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호위무사가 되어라(1)2020.10.03.
척.
“뒈질 거냐고.”
“!!!”
만우가 움직인 것을 인지한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신경이 슌스케와 타케노, 마익후의 싸움에 쏠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우가 신속으로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너, 너는…….”
화악!!! 우즈히코가 자신의 어깨에 팔을 턱하고 걸친 만우의 등장에 놀라 말을 더듬는 순간, 우즈히코의 그림자가 쭈욱하고 길어졌다. 그렇게 길어진 우즈히코의 그림자 속에서 그곳에 숨어 있던 인자들이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튀어나오려 했다.
“꽤액!”
“꽥!”
꾸직! 만우가 가볍게 내뿜은 공력에 튀어나오려던 인자들이 쥐포처럼 바닥에 납작 달라붙었다. 만우는 그런 인자들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퍼버버버벙! 하지만 그 순간, 땅에 납작하게 짓눌린 인자들의 몸 주변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들의 몸이 통나무 조각들과 나뭇잎으로 변해 휘날렸다. 동시에 만우를 향해 사방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짓쳐들었다.
“호오. 그래도 한 수는 있다 이거지?”
만우는 여전히 우즈히코에게 말하면서 진하게 웃었다. 우즈히코는 만우에게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는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검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지.”
만우는 자신을 향해 송곳처럼 생긴 소검을 내뻗는 인자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소검이 만우의 두 손가락에 날아와 들러붙듯 딱하고 달라붙었다.
“이렇게.”
탁! 그리고는 손목에 가볍게 힘을 주자 소검이 만우의 손에 들어왔다. 만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기극(氣極).”
콰아악!!!!
“……!!”
소검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검기가 인자의 오른팔을 휩쓸고 지나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외팔이가 된 인자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뚝.
“에잉.”
기극 한 번에 두 동강이 난 소검을 본 만우가 소검을 휙 내던졌다. 깡! 깡! 피리릿!!! 만우가 내던진 소검에 날아오던 수리검이 깡깡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종 잡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는 표창이 날아들었다.
“하핫.”
만우가 손가락을 뻗자 날아오던 톱날 모양의 표창이 만우의 손가락에 잡혔다. 에측할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오는 표창의 궤적을 예측해 두 손가락으로 잡은 것이다.
“재밌는 장난감이네.”
쉬익! 만우가 그 표창을 탕하고 튕기자 표창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하지만 잠시 후 허공에서 다리를 한짝 잃어버린 인자가 뚝하고 떨어져내렸다. 터덕! 그런 만우의 뒤에 잠행술로 접근한 인자가 등에 부적을 부쳤다. 인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멀어지려는 순간 만우가 손가락 끝으로 인자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어딜 가시려고?”
“!!!”
순간 당황했지만 인자는 순식간에 침착함을 되찾고는 수인을 맺었다. 그 순간 만우의 등에 붙은 부적이 부르르 떨리더니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촉수처럼 튀어나와 만우의 전신을 꿰뚫었다.
“화둔술(火遁術)!”
화아아악!!! 하지만 만우의 손가락이 여전히 자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인자의 입에서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붉고 노란색을 넘어 푸른색이 넘실거리는 불꽃공이 만우의 머리를 덮쳤다.
“끄아악!!!”
엄청난 열기에 만우에게 붙잡혀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우즈히코가 아니었다. 우즈히코 옆에 있던 사무라이였다. 위치변환의 술(術)로 인자가 우즈히코와 사무라이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화르륵! 사무라이에게 청색 불꽃이 옮겨붙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화둔술을 쓴 인자의 얼굴이 경직됐다. 만우의 팔을 타도 청색 불꽃이 시전자인 인자에게 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르르륵!!!!
“!!!”
부적과 화둔술을 쏘아보냈던 인자에게 청색 불꽃이 옮겨붙자 인자가 삽시간에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사무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콰자자자작!!!!! 고오오오오!!!
만우는 머리카락 한 올, 옷자락 하나 타지 않은 멀쩡한 상태였다. 극고온의 불꽃을 정통으로 맞고, 날카로운 나뭇가지 수십 개가 전신요혈을 두드렸지만 만우가 끌어올린 호신강기에 흠집조차도 주지 못 했다.
“후우. 힘드네.”
하지만 아직 현경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강기(强氣)로 온 몸을 보호한다는 것은 만우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만우의 신위에 어지럽게 벌어지던 싸움이 멈춰섰다. 만우는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우즈히코를 보면서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난 또 뒈진 줄 알았네. 이놈처럼.”
만우는 재가 된 사무라이의 잔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우즈히코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장.”
“주인님.”
“칙쇼! 오오토자코 부마! 닌자 빌어먹을 놈들에게 내 부하를 내준 거요!”
만우가 존재감을 드러내자 초절정 고수 세 명의 싸움이 중지됐다. 타케노는 낭패를 본 몰골이었지만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우즈히코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하켄! 저자를 죽여라!”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즈히코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만우를 가리켰다. 만우 때문에 자신이 죽을 뻔한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인자들이 빼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죽었을지 모른다. 저렇게 재가 되어서 말이다. 그런 우즈히코에게는 자신이 중요했지, 일개 사무라이 따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인, 죽어 마땅한 소모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빠가야로!”
타케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타케노는 살기가 어린 눈으로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슌스케를 쳐다보고 있었다.
“슌스케. 고작 저런 놈 하나 이기지 못하고. 쯧쯧…….”
“죄송합니다 주인님. 베기만 익힌다면 완벽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 뭐, 이제야 그때와 비슷해진 것 같으니. 기다려 봐야겠지.”
만우는 고개를 돌려 마익후를 쳐다봤다. 마익후는 불만스럽다는 듯 권갑을 쿵쿵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넌 임마. 내가 뭐라고 그랬어. 느리면 발을 묶으라고 했잖아. 무식하게 권갑이나 두드려서 음파 쓰지 말고. 내가 박자랑 섞어서 쓰라고 했지. 싸우는 동안에도.”
“어렵다. 대장.”
“어려워?”
만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마익후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넌 대련이다. 몸으로 익히게 해줄게. 딱 네 수준이 맞춰서.”
“대, 대장.”
마익후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만우의 신경은 마익후에게서 타케노로 옮겨간 뒤였다.
“거기 왜인.”
“……주인님?”
타케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노도처럼 일어나는 바람에 한창이던 싸움이 끝나기는 했다. 거기에 슌스케가 주인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그 거대한 기운의 주인인 것 같은데, 별 다르게 대단해보이지 않았다.
“저기. 네가 따까리해주고 있는 저 띠겁고 재수 없는 새끼. 순순히 넘겨.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만우는 방매를 힐끗 쳐다보고는 우즈히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을 슌스케가 통역해주자 타케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무, 무엄할지고! 감히 천한 칼잡이 따위가!!!!”
우즈히코가 길길이 날뛰면서 노발대발하는 것이 타케노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내 임무는 저놈을 지키는 것이니까.”
타케노의 의연한 대답헤 슌스케가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그 임무에 충실해 자신의 동료와 가족들을 죽여버린 놈이 바로 타케노와 그의 신센구미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네놈의 숨통을 내가 딸 것이다.”
“하. 얼마든지. 네놈이 먼저 시체가 되지 않기를 바라마.”
슌스케와 타케노가 으르렁거렸다. 만우는 그 둘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마야.”
“예, 주인님.”
“쟤, 네가 알아서 막아라.”
슌스케가 고개를 돌려 타케노를 쳐다봤다. 타케노는 만우와 슌스케가 조선말로 대화를 나누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였다. 만우가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아까 느낀 강력한 기운의 1/10만 사실이어도 자신은 만우의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신 호위로서의 임무를 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
슌스케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케노는 찍어죽이고 갈아마셔도 시원찮은 놈이다. 슌스케가 데려온 일월조의 사무라이들은 전부 죽었다. 하지만 그건 무사로써 싸움에서 패해 죽은 것이니 명예로운 죽음이다. 하지만 본토에서 죽은 동료들과 그 가족들은 아니다. 그 어떤 무사간의 싸움에서도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 무사로써의 영예가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사무라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전장에서 죽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건드렸다는 것은 타케노가 먼저 사무라이로서의 긍지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슌스케는 최선을 다해 타케노를 방해할 생각이었다.
“넘기라는 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고 통보야. 그러니까.”
만우의 무릎이 살짝 굽혀졌다 펴졌다. 그리고 슌스케가 다시 타케노를 향해 날았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만우의 손아귀에 우즈히코의 뒷덜미가 잡혀있었다. 퍼억!
“커억!”
그를 옆에서 호위하던 인자가 나가떨어졌고, 그대로 무릎을 굽힌 만우의 신형이 방매 앞에 나타났다. 방매가 만우를 쳐다본 순간, 만우가 눈을 찡긋했다. 만우의 얼굴을 본 방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방매가 뒷발로 땅을 강하게 밟으며 지지대를 밟은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퍼억!
“대, 대장님! 잠시만, 잠시마아아아아안!!!”
대장간에 문형일이 아슬아슬하게 구르듯이 뛰어들어오며 소리를 쳤다.
“끄아아악!”
*****
“저어어언하아아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임금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 밖에서 들려오는 대소신료들의 어리광 때문이었다.
“통촉. 통촉. 그놈의 통촉!”
타앙! 임금은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자 상선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달려와 임금의 옥체를 살폈다.
“전하.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그러거든 저들의 입이나 다물게 해야한다. 그놈의 통촉!”
이게 전부 만우 때문이었다. 임금은 만우가 조선에 온 이후로 단 한시도 이 한양이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것 때문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어떤 국가도 군자된 도리로 타국의 사신을 하옥하는 일은 없사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소신료들이 몰려들어 저러는 이유는 임금이 왜에서 온 사신단을 하옥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왜와 그리 잦은 왕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를 타고 건너면 능히 닿을 수 있는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사신을 하옥했다는 것에 대소신료들은 저리 바득거리며 몰려와 소음으로 임금을 공격하고 있었다.
“옹주를 희롱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거늘. 아버마마께서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는 하나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임금은 왜의 사신단을 순순히 옥에서 꺼내줄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급히 문형일을 보내긴 했지만, 설마 방매를 건드렸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임금이다. 그리고 방매는 임금의 여동생이었다. 사성 이씨를 받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여동생은 여동생이다.
“그것도 만우. 그 작자가 아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