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 호위무사가 되어라(2) (185/400)

185. 호위무사가 되어라(2)2020.10.06.

왜의 사신과 만우. 임금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왜의 사신을 버리고 만우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의 고충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저들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점이다.

1655323526832.jpg‘그랬다가는 뒤집어지겠지.’

양반도 아니고, 양인도 아닌 천민 출신의 이가 궁에 마음껏 드나든다는 것을 저들에게 말했다가는 더욱 난리가 날 것이다. 아니, 이 나라의 기강이 흔들렸다며 성균관에서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뛰어나올지 모른다.

1655323526832.jpg“전하. 좌정승 하륜 대감이 알현을 청하십니다.”

그때 문 밖에서 하륜이 들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금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륜이 그의 오른팔이기는 하고, 실용적이라고는 하나 그도 유학자다. 그러니 저 밖에 있는 웬수들과 한패일 것이다. 자신이 듣는 척도 안하니 하륜을 보내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1655323526832.jpg“개국공신이 죄지, 죄야. 들여라!”

하지만 그냥 내치기엔 하륜이 임금을 위해 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 때문에 왕이 허락을 하자 하륜이 들어와 임금에게 허리를 조아렸다.

1655323526832.jpg“전하.”

1655323526832.jpg“그래. 좌정승. 어쩐 일이시오? 혹여나 과인에게 밖에서 외치는 저 소리를 귀 옆에서 들려주기 위해 왔다면…….”

1655323526832.jpg“아니옵니다.”

하륜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의 말에 임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아니라면 하륜이 자신을 보러 올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3526832.jpg“아. 혹시 명의 사신과의 대담 성과라면 이미 들어…….”

1655323526832.jpg“그 역시 아니옵니다.”

1655323526832.jpg“그렇다면 무엇이오?”

임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하륜이 고개를 들었다.

1655323526832.jpg“신 하륜. 명 사신 유사길과의 협상 자리에서 유사길 그자가 범 앞의 개처럼 구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1655323526832.jpg“유사길이?”

임금의 눈이 커졌다. 명에서 온 유사길은 도첨어사로 명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이다. 그런 그가 명 황제 말고 다른 이의 앞에서 설설 기었다는 소리인 것이다.

1655323526832.jpg“누구…….”

1655323526832.jpg“그자가 만우란 자를 입에 올렸고, 실제로 만우란 자가 나타났나이다.”

1655323526832.jpg“…….”

임금의 얼굴이 경직됐다. 그것을 본 하륜이 허리를 얼른 숙였다.

1655323526832.jpg“그자에 대해서 뭐라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자의 출신이나 정체에 대해서 묻고자 함도 아닙니다. 그저 그자를 소개시켜 주신다면, 바깥의 저들은 소신이 책임을 지고 설득하여 돌려보내겠나이다.”

1655323526832.jpg“…….”

1655323526832.jpg“전하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그자가 연루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이것이지 않습니까? 또한 새로 생긴 옹주에 대한 문제도 있으실 터라 사료되옵니다만.”

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은 머릿속으로 만우에게 하륜을 소개시켜 줌으로 인해 일어날 일해 대해서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1655323526832.jpg“삼한제일검과 상왕전하께서 맞아들이신 새로운 딸. 그리고 왜의 사신. 이 세 가지를 잘 엮어보시면 저들도 물러날 듯 하옵니다.”

1655323526832.jpg“삼한제일검(三韓第一劍)? 이미 그자는 오래전 실종되어…… 아니 실종되었다고는 하나 그자의 연배를 생각하면 지금쯤 죽었어도…….”

1655323526832.jpg“그러니 말입니다. 전하께서 그 정도의 인재를 받아들이셨고, 이번 왜의 사신단이 조선에 온 이유를 새롭게 생기신 옹주님과 혼약을 맺어 국교를 단단히 하고자 함이라 설명하십시오.”

1655323526832.jpg“그리고?”

1655323526832.jpg“저들이 옥에 갇힌 것은 사소한 다툼 때문이라, 즉 남녀간의 치정 문제로 풀어가십시오. 새롭게 생기신 옹주님이시니 서투르신 부분이 있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전하께서 그렇게 힘을 쓰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시지요.”

1655323526832.jpg“…….”

임금의 표정이 서서히 펴졌다. 그게 마음에 든 것이다.

1655323526832.jpg“어차피 그런 국교를 위한 혼약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사되지 않고, 깨졌다고 하십시오. 그렇다면 옹주께도 누가 되지 않을 터.”

1655323526832.jpg“허면.”

1655323526832.jpg“예. 물론 연기는 하셔야 할 겁니다. 삼한제일검을 호위로 두셨고, 옹주가 새로이 생겼다는 것을 궁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1655323526832.jpg“……좋은 생각이로다.”

임금이 팔걸이를 내리쳤다. 하륜은 고개를 숙였다. 임금은 그런 하륜에게 말했다.

1655323526832.jpg“내 만우, 그자에게 부탁해 보도록 하겠소. 그대와의 만남을 말이야. 헌데 왜 만우, 그자와 만나려 하는 것이오?”

1655323526832.jpg“……어릴 적 소신의 큰형님께서 중원으로 건너가 무림강호란 곳에 투신하신 뒤 연락이 닿지 않아 개인적으로 궁금하여 그자를 불러 몇 마디 묻고자 함입니다.”

1655323526832.jpg“그렇소? 한번 이야기는 건네보도록 하지. 허나…… 그자의 성미를 짐작할 수 없어 곤란하실 수도 있소.”

1655323526832.jpg“괜찮습니다. 만약 그자가 주저하거든…… 혈세천마. 혈세천마란 이름을 전해주시옵소서.”

1655323526832.jpg“혈세천마…… 알았소.”

임금의 눈이 반짝였다. 하륜은 그런 왕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뒷걸음질로 대전에서 빠져나왔다. 시녀들이 열어준 문을 통해 대전 바깥으로 나온 하륜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1655323526832.jpg“그자가 당신들에게 그 정도로 억하심정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나올 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최선이오.”

하륜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고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하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3526832.jpg“됐소. 오래 전 가문을 나간 그분이 무슨 내 큰아버님이 되겠으며, 그대가 나의 사촌이 된단 말이오. 내 쪽에서 싫소. 그러니 당신네들이 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떠나주시오. 핏줄이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 될 테니.”

  *****

1655323526832.jpg“으, 흐억!!!”

우즈히코는 사타구니가 부서지는 듯한 격통에 두 눈을 부릅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1655323526832.jpg“으으으…….”

우즈히코는 국부를 움켜쥐고는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냈다. 그런데 문득 자신의 엉덩이에 느껴지는 한기에 우즈히코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짚이 깔린 바닥에 더러운 벽, 그리고 굵은 통나무로 막힌 창살. 이곳이 어디인지 한참동안 눈을 껌벅이고 나서야 인지한 우즈히코의 눈이 커졌다.

1655323526832.jpg“무슨. 나, 나는 동영의 사신이다! 오오토자코 가문의 장자이자 무로막치 막부의 부마인 나를 이리 대접하면…….”

1655323526832.jpg“시끄럼마!”

퉁퉁!!! 바깥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위사가 도끼눈을 뜨면서 창 끝으로 창살을 퉁퉁거리며 부딪쳤다.

1655323526832.jpg“새끼. 고자가 안 됐는지나 걱정할 것이지.”

우즈히코와 위사가 말이 통할 리 없었다. 하지만 위사의 노골적인 비웃음에 우즈히코가 발작하려 했지만 사타구니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컸기 때문에 우즈히코는 국부를 움켜쥐고는 바닥을 굴러댔다.

1655323526832.jpg“하켄! 하켄 타케노는 어디에 있느냐! 이 몸이 이렇게 잡혀있거늘 어디서…….”

1655323526832.jpg“칙쇼. 닥쳐 빠가야로.”

그때 바로 옆 창살에서 걸쭉한 욕지거리와 함께 타케노의 험악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곳을 본 우즈히코의 눈이 커졌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도끼눈을 뜬 타케노 때문이었다.

1655323526832.jpg“타, 타케노.”

1655323526832.jpg“시끄러 이 또라이 놈. 나가면 내 손에 네 놈이 죽을 줄 알거라. 어디 감히 지분댈 곳이 없어서 조선의 옹주에게 그 짓거리를 했다고? 네놈이 제정신이냐?”

1655323526832.jpg“오, 옹주?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우즈히코는 당황했다. 하지만 타케노는 우즈히코를 보면서 살기만 풀풀 풍겨댈 뿐 우즈히코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1655323526832.jpg“다이묘께 네놈이 한 짓이 모두 들어갈 것이다. 지금까지야 네놈이 벌인 짓거리들이 잘 숨겨졌지만, 조선의 옹주에게 그따위로 굴었다가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당장에라도 다이묘께서 네 놈에게 할복을 명하실 것이다.”

1655323526832.jpg“옹주? 그 여자가 옹주라고? 옹주?”

1655323526832.jpg“그래. 이 파리눈깔 새끼.”

타케노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고래고래 내질렀다. 사신이라는 것도 이런 경우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사신이 다른 나라에 와서 그 국가의 옹주에게 찝적대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조선이 동영보다 약소국이라면 모를까 조선은 동영이 문명적으로 부러워마지 않는 국가다. 거기에 명과의 공고한 동맹을 맺고 있어 감히 동영이 군사적으로도 넘볼 수 없는 국가다. 오죽하면 새로이 등극한 조선 임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이묘가 군대를 풀어 조선의 해안가를 약탈하던 해적들을 대신 소탕해 주었을까. 게다가 이번에 우즈히코가 사신으로 조선에 오게 된 것도 조선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도 제대로 잘못 꿴 것이니, 목이 붙어서 돌아가면 다행이다.

1655323526832.jpg“내, 내가…….”

우즈히코는 바보는 아니다. 단지 자신이 가진 것을 과대평가해서 고개를 숙일 줄을 몰랐던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친 사고가 얼마나 큰 대형 사고인지 직감하고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옥에 들어오자 바깥에 경비를 서고 있던 위사가 빳빳하게 군기가 들어 군례를 올리는 것이 타케노의 눈에 들어왔다.

1655323526832.jpg“…….”

동시에 타케노는 숨이 콱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1655323526832.jpg‘강자!’

신분이나 계급을 알 수 없는 편한 복장에 검 하나를 허리춤에 찬 남자는 눈이 날카로운 검처럼 예리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지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전신을 통해 끊임없이 발산되는 이 기운은 타케노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1655323526832.jpg‘그놈들보다 더.’

대장간에서 싸운 야장 놈보다 더 강한 기운이었다. 3만 사무라이의 정점인 신센구미의 오야붕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쳐있던 타케노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1655323526832.jpg“이놈들인가?”

남자, 권희달은 날카로운 눈으로 타케노와 우즈히코를 쳐다봤다.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품고 있는 놈이 저잣거리의 대장간에서 마익후와 대등하게 겨뤘다는 놈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는, 기름기가 얼굴에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놈이 감히 옹주에게 지분거린 놈일테고.

1655323526832.jpg“감히 조선에서 분탕질을 친 죄로 네놈들의 목을 베어도 시원찮지만, 주상전하의 자비로움에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열어라!”

권희달의 추상 같은 호통에 위사들이 자물쇠를 풀었다. 그리고는 권희달이 데려온 우림위의 군사들이 우즈히코와 타케노를 끌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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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3526832.jpg“대전으로 갈 것이다. 가면,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을 네놈들이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권희달의 두 눈에서 살기가 폭사했다. 타케노의 표정은 굳었고 우즈히코는 당장에라도 오줌을 쌀 것처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1655323526832.jpg“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니.”

우즈히코와 타케노가 우림위 위사들의 우악스런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 김향은 이룡검을 손에 꼭 쥔 채 눈을 감고 스스소를 투녀 소서노라 말하는 영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1655323526832.jpg[옳지. 그렇게.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여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아이를 다루듯, 조심히 해야 한다. 예민하고 까칠한 게 이 아이들이거든.]

소서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녹색 기운을 손가락으로 간질여 보였다. 소서노가 말하는 자연의 기운이었다.

16553235416037.png“후읍.”

1655323526832.jpg[조심스럽게. 어르고 달래듯이. 그렇게 친해지다보면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이 네가 찾지 않아도 알아서 다가와 줄 것이다.]

소서노는 싸울어미들의 투술을 가르치면서 친화력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대백제의 최고 정예였던 싸울아비와 싸울어미들은 투술을 익히는데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연의 기, 기력(氣力)이라 부르는 것을 몸에 품었다. 무림인이 사용하는 내공심법이나 조선의 무예가들이 다루는 기와 다른 점은 자연에서 빌린 순수한 힘을 인간의 몸을 통해 이용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기(氣)를 의도적으로 인도하고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에 친숙해질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과정에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김향이었다.

1655323526832.jpg[조금만. 조금만 더.]

16553235416037.png“후읍!”

김향은 소서노 덕분에 주변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자연의 기운을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자연의 기운들은 새침한 아가씨들처럼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튕겼다.

16553235416037.png“아!”

화아악!!! 하지만 김향은 고작해야 십대의 소녀일 뿐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고는 하나 체력이 받쳐주질 못 했다. 그 때문에 집중력이 깨지자 가까스로 조금 친해졌다 생각한 자연의 기운들이 급속도로 멀어졌다.

16553235416037.png“잘 안 되네요. 또 실패했어요.”

1655323526832.jpg[아니야. 충분히 잘했어. 그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니라.]

김향이 풀 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자 소서노가 그런 김향을 달랬다. 그때 이룡검이 부르르 떨었다.

1655323526832.jpg[이잇. 이 먹보 불가사리가. 그렇게 먹여줬으면 됐지 또 배가 고프다 그러느냐!]

16553235416037.png“배가 고프대요?”

김향은 조심스럽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룡검의 백색 검신을 쓰다듬었다. 소서노는 불가사리가 배고프다며 몸을 부르르 떠는 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3526832.jpg[원체 먹보니라. 한때 개경에 있는 쇠를 모두 먹어치웠다고 하니.]

16553235416037.png“한번 보고 싶어요. 귀엽게 생겼나요?”

김향은 멋들어져 보이는 백색 검신이 실제로는 살아있는 생물체라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소서노는 그런 김향에게 손사래를 쳤다.

1655323526832.jpg[되었다. 악수는 아니나 자기 본능에 충실한 놈이라 자칫하면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 어서 만우가 돌아와야 하는데 말이다.]

소서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만우가 시킨 대로 김향을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호선이 미녀로 둔갑해 땅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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