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동군영의 용기(2)2020.11.24.
동군영은 송장이 걸어다니고, 말까지 한다는 것에 기겁하며 튀어나오며 검을 뽑아들었다. 채앵!!!
“불멸을 위한 과정일 뿐이니라. 헌데.”
괴한, 아니 송장이 동군영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라니. 신기한 놈이로고.”
송장은 자신이 팔목에 찬 금방울을 쳐다봤다. 사이한 기운이 흐르는 금방울로, 섭혼령(攝魂鈴)이라는 기물이었다. 이 방울을 흔들면 피리 소리와 방울 소리가 나면서 사람의 혼을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공 하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섭혼령에서 자유롭다는 것에 송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잡아서 네 놈의 머리를 열어봐야겠다.”
하지만 송장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잡아서 열어보면 된다. 어차피 마흑술의 완성을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송장은 히죽 웃으며 손을 뻗쳤다. 그런 팔에도 진물이 떨어지고 살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쉬익! 퍼억!! 그런데 그런 송장의 손을 동군영이 검으로 베어냈다. 아니, 정확히는 베어내려고 했지만 베이지 않았다. 베이기는 커녕 손의 궤적이 틀어졌을 뿐이다.
“호오?”
송장은 동군영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악당 놈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성 싶더냐?”
동군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검을 고쳐쥐었다. 단지 손을 쳐냈을 뿐인데 손바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송장이 방심을 한 덕분에 간신히 한 번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검을 배운 놈이구나. 검을 배운 놈이야.”
송장은 동군영의 자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술하지만 그래도 기초를 배운 검이었다. 송장은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더 열어봐야겠다. 선기와 검이라. 검선(劍仙)이 조선에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 했으니, 네 놈을 통해 다른 영물을 찾아내면 되겠구나.”
송장의 손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보기만해도 사이한 기운으로 물든 손이었다. 동군영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검을 곧추세웠다. 그런데 그 때, 송장의 모습이 동군영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쉬잇!!!
“끌끌끌.”
동군영이 놀란 순간, 송장이 신형이 동군영의 옆에서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그리고는 송장의 검은 손이 동군영의 머리를 부술 요량으로 날아들었다. 동군영이 죽었다 깨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죽는다!’
동군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쐐애애액!!!! 엄청난 풍압이 동군영의 갓을 날려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부서지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군영은 눈을 꼭 감은 채로 자신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게 났지. 그래. 나아.’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죽느니, 그냥 이게 나았다. 이게 죽는거다 하고 생각해보니 별 것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있을때와 별 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해요! 달려요 나리!!”
휙!
“으헉?”
그런데 그 때 무언가 강력한 힘이 동군영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동군영은 으헉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아리따운 미녀가 보였다.
“아. 선녀세요? 이상하다. 저승사자가 와야 되는데.”
동군영은 그게 선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으면 저승사자가 온다고 하더니, 선녀가 오는 모양이었다. 그 때 선녀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동군영을 쳐다봤다.
“정신차려요 나리!”
콰과가가강!!! 풀럭! 선녀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동군영이 뜨악하는 표정을 짓는 사이 나가는 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선녀가 팔을 휘두르자 위에서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이 박살이 나서는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저 호선이에요 호선!”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선녀가 눈에 익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선녀가 아니라 호선이었다. 그리고 동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신을 위해 호선이 왔는데, 나가는 입구가 막혔기 때문이다.
“왜 오셨습니까. 어차피 죽는거. 나만 죽는게 나은데.”
그제야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동군영은 비관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호선이라고 해도 아까 그 썩어가던 송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호선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동군영을 쳐다봤다.
“아무리 호선이 영물이라고 해도…….”
“뒤나 봐요. 뒤나.”
“……네?”
동군영이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뒤를 봐봣자 송장이나 다 죽어가는 영물 사슴 빼고 뭐가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검. 쏘아진 백색검신이 다시 허공을 격해 누군가의 손으로 척하고 들어갔다. 동군영의 입에서 구원자의 이름이 터져나왔다.
“만우우우우우우우!!!”
*****
“마공(魔功)이라.”
만우는 나부끼는 옷자락을 손으로 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이룡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사악한 기운이다!]
[우어어엉-!!]
소서노와 불가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우는 공력을 실어 내던진 검을 간단하게 손으로 쳐낸 송장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강하다.’
만우는 찌릿하고 몸을 파고들 것처럼 날카롭게 뻗어져 나오는 악기(惡氣)를 내공을 끌어올려 막아내면서 썩어내리는 몸을 피풍의와 붕대로 가리고 있는 괴한을 쳐다봤다.
“주작. 그 계집의 기운이 느껴지는 놈이구나.”
송장이 만우를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만우는 주작을 알고 있는 송장을 향해 포권을 취해보였다.
“무림의 후배가 선배께 인사드립니다. 어느 고인이십니까?”
만우는 송장에게서 범상치 않은 악기를 느꼈다. 악수라고 주작이 칭했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수는 인간의 악한 면을 본따 만든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 악수가 반드시 짐승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송장에게서는 무공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것도 대단히 사악한 마공의 잔재가 느껴진 것이다.
‘지금 세대가 아니라 전세대의 무림인이다.’
만우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이백 년 전, 무림 전체를 피로 물들였던 사악한 대마두가 있었다. 그 대마두는 영생과 불멸을 믿었고, 자신의 무공을 대성하면 불멸자가 될 수 있다면서 종교를 일으켜 그 종교로 중원을 휩쓸었다. 일만 명이 넘는 동남동녀의 피를 모아 인신공양을 하면,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무림 전체에 혈겁을 일으킨 대마두. 혈천지(血天地)의 혈사(血士). 구파일방 중 다섯 개의 대문파와 오대세가 중 삼대세가를 멸족까지 몰아가고, 마교까지 반수가 희생당해 기어코 황실에서까지 나서게 만든 희대의 악인. 혈천지의 혈사는 사술의 일종인 마흑술(魔黑術)과 불사마공(不死魔功)을 익힌 대악인이다. 심장이나 머리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았지만, 소림방장과 무당 장문인, 마교 교주의 협공으로 무림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사람이 살아있는채로 피를 뽑아내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며 괴물로 만드는 마흑술.’
불사마공보다 더 두렵다고 알려진 것이 혈사의 마흑술이다. 마흑술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체를 개조하여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특화가 된 사술이다. 강시술보다 한 단계 더 고절한 사술이 바로 흑마술인데, 그 흑마술은 혈사의 혈겁 이후 무림맹과 마교에서 철저하게 발본색원하여 모든 비서(祕書)를 불살랐다 알려져 있었다.
‘혈사.’
그런데, 혈사가 그 때 죽지 않았고 살아남아 마흑술과 불사마공을 익히면서 힘을 모았다면?
“본좌를 아는 구나. 놀라운고로.”
송장, 아니 혈사의 눈이 커졌다. 만우는 그런 혈사를 보면서 끄응하는 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상대가 혈사라면 주작이 왜 그렇게 말한 것인지 이해가 갔다.
‘이백 년 전의 괴물.’
무려 이백 년 동안 살아남은 괴물이다. 그 뜻은, 불사마공을 완성했다는 소리다. 죽지 않는다고 해서 불사마공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결국 저 몰골인 것을 보니 불사마공도 완벽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백 년 전에도 무림의 공포로 알려졌던 혈사인데, 그런 그가 조선에 있었을 줄이야.
“혈사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니. 무림이 발칵 뒤집혀질 일이군.”
만우는 검을 흔들었다. 강맹한 기운이 만우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혈사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이라. 무림에서 온 놈이더냐?”
“그래. 하필이면 조선에서 당신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주작이 심어놓은 주작의 정화(淨火)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지만, 만우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상대가 혈사라면 만우도 방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어어엉-!!]
모든 삿된 것을 불사른다는 불가사리가 울부짖었다. 존재 자체가 삿되고 악한 혈사 때문이다. 그런데, 혈사의 눈이 만우의 손에 들린 이룡검으로 향했다.
“영물. 아니! 그 이상의 짐승이로구나!!!!”
혈사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만우는 훼까닥 돌아간 혈사의 두 눈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꼭 잡아서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 그 놈이 있다면 내 세상을 발 아래 꿇릴 수 있을터.”
혈사의 전신에서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만우가 공력을 끌어올려 발출하자 혈사의 기운과 만우의 공력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일으켰다.
“다오. 그 놈을.”
혈사는 만우의 손에 들린 이룡검을 향해 손짓했다. 만우는 그런 혈사를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강하긴 하나.”
확실히 혈사는 강하긴 했다. 주작이 주의를 줄 만했다. 하지만 만우는 이기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반 송장이 된 늙은이가 욕심은 많아서.”
부아앙!!!! 이룡검이 하얀 선이 되서 허공을 길게 세로로 그었다. 불시에 튀어나온 기천의 제1초식, 기선(氣線)이었다.
“욕심에 눈이 멀면 약도 없지.”
서컹! 철퍽! 만우의 검에 혈사의 몸이 반토막이 났다. 동시에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혈사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만우는 그런 혈사를 보면서 눈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크크큭…….”
하지만 혈사는 죽지 않았다. 이미 이백 년 전에도 혈사는 이 정도에는 죽지도 않았다. 불사마공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사마공을 이백 년을 익혔고, 거기에 마흑술이 사람이 아니라 영물을 사로잡을 정도까지 경지에 이르렀다. 만우도 이 정도에 혈사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르륵! 척! 두동강이 난 혈사의 몸에서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잘린 혈사의 몸이 턱하고 붙었다. 만우는 마흑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느껴지질 않는군.’
저 마흑술도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닐터다. 제 아무리 악인을 뛰어넘어 주작에게 악수(惡獸)란 소리를 들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가 사라졌다면 악선(惡仙)이라 불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흑술이 품고 있는 악기의 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만우도 장기전을 고려하면서 기운을 분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만우는 입술을 혀로 할짝하고 핥았다. 긴장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서 불러내.”
만우는 혈사를 향해 이룡검을 까닥거렸다. 혈사는 이백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가 가진 무공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가 죽지않는다는 점과, 그가 만들어낸 괴물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무림의 기둥들이 쓰러진 것이다. 그런 혈사가 이백년 동안 준비한 괴물들이다. 만우는 그런 혈사가 준비한 괴물이 어떤 것들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네놈이 영물로 만들어낸 괴물들. 불러내란 말이다.”
콰아아!!! 만우의 손이 하얀 빛살에 휩쌓였다. 그리고 이룡검의 검극에 순식간에 집중된 만우의 공력이 세상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혈사를 향해 쇄도했다. 기천 제3초식 기극(氣極). 단순한 찌르기지만 만우의 손에서 펼쳐진 찌르기인 이상 그냥 보통 찌르기가 아니었다. 카가가각!!!! 만우의 기극이 혈사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어 버리려는 그 찰나의 순간, 공중에서 검은 물체가 뚝하고 떨어져 내리더니 만우의 기극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막아낸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삼켜버린 것이다. 크허어어엉!!!!!! 동시에 동굴 전체를 무너뜨릴 듯한 거대한 포효 소리가 괴물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크허엉! 크헝!!! 그런데 그 소리가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삼두호(三頭虎). 온몸이 마흑술에 잠식돼 붉은 안광만이 번뜩이는 삼두호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