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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옹주와 호위무사(3) (190/400)

190. 옹주와 호위무사(3)2020.10.24.

16553237016001.jpg“커…… 호? 검주 대협이 왜 여기에…….”

16553237016007.png“이 기운을 느끼고 온거야?”

16553237016001.jpg“네? 네. 웬 마기가 느껴지는가 싶어 왔는데…… 다들 안면이 있는 분들이네요?”

호선이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살포시 웃었다. 만우는 그런 호선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16553237016007.png“끼어들지마라.”

16553237016001.jpg“으음…… 한 분만…….”

호선은 옥령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혈성이 개방되지 않은 상태의 옥령은 얌전한 규수에 불과했다.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37016007.png“금한다.”

16553237016001.jpg“네, 네. 그럼 전 한 쪽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만우는 마음대로 하라면서 주창과 그 뒤에 긴장한 얼굴로 선 위문과 웅풍, 백영, 마일, 옥령을 차례대로 훑었다. 그리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16553237016007.png“내 앞에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면, 각오는 되어 있겠지?”

화악!!! 만우에게서 무형화된 기운이 노도처럼 일어나자 주창이 앞으로 나서 그 기운을 막아냈다. 주창에게 대부분의 기운이 막혀 흩어졌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나머지 투귀대의 고수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37016039.png“낭황과 살풍대의 일은 우리의 권한 밖이었소.”

16553237016007.png“그래서. 같은 마교가 아니다?”

16553237016039.png“같은 동료에게 무기를 겨눌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낭황과 살풍대가 마교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16553237016007.png“이 세상에는 꼭 너희들이 저지르지 않아도 이고 살아갈 업이 있는 법이지. 너희들이 마교라는 이유만으로 무림맹과 날을 세우는 것처럼.”

무림맹과 마교가 으르렁대는 이유는 대와 대를 이어 내려온 깊은 원한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한은 결국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대가 쌓은 원한이지 그들이 쌓은 원한이 아니다. 그래도 마교와 무림맹은 그들이 겪지도 않은 일로 서로를 적대하고 경계한다.

16553237016007.png“낭황과 살풍대가 저지른 원죄. 너희들이 마교라면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그게…….”

만우는 이룡검의 검집에 손을 얹었다.

16553237040967.jpg[전투더냐?]

뿌오오오-!!! 이룡검에 손을 얹자 소서노와 불가사리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불가사리는 삿된 것들이 눈 앞에 있다는 것에 약간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16553237040967.jpg[삿된 것들을 먹고 싶다고 난리구나. 저들이 가진 쇠도 탐이 난다고 하는군.]

소서노는 불가사리의 의지를 만우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만우는 그런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안았다.

16553237016007.png“본주가 너희들을 단죄하기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콰앙!!!! 앞에서 만우의 기운을 막아내던 주창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주창은 내부가 진탕되는 듯한 충격을 먹고는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16553237016039.png“이 무슨.”

만우는 분명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손을 움직이거나 발을 움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창은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말이다.

16553237016039.png“현경…….”

지고한 경지라는 현경. 그 경지를 목전에 둔 것이 틀림 없었다. 현경에 올라서면 정신만으로 상대를 격살할 수 있는 심검(心劍)을 사용할 수 있다 알려져 있었다. 무당파의 개파조사인 장삼봉과 소림사의 초대방장인 달마대사, 그리고 초대 천마만이 올랐다는 전설 속의 경지가 바로 현경이다.

16553237016007.png“그러니 말하라.”

스르릉. 만우는 신이룡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검집에서 빠져나온 것이 기쁘다는 것 같았다. 동시에 만우의 기세가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처럼 날카로워지자 투귀대의 고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만우를 마주한 투귀대 고수들의 전의가 한 풀 꺾였다.

16553237040987.jpg‘이길 수 있을까?’

만우를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아무리 백전을 겪어온 노회한 투귀대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16553237040967.jpg“대협!”

그런데 그때, 만우의 예기를 거스르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 만우는 투귀대 고수들 중에서도 가장 그 실력이 떨어지는 이가 나섰다는 것에 이채가 서렸다.

16553237016007.png“머리 굴리는 놈이구나.”

고오오!!!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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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우는 기세를 낮추지 않았다. 그에 앞으로 나선 마일의 입가에 새빨간 피가 흘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16553237040967.jpg“파천서생!”

16553237040967.jpg“군사!!”

그런 마일의 돌발행동에 놀란 위문과 웅풍, 백영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만우는 그들을 보면서 웃음을 흘렸다.

16553237040967.jpg“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시옵소서.”

만우는 마일의 얼굴을 보면서 팔짱을 꼈다. 하지만 만우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만우는 턱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37016007.png“말해봐라. 그 목을 오래 지키려면 구미가 당겨야 할 것이다.”

마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입에서 짙은 혈향이 났다. 위문과 웅풍, 백영이 힘을 보태서 막아준 덕분에 마일에게 쏠리는 압력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마일은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검주는 투귀대 전원이 나서도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화경의 고수인 주창이 섞여 있다고 해도 말이다.

16553237040967.jpg“일패(一覇) 혈세천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일은 목을 가다듬었다.

16553237040967.jpg“천마께서는 검주 대협의 강함을 인정하시고, 일전의 수치를 씻기 위해 검주 대협을 왜(倭)로 청하시어 그곳에서 자웅을 겨루자, 라고 하셨습니다.”

16553237016007.png“혈세천마, 그 아저씨가?”

만우의 눈이 커졌다. ***** 슥, 슥슥 방매의 조심스러운 붓질에 중전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사해지자 공주 둘이 옆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방매는 상궁과 나인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쳐다보고 있었지만 한치도 흔들림 없이 능숙하게 중전의 얼굴을 색으로 물들였다.

16553237040967.jpg“대단하구나. 대단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동경에 비춰본 중전이 크기 만족하자 방매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37104904.png‘손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아무리 방매가 사교적이라고 해도 중전 앞에서는 바짝 쫄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방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37104904.png‘내가 언제 궁중화장품을 써보겠어.’

확실히 중전이 쓰는 화장품들은 방매가 지금까지 봐온 것들에 비교해 고급스러운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미안수부터 시작해 밀랍으로 만든 연지와 분, 그리고 납유와 족집게, 빗까지. 특히 참빗이 옥으로 만들어 머리를 빗는데 최고였다.

16553237104904.png“마음에 드시다니 다행입니다.”

16553237040967.jpg“상궁이나 나인들보다 낫습니다. 훨씬 나아요.”

특히 중전은 자신의 피부색이 하얗게 살아나고 주름이 가려졌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화장만으로 이전보다 오 년은 더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16553237040967.jpg“헌데 하나 궁금한게 있습니다.”

중전은 동경 너머로 비치는 방매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방매는 중전의 머리를 빗어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16553237104904.png“예.”

16553237040967.jpg“옹주자가는 많은 화장품을 봤을터. 궁중의 것과 비교해 그 질이 어떠합니까?”

방매의 일이 바로 그런 화장품들을 파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중전은 그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방매는 고개를 숙였다.

16553237104904.png“모두 훌륭하옵니다. 소녀가 궐밖에서는 본 적이 없는 최고 품질의 것들이옵니다.”

16553237040967.jpg“그래요?”

중전이 슬며시 웃어 보였다. 그런 중전과 방매 사이가 좋아보였는지 경안공주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16553237040967.jpg“어마마마. 소녀도 화장을 배우고 싶사옵니다.”

16553237040967.jpg“공주가?”

중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37040967.jpg“저도 그리하여 옹주자가처럼 어마마마의 머리도 빗어드리고, 화장도 해드리고 싶어요.”

경안공주의 깜찍함에 상궁과 나인들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중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전이 그런 경안공주를 쳐다보고는 방매에게 물었다.

16553237040967.jpg“어때요 옹주자가. 한번 가르쳐보시겠습니까?”

16553237104904.png“제, 제가요? 공주께서는 손재주가 좋은 상궁들과 나인들이 많은데 왜 굳이 소녀한테…….”

방매는 기함했다. 왕족과 어울린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 더 많았지 편한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전은 그런 방매의 마음도 몰라주고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16553237040967.jpg“이제 옹주자가도 내명부의 일원이 되었는데, 공주들과 안면을 쌓아놓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16553237104904.png“으, 으음…….”

16553237040967.jpg“그리고 말이에요.”

중전은 갈등하는 방매에게 말했다.

16553237040967.jpg“내명부는 손이 큽니다. 공주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게 화장품이랄지도 대량으로 사들이지요.”

방매의 눈이 번쩍했다. 중전은 그런 방매를 보면서 입가를 가리고 살포시 웃었다. 참 생각을 읽기 쉬운 옹주였기 때문이다. 궁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인지 때 묻지 않은 순진함이나 순수함이 보였다. 영악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16553237040967.jpg“중전인 나나, 공주들이 했다는 소문이 사대부들에게 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방매의 눈이 반짝였다. 방매는 본능적으로 이게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해 옹주가 되어 궁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였다.

16553237104904.png“하겠습니다.”

16553237040967.jpg“좋습니다. 좋아요. 공주. 잘 할 자신이 있느냐?”

16553237040967.jpg“네 어마마마!!!”

재물에 불타오르는 방매와 화장이란 신기술에 눈을 반짝이는 경안공주를 보는 중전의 눈가에 흐뭇함이 어른거렸다. *****

16553237016007.png“야. 너 어디 가냐?”

16553237104904.png“나? 돈 벌러.”

만우는 후다닥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방매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호위무사 노릇을 하면서 궁에 들어갔다 나온 게 벌써 닷새 전이었다. 그동안 만우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16553237016007.png“왜라.”

중원이나 조선에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을 굳이 왜까지 부르는 것인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충 이해가 갔다.

16553237016007.png“왜에 겸사겸사 볼 일도 있을 테고, 창피한 소문이 나는 걸 막기 위해서겠지.”

혈세천마. 무림십좌 중 일패(一覇). 하지만 만우가 친히 마교까지 찾아갔음에도 그가 응해주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질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만우가 마교로 온다고 온 중원에 소문을 내놨는데, 부하들을 들여 단체로 달려들어 쓱싹해 버리면 일패라는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피해버렸던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마교 교주인 자신이 일개 낭인의 청에 응해줄 수 없다면서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16553237016007.png“왜에서는 그래도 아무도 모르잖아?”

그런데 그랬던 것이 어지간히도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모양이었다. 십만대산에서 기어코 꾸물거리며 기어나와 왜까지 행차를 하여, 왜에서 만우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왜에 함정을 떡하니 마련해뒀으니,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그쪽으로 오라는 혈세천마의 도발이다.

16553237016007.png“아니. 정확히는 도발이 아니라 함정을 파놓은 걸 투귀대 놈들이 제 입으로 분 것이지만.”

만우는 이 일에 명 황실이 개입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명 황실에서 만우 자신이 벌인 난동으로 인해 명 황실은 만우에게 억하심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만대산에서 나온 마교 교주와 그 수하들이 왜로 넘어가는데 아마 전력으로 도움을 줬을 것이다.

16553237016007.png“무림맹 그 눈 뜬 장님들은 그냥 두고만 봤을 것이고.”

무림맹은 대체적으로 친황실파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황실에서 나서는 일이라면 그게 수상하더라도 그냥 눈을 감아줬을 것이다. 괜히 그런 것을 파고들다가 황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해도 무림맹에서는 모른 체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16553237016007.png“왜라. 왜.”

그런 점에서 왜(倭)는 만우가 오기만 하면 혈세천마가 만우를 쓱삭해서 없애고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만들기에 딱 적합한 곳이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슨 수를 써서 죽이건 간에 소문이 중원까지 퍼질 확률이 지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대신 왜에도 무언가를 먹이긴 했을 것이다. 무로막치 막부의 다이묘가 바보도 아니고, 타국의 무력집단을 자국 내로 들이면서 받아낸 게 아무것도 없을 리 없다. 그러니까, 만우를 잡기 위해 두 개의 국가와 마교가 손을 잡고 함정을 파놨다는 것이다.

16553237016007.png“이야. 내가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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