더니 혈사가 끔찍한 비명소리를 토해냈다. 꾸르륵, 꾸륵! 심장이 터지자 피웅덩이 안에 차오른 핏물이 삽시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피웅덩이가 사라지고 드러난 곳에는 피가 모두 빨려 마짝 마른 시체 수 백구가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동군영은 그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목불인견의 참상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팔다리가 잘린 채 허공섭물로 떠오른 혈사를 보면서 차갑게 읊조렸다.
“네 놈은 앞으로 살지도 죽지도 못 한 채 평생 살게 될 것이다.”
불사마공의 근원은 그 누구도 꺨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혈사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혈사의 썩어가는 몸은 내공을 쌓을 수 없고, 놈의 마지막 한 수인 마흑술의 정수조차도 소멸됐다. 이제 혈사는 죽으려고 해도 죽지 않는 썩어빠진 몸뚱이가 되었을 뿐이다. 서걱!!!!! 만우는 검강이 서린 검을 휘둘러 막힌 입구를 뚫어냈다. 그러자 바깥에서 신선한 공기가 안으로 휙하고 몰아쳤다. 동군영이 비틀거리자 여기저기 찢어져 엉망이 된 호선이 그런 동군영을 받쳐주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과 호선을 한 번 쳐다보고는 혈사를 들어올린 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만우의 두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퍼억!!! 파바바박!!!! 만우는 그런 혈사를 들어올려 동굴 위 절벽에 몸뚱아리를 깊숙이 처박았다. 그리고는 검강을 끌어올려 깊숙히 혈사의 몸을 고정했다.
“호선.”
[네, 검주.]
호선이 핏물로 물든 호랑이 몸을 한 채 걸어 나왔다. 만우는 차가운 눈으로 혈사를 쳐다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근처의 모든 존재들에게 알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놈이 있으니, 매일 같이 와 뜯어먹고 침을 뱉으며 조롱하라고. 천년, 만년이 되도록.”
[……예.]
“검주. 검주우우우!!!! 끄아아아아악!!!!”
혈사가 몸을 들썩였지만 만우의 힘이 그 정도로 풀릴 리 없었다. 호선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선기와 함께 포효소리를 강하게 터뜨렸다. 호선이 선기와 의지가 담긴 포효소리였다. 그 안에는 만우가 말한 모든 것이 의지로써 함축되어 널리 퍼졌다.
“네 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온갖 벌레와 새들에게 뜯어 먹힐 것이다. 영원히.”
차갑게 혈사에게 저주의 말을 던진 만우가 동군영과 호선을 쳐다봤다. 동군영과 호선은 만우를 보고 멈칫했다. 만우의 격 자체가 달라지면서 뭔가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그런 둘을 보고서는 피식 웃었다.
“둘 다 고생 많았다. 특히 나으리.”
만우는 동군영이 아직도 손에 꼭 쥐고 있는 검을 보면서 말했다.
“다시 봤수다. 똥구녕인 줄 알았더니.”
만우가 이죽거리며 말하자 긴장이 확 풀렸다. 동군영의 얼굴 역시 풀어졌다.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똥구녕이 아니라 동군영. 부르려면 제대로 부르시게 만우 자네도.”
“크큭.”
웃음을 흘리는 만우의 머리 위로 반쯤 넘어간 달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사방으로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