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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살풍대의 습격(1) (167/400)

167. 살풍대의 습격(1)2020.08.04.

만우가 제부투혼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사라진 지 사흘이 흘렀다. 사흘 동안 흡사 땅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지만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만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곳에 모여든 모든 무림인들이 추가로 사흘 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하나둘씩 짐을 싸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16553230845469.jpg“간다고?”

16553230845469.jpg“가야지. 저놈들이 버티고 있는데.”

16553230845469.jpg“저놈들도 가지 않을까?”

16553230845469.jpg“검주가 들어갔다가 실패한 곳에 우리가 들어가자고? 자살하고 싶으면 다른 방식으로 해, 인마.”

떠나는 다른 방파의 무인을 붙잡았던 이가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그의 말이 틀린 부분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부투혼은 먹음직스럽지만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마강 동굴이 있는 절벽 위에 야영지를 차린 투귀대와 정의대, 은월루와 하오문의 고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16553230845469.jpg“언니.”

16553230845469.jpg“방 동생.”

165532308455.png“하아…….”

방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를 찾아온 소령과 옥령 때문이다. 한 명은 무림맹의 고수였고 한 명은 마교의 고수지만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란 것이 가장 약한 이가 정의대와 투귀대에서 두 명이기 때문에 서로 어색해하긴 해도 만났다고 무기를 뽑아들진 않았다. 꽈앙-!

165532308455.png“저기도 여전히 열심이네.”

방매는 절벽 아래의 강가에서 꽈릉하는 굉음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경천동지할만한 고수의 비무도 처음 한두 번이나 신기했지 지금에 와서는 그냥 소음일 뿐이었다.

165532308455.png“거기, 마교 언니는 저런 거 보러 안가요? 정파 동생도 그렇고.”

방매는 이 둘이 부담스러웠다. 다른 고수들은 화경들의 비무라는 것에 우르르 몰려가 절벽 위가 조용했다. 심지어 슌스케까지 그곳에 가서 두 눈을 부릅뜨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고수들 간의 비무는 하수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령과 옥령은 도통 저런 데 관심이 없었다.

16553230845469.jpg“전력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라서 별로 도움도 안 돼.”

16553230845469.jpg“난…… 저런 거 싫어해요.”

소령과 옥령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방매는 하는 수 없이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두 명이 방매 옆에 차례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깔고 앉았다. 방매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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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308455.png“아니. 그 나이 먹도록 화장법도 제대로 모르고 뭐한 거예요?”

이 수십 명의 고수들 중 여자는 딱 다섯 명에 불과했다. 물론 하나는 여자가 아니라 암컷이었지만, 그 암컷을 제외하면 네 명이었다. 방매, 소령, 옥령 그리고 척사영. 그런데 소령과 옥령이 화장법에 강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방매의 직업이 매분구이고, 화장품을 사다가 양반집에 팔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화장품이 들어오면 화장법까지 알려준다는 소리를 하자 강렬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16553230845469.jpg“무공 수련하느라 바빠서 못 했죠.”

16553230845469.jpg“저도…… 마교에는 이런 화장품을 구하기가 힘들답니다.”

소령은 산중에 처박혀 무공만 수련하는 화산파의 제자다. 물욕을 버려야 하는 도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화산파이기 때문에 화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거기에 옥령은 나찰사화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화장품을 구하기에는 마교가 너무 중원에서 떨어져 있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165532308455.png“에휴. 이걸 그냥 무시할 수도 없고.”

방매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하지만 이내 주섬주섬 보자기를 펼쳐놓고 작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화장품들을 그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165532308455.png“눈 감아요. 가만히.”

16553230845469.jpg“히히. 네 언니.”

방매는 자신의 앞에 눈을 감고 귀엽게 웃어대는 소령을 보면서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방매의 손이 소령의 얼굴에 색과 음영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소령의 얼굴색이 점점 살아나는 것을 옆에서 옥령이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매 한마리가 허공 몇 바퀴를 뱅글거리면서 돌다가 내리꽂혔다. ***** 마일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손을 뻗은 마일의 팔 위로 거대한 매가 내려앉았다. 마일은 그 매의 다리에 묶인 작은 죽간을 풀어서 손에 쥐고는 매를 날려 보냈다. 삐이익-!! 매가 멀어지면서 인사하는 듯한 소리가 멀리 울려 퍼졌다. 마일의 얼굴이 멀어지는 매를 보면서 굳었다.

16553230845469.jpg‘살풍대의 매.’

초원을 내달리던 전사들보다 초원에서 유일하게 빠른 존재가 바로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매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매를 전서구로 사용했다. 그 때문에 마일은 매를 보자마자 눈치챘다.

16553230845469.jpg‘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구나.’

마군자 마원은 마일의 아버지이자 신교의 제1군사다. 늘 교주인 혈세천마의 지근거리를 보좌하는 인물이자 신교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향키다.

16553230845469.jpg‘낭황과 살풍대.’

마원은 마일에게 인편으로 낭황과 살풍대를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목적은 단 하나.

16553230845469.jpg‘검주!’

마일은 끄응하는 소리를 냈다. 혈세천마가 굳이 이 먼 조선에 낭황과 살풍대를 보내 검주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16553230845469.jpg‘뜬소문이 아니었다.’

일패. 무림십좌의 최강자인 천마신교의 교주 혈세천마가 검주 만우에게 패할까 두려워 그의 비무 신청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이다.

16553230845469.jpg‘교주님보다 강하다고? 그자가?’

마일은 만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의 검주 만우다. 그런 그가 그보다 나이를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많이 먹은 교주보다 강자라니?

16553230845469.jpg‘교주께서 패배하신다는 것은 불가한 일!’

천마신교는 강자존이 다른 모든 율법을 집어삼키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자신보다 윗줄에 있는 고수에게 도전할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고수에게 도전하여 승리하면, 그 고수의 모든 것이 승리한 이의 손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런 천마신교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혈세천마다. 그런데 혈세천마가 검주에게 패배한다? 그러면 천마신교는 혈세천마가 아니라 검주를 교주로 모셔야 한다.

16553230845469.jpg‘그래서 죽여야 한다…….’

혈세천마는 자신보다 강한 이가 무림에 존재한다는 것에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검주를 조우하지 않았더라면 모를까, 자신보다 강한 무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신교의 움직임은 정해져 있었다. 검주 만우의 죽음. 만우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마신교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그것도 만우가 중원무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조선에까지 와서야 천마신교와 교주가 드디어 움직일 정도로 끝까지 신중했다. 이 사실이 혹시라도 중원에 흘러나가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16553230845469.jpg‘그렇다면 우리를 조선에 보내신 것도.’

아버지인 마원이 보낸 서신을 읽은 마일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섰다. 주창을 비롯한 투귀대는 은월루에게 받아낼 돈이 있어서 조선에 온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임무가 아니었다. 검주 만우를 신교에서 판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진짜 임무였고 방금 그것이 마일의 손에 죽간이 되어 들어왔다.

16553230845469.jpg‘동영. 언제 아버지께서는 그들까지 끌어들이셨단 말인가.’

만우를 끌어들인 함정은 조선이 아니라 조선으로부터 더 먼 곳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영. 바다를 건너 가야 하는 동영에 그곳의 군주 하나와 마원은 벌써 밀약을 맺어놓았다.

16553230845469.jpg‘그곳에서 검주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를 죽인다. 움직이는 건…….’

마일의 눈이 커졌다.

16553230845469.jpg‘곡왕의 진혼대. 마존의 천마대. 그리고…… 교주!’

광호검 기무의 스승인 낭황과 악궁 테무르의 가신들인 살풍대를 이용해 검주 만우를 공격한다. 제 아무리 검주 만우라고 해도 그들을 경시할 수는 없었다. 화경의 고수는 없다지만, 낭황은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들을 쓰러뜨린 이력이 있는 노괴물 중에 노괴물이고, 말에 올라탄 살풍대의 살진(殺陳)은 소림이 자랑하는 백팔나한진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미끼였다.

16553230845469.jpg‘아버지는, 제1군사는…… 역시 무서운 분이시구나.’

낭황과 살풍대는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명검이다. 하지만 그들을 마교에 묶어두었던 구심점인 광호검과 악궁이 죽었다. 마원은 그들을 거리낌 없이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만우를 동영으로 유인할 수 있다면, 투귀대가 그들을 유인할 수 있다면 백 명이 넘는 그들을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16553230845469.jpg‘그사이, 검주를 유인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낭황과 살풍대까지 보내줬으니 이건 해야만 한다. 설사 검주 만우가 교주인 혈세천마보다 강한 무인이라고 할지라도, 해내야만 하는 신교로부터의 명령이다.

16553230845469.jpg‘할 수 있을까?’

하지만 파천서생 마일의 마음속에서는 이 일을 주창과 상의해 보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검주 만우. 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라고 생각했던 검주 만우의 존재감이 어느새 마일에게도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커진 것이다.

16553230845469.jpg“모르고 있다면 그냥 했을 테지만…….”

검주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을 때라면 성공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냥 실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마군자 마원이 내린 명령이 실현가능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16553230845469.jpg‘판단을 해라. 그래서 최선의 선택을 소교주께 말씀드려야 한다. 난…… 군사니까.’

마원이 명령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마일도 소교주인 주창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군사다. 그러니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된다는 우직한 답이 아니라 최상의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흔들리던 마일의 눈이 원래의 침착함을 되찾았다. 절벽 아래에서 들리던 폭음이 멈춘 후였다.

16553230845469.jpg“……이 방법밖에 없군.”

마일이 무겁게 중얼거렸다. *****

16553230845469.jpg“크으으. 이런 빌어먹을.”

기린대의 대주이자 사파의 거두인 철권 교수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노상에서 술병을 들고 병나발을 불었다.

16553230845469.jpg“크으으.”

후끈한 술이 속을 달궜다. 그리 맛있다고 할 수 없는 탁주였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의 열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이런 후끈한 열기가 필요했다.

16553230845469.jpg“크아아! 대체 나와 무슨 악연이 있다고!”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기린대들도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덩치가 산만 한 장정 서른 명이 노상에 앉아 어두운 얼굴로 술을 먹고 있으니 감히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16553230845469.jpg“검주! 검주! 빌어먹을 무림십좌! 으아아아!!!”

하필이면 검주가 부여에 나타날 줄이야. 부여에서 적당히 왕 노릇이나 하다가 시간이나 때우고 중원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계획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대로는 돌아가도 원로들이나 곡주에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6553230845469.jpg“대주. 그냥 가서 확…….”

16553230845469.jpg“확. 뭐. 죽고 싶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정심을 잃고 만우에게 달려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만우만 있다면 모를까 지금 만우 주변과 그가 머물고 있는 관청 객사는 복마전이었다.

16553230845469.jpg“못 봤어? 투귀대, 정의대까지 있는데, 거기 가서 뭐하게.”

16553230845469.jpg“음…….”

만우는 교수와 기린대에게 부여현의 순찰을 맡겼다. 괜히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이 없도록 관리를 잘 하라는 으름장도 함께 주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교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만우에게 달려들기에는, 만우라는 괴물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16553230845469.jpg‘곡주보다 더 강했어.’

교수는 무림십좌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파는 전체적인 무인들의 머릿수에는 정파나 마교에 비해 크게 앞섰지만, 절대고수가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언제고 녹림과 장강 등의 세력과 손을 잡고 십만이 넘는 무인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사파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사파에도, 사파들의 연맹인 사림곡에도 절대고수가 한 명 있었다. 독왕(毒王) 중백약. 독과 암기의 대가인 사천당가(四川唐家)에게서 독을 뺐어온 독인(毒人) 중백약이 바로 무림십좌 중 이왕(二王)의 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본 교수는 곡주라 해도 만우와 비교하면 그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결국 독왕도 검주를 만나면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16553230845469.jpg‘그런 놈이 사주(四主)라고? 멍청한 놈들. 제 자존심 세우느라 나만 피를 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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