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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동군영의 용기(1) (198/400)

198. 동군영의 용기(1)2020.11.21.

만우는 호선만을 데리고 나섰다. 다른 이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는 고수들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선을 대동한 이유는 그녀가 선기와 상극인 악기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악기를 감지하는데 있어서만큼은 호선이 만우보다 더 뛰어났다.

1655323894032.jpg“주작께서…….”

16553238940326.png“그래. 왔다 갔다.”

호선은 만우를 보자마자 주작이 왔다갔다는 것을 눈치챘다. 주작이 불어넣은 정화(淨火)를 느낀 것이다. 만우는 의외의 수확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주작이 이 정화를 불어넣어줄 정도로 강한 악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16553238940326.png“좋지. 안 그래도 손발이 찌릿거리는데 말이야.”

손과 발이 근질거렸다. 주작이라는 강자를 앞에 놓고도 그냥 놓아보냈기 때문이다. 한 번 발동한 투지는 계속해서 만우의 손발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악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만우에게 걱정보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1655323894032.jpg“…….”

어둠이 내려앉은 새재의 험준한 숲 속을 헤집고 다니던 호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만우는 그런 호선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발견한 것이다. 덜덜덜 그런데 호선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호선은 마치 학질에 걸린 것처럼 부들거리며 떨었는데, 만우는 그녀가 겁에 질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웅!!! 만우가 공력을 뽑아내어 호선의 몸 안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호선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공력이 몸을 한 바퀴 둘면서 호선의 몸을 진정시킨 것이다.

1655323894032.jpg“죄, 죄송해요.”

호선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만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호선의 어깨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16553238940326.png“어느 쪽이지?”

1655323894032.jpg“저기. 저 쪽 능선을 넘어가면 돼요. 거기서…… 강대한 악기가 느껴져요. 매우 어둡고 끈적거리는 듯한 악기.”

호선은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악기였다. 그냥 밤하늘이 보일 뿐이었다.

1655323894032.jpg“엄청나게 강한 악수가 있는 것 같아요. 주작께서 노파심을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주작은 강대한 신수다. 그녀는 남방의 수호자다.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수호자로써 선계에서 속세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 그녀가 대체자를 찾았다는 것은, 그만큼 악수가 강대하다는 뜻이다.

16553238940326.png“됐지?”

만우의 손이 호선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러자 호선의 눈이 커졌다. 만우의 손을 통해 들어온 뜨거운 불의 기운 때문이다. 주작의 정화. 만우는 그 정화를 조금 떼어 호선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호선은 자신의 선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냈다.

1655323894032.jpg“그…….”

16553238940326.png“됐고. 넌 따라오지 말고 똥구녕. 그 놈 보이면 낚아채.”

1655323894032.jpg“그, 그걸로 될까요?”

호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우는 피식 웃으며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6553238940326.png“나, 검주다. 검주.”

1655323894032.jpg“몸 조심하세요.”

16553238940326.png“조심이라.”

만우는 피식 웃었다. 누군가에게 몸조심하라는 말을 들은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아는 호선이 저리 나올 정도이니 상대가 정말 강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16553238940326.png“오냐.”

파악!!!! 고개를 끄덕인 만우의 신형이 세찬 광풍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의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호선은 그렇게 사라지는 만우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악수의 악기. 그녀의 선기가 순간적으로 잡아먹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선은 이곳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만우의 무사귀환을 비는 것 밖에는 없었다.

1655323894032.jpg“무사하시기를…….”

호선이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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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군영은 숨소리마저 조심한 채 살금살금 걸어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굴로 향했다. 혹시나 주변에 누군가 있을까 싶어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동군영은 자신이 일어났던 공터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듣고는 재빨리 몸을 날려 근처의 나무 뒤에 숨었다. 딸랑, 딸랑, 딸랑!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그런 동군영의 눈에, 이해하지 못할 광경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분명히 공터에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동굴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눈이 풀린 채로, 뭔가에 홀린듯 동굴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군영이 침을 꿀꺽 살폈다. 불길했다. 동군영은 그렇게 줄 지어 들어가는 사람들 뒤꽁무니에 슬쩍 따라붙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사람은 뒤에 동군영이 따라붙었음에도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노인부터 시작해 남자, 여자, 아이를 가리지 않은 행렬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군영은 침을 꿀걱 삼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화악!

16553238961881.png“……!!!”

동군영은 동굴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지독한 악취가 콧속을 파고드는 것에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한 것이다. 동굴은 누군가 인공적으로 절벽을 파낸 듯 일자로 쭉 뻗어있었는데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의 넓이였다. 그곳을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들어갔는데,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악취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혼이 나간 사람들은 그 악취에도 잘만 앞으로 걸어갔다.

16553238961881.png“후욱.”

동군영은 소맷자락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자 발밑이 질퍽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진흙 같은 오물이 바닥에 흥건했다. 동군영은 대단히 꼐름칙했지만 그래도 행렬을 놓치지 않고 따라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더 들어갔을까, 이제는 악취에 코가 익숙해질 법해졌을 때 갑자기 동굴 안이 확 넓어졌다. 그리고 동군영은 기함하면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작은 틈이 보인 것이다. 그들은 차례대로 핏물이 모여있는 거대한 웅덩이 같은 곳으로 멍한 눈을 한 채 들어갔다. 꾸르륵, 꾸륵. 대체 그 웅덩이가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 동굴 깊숙한 곳에 흐르는 지하수 같아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시뻘건 물이 찰랑거리는 그곳에서 엄청난 악취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6553238961881.png“이건……사술?”

동군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임금의 통치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특수한 방법으로 홀린 다음 사람들을 선동질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동군영이 보기에,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위험해보였다. 꾸르륵!!! 시뻘건 웅덩이에 들어간 사람들의 정수리가 시뻘겋게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 위로 공기방울 몇 개가 꾸르륵거리며 피어올랐다. 동군영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움켜쥐었다.

16553238961881.png“무슨…… 대체 무슨 일이…….”

동군영은 손 끝이 하얗게 변하도록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무언가 의지할 것이 생기니 떨림이 조금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기괴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출렁! 사람들이 사라진 피웅덩이가 한차례 크게 출렁이더니, 두 눈을 부릅 뜨고 지켜보고 있던 동군영의 눈에도 웅덩이에 들어찬 피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꿀럭, 꿀럭, 꿀럭 무언가 웅덩이에 고인 핏물을 마시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웅덩이의 핏물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 동군영은 그 웅덩이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싶다는 것을 눈치챘다.

16553238961881.png‘저 안에 가득 찰 정도의 핏물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가 필요했다는 것일까. 동군영은 구토할 것 같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런데 그 순간, 동군영의 귀가 멍해졌다. 삐이-!!!! 먹먹해진 귀에 동군영이 비틀거렸다. 골이 울리면서 몸의 균형을 잡을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동군영의 먹먹해진 귀에 무언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꾸에에에에!!!!! 동군영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돌린 동군영의 눈에 왕관 같은 뿔이 피에 젖은 채 입을 쩍 벌리고 고통스런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사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크기의 사슴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영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영물의 몸에 이리저리 검은 핏줄이 솟아있었고, 영물의 눈과 코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사슴이 모습에 동군영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파악.

16553238961881.png“큭…….”

아랫입술이 터지면서 비릿한 피가 입 속으로 흘러들자 동군영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두 눈을 부릅 떴다. 귀가 뜨근해서 만져보니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동군영은 먹먹한 와중에도 주변을 살폈다.

16553238961881.png‘구해줘야 돼.’

뭔지는 모르지만 저 사슴을 구해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동군영은 검병을 쥐고 있는 손을 몇 번 움직여 보았다. 꼬물꼬물 사슴의 몸이 반쯤 드러났는데, 동군영은 웅덩이에 가득 찬 피가 사슴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저 핏물이 사슴의 몸으로 전부 흡수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니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16553238986482.jpg[끈질긴 놈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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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때,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누가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 했는데, 사슴의 왕관 같은 뿔을 살포시 밟고 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피풍의를 입은 이의 목소리는 가뭄에 논이 갈라지듯 메마른 목소리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에 동군영이 눈을 크게 떴다.

16553238986482.jpg[마흑술에 이토록 오래 버티는 놈이라니. 역시 이 조선이란 작은 반도는 기이한 곳이구나. 영물들의 영기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 영물들의 수도 많고. 허허.]

노인으로 짐작되는 괴한은 흡족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슴이 두 눈을 부릅 뜨고 부들거리며 떨어댔지만 노인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16553238986482.jpg[포기하면 편해지는 것을. 그리 버텨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이냐. 등선? 다 쓸모 없는 짓이니라. 그런 힘을 가지고 말이다.]

괴한은 섬찟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동군영의 눈에 반쯤 핏물이 빠진 피웅덩이 사이로 솟아오른 작은 무언가가 보였다. 심장이었다. 그 심장이 펄떡거리며 피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내공이 없는 동군영이 느끼기에도 요사스럽기 그지 없는 사이한 기물이었다. 동군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16553238961881.png‘저것이라면.’

저 심장을 없앤다면 사슴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군영은 심호흡을 깊게 몇 번을 했다. 몸의 떨림이 가시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미적거리고 있다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움직여야 한다.

16553238940326.png[고민하기 전에 움직여라. 힘들다고 해서 멈추지 마라.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강해. 그러니 네 머리가 하는 말을 전부 믿지 마.]

검을 휘두르는 동군영 자신에게 만우가 했던 말이다. 만우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동군영은 몸의 떨림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느꼈다.

16553238961881.png‘만우보다 강할 리 없어.’

지금까지 동군영이 살면서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강한 것은 만우다. 그런 만우도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것도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우보다 강할리 없으니, 동군영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38961881.png‘저걸 없앤다.’

동군영은 다리에 힘을 줬다. 섬전처럼 뛰어나가 검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때, 동군영의 목줄기에 소름이 쫘악하고 일어섰다.

16553238986482.jpg“쥐새끼로고.”

분명 사슴의 머리 위에 서있던 괴한의 목소리가 동군영의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동군영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검은 피풍의를 입은 괴한은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붕대 사이로 지독한 악취와 흘러내리는 고름과 진물이 가득했다.

16553238961881.png“시, 시체!!!!”

16553238986482.jpg“시체가 아니니라.”

송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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