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살풍대의 습격(3)2020.08.11.
“우리는 싸울 수 없다. 그러니 그대들도 몸을 피하라.”
“……맞군요.”
“무운을 빌지.”
주창은 소령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대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령은 방매와 그 뒤에 선 호선이라 불린 여자를 쳐다봤다.
“사형이랑 다른 분들은…….”
“만우. 만우와 향이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
“검주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호선은 인간의 모습이지만 기실은 호랑이가 그녀의 진짜 정체다. 그런 그녀에게 저 멀리 북쪽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살의는 함부로 맞서서는 안 될 종류의 것이었다.
“말이다. 전투의 광기와 살기에 사로잡힌 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말?”
호선의 말에 방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령은 주창과 마교의 고수들이 보인 행동과 호선의 말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살풍대?”
살풍대는 무림맹에게 특히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명의 주원장을 도와 당시 전장의 선봉에 섰던 무림맹의 무인들을 가장 많이 격살한 것이 바로 살풍대다. 파도처럼 짓쳐드는 살풍대 앞에서는 제 아무리 절정급 이상으로 수십 명이 뭉쳐도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당시 화산파에서도 백 명의 도사들이 나가 살아 돌아온 이들이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마교 고수들이 몸을 피했어. 같은 마교니까. 그리고 말이라면…….’
살풍대가 확실했다. 그사이 호선이 가리킨 방향에서 몰려온 흙먼지들이 이제는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호선은 그들을 보고서는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지난 날 고려를 침범헀던 이들과 비슷하구나.”
“살풍대. 원의 기마대. 어서 몸을…….”
“늦었다.”
호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선은 하늘을 쳐다봤다. 허공에 매 한 마리가 순찰을 돌듯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저들의 시야에 우리가 들어왔다. 그러니 우리가 부여 안으로 도망을 가버리면…….”
소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방매도 마찬가지였다. 저 기마대가 부여 안으로 난입을 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무림맹이나 마교가 아니었다. 백성들. 백성들이 저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힐 것이다.
“척 무사님!!!”
방매가 절벽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척사영과 슌스케, 그리고 정의대의 고수들이 절벽 위로 뛰어올라왔다. 그들도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흙먼지 구름을 발견한 것이다.
“원의 기마대!”
공력을 돋워 시력을 강화시킨 척사영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의 기마대라는 소리에 검인을 비롯한 정의대 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원의 기마대가 조선 깊숙한 곳에!?”
검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지만 이미 원의 기마대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그런 의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교 놈들은. 마교 놈들이 부른 것이었어. 이놈들을!”
맹호도 팽대수가 이를 뿌득 갈면서 마교 고수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미 이 절벽을 떠난 마교 고수들이 시야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옹주님!”
“네!”
척사영이 방매를 불렀다. 방매는 긴장감이 서린 얼굴로 척사영을 쳐다봤다. 원의 기마대의 강렬한 기세가 멀리 떨어진 그곳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제 아무리 담대한 방매라고는 하지만 전장의 향기를 강렬하게 풍겨대는 원 기마대의 기세는 처음이었기에 방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돌아가십시오. 현으로.”
“무사님!”
“옹주를 보호하면서 싸울 상대가 아닙니다.”
화경의 고수인 척사영이 하는 말이다. 척사영은 원의 기마대 가운데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을 감지했다. 최소 초절정급의 고수였다. 초절정급의 고수가 이끄는 원의 기마대. 전장에서 만났다면 그 자체가 재앙이다.
“동 현감 대리님에게 알려 성문을 잠그고 응전하라 알리십시오. 혹여나 저들이 그쪽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여현과 제부투혼이 발견된 절벽은 그대로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들이 서있는 이 절벽은 부여현 북쪽의 백마강 유역이고, 정확히는 부소산성 바깥의 야지(野地)였다.
“제가…….”
“네. 옹주께서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은공께서 있으시니 그때까지 버텨보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옹주보다 약한 이들은 없습니다.”
척사영은 광문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에게 그대의 주인과 옹주를 부탁하겠다. 옹주를 무사히 부여현까지 모시고 간다는 조건이다.”
“알겠소.”
광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동방제일살객이라 불릴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가진 남자였지만, 그가 모셔야 하는 주인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그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없었다. 또한 애당초 야전의 싸움에서 살수의 운신의 폭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럴 바에는 옹주를 보호해 부여현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대들은 알아서 피하라. 그대들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음이니.”
“저희도 부여현 안으로…….”
“안 된다. 그대들까지 들어간다면 저들은 둘로 나눌 것이다.”
척사영은 단호하게 불가를 외쳤다. 하오문 간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임수미는 그런 간부에게 눈짓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허나 저희는 실력이 부족해 끼어들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바라지 않았다.”
척사영은 검병을 굳게 움켜쥐었다. 척사영은 실질적으로 정의대를 이끌고 있는 검인을 쳐다봤다.
“정의대의 고수들을 다 잡아 주십시오.”
“살풍대를…… 이곳에서 맞이해 승산이 있겠습니까?”
척사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이 있는 곳은 절벽 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뒤는 깎아지르는 듯한 낭떠러지고, 앞은 완만한 경사다. 다행인 점이라면 너른 절벽 위 공터와는 달리 올라오는 길에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말이 오를 수 있는 길이 하나 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척사영과 정의대에게 큰 이점은 아니었다.
“은공을 부르겠습니다.”
“저 안에 계신 분을 어떻게?”
“이렇게.”
호선과 슌스케도 정의대 옆에서 전의를 다졌다. 그런 그들을 스쳐지나간 척사영이 검과 도를 양손에 나뉘어 쥐면서 공력을 터뜨렸다.
쐐액!!!! 그런 척사영이 검과 도를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검기를 품은 검풍이 희뿌옇게 달려오는 살풍대의 선두를 향해 날아들었다.
“산개!”
하지만 척사영의 검풍은 아무것도 베지 못했다. 살풍대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한 몸처럼 움직이며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척사영의 공격을 피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척사영은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했다.
“저들의 시선을 묶어두었고, 이 정도 공력을 터뜨렸으니…….”
척사영은 바닥에 깃털처럼 착지하고서는 중얼거렸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버티기만.”
두두두두-!!!! 흙먼지가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 콰앙-!!
[쿨럭]
분명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피해를 입힐 방법이 없는 영(靈)의 상태인 소서노지만, 그런 그녀도 성수 불가사리 앞에서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왔어?”
[너, 멀쩡했던 것이냐?]
“어.”
만우를 내던진 것처럼 불가사리는 소서노의 발목을 휘감아 아래로 내던졌다. 그 짧은 사이에 소서노의 행색은 여기저기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본녀가 당하는 걸…….]
“분석이라고 해두자. 처음 보는 놈에 대한 분석.”
10장 아래로 내던져졌지만 그대로 땅에 처박힐 정도로 만우가 익힌 공부는 녹록하지 않았다. 대신 만우는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소서노와 불가사리의 격돌을 관찰했다.
“저거. 순전 괴물아니야? 저거 뭔데 대체?”
쿠웅!!!! 그때 구덩이 전체가 찌르르 울릴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불가사리가 만우와 소서노 앞에 착지했다. 불가사리의 두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성수 불가사리! 쇠를 먹고,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邪氣)와 역질(疫疾)을 쫓는다는 성스러운 동물.]
“그니까. 짐승 새끼라고?”
만우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만우의 말을 들은 것인지 불가사리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광이 더욱 강해졌다. 소서노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짐승이 아니라 성수!]
“어쨌든. 짐승 수(獸)를 가져다 붙였으면 짐승이지.”
만우는 이룡검을 휘휘 휘둘러보았다. 언제나 휘둘러도 손에 착 달라붙는 듯한 이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그 순간 만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팟! 꾸웅!!!
[꺄악!]
소서노가 처음으로 여자 같은 비명소리를 냈지만, 불가사리나 만우는 그런 소서노의 비명 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대체 몸뚱아리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구덩이 여기저기를 완전히 폐허처럼 만들고 있음에도 불가사리는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불가사리의 돌진을 피해낸 만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쩌엉!!! 동시에 검기를 일으며 불가사리를 때렸지만, 불가사리는 만우의 검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만우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안 통하잖아.”
검으로, 장력으로, 각법으로 때려도 불가사리는 그냥 맷집으로 때우고 들어왔다. 만우는 그런 불가사리를 보다보니 오기가 솟았다.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나보자.”
만우가 눈을 부릅뜨면서 진심으로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소서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영체(靈體)인 그녀의 살갗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만우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계백? 양만춘? 김유신? 소서노는 이제 만우를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에 장담할 수 없었다. 소서노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녀도 기운을 유형화 시킬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성수 불가사리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꼈는데, 만우는 아니었다. 멈칫. 물러설 줄 모르고 돌진만 하던 성수 불가사리가 처음으로 멈칫하고 몸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여전히 불가사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이거 내 거야 이 짐승 새끼야!”
불가사리는 처음부터 만우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만우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만우의 손을 보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가사리는 만우가 아니라 만우의 손에 들린 이룡검을 노리고 있었다. 쇠를 먹는 괴물. 구덩이에 떨어져 오랜 기간 굶주린 불가사리에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간만에 등장한 이룡검은 아주 탐이 나는 먹잇감이었다. 그냥 쇠가 아니라 무려 천년이나 묵은 한철로 만들어진 검이란 것을 알아챈 것이다.
[……식탐이었다고?]
소서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불가사리는 소서노를 보고 딱히 그녀를 죽이고자 하지 않았다. 성수 불가사리는 영체인 그녀를 얼마든지 소멸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물리적인 공격만 가한 것이다. 비록 불가사리가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 때문에 영체인 그녀도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기적이 아니라 불가사리가 소서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기천의 5초식이야. 한번…… 받아봐.”
만우는 이룡검이 부르르 떠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만우의 몸에서 억눌려져 있었던 공력들이 삽시간에 구덩이 안을 가득 채웠다. 기의 하늘, 기천(氣天). 그 기천의 정수가 만우의 손에 의해 뿜어져 나왔다.
“기천무(氣天舞).”
번쩍!! 기의 하늘에 몸을 내맡긴 만우가 덩실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움찔. 탈춤을 추는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만우가 어깨를 덩실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만우의 다리가 느릿하게 품(品)자 형태로 땅을 밟았다. 상황과는 다르게 한없이 느긋해 보이는 만우의 모습에 소서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불가사리는 몸을 움찔했다. 스윽. 주변에 자욱하게 퍼졌던 기의 하늘이 만우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함께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기로 만들어진 구름이 바람결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가사리의 눈에서 안광이 세차게 뿜어지더니 긴 코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
순간 소서노의 뒷목이 쭈뼛하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