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살풍대의 습격(5)2020.08.18.
‘끝냈어야 한다.’
낭황 우결지는 쓰러질듯 잘 버티는 검인과 정의대 고수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괜히 무림맹의 정예들이 아니었다. 처음 상대하는 자신과 살풍대를 상대로 상당히 선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와아아앙-!! 거대한 덩치를 지닌 백호는 낭황의 예상에 없던 것이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변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낭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소교주! 그가 교주의 명령을 거부할 생각인가?”
먼저 이곳에 와있던 투귀대가 낭황과 살풍대를 도왔더라면 저들은 이미 전멸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교주와 투귀대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리 전서구를 띄워 이번 임무를 알렸음에도 호응이 없었다.
‘필요 없다. 기무의 복수는 나와 살풍대로 충분하니까!’
낭황의 눈에서 살기가 쭉 뻗어 나왔다. 그리고는 낭황이 말머리를 돌려 검인을 향해 짓쳐들었다.
“차하!!!”
교차하면서 정의대와 만우 일행이 구축한 원진을 도는 살풍대의 공격은 상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백 기의 기마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삼백, 사백의 기마대의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그 사이로 파고든 낭황의 낭아검이 검인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통하지 않는다!”
검인은 무리해서 낭황의 낭아검과 부딪치지 않았다. 자신의 신력이 팽대수처럼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말의 돌진력까지 실린 낭아검을 무리해서 맞부딪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검인이 마냥 피하는 방법만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따당! 매화극검이란 별호에 걸맞게 검인의 매화검은 부드럽지 않았다. 그의 검은 섬전처럼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 날카로운 공격으로 낭아검의 궤도를 튼 뒤 검병을 고쳐 쥐며 낭황이 탄 말을 노렸다. 쐐액!!!!
‘말이 없다면 할 만하다!’
낭황 우결지가 까다로운 이유는 그가 초절정의 고수이면서 말을 자신의 수족처럼 잘 다루기 때문이다. 초절정 고수가 기마술에까지 뛰어나다는 것은 가히 악몽이나 다름없다. 땅에 두 발을 붙인 이가 그런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초절정의 끝에 있거나 경신법이 매우 뛰어나야만 가능했다. 서걱! 그때 검인의 검 끝에 말다리가 걸려들었다. 검인의 눈이 번쩍인 순간, 말이 고꾸라지면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솟아올랐다. 그런데 검인이 아무리 안력을 돋워도, 낭황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때 차가운 얼음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처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끄아아악!!!”
“인무우우우우운!!!!!”
비명소리와 함께 무당파 일대제자인 유검(乳劍) 청문의 절규소리가 터져 나왔다. 낭황은 검인을 노리지 않았다. 낭황은 영악하게도 정의대 중 가장 약한 고수인 무당의 인문도사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낭황의 노림수는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인문도사는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가슴팍까지 파고든 낭아검에 툭하고 팔을 늘어뜨렸다. 무당의 송문고검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사제를 보고 눈이 뒤집힌 무당의 청문도사가 검을 휘두르며 낭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흐흐. 애송이들.”
낭황은 달려드는 청문도사를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낭황이다. 그런 낭황에게 이런 난전 상황에서 최우선은 강한 무공이 아니라 냉정함이었다. 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으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첫 희생자가 나오자 정의대 전체의 사기가 급속도로 하락하는 것이 검인의 피부로 느껴졌다.
“네 이놈! 용서치 않겠다!!!!”
청문도사가 무당의 검법을 펼치면서 낭황의 요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청문도사의 눈은 시뻘겋게 핏줄이 서 있어 그가 극도로 흥분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청문도사!!!”
검인은 그런 청문의 이름을 불러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청문도사가 이미 원진에서 빠져나가 낭황을 향해 쇄도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원진(圓陣)을 유지해 살풍대의 공격에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원진을 구성하고 있던 절정급의 고수가 두 명이나 빠졌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이성을 잃고 뛰쳐나간 것이다.
‘다시 원진을 만들려다가는 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진형은 다시 복구한다고 해도 원래의 견고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함께 어깨를 하던 동료들이 죽어나갔다는 것이 고수들의 정신을 흔들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안돼!!!!”
푸부북!!! 핏발이 선 눈으로 뛰쳐나갔던 청문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피가 후두둑 하고 떨어지며 공중에 떠오른 청문의 피를 게워냈다. 그의 복부를 살풍대의 철창이 관통한 것이다.
“청문도사!!!”
푸부북!!! 촤악!!! 철창에 꿰뚫린 청문의 몸으로 다른 살풍대의 철창이 박혀들었다. 그럴 때마다 청문의 몸이 활어처럼 펄떡거렸지만 이내 청문도 팔다리에 힘을 잃고는 축 늘어졌다. 인문도사에 이어 청문도사까지 죽은 것이다. 거기에 살풍대는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살풍대의 고수들은 죽은 청문의 몸에 박힌 철창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자 청문도사의 사지가 찢겨졌다. 쿡.
“끼랴!!!!”
“히하!!”
두두두두두-!!! 살풍대는 의도적으로 정의대 고수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죽은 청문의 시체를 창끝에 찍어서는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 시체를 철창 끝에 매단 채 정의대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돌았다. 후두둑하고 핏방울이 살풍대 고수들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피로 뒤범벅이 된 살풍대 고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악귀 같았다. 괜히 전장의 공포로 군림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본 정의대 고수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분기탱천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검인은 그런 그들을 보고서는 빠르게 결정했다.
“전원! 추행진으로!”
검인은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추행진이라 하면 쐐기꼴로 적의 포위를 뚫을 때 사용하는 진을 말한다.
‘전부 구할 수는 없다.’
원진을 고수하고 있다가 살풍대 안에서 고사(枯死)하느니 희생이 있더라도 뚫는 것이 났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런 다대다의 전투에서는 기세와 사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검인이었다.
“슌스케 도우(道友)와 호선 도우는 양옆을! 맹호도와 소여래는 뒤를 부탁하오!”
검인은 쐐기의 가장 앞에 서 검을 고쳐쥐었다. 검인의 고함소리를 들은 슌스케와 도우, 맹호도 팽대수와 소여래 일홍이 자리를 잡았다. 쿨럭. 팽대수는 낭황 우결지와의 충돌에서 받은 내상이 남아 피를 한 움큼 토해냈지만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청문과 인문의 죽음이 팽대수의 독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
“척사영 도우가 있는 곳까지 뚫겠소이다!!!”
검인이 날아드는 화살과 단창을 쳐내면서 발을 굴렀다. 동시에 정의대 고수들과 만우 일행들이 뒤섞여 앞을 가로막는 살풍대를 향해 쇄도했다. 두두두두-!!!! 갑작스런 진형의 변화였지만 살풍대도 전쟁이라면 이골이 난 이들이다. 쇄도하는 정의대와 만우 일행을 피하기 위해 살풍대가 꾸린 포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약간 뒤쳐진 살풍대 몇이 슌스케의 검에 갈려나가며 피를 뿌렸다. 히히힝-!!! 으아악!! 말이 내는 구슬픈 비명소리와 살풍대 몇이 피를 뿜어내면서 고꾸라졌지만 살풍대들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탱! 태대대댕!!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살풍대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이전과 다르다면 정의대와 만우 일행이 움직이는 만큼 살풍대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의대 쪽에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촤악!
“크윽!!!”
거북이가 등껍질에 숨듯 원진을 형성한 채 적의 공격만 받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정의대 고수들이다. 그런데 동료이던 무당파 고수들이 처참하게 죽으면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이동하면서 날아드는 적의 화살과 단창을 쳐내야 되는 상황이 오자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강요 소협!”
“가시오! 이놈드으을!!!!”
정의대 중에서 소령 다음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공동파의 단마검(斷魔劍) 강요의 허벅지에 단창 틀어박히면서 그가 기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강요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아 세운 채 달려드는 살풍대에게 맞섰지만, 호흡 몇 번 하는 사이에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령아! 바짝 붙어라!”
“네 사형!!”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소령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검인이 그녀가 부담해야 할 몫까지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이들의 죽음에 소령의 얼굴이 창백했지만, 검인은 그녀가 잘 버텨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만우! 어디에 있는가!!!!!’
척사영은 만우를 불렀다고 했다. 하지만 만우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척사영과 합류하기 위해 추행진을 꾸렸지만 그녀와 합류하는 길은 아직도 멀어만 보였다. 콰과과광!!! 연신 폭음과 굉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니 척사영도 노력을 하는 것 같았지만 살풍대의 최정예들이 붙었으니 그녀가 합류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으아아악! 아미파 연화수(蓮花手) 미오가 단말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열다섯 중 벌써 네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검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살풍대가 만들어낸 흙먼지를 뚫고 낭아검이 검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앙!!!
“크윽!!”
주르륵!!! 검인이 피할 새도 없이 날아든 낭아검이었다. 검인은 낭황 우결지가 새로운 말로 바꿔 탄 것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잘도 버티는 구나. 고작 네 놈이라니!”
“네 이놈! 낭황!!!!”
앞에서 뚫어내야 하는 검인이 막히자 추행진 전체가 멈췄다. 그렇다는 것은 방어하기 곤란한 진형을 유지한 채 멈춰 섰다는 것이다.
“크윽…….”
챙! 채채쟁!!! 크와아앙-!!!! 호선의 목을 쭉 펴고 포효를 내지르자 선기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호선쪽으로 날아들던 화살과 단창이 벽에 부딪친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퍼엉-!!!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호선의 이마에 땀이 송글거렸다. 살풍대가 호선과 정의대, 만우 일행을 노리고 창을 곧추세웠다. 창! 차창!!!! 포위망을 뚫으려면 낭황을 이겨야 한다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검인이 매서운 기세로 낭황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급한 검인과는 달리 낭황은 급할 필요가 없었다. 승기가 자신들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놈!!! 비겁하게 피하지 말고 맞서라!”
검인이 목덜미에 핏줄을 세우며 검을 휘둘렀지만 낭황은 철저하게 검인의 검을 막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검주는 어디 있느냐?”
“왜. 검주가 튀어나오면 도망갈 생각이라도 하는 것이냐?”
검인은 살기를 불태우며 우결지의 말에 비릿하게 웃었다. 우결지는 훗 하고 웃었다.
“검주의 지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를 죽인다 하더라도 끝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왔을 성 싶더냐?”
낭황은 코웃음을 쳤다. 검인은 이를 까득 갈면서 검병을 쥐었다.
“크윽!!!”
청성파 칠성시검(七星始劍) 무분도사가 화살이 꽂힌 팔을 움켜쥐고 뒤로 비척거리며 물러섰다. 정의대 고수들 전원이 성한 곳이 없었다. 슌스케와 호선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살풍대는 살기등등했다. 척사영은 이곳으로 언제 올 수 있는지 기약할 수 없었고, 앞은 낭황이 막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쏘냐.’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마교 따위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검인의 공력이 단전을 자극해 선천진기(先天眞氣)를 끌어올리려는 찰나 땅이 울렸다.
우르릉-!!!!!
“지진?”
살풍대의 말들이 놀라 투레질을 했다. 낭황을 비롯해 공력을 운용할 줄 아는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냥 지진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어떤 현상의 여파(餘波)일 뿐이었다.
“이런…… 이런 기(氣)라고?”
“무슨…….”
거대한 기가 땅속에서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는, 빠른 속도로 지상에 가까워졌다. 꽈르릉-!!! 쩌저저적!!!!! 정의대와 살풍대가 밟고 있는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상서로운 서기(暑氣)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