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호위무사가 되어라(3)2020.10.10.
“이게 불가사리?”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영안(靈眼)을 가진 백호인 호선의 눈에는 보였다. 영물인 호선과는 격이 다른 성수(聖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르르
“진짜네. 잠깐만 줘볼래?”
호선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김향에게 이룡검을 건네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김향이 이룡검을 건네주자 호선이 씩 웃었다.
“이 망할 불가사리!”
파악! 잘근잘근
호선은 이룡검을 땅에 내던지고는 발로 지근거리며 밟았다. 그러자 소서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긴! 이놈 때문에 내가 살던 산이 홀딱 타버렸는데!”
[사, 산?]
“그래. 내가 살던 산! 이놈 잡겠다고 여기저기 불을 놓는 바람에 나도 죽을 뻔했다고!”
꾸엉- 꾸엉- 꾸엉-! 불가사리가 억울하다는 듯 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물론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호선이나 소서노의 귀에는 선명하게 그 소리가 들렸다. 부르르 파악! 호선이 감정을 담아 밟자 참지 못하겠는지 이룡검이 저절로 허공에 둥실하고 떠올랐다. 김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호선은 잘 만났다는 듯 양손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발톱을 뽑아냈다.
“어떤 놈인지 면상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잘 만났다.”
호선은 불가사리가 나타나 쇠를 먹어치우겠다면서 난리를 피울 때 등선을 하기 위해 열심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때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짐승으로서의 본능과 생겨나기 시작한 영성이 아직 균형을 잡지 못하고 치열하게 다툴 때였다. 그래서 더욱 집중이 필요했는데 불가사리를 잡겠다고 불가사리가 나타난 곳에 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통에 호선이 몇 년 동안 한 수양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불에 타죽지 않기 위해 나오다가 모르고 개미집 하나를 밟아버린 것이다. 그 살생의 업(業)을 씻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개고생을 해야 했던가. 그러니 당연히 불가사리에 대한 호선의 분노는 컸다. 채재재재쟁!!!! 허공으로 떠오른 이룡검과 호선의 두 손이 챙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김향은 황망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소서노는 고개를 저으면서 김향의 등을 떠밀었다.
[저런 거 볼 필요 없느니라. 역시 두 녀석 다 짐승이라 그런지 아직 덜 여물었어. 쯧쯧.]
그래도 명색이 성수와 영물이었는데, 과거의 일을 가지고 싸우다니. 소서노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김향을 데리고 만우가 설미수의 도움을 받아 종로 시전행랑 뒤쪽 피맛골에 마련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문을 열어야 되는 김향과 달리 소서노는 그냥 문을 통과하다가 이번에는 안에서 울려퍼지는 소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된 것이, 바깥에 나온 것은 좋다만 너무나도 소란스럽구나.]
설미수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구한 이 집은 주변의 초옥 몇 개를 사서 담을 크게 두르고 마련한 곳이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지는 않았고, 설미수의 가옥 크기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독채로 딸린 방이 여섯 개가 넘었다.
[꺄아아악!]
[아, 아가씨. 대, 대협. 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내가 말했잖아. 쉽지 않을 거라고.]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는 임수화의 목소리와 안절부절못하는 하오문 간부의 목소리, 그리고 태평한 만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향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소서노는 그 안으로 머리를 삐죽 집어넣고 호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무식한 방법은 오랜만인고로. 싸울아비들이 저리 수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거늘.]
“저, 저게 수련이라구요?”
김향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소서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한 신체에 강인한 정신이 담길 수 있는 법. 저렇게 신체를 다져야 그 어떤 것을 배우든 체득할 수 있는 법.]
“하지만 저는 저런 식으로 안 하잖아요.”
김향은 망측하다는 듯 볼을 붉혔다. 문 안에서 나는 비명 소리가 웬지 야릇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임수화는 땀에 흠뻑 젖은 채 팔과 다리가 묶여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처럼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팔과 다리를 묶은 줄은 당연히 방의 각 구석에 묶여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몸을 구속하기 위해 묶어놓은 줄이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었다. 거기에 임수화는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반할 정도의 미녀가 아니던가.
“이게 정말 수련이 되는 겁니까?”
만우는 안절부절못하는 하오문 간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전신의 근력을 기르는 방법이야. 무식하게 바깥에서 뛰어다니고 구르지 않아도 되는 깔끔한 방법이지. 내공을 폐하지 않고 신체를 가장 속성으로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니까.”
“그, 그래도 저건…….”
“그러면 하지 말든가.”
만우는 바깥에 김향이 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천의 기초수련으로는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임수화는 이미 무공을 익힌 상태고, 돌이나 뛰어다니는 것으로 신체를 단련하기에는 아무리 내공 사용을 제한해도 저절로 극한의 상황에서는 내공이 움직이기 때문에 효과가 적었다. 거기에 임수화 스스로가 무슨 고통이라도 감내하겠다며 속성으로 배우는 것을 고집했다.
“저렇게 묶인 상태에서, 자주 쓰지 않던 근육이나 작은 근육을 사용해 근력을 극대화시키면 끊을 수 있어. 그러면 준비가 된 거야.”
그런 만우가 준비한 방법은 간단했다. 사지를 방의 각 구석에 연결된 줄에 매달고, 몸통도 관절의 움직임을 제할 수 있도록 묶어놓는다. 그리고 신체의 근육을 이용해 그 줄을 끊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된다. 그러면 사실상 기천의 기초수련은 끝날 정도의 신체가 된다는 뜻이다.
“계속해. 내가 말했지. 힘들다고.”
매달려 있는 것은 처음에는 괜찮다. 하지만 반시진이 지나면 팔목이 아파오고 한 시진이 지나면 발목이 아파온다. 그게 두 시진이 끝나면 신체 곳곳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온다. 그 상태에서 힘까지 줘야 하니 저렇게 비명이 나온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르쳐줘도 못 배우는 건 너네 탓이다?”
만우의 말에 임수화의 얼굴에 독기가 서리는 것이 보였다. 만우는 그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지금은 자신처럼 이렇게 옆에서 자극하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만우는 그런 것도 없었다. 구르고, 또 구르며 혼자서 실력을 쌓고 또 쌓았다.
“난 나 혼자서 여기까지 올라와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 따위는 몰라.”
만우는 스스로가 훌륭한 선생이 아니란 것을 잘 알았다.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스스로의 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만우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고 해서 만우처럼 강해질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아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좋건 싫건 만우의 방법을 임수화가 버티고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소서노. 향이 데리고 다른 데로 가. 이거 듣게 해서 뭐가 좋아.”
[아, 알았다.]
소서노가 찔끔했다. 그리고는 소서노가 다른 곳으로 김향을 데리고 가는데, 다른 곳에서도 또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마익후가 오랜만에 만났다면서 어울려서 한창 비무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도 김향을 데리고 나와 마지막 남은 독채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도 우렁찬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나, 나보고 옹주가 되어 궁에 들어가라고? 싫어요!!!!!!”
***** 옹주는 왕의 정실의 소생인 공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존귀한 이를 지칭하는 단어다. 방매는 그런 옹주 소리만 들어도 팔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에 몸서리를 치며 손사래를 쳤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옹주님. 이번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주상전하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셨나이다.”
궁에서 나온 김 상궁이 고개를 숙이자 뒤에 선 나인들이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방매는 어머니뻘인 김 상궁이 고개를 숙이자 난감해했지만, 그래도 그러겠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다.
“못 해요. 제가 받고 싶어서 받은 성씨도 아니고.”
“하지만 상왕전하께서 내리신 성씨이옵니다. 옹주께서 부정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일이 아니옵니다.”
“아니 그게 내가 받고 싶어 받은 게 아니래두요?”
“부디 주상전하의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안 그래도 왜의 사신이란 놈이 집적대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그것 때문에 옹주 행세까지 하라니. 방매는 죽어도 싫었다. 궁이란 곳은 언젠가 한 번쯤은 꼭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지만 그건 저번에 이미 이뤘다. 그러니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매분구로 고객을 위해 들어가는 것이라면 모를까, 옹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그러니까.”
방매는 손을 들어 김 상궁의 입을 막았다. 머릿속에 복잡했기 때문이다.
“왜의 사신, 그 변태놈을 잡아넣은 게 조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무마하기 위해 주상……전하께서 저와 만우를 조정대신 앞에 내보이고자 하시는 것이고.”
“예. 상왕전하께서 사성하신 새로운 옹주분이 실존한다는 것을 대신들이 알아야 왜의 사신을 그리 홀대한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상왕이 방매에게 이씨 성을 사성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얼마 없었다. 그러니 그런 옹주에게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말을 해도 조정대신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왕족들 중에 방매란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다.
“에휴. 에휴우우우!”
방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이 복잡해도 꽤나 복잡했기 때문이다. 무려 임금이 자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원래 권세 높으신 양반일수록 뒤끝이 긴 법이니까.’
그런 자신도 이제는 지체 높은 양반, 아니 왕족이 된 셈이지만 그건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방매였다.
“그러면 만우는 어떻게 설득하게요?”
“그분은.”
김 상궁은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생각을 해본 듯 했다.
“다른 적임자께서 가셨습니다. 지금쯤 만나셨을 겁니다.”
*****
“이게 뭐야. 어명? 교지?”
“음…… 그래.”
만우는 김 상궁이 말한대로 의외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님이 아니었다. 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다른 점이라면 검인지 정의대주가 아니라 임금의 어명이 적힌 교지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즉, 임금이 제수한 어사 자격, 그러니까 조선 조정의 관리 자격으로 왔다는 소리다.
“아직도 그 마패 반납 안 했어?”
“안 그래도 하러 갔었네. 그런데 마지막 부탁이라며 이걸 자네에게 건네주라 하시더군.”
“……이놈의 왕이. 또 뭐 때문에 이런 걸 보낸 거야.”
정치적으로 잔머리를 굴리는 데에는 만우는 왕의 발끝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궁에 들어간 만우가 항상 깽판을 쳤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흐름이 왕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뭐 이제는 그마저도 왕이 점차 적응을 해가면서 그런 것에 당황하지 않아 흐름을 가져오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동구녕이. 그 양반 나리가 올 때까지는 한양에 가만히 있겠다고 했는데.”
만우는 왕에게 분명 그리 말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어명이란 이름으로 교지를 내렸다는 것은 만우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
“임금의 교지를 중간에 내가 뜯어보라는 겐가?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아. 그런가?”
만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때 검인을 따라온 소령이 방 안에서 울려퍼지는 임수화의 비명소리에 겁에 질린 얼굴로 만우에게 물었다.
“고, 고신이라도 하고 계신 거예요, 오라버니?”
“아. 저 소리?”
만우는 손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그 소리가 사라졌다. 손가락을 튕겨 기막을 두른 것이다. 그 재주에 검인의 눈이 커졌다가 이제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소령이 너도 얻은 게 있나 보구나?”
“헤헤. 네. 작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강해지는 법이지. 네 나이에 절정이면 충분히 신동이야 신동.”
만우는 소령이 절정의 초입에 들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아직 완벽하게 발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들여 깨달음을 정리하고 내공이 쌓이면 절정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저, 정말이냐 소령아?”
“네 사형. 한 이틀 됐어요.”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검인은 기쁜 얼굴로 소령을 쳐다봤다. 소령은 화산파의 미래 동량이었다. 미래의 대들보인 것이다. 그녀 나이에 그 정도 성취를 쌓은 이는 화산파 역사에 몇 없었다.
“그…… 분위기가 별로 기뻐할 분위기가 아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