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마교가 마교했네(1)2020.08.22.
꾸엉-!!! 쿵-!!
“음?”
만우는 공력을 끌어 올리다가 자신의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고 엎드린 불가사리를 보면서 멈칫했다. 만우는 한쪽 팔에 안은 김향이 다치지 않게 김향을 자신의 몸 뒤로 숨기면서 매서운 눈으로 불가사리를 노려봤다.
“뭐야?”
이룡검을 먹은 불가사리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기다란 뱀 같은 코가 흔들거렸고 소 같이 커다랗고 순한 눈망울은 듸룩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
만우는 손잡이만 남은 이룡검을 보면서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배가 고팠다는 거야?”
꾸엉-!! 불가사리가 코를 위로 들어올리면서 기분 좋다는 소리를 냈다. 만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긴장감이 쑥 빠져나가면서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거였다고? 미친듯이 달려들었던 게?”
그제야 불가사리가 만우가 아니라 왜 이룡검을 향해 달려든 것인지 모든 것이 설명이 다 됐다. 그런 만우의 옆으로 소서노가 내려앉았다.
“성수라면서.”
[……성수도 배는 고프겠지.]
“하. 쇠를 먹고 사는 성수인데, 쇠를 못 먹어서 배가 고파서 달려든 거다?”
[그런 모양인데…….]
소서노는 불가사리를 힐끗거렸다. 불가사리가 만우와 김향을 보면서 코를 들어 올렸다. 스윽, 스윽
“…….”
먹이를 준 주인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듯 불가사리가 코로 만우의 다리를 살짝 감았다가 풀었다. 만우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작은 언덕만 한 크기의 불가사리를 쳐다봤다.
“아씨. 쫄았잖아. 죽는 줄 알고.”
만우는 무림에 출도한 이후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처음으로 만나봤다. 그 때문에 만우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불가사리가 꾸엉-! 하고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만우는 주저앉아 불가사리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근데 너 진짜 세다.”
꾸엉-! 만우가 칭찬하자 불가사리가 기분이 좋은 듯 꾸엉하는 소리를 냈다. 만우는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넌 여기 왜 있었니?”
꾸엉-!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제부투혼을 보니 딱히 그것을 지키려고 했던 것도 아닌 듯 싶었다. 그러자 불가사리가 기다란 코를 들어보이면서 어두운 공중을 가리켰다. 꾸엉, 꿍, 꾸어엉-! 쿵쿵! 무언가를 코로 열심히 설명하던 불가사리가 코로 바닥을 가리키더니 옆으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워낙 덩치도 큰 녀석이 그렇게 드러눕자 쿠웅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안 그래도 엉망이 된 구덩이가 찌르르 울렸다.
“뭐, 저 위에서 대충 떨어졌다는 것…….”
[몇 십년 전에 그대 같은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서 쇠를 먹고 돌아다니다가 부적에 맞아서 죽을까 봐 어찌어찌 이곳까지 도망을 쳤는데 이곳으로 떨어졌다고…….]
“그냥 떨어졌다고?”
[이 아이가 들어온 곳. 그곳으로 들어온 게 이 성수였구나!]
소서노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만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마강 유역에서 발견된 동굴 입구가 원래 나 있는 입구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절벽이었던 곳을, 불가사리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으로 들이받아 만들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그곳에 기관진식으로 도배를 하고 다시 미궁을 원상태로 돌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소서노가 자신을 고생시킨 원흉을 드디어 찾아냈다는 것에 눈을 부라렸지만 순진무구한 불가사리의 눈을 보고서는 그 기가 한풀 꺾였다.
[금수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됐고. 그러면 너. 여기서 못 벗어나서 이러고 있던 거야?”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만우가 겪어본 불가사리의 힘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불가사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곳에 갇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수라 하더라도 이곳은 대백제 최고의 주술사들이 모여 만든 살아 있는 미궁. 그러니 빠져나가기란 요원할 테지. 먹을 쇠가 없으니 날이 갈수록 여위어 갔을 것이고.]
불가사리는 꾸엉하는 소리를 다시 냈다. 그게 맞다는 소리였다. 천년한철을 집어먹은 놈은 그대로 부족하다는 것인지 입맛을 쩝쩝거리며 다셨다.
“그래? 아닐 것 같은데?”
[…….]
만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서노는 입을 다물었다. 만우가 어떻게 이 미궁에 들어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방식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찾아야 될 건 찾았네.”
휘릭!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제부투혼이 허공섭물로 만우의 손에 들어왔다. 만우는 주술처리가 되어 있는 듯, 수백 년이 지났지만 삭은 곳이 하나도 없는 제부투혼을 한 번 주르륵 펼쳐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쓸 만하네.”
[쓸 만하다니! 그대가 익힌 상승무공이 심오하기는 하나 제부투혼도 인간이 우화등선을 할 수 있는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해주는 상승무학! 대백제의 유산을 감히 폄하하지 말라!]
“워. 알았어. 아직도 자부심이 가득하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히 혼자서 열만 낸 못난이가 된 소서노가 이를 뿌득거리며 갈았다. 그런데 그 때 불가사리가 꾸엉하는 소리를 냈다.
“뭐라는 거야?”
소서노는 꾸엉소리만 내는 불가사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듯했다. 소서노가 만우에게 불가사리의 말을 통역했다.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군.]
“내 이룡검 처먹고?”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가사리를 쳐다봤지만 이놈은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만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검만 있으면 돼. 그런데.”
만우는 허전한 이룡검의 검신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처먹었잖아!”
만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성수 불가사리가 꾸엉하는 소리를 내더니 소서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나 말인가?]
꾸엉-!
[안 된다. 나, 투녀 소서노는 이곳의 보물인 제부투혼을 연자에게 넘겨주기 위해…….]
꾸엉-! 불가사리가 꾸엉하면서 기다란 코로 만우의 한 팔에 안겨있는 김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소서노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틀리다는 건 아니지만…….]
꾸엉-!
[뭐, 뭐라? 나도? 나도 함꼐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꾸엉, 꾸엉, 꿍!
[……그대의 말이 과히 틀리지 않다.]
소서노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이상하게 서로 말이 통하는 영체와 성수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조선에 와서 별의별 특이한 경험을 다 하네. 땅도 작은 곳에서.”
중원은 조선과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도 다양한 곳을 유람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조선에서 오히려 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봤다. 500년 묵은 호랑이에 이무기, 거기에 이제는 영체에 성수라 불리는 생물체까지.
“중원에 다시 한번 더 가봐야하나?”
중원에도 이런 신기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워지는 만우였다. 그사이에 말이 다 끝난 것인지 소서노가 말하는 소리가 만우에게 들렸다.
“어?”
그런데 그때 만우의 기감에 익숙한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척사영의 파동이었다.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나? 꽤 급한데??”
기의 파동에 음을 실어서 특정한 사람만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전음술(傳音術)이고, 기의 파동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게 전설의 육합전성(六合傳聲)이다. 그 말인즉슨 음(音)을 실어서 보낼 수 있는게 기의 파동인만큼, 척사영은 그 기의 파동에 음이 아니라 파동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날려보냈다. 다급(多級).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는 걸 어쩌냐.”
만우는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검은 앞에 있는 불가사리란 놈이 처먹었고, 만우에게 남은 건 검 손잡이 뿐이다. 현경(鉉境)의 경지에 오르면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 검강(劍强)을 모사하여 사용하면 잠깐은 기로 만들어진 기검(氣劍)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공력의 소모가 심했고, 검강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기천의 초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주화입마를 각오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검이 문제라면 본녀와 성수가 답을 찾았다.]
소서노가 만우에게 말했다. 뚱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던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시간이 걸려도 들어온 곳으로 나가는게 낫지. 알잖아? 내가 난리를 치면서 들어왔다고.”
[글쎄. 본녀가 방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곳, 살아 있는 미궁이라고.]
크그긍-!!! 만우의 귀에 미궁이 대답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서노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말했다.
[이미 그대가 들어오면서 만들어낸 길은 전부 사라졌을 것이다. 알아서 수복했을 테니까. 아마 더욱 힘들어지겠지.]
“……끄응.”
만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소서노도 자신의 제안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본녀도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다. 지박령이라도 이렇게 본녀가 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
“검이 된다고?”
[그래. 대신 성수가 그대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꾸엉-! 소서노의 말에 불가사리가 코를 들어올렸다.
“내가?”
[그렇다. 그대처럼 자신에게서 버틴 강한 인간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거랑 검이 되겠다는 건 무슨 소리인데?”
[불가사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쇠는 야장이 수십, 수백 일을 정련하여 만든 질 좋은 쇠로 만든 것, 바로 병장기이다.]
“병장기?”
[그대의 검에서, 그대가 꺾은 수많은 이들의 혼(魂)이 느껴진다고 했다. 불가사리는 그대가 그런 질 좋은 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계속해서 꺾어나간다면, 그런 쇠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더군.]
“그러니까. 내 검이 되어 내 검에 쓰러진 놈들의 무기를 드시겠다?”
[그래.]
만우는 불가사리를 쳐다봤다. 불가사리는 그런 만우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만우는 어이가 없어졌지만,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기천의 전력을 쏟아부어도 상처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놈이니까.’
언덕만하게 큰 저 놈이 무슨 수로 자신의 검만한 크기로 줄어들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만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성수(聖獸)라 불릴 정도의 놈이니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러는 넌?”
[성수의 말을 그대는 알아들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뜻(義)을 투영하여 형(形)을 만들어내려면 그에 대해 아는 이가 필요하지. 또한…….]
소서노는 김향을 쳐다봤다.
[연자에게 제부투혼의 정수를 알리고자 하기 위해선 본녀도 이곳에서 나갈 필요가 있으니.]
“그러니까.”
만우는 불가사리를 가리켰다.
“쟤를 무슨 수를 써서 검으로 만들고, 그 검을 네 집으로 삼아서 따라나가시겠다?”
[그것 아니면 방법이 있는가?]
만우는 빈 이룡검의 손잡이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소서노의 말이 맞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끄응…….”
눈을 돌리니 불가사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들린 검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무기 가죽으로 만든 검병이었다.
[이무기 가죽이라. 구하기 힘든 걸 구했군. 그것도 살아 있는 놈으로.]
놀랍게도 소서노는 이무기 가죽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봤고, 어떻게 구한 것인지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