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마교가 마교했네(3)2020.08.29.
“내가 바로 역수교어 필두다!!!”
배의 선두에 서서 충각 대신 도끼로 다른 배들을 패고 다니는 용도로 쓰는 필두의 거대한 도끼가 말과 기수를 한 번에 양단했다.
“돌아갈! 원의 망령들아!!!”
서거거걱!!!!! 그리고 북쪽에서는 말에 올라탄 설운이 갑주를 절그럭거리며 검기를 일으켜 살풍대들이 걸리는 족족 썰어버렸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쿠과강! 설운이 있는 쪽의 정반대, 남쪽에서는 기린대 전원을 잃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철권 교수가 온몸에 피가 베어나오는 붕대를 감은 채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초절정 고수 네 명. 거기에 흙먼지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목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내리는 살풍대들까지. 눈에서 살기를 흩뿌리는 십 인의 언살(言殺)들이 살풍대를 헤집었다.
“잡았다.”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살풍대 최정예들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 크게 흔들린 정도가 아니다. 눈 깜작할 사이에 거의 궤멸 수준으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살풍대가 최고조의 파괴력을 발휘할 때는 상대를 사냥하는 것처럼 몰아붙일 때이지, 지금처럼 기습을 받았을 때에는 말에 올라탔는 것이 그들을 오히려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척사영이 이 살풍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을 따라잡았다.
“무슨!!!”
지휘관의 눈이 커졌다. 그는 살풍대의 부대장이자 악궁 테무르의 부관인 인물로, 그 무위가 절정 끝에 올라서 있었다. 말과 함께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된 그의 순간 파괴력은 초절정의 극에 달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렇게 내달릴 거리고 없었고 상대가 무려 화경이었다. 서거거거걱!!!!! 지휘관과 그 주변에 있던 최정예 살풍대들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척사영의 검과 도가 낫으로 벼를 베는 것처럼 살풍대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다. 파앗!!!! 척사영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려 궤멸당하기 직전인 살풍대 너머로 보이는 오색찬란한 서기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은공!”
*****
“크아아악!”
“끄악!”
우당탕탕!!! 우드득, 우득!
“거. 본주께서 생각하시는 중인데.”
만우의 검에 일어났던 오색찬란한 서기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던 살풍대의 고수들이 말과 함께 사지가 잘린 채 바닥에 처박혀 꿈틀거렸다. 히히힝-!!! 멈칫 그런 만우의 무위를 본 살풍대들이 멈칫거렸다. 만우의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만우는 살풍대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의 팔다리만을 베어버려 낙마하게 한 후, 놀란 말이 주인을 짓밟아 죽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너희는.”
만우가 웃으면서 이룡검을 늘어뜨렸다. 만우는 여전히 김향을 한 손으로 안은 채였다. 맨 처음에 말이 달려들길래 놀란 그녀는 눈을 꼭 감고 만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본주가 말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도, 죽을 수도 없어.”
낭황 우결지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여전히 만우와 자신의 무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서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낭황 우결지는 그런 상식을 깨부수면서 이름을 중원무림에 드높인 무인이다.
‘기무야.’
자신의 유일한 제자이자 자신이 정을 주었던 광호검 기무가 조선에서 만우를 만난 것은 운이 지독히도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누히 무림십좌에 대해 제자에게 강조를 했지만, 그런 늙은이의 노파심을 무시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오만이자 특권이다. 그 오만과 특권이 본인의 죽음으로 돌아올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사부된 입장으로써는 어떻게 해야할까.
‘복수!’
낭황의 눈에서 살기가 쭉하고 뻗어올랐다. 낭황이 배에 힘을 끌어모아 소리쳤다.
“이곳에서 우리는!”
낭황 우결지의 말이 투레질을 했다. 낭황의 목소리에 담긴 내공이 살풍대의 정신을 흔들어 일깨웠다. 정의대 고수들과 슌스케, 호선은 움직일 힘도 없어 보였다. 그 때문에 그들을 무시한 낭황은 만우의 오연한 모습만 눈에 담았다.
“검주와 함께 죽는다!!”
“존명!!!!”
끼기긱-!!!! 낭황의 내공에 정신이 깨어난 살풍대의 고수들이 활과 투창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들의 화살촉과 투창의 끝이 검은색으로 번들거렸다. 극독. 여러가지 독을 배합해 만든 이 독은 호랑이도 한 발의 화살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독이다. 원래 초원의 전사들은 사냥할 때 독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사냥한 사냥감은 가족들의 식량이 되고 다른 부족을 만나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재화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독을 꺼내들었다는 것은 한 가지 뜻을 의미한다. 동귀어진(同歸於盡). 필사의 각오를 다진 낭황과 살풍대를 쳐다보는 만우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서렸다.
“감히 본주를 죽이기 위해 숨어 있던 마교에서 기어나왔으니 그 정도 각오는 당연히 되어 있어야겠지. 허나 너희들이 선택할 것은.”
만우의 검에서 벌떼가 웅웅거리는 듯한 공명음이 울려퍼졌다.
[불가사리가 저들의 쇠(金)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낭황과 살풍대의 무기, 그 안의 쇠를 느낀 불가사리가 웅웅거리며 입맛을 쩝쩝거렸다. 만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죽을 것이냐, 이것뿐이니.”
자신이 없는 사이에 마교의 무리들이 조선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이건 시사하는 바가 여러가지였다. 광호검 기무와 악궁 테무르의 복수를 위해 왔다는 것은, 저들이 이역만리 먼 마교에서도 조선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우를 노렸다. 그것도 자신을 피해 숨어들었던 일패(一覇) 혈세천마가!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히고 왔는지, 혈향이 지독해. 여기까지 나니까.”
만우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낭황과 살풍대가 들어오는 것을 당연히 조선에서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그러니 저들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오면서 자체적으로 보급을 실시했을 것이다. 적지에서 기마대가 자체보급을 하는 방법? 약탈, 방화. 즉, 저들은 조선 깊숙히 들어오면서 보급을 위해 조선의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고 마을들을 불태우면서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니.”
만우의 검에서 오색찬란한 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 만우의 공력이 검에 주입되면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서기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이전에 비해 절반의 공력으로 만들어내는 서기다. 만우는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낭황과 살풍대를 보면서 선고를 내리는 염라대왕처럼 이룡검을 옆으로 그었다.
“죽어라.”
피잇! 서걱!!!
검 끝에서 서기가 황홀하게 피어올랐다. 극에 다다른 검기였다. 동시에 무언가가 베어지는 소리가 깔끔하게 한 번 울려퍼졌다. 두두두두-!!! 그런 만우 곁을 낭황과 살풍대가 스쳐지나갔다. 말발굽이 피워낸 흙먼지가 치솟았다. 두두두!! 만우를 스쳐지나간 낭황과 살풍대를 태운 말이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하지만 한참을 달리고나서야 그들을 태운 전마(戰馬)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투두두둑!!! 그들의 고삐를 잡고 있는 주인, 몸통을 감싼 단단한 인간들의 허벅지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컥!
“그러면 다음은.”
만우의 이룡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만우를 스쳐지나간 낭황과 살풍대들이 실 끊어진 연처럼 말 위에서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데구르르 땅에 떨어진 충격에 낭황과 살풍대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나왔다. 만우는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정의대 고수들과 슌스케, 호선을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이놈들 조선으로 불러들이고 튄 놈들 잡아야겠지?”
“대장니임!!!”
자신을 부르는 감령과 필두의 고함소리가 만우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나리.”
괜찮다는 호선의 주변을 동군영이 뱅뱅 돌았다. 그렇게 뱅뱅 돌던 동군영이 척사영과 슌스케의 몸을 걱정스레 챙기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양반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양반이야.”
동군영은 소심하지만 사람이 태생적으로 선했다.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니, 어디서 객사하기 딱 좋아 만우가 그나마 억지로 검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또 검에 재능이 아예 없지 않았다. 체력이 완전 똥이라 호선을 이용해 강력한 충격 요법으로 체력도 끌어올리니, 검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 공력이 실리지 않은 만우의 검은 두 번 정도 막아내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물론 만우의 전력이 백이라면, 그 중 10만 쓴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어디서 눈 먼 칼을 맞고 죽을 정도는 아니게 된 것이다.
“저 양반도 그렇고.”
만우는 동군영의 삼촌이라는 동백익이 자신이 데려온 가솔들을 지휘하여 지치고 다친 정의대 고수들을 치료해주는 것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만우는 고개를 돌려 감령과 필두, 그리고 설운과 언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설운. 형일이는?”
“문 대협에게는 미처 알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설운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문형일은 왕의 꼬임에 넘어가 왕의 밑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남았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궁의 생활이 몸에 맞지 않을텐데.”
“안 그래도 만나뵐 때마다 불편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설운도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맹호처럼 살풍대에 뛰어들어 그들을 도륙낼 때와는 딴판이 된 모습이었다. 처음 만날 때는 마냥 치기 어리던 설운의 얼굴에 노련함이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너흰 왜 온 거야?”
만우 일행과 정의대는 부여로 돌아오는 길에 조잡하게 무장한 사람들을 이끌고 다급히 달려오던 동군영와 동백익을 만나 부여로 다시 되돌아왔다. 부여현에는 이미 포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수비 병력이 거의 궤멸 상태였기 때문에 동백익이 본가인 익주에서 데려온 가솔들에게 낫이나 호미 따위를 쥐어주고는 만우를 돕겠다고 끌고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일이 끝난 다음에 만나서 다행이지 그들이 그곳에 왔다면 살풍대에 의한 괜한 사망자만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씀씀이란 것이 기특했기 때문에 만우는 기특하단 눈으로 동군영을 쳐다보고는 감령과 필두에게 말했다.
“에…….”
“그게 말입니다.”
만우와 눈이 마주친 감령과 필두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사의의 난을 진압한 이후 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떠난 감령과 필두였다. 하지만 어떻게 낯 뜨겁게 만우를 따르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을 한단 말인가. 그런 말을 하면 손발이 꼬일 것 같았기 때문에 둘이 우물거렸다.
“만우! 만우!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그때 방매가 나타나 큰 목소리로 감령과 필두의 입을 막아버리고는 달려왔다. 그 뒤로 어리와 광문자가 따라들어왔다.
“뭐야. 부담스럽게.”
방매가 걱정스런 표정을 잔뜩 지은 채 쳐다보자 만우가 으웩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만우를 본 방매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뭐야 그 표정은. 걱정해서 기껏 그랬더니.”
아마 그녀는 들어오면서 정의대 고수들의 착 가라앉은 모습을 보고 들어왔을 것이다. 정의대는 조선에 온 이들 중 무려 네 명이나 죽었다. 열다섯 명이 열한 명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맹호도 팽대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고 다쳤다. 당연히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호된 전쟁 같은 전투를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며칠은 고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