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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신수 주작(2) (195/400)

195. 신수 주작(2)2020.11.10.

하지만 호선은 동군영에게 분명히 말했다.

1655323826824.png‘수양을 쌓지 않는 영물의 선기는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오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저 녹산이 언제 악수(惡獸)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선은 자신의 예를 들었다. 호선이야 500년이나 살아오면서 등선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낙선(落仙)이 되었음에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쌓아온 선기와 수양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산은 고작 이백 살이 된 영물이다. 그런데도 수양을 버리고 속세의 삶을 택했다는 것은 훨씬 더 빠르게 낙선이 아니라 악수(惡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16553238268246.jpg[그 전에 처리를 해야 합니다 나리. 악수가 된다면…… 저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호선은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악수가 언제 될지는 호선도 모른다고 했다.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한 20년 정도 뒤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로 백성들의 평화와 행복을 뺏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동군영은 과연 자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지 고민이 됐다.

1655323826824.png‘난 주상전하께서 내려주신 권한으로 이들을 계도할 권리가 있는 감찰관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도,

1655323826824.png‘관리가 된 이유는 바르게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함이다(政治). 그런데 이미 저들은 행복하다. 그렇다면 내가 저들의 행복을 방해한다면, 난 무엇이란 말인가.’

그 고민이 계속해서 동군영을 번민하게 만들었다.

16553238268261.jpg“맛있게 드쇼.”

1655323826824.png“감사합니다.”

동군영은 식사시간이 되어 배식하는 곳에 가 주먹밥 한 덩이와 감자 한 덩이를 받았다. 그리고 바가지에 된장을 푼 뜨끈한 국까지 받자 그럴듯한 한 끼가 되었다. 우걱우걱. 동군영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음식을 밀어넣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하게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음식을 먹던 동군영의 귀가 순간적으로 쫑긋하고 섰다.

16553238268261.jpg“……걱정이네.”

16553238268261.jpg“에이. 잠깐 감기걸리신 거겠지. 두목이 어떤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16553238268261.jpg“그래도 의원이라도 데려와야 하는것 아닌지.”

16553238268261.jpg“그 정도란 말인가?”

동군영은 그들이 무릉도원의 산적이란 것을 눈치채고는 귀를 기울였다.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 하면서 모든 신경을 귀에 쏟아부은 것이다.

16553238268261.jpg“벌써 사흘째네.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시다고 하더니 앓아누으셨어.”

16553238268261.jpg“이전에도 그러지 않았는가. 기다리면 결국 괜찮아 지셨고.”

16553238268261.jpg“그래도 반복적으로 일어나니 걱정이 되어 말일세.”

동군영의 표정이 굳었다. 산적들의 두목, 녹산이 쓰러졌다는 것에 산적들이 걱정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녹산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뜻에 동군영은 와락 불안해졌다.

1655323826824.png‘설마…….’

하지만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 법이다. 그날 밤, 무릉도원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하늘이 무너지고 산봉우리가 무너지지 않나 싶을 정도의 거대한 폭음이었다. 놀란 무릉도원의 사람들이 나와 폭음과 굉음의 진원지를 쳐다봤을 때,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던 녹산이 머물고 있던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과, 일정 반경 이내에 있던 모든 나무집들이 부서졌다는 것을. 놀란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기이한 현상과 조우했다. 이렇게 집이 많이 무너졌으면 그 안에 사람들이 깔려죽었거나 다쳤어야 하는데, 핏자국 하나 없었고 사람들도 하나 없었던 것이다.

16553238297613.jpg“처……천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에 무릉도원의 백성들이 천벌이라면서 공포에 떨었고, 그 누구도 그 근처로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 했다. ***** 영남로는 과거길이라 불릴 정도로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30리마다 주막이 하나씩 있는 등 여로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편한 길이었다. 그렇게 한양을 출발해 충주를 거쳐 계속해서 남하하다가 보면 내륙에서 영남으로 들어갈 수 있는 험준한 언덕길이 나온다. 그 언덕길은 경사가 있지만 그래도 선비들이 오가는 길이고 물류가 이동하는 길이기 때문에 가파르긴 해도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편했다. 그런데 그렇게 편하게 갈 수 있는 새재길이 아니라 만우와 방매, 김향은 훨씬 더 험난해 눈물고개라고 불리는 하늘재를 선택해 가파른 언덕을 넘고 있었다.

16553238297618.png“하악…… 하악…….”

만우는 끙끙거리면서 맨 뒤에서 올라오는 방매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수레도 없었다. 수레를 타고, 그걸 슌스케가 끌면 편하기야 했지만 문제는 지금 일행 중에 양반이 없다는 것이다. 양반도 없는 양인들끼리 외팔이인 슌스케에게 수레를 끌게 한다? 이게 괜히 시빗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만우는 하는 수 없이 도보를 선택애햐만 했다. 하지만 도보를 선택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만우와 감령, 필두와 슌스케가 아니었다. 그 네 명은 열나흘길이라는 영남로를 하룻밤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도 차고 넘치는 체력을 지닌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매와 김향이었다.

16553238297622.png“네가 더 낫다.”

16553238297626.png“그럼요!!!!”

김향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방매도 당장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헉대긴 해도 속도가 느린 건 아니었다. 단지 다른 이들이 체력이 괴물 같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매 혼자 뒤쳐지지 않았다. 방매말고도 방매 옆에 방매와 비슷하게 뒤쳐진 사람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16553238297631.png“학, 학, 학…….”

볼이 움푹 들어가 몸이 정상인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겨서 동행하고야만 무화 임수미가 방매 옆에서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조금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는데, 임수미는 만우에게 기천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따라나섰다. 그것도 하오문의 모든 지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만우를 따라나선 것이다.

16553238297622.png“아니. 누가 떼먹는데?”

만우는 무화라 불릴 정도로 출중한 미모를 가진 임수미와, 방매가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따라오는 것에 괜히 신경질을 냈다. 오히려 김향이 걱정했던 것 중에 가장 말짱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새재길을 걸으면서 오히려 더 쌩쌩해졌다. 자연의 기가 충만한 이곳에 있으니 기력(氣力)이 활발하게 움직여서 그렇다고 소서노가 설명해주었다.

16553238327375.png“그러면 조금 쉬었다 가시지요.”

16553238297622.png“후우. 알겠어. 쉬자고.”

필두의 말에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힘들어하는 두 여인이 있으니 만우도 냉혈한이 아닌 다음에야 쉬어가자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16553238297622.png“하늘재 객주?”

16553238327375.png“이 길 끝에 있다고 합니다. 아까 안내인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영남로의 열나흘길을 택했다. 그런데 문경새재까지 오는데 열이틀이 걸렸다. 방매와 거의 일반인 수준으로 체력이 떨어져버린 임수미 때문이다.

16553238297618.png“후욱. 후욱. 후욱.”

16553238297631.png“하아, 하아, 하아.”

쉬어가자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매와 임수미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어깨를 들썩거렸다. 어지간히도 힘든 모양이었다. 만우는 그 둘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16553238297622.png“앉아. 가부좌 틀고.”

만우는 특별히 변덕을 부리기로 했다. 임수미는 그 말에 눈을 빛내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지만 방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16553238297618.png“헉, 헉. 가부좌?”

전국을 거의 다 돌아다니고, 한양제일매분구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뻔질나게 한양을 누비고 다녔음에도 열이틀이나 걸리는 거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평지도 아니고, 지금은 눈물고개라 불리는 하늘재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게 정상이었다.

16553238297622.png“그래. 쟤 따라해.”

16553238297618.png“알았어.”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두 여자의 등에 장심을 대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그러자 들썩이던 두 여자의 가슴께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내공을 두 여자의 몸에 불어넣어준 만우가 장심을 떼자 방매가 눈을 번쩍 떴다.

16553238297618.png“와. 이거 뭐야? 엄청 시원한게 느껴졌는데.”

16553238297622.png“내공이라는거다.”

16553238297618.png“진짜? 막 그거 있으면 안 힘들고 그런거야?”

방매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임수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경악을 하다 못해 질린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38297622.png“뭘 그렇게 봐.”

16553238297631.png“가, 감사합니다 대협.”

임수미는 만우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만우는 그런 임수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방매는 내공이 없어서 그냥 시원함만 느꼈지만, 임수미는 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만우의 내공에 놀란 것이다.

16553238297631.png‘대해(大海).’

그것 외에는 잠깐 엿본 만우의 공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오문도의 딸로 그녀가 해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하오문도들에게 받은 상납금을 모아 벌모세수까지는 아니어도 추궁과혈 비슷한 거라도 해주기 위해 초절정 고수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전신이 아니라 단전 부근만 간신히 가능한 정도였는데, 그 때 처음으로 느껴본 초절종 고수의 내공만 해도 임수미에게는 따라갈 수 없는 하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만우는, 만우의 내공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퍼도, 퍼도 티도 안 날 것 같은 거대한 바다. 그 바다를 품고 있는 만우를 보니 임수미는 기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불태웠다. 기천을 익히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산 무공으로 쌓은 내공을 폐한 그녀였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욱 컸다.

16553238297622.png“넌 객주 도착하면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축난 몸이나 회복시켜. 방매. 너도 마찬가지고.”

16553238297618.png“우으. 알았어. 안 그래도 그럴거야. 아고고. 삭신이야. 나리는 잘 계시겠지?”

방매의 말에 만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나봐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월루를 통해 온 서신이니 그리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는 뜻일 것이다.

16553238297622.png“응?”

퍼질러 앉아 쉬고 있는 두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린 만우의 얼굴이 굳었다. 웬 여자가 김향에게 말을 걸고 있었는데, 그 여자의 기척을 만우가 알아채지 못 했기 때문이다.

16553238297626.png“저기요.”

16553238268261.jpg“저기?”

그 때 김향이 손가락을 들어 만우를 가리켰다. 그러자 김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만우를 쳐다봤다. 그순간 만우의 허리춤에 걸린 이룡검이 찌르르하고 울었다. 부르르르!

16553238268261.jpg“하늘재 객주에 오시는 손님이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여자는 이십대, 혹은 삽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평범하게 기워입은 옷을 보니 신분이 귀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만우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16553238297622.png‘뭐지?’

저 여자가 나타나는 것을 만우는 전혀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조우한 이 순간에는 저 여자에게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만우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 같으면 잘못 느꼈나보다 싶어서 넘어갈테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16553238297622.png‘내가 그럴리 없으니까.’

만우는 자신이 그럴리 없다고 확신했다. 상대방은 절대로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16553238268261.jpg“곤란한 일을 겪으신다면, 하늘재 객잔의 지붕 위에 이 천을 감아놓아주세요. 좋은 거래가 될 것 같으니까요.”

여자는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38297622.png“정체는 그렇다고 쳐도, 얼굴까지 숨기고 오는 외인(外人)을 반기는 성격은 아니라.”

만우의 말에 놀란 감령과 필두, 슌스케가 무기를 뽑아들었다. 동시에 소서노가 이룡검에서 빠져나오며 김향에게 말했다.

16553238268261.jpg[뒤로 물러나거라!]

소서노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불가사리가 부들거리며 떨어댔다.

16553238268261.jpg[불가사리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아니, 이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데…… 대체 불가사리가 무엇을.]

소서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흘리면서 만우를 지그시 쳐다봤다. 동시에 여자가 자신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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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그런 여자의 손끝에서 불똥이 하나 피어오르더니 여자의 얼굴이 변했다. 지극히 평범한 저잣거리의 아낙네에서, 색목인이라 해도 믿을 수 있는 얼굴로 뒤바뀐 것이다. 눈보다 새하얀 것 같은 피부에 붉은 눈, 그리고 타오르는 듯한 머리까지. 그런 얼굴로 바뀐 여자가 만우를 향해 눈을 찡긋한 다음 다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16553238297622.png‘……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만우는 여자에게서 여전히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긴장했다. 무림을 독보할 때도, 그 어떤 무인을 만나도 이 정도로 긴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긴장이 됐다. 그렇다는 뜻은 하나였다.

16553238297622.png‘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만우에게 천 하나를 던졌다. 그러자 하늘거리며 떠오른 천이 누군가가 입으로 후 분것처럼 날아가 이룡검의 손잡이에 천이 감겼다.

16553238268261.jpg“반드시요. 조만간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환하게 웃으면서 여자가 만우에게 인사를 했다. 주변에서 무기를 빼든 세 명의 초절정 고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만우는 여자에게서 그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웃어보였다. 강자다. 그것도 만우를 긴장하게 만들 정도의 강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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