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살풍대의 습격(4)2020.08.15.
그녀를 단박에 소멸시키고도 남을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 불가사리가 벌린 입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멸마(滅魔)의 기운!]
불가사리는 악몽을 내쫓고 사기와 역질을 없애는 성스러운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사리는 기본적으로 악함을 멸하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번쩍!!!! 불가사리의 입에서 멸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움찔했다. 파아앗!!! 만우가 만들어낸 기천에 직격한 멸마의 기운이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의 흐름에 휘감기더니 이내 씻은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울컥. 하지만 만우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불가사리가 사용한 멸마의 기운이 결코 보통 기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럽게 세네.”
만우는 피를 한 모금 뱉어냈지만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만우의 팔과 다리는 덩실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오오오-!!! 멸마의 기운으로 손해를 본 만우지만 만우의 팔과 다리가 주변에 자욱한 기의 하늘을 휘감았다. 동시에 불가사리가 꾸엉하는 소리를 냈다. 쩡!!!!
[……??]
소서노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없었다. 쩡하는 소리와 함께 불가사리의 앞발이 푹하고 꺾였기 때문이다. 무언가 세찬 기운이 불가사리의 등을 때린 것이다. 꽈앙!!! 꾸웅-! 동시에 불가사리의 고개가 위로 휙하고 치켜올라갔다.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불가사리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덩실덩실 만우는 이룡검을 쥔 채 느릿하게 팔 다리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소서노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존재감이…… 존재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 존재 자체가 가지는 위치가 있다. 그건 굳이 육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소서노도 마찬가지이고, 성수인 불가사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우의 존재감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존재감이 흐려지는 게 아니라……]
소서노의 눈이 커졌다. 만운의 존재감이 흐릿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천. 만우가 만들어낸 기의 하늘 자체,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만우가 되어가고 있었다. 흐려지는게 아니라 공간 자체, 자연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만우의 존재감이 변한 것이다. 꾸어엉?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불가사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리고 불가사리는 그 원인을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기묘한 기운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쿠우우!!!! 불가사리의 곰처럼 생긴 몸통을 뒤덮고 있는 바늘 같은 털들이 뻣뻣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명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기(邪氣)를 없애는 기운이다. 소서노는 자신의 기운이 북돋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박령이긴 하지만 그 근본이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꿀꺽. 하지만 만우가 공간 그 자체가 된 기의 하늘은 그 기운마저도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자 불가사리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쿵!!! 불가사리는 입으로 멸마의 기운을 내뿜고, 몸으로는 사기를 멸하는 기운을 내뿜으면서 기의 하늘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만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불가사리가 아무리 날뛰어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만우의 반격이 시작됐다. 깡!!!! 까가강! 카각! 콰가강!! 기천의 5초식 기천무(氣天舞)는 기천의 최후 초식이지만 오의나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1초식부터 4초식까지, 기천의 기본이 되는 그것들을 일거에 풀어내는 행위일 뿐이다. 단지 춤(舞)의 형태를 띄고 있어 독특한 박자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행해질 뿐. 대부분의 적은 기의 하늘에 갇힌 순간 감각이 둔해진다. 기감이 오감을 대체하는 무림의 고수들은 경지가 올라갈수록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초인의 범주에서 인간의 범주로 내려온다. 당황하는 것이다. 베기인 기선(氣線). 검막인 기면(氣面). 찌르기인 기극(氣極). 공간을 점하는 기천(氣天). 이것을 모두 합친 기천무(氣天舞). 이기지 못할 상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기천의 오초식이지만, 만우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을 상대로 이기지 못 한다는 것에 나름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지가 부족한 것인가.’
기천의 궁극의 경지는 누가 밟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일인전승으로 내려온 것을, 김약항의 배려로 우연하게 익혔던 것이 만우일 뿐이다. 이후 만우는 스승도 없이 천부적인 재능만으로 작금의 수준이 이르렀지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불가사리를 상대하면서 느끼고 있었다. 콰과가각!! 콰각! 꽝! 꽈르릉! 꾸엉-!!! 불가사리는 정신없이 만우에게 얻어맞고 있었지만, 만우는 불가사리의 방어력을 뚫어낼 수 없었다. 성수 불가사리. 괜히 전설 속에나 나오는 성수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초월의 경지.’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았다. 아니,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사람이 아닌 짐승이 자신보다 강하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와 이매망량의 세계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초인(超人)이 아니라 초월(初月)의 경지에 들어서야 한다. 현경. 아니 더 높은 곳까지. 만우는 아무리 때려도 뚫어지지 않는 불가사리의 방어력에 호흡이 달려오고 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오랜만에 기혈에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른 이였다면, 아니 무림십좌 전원이 몰려들었어도 뼈 하나, 살점 하나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닌 무려 성수, 불가사리다. 초인이라고는 하나, 만우의 검은 불가사리에게 닿지 않았다. 굳이 더 공격을 퍼붓지 않더라도, 만우는 그것을 충분히 느꼈다. 불가사리를 당황하게 만들수는 있어도, 만우의 검은 불가사리를 해(害)할 수 없었다. 텅!!!
“후욱.”
만우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에 자욱하게 내려앉았던 기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불가사리가 그런 만우를 보고는 콧바람을 흥하고 내뱉었다.
“야. 못 이기겠다. 도저히.”
쿵! 만우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만우의 기혈은 마치 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 만우는 가쁜 호흡으로 이룡검을 땅에 박아 넣은 채 불가사리를 보면서 씩 웃었다.
“너, 세다?”
꾸엉-! 불가사리가 쿵쿵거리며 만우에게로 가까워졌다. 눈앞에서 차분하게 본 불가사리는 만우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그 크기가 호선보다 월등하게 컸던 것이다. 덥썩. 불가사리는 만우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가와 이룡검을 입으로 덥썩 물었다.
[불가사리는 쇠를 먹는 성수에요. 그 검을……]
와그작!!! 소서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불가사리의 입에 물린 이룡검이 와작하고 부서졌다. 그것을 본 만우는 하하거리며 웃었다. 검이 아까웠지만, 자신이 졌다.
“와하하. 그거 본주가 아끼는 동생이 만들어준 건데. 부셔먹어야 속이 시원하냐 이 짐승아?”
불가사리는 그렇게 말하는 만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의 그것처럼 서글거리는 두 눈이 만우의 눈과 마주쳤다.
“망할 놈. 이건 소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놈이. 그래도 네가 이겼으니까, 네 전리품이다 그거.”
만우는 이제 북방의 철목과 이룡의 가죽으로 만든 손잡이만 남은 검을 보면서 불가사리를 쳐다봤다. 불가사리가 퉷하고 손잡이를 내뱉었다. 쿵! 그리고 불가사리가 만우를 향해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망할.”
가까워져 오는 불가사리를 본 만우가 쓰게 웃었다. *****
“내가 바로 낭황 우결지니라!”
말에 올라탄 우결지가 낭아검을 곧추세우며 허술하게 방어진을 짠 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흐압!!”
꽈앙! 팽대수가 도를 꼬나쥐고 위에서 내려치는 우결지의 낭아검을 막았다. 같은 초절정이라고는 하나 깊이 자체가 달랐다. 푸웁! 팽대수의 입가로 핏물이 번졌다. 말이 달려오는 힘에, 위에서 내려친 힘까지 더해진데다가 우결지는 초절정에 든 지 수십 년이 지난 초고수다. 하지만 신력을 타고났다는 하북팽가의 고수답게 팽대수는 낭황의 검을 막아냈다. 그가 아닌 정의대 고수들 중 다른 이가 막았더라면 무기와 함께 두동강이 났을 것이다.
“투척!!!”
“흥!!”
까가가강!!!
“발사!!”
휘이이익! 파바박!! 척사영을 필두로 한 정의대와 만우 일행의 고수들의 질이 낭황과 살풍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나았다. 하지만 정의대와 만우 일행은 수비 일변도 이외에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척사영. 좌검우도로 화경에 다다른 그녀가 철저하게 거리를 벌리고 요격을 대해는 최정예 살풍대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풍대는 척사영을 유인해내서는 그녀가 동료들과 합류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면서 원거리 공격 위주로 거리를 유지했다. 말을 타고 있는 살풍대가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격을 날려대니, 위협적인 공격이 없다하더라도 척사영은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새가 없었다. 군대 단위의 집단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정의대와 만우 일행을 살풍대와 낭황 우결지가 철저하게 요리했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우결지가 뛰어들면, 그 뒤는 창을 든 살풍대가 절묘한 기마술로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를 공격했다. 말에 올라타 무리를 이룬 살풍대의 공격력은 개개인이 절정의 수준에 비견될 정도였기 때문에 슌스케나 호선, 검인 등의 초절정 고수들도 공격에 나서지 못하고 막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소령처럼 비교적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물론, 막아내는 만우 일행과 정의대의 수에 비해 살풍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흐읍!”
후웅!!!! 척사영이 검과 도로 도풍을 일으켜 그녀를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과 투창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하지만 척사영은 그 자리에서 일 장도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살풍대에서도 최정예로 꾸려진 결사대에 의해 막혔다. 크와아앙-!!!! 만우 일행과 정의대 고수들이 밀리기 시작하자 호선이 자신의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백호의 형태로 돌아갔지만 살풍대의 전마는 거대한 백호를 마주하고도 겁에 질리지 않았다. 500년이나 묵은 영물이라고는 하나 살풍대와 함께 수많은 피를 마신 전마들의 혈기는 백호라고 해서 물러날 정도로 얕지 않았다. 히히힝-!!! 사방에서 말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정의대 고수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이런 대규모 난전을 겪어본 적이 없는 정의대 고수들은 이런 상황에 취약했다. 코앞에 있는 적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적을 쓰러뜨려도 그 뒤에서 달려든 살풍대에 의해 언제든지 죽어나갈 수 있는 살기가 도처에서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간.”
백호로 돌아간 호선이 분전을 하고 있었지만 살풍대의 공격을 뚫어낼 수는 없었다. 팽대수를 물리고 뛰쳐나간 검인이 주변을 살피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검인이 정의대의 대주를 맡은 것은 그의 무공이 가장 고강하기도 하지만, 강호의 여러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검인에게, 살풍대는 철저히 각개격파를 요구하면서 정의대와 만우 일행을 사냥감을 몰듯 사냥을 하고 있었다. 맹수 사냥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한 방이 아니라 차근차근 몰아붙여 힘을 소진시키게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강하고 빠른 맹수라고 해도 지친 맹수는 결국 집요한 사냥꾼에 의해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원의 전사인 살풍대는 그 이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놈! 어디 한눈을 파는 것이냐!”
“흡!”
검인의 검이 향긋한 매화향을 허공에 수놓았다. 초절정에 들어선 검인의 매화검(梅花劍)이 대성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콰아악!!! 하지만 그런 검인의 검기는 낭황의 낭아검에 의해 파훼됐다. 검인은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앞섶을 베고 지나간 낭황 우결지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매화극검이라 하더니 꽃꽂이나 할 줄 아는 놈이로고!”
낭황은 그런 검인을 보면서 비웃었다. 하지만 검인의 부동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낭황은 그런 검인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팽가의 멧돼지 같은 놈보다 까다로운 놈이로다!’
이 일행 중 가장 위험한 척사영은 멀찌감치 떼어놓았다. 척사영 정도 되는 고수라면 일행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혼자 앞서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는 검인이었다. 외팔인 슌스케는 팔을 잃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실력이 검인보다 뒤쳐졌고 팽대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