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마교가 마교했네(2)2020.08.25.
만우가 어깨를 으쓱하자 소서노가 불가사리에게 말했다.
[그대는 준비가 되었는가?]
꾸웅-!!! 불가사리가 코를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불가사리가 소서노에게 뭐라 울음소리를 내자 소서노가 만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약속을 한 것이냐고 물어보는군.]
“약속?”
[질 좋은 쇠를 먹여주겠다는 약속. 혼이 들어있는 쇠를 먹여주겠다는 약속.]
“음…….”
만우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만우 주변에는 계속해서 그럴 일들만 벌어진다. 혼이 심어진 쇠라는 것은 야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검에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나드는 무인의 병장기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꾸엉!
[되었다,라는 군.]
그 순간 불가사리의 전신에서 눈부신 빛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만우의 눈이 커졌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불가사리의 전신에서 녹색의 불꽃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흠!”
화악! 만우가 손을 휘저어 기막을 형성해 김향을 열기로부터 보호했다. 만우는 일반 불꽃보다 훨씬 더 열기가 짙은 불가사리의 화염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힘을 다 안 쓴 것이었다니.’
사람이 아니라 불가사리에게 패배감을 느껴야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불가사리의 몸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더니, 소서노의 영체가 불가사리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그리고 잠시 후, 눈부신 녹색의 빛이 구덩이를 가득 채우더니 이룡검의 검병으로 그 빛이 몰려들었다. 파아아앗!!! 만우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이 걷히고 난 뒤, 만우는 공중에 떠오른 검을 보고는 눈을 부릅 떴다.
“이룡검?”
[그대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검이 이 형태인 것 같아서.]
소서노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만우는 이룡검의 백색 검신이 잘게 떨고 있다는 것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앞으로 함께하게 되었군. 일단은 잘 부탁한다고 할까.]
“으음…….”
[연자에게 대백제 싸울어미의 심득을 전해줘야 하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소서노의 말은 고어체를 그대로 쓰는 것처럼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검신이 찌르르 울렸다.
[꾸엉-!]
“핫.”
불가사리의 특이한 울음소리리까지 울리자 만우는 피식 웃으면서 검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검이 날아들어 만우의 손에 착 감겼다.
“오…….”
만우는 다시 복구된 백색 검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매끈하기 그지 없는 촉감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우는 이룡검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괴물 같은 검이 나왔잖아?”
이룡검이 아니라 괴물검(怪物劍)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기를 불어넣지 않았음에도 검은 검기를 씌운 것 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어서 나가자, 라고 불가사리가 난리를 피우는 군. 바깥 세상을 보고 싶다고.]
“바깥이라……좋지.”
만우가 피식 웃으며 공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만우의 눈이 커졌다. 오색찬란한 서기가 이룡검의 검신에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만우는 자신의 공력이 이룡검에 불어넣은 순간 두 배 가량 늘어나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는 말은 이룡검으로 펼치는 모든 무공을 절반의 공력만을 사용하고도 원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소서노와 불가사리로 만들어진 검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자부심이 가득한 소서노의 말에 이번만큼은 만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검이다. 보검이나 명검이란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야.”
만우는 황홀한 눈으로 오색찬란한 서기를 뿜어내는 이룡검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검에 대한 탐욕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만우다. 그런데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검, 동생인 간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룡검과 똑같은 모습을 한 검을 보면서 만우가 눈을 크게 떴다.
“나가자고!”
번쩍!!! 새로운 이룡검에서 서기가 사방팔방으로 폭사했다.
*****
“후하-!!!”
후두둑!!! 만우는 자신의 주변으로 비처럼 떨어져내리는 땅의 파편들을 공력을 뿜어내어 모두 멀리 날려버렸다.
“살았다아아아!!!”
축 늘어진 김향을 한 손으로 껴안은 만우는 허공에서 떨어져내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찌르르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기가 울렸다.
“으음?”
그때 축 늘어졌던 김향이 만우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든 듯 눈을 떴다. 만우는 품에 안겨있던 김향이 꼼지락거리자 턱을 내려 김향을 쳐다봤다.
“일어났어?”
“음? 음? 어어어어? 음?”
자신이 웬 남정네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을 깨달은 김향의 얼굴이 일차적으로 굳었다. 그리고 자신이 안겨있는 남정네가 만우라는 것에 김향은 입을 벌리고 어버버 소리를 냈다.
“건강해졌네. 한양에서 봤을 때보다.”
만우는 씩 웃었다. 김향의 몸에는 투녀 소서노의 영체가 사용하던 힘과 비슷한 자연의 기운의 향기가 느껴졌다. 일종의 벌모세수 아닌 벌모세수를 받은 것이다.
‘내공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힘.’
그 기운은 분명 무림인들의 내공과는 달랐다. 하지만 전혀 별개의 존재는 아니었다. 기(氣)나 김향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나, 전부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 어떻게 그…… 여기에.”
김향은 만우를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우물거렸다. 그사이 땅에 가볍게 착지한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김약항 어르신이랑 약속했지. 널 돌봐달라고 부탁하셨거든. 그런데 널 돌봐달라고 부탁한 그놈들이 널 잘 돌보지 못했네?”
“어리 언니네 광문자 아저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김향은 눈치가 빨랐다. 그 때문에 어리와 광문자가 만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곧바로 나서 그 둘을 변호한 것이다.
“알아. 널 데려간 놈들도 잘 알고 있고.”
“그 사람들도…….”
“누굴 만나서 이렇게 마음이 넓은 건지.”
만우는 독하지 못한 김향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하지만 그녀는 무림인이 아니다. 힘들게 함주까지 가 몸종으로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민간인이다.
“그렇게 착한게 좋은 거겠지. 앞으로도 그렇게 착해라. 아니, 앞으로…….”
[연자에게 내 깨달음을 전해야 한다!]
“아우. 알았어.”
이룡검이 부르르 떨리면서 소서노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땅에 착지한 만우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주변을 둘러봤다.
“뭐냐 얘네는?”
만우는 자신과 함께 땅을 가르고 나와 내려앉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슌스케와 호선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정의대 고수들 중 몇 명이 줄어 있었고 그들의 팔과 다리에 꽂힌 화살이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주변을 말을 탄 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검주!!!!!!!!”
두둑! 그때 한 쪽에서 분기충천한 목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운이 만우를 노리고 쇄도했다. 슈각!!!!! 만우는 반 발자국을 움직여 그 공격을 피해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늑대의 이빨처럼 뾰죡한 톱날이 나있는 검, 어디서 본 듯한 그 검 때문이었다.
“잘 만났노라!!!!”
두두두!!! 자신의 공격을 피한 만우의 옆을 지나쳐 말머리를 돌린 낭황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검주 만우다! 모든 살풍대는 검주를 최우선으로 쳐라!!!”
히히힝-!!! 번쩍!! 낭황 우결지의 고함소리에 살풍대의 살기가 두 배로 커졌다. 동시에 살풍대들이 기수를 전부 만우 쪽으로 돌리더니 수많은 화살과 투창이 그들이 손에서 번쩍였다.
“쯧. 낭황 할아범이네? 그리고 이놈들은 처음 보는 놈들이네?”
이룡검, 아니 이제는 신(新) 이룡검의 검병을 쥔 만우의 손이 옆으로 살짝 비틀렸다. 동시에 오색찬란한 서기가 일어나더니 만우의 주변으로 검풍이 휘몰아쳤다. 서거거걱!!!! 특별한 초식을 쓴 것도 아니다. 그냥 검을 들어 사방으로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불가사리가 검신이 되어 신이룡검이 된 만우의 검은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검압이 일 정도였다. 쐐애액!!! 만우의 소맷자락이 살랑이고, 만우의 머리카락이 바람이 어지러이 춤을 췄다. 하지만 그런 만우를 노리고 쏘아진 화살과 투창들은 만우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땅에 수북하게 쌓였다.
“어쨌든 할아범.”
만우는 자신을 노리고 말을 놀아 달려오는 낭황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상처는 안녕하신가?”
“이노오오옴!!!”
만우를 본 순간 낭황은 가슴팍에서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만우를 만나자 머리에서 만우에게 입은 상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비겁하게 튀어서는 마교에 들어가놓고 이길 것처럼 구는 거야? 이제 와서?”
휘리릭! 깡!
“크으!!!”
신력을 가졌다는 팽대수도 정면으로 부딪쳤다가 일방적으로 손해만 본 낭황의 검이다. 하지만 만우와 부딪친 우결지는 속에서 핏물이 왈칵 치솟는 것을 느꼈다. 두두두-! 아슬아슬하게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스쳐지나간 우결지는 몸을 휘청거렸다.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다.
“만우! 이 자식!!!!”
“검인. 꼴이 말이 아닌데?”
피투성이가 된 검인이 만우를 보면서 씩 웃었다. 만우가 나타나자 눈이 뒤집힌 낭황과 살풍대가 만우에게로 몰려간 탓에 여유를 찾고 재정비할 시간을 번 정의대와 만우 일행이었다.
“척사영. 그 아가씨는?”
“저기.”
검인이 손을 들어 챙챙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는 한쪽을 가리켰다. 만우는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끝나겠네.”
“아니야 만우. 가서 도와줘야 해. 그녀도 살풍대의 공격에 낯설어서 제대로 된 대응을…….”
“응? 척사영 혼자 있는 거 아닌데?”
“……뭐?”
“도와주는 사람 또 있는데. 투귀대 애들 아니었어?”
만우는 말하다가 앗하고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낭황. 살풍대. 이놈들 마교에서 온 거지? 그럼 투귀대 애들이 아니란 소린데?”
만우가 시퍼런 살기를 뿌려대는 낭황과 살풍대를 놓고 태연자약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 척사영이 몸을 뒤집어 투창과 화살을 피해냈지만 그녀의 검과 도도 살풍대를 베지 못했다. 하지마 척사영은 쉽사리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척사영은 무공에 있어서는 신이 내린 재능을 타고 난 천재다. 그랬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던 살풍대의 공격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점점 살풍대가 척사영을 떨쳐내기 버거워한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런데 그때 척사영의 고개가 휙하고 옆으로 돌아갔다. 팅! 그런 척사영을 노리고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그녀는 도를 들어 가볍게 튕겨낸 뒤 웃었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본 살풍대의 고수들이 불길함을 느꼈다. 그 순간, 척사영을 넓게 포위하고 있던 살풍대의 고수들 중 몇이 피를 뿌리면서 말과 함께 쓰러졌다. 크아악! 딸랑-! 딸랑-!! 비명을 내지르는 살풍대 고수들 사이로 땅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풍(刀風)이 몰아치며 주변의 살풍대의 고수들을 집어삼켰다.
“무슨!”
살풍대들 중 몇이 그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