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장보도가 가리키는 동굴(1)2020.07.21.
김향은 헉헉거리며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옆으로 토해냈다. 살기 위해 뛰긴 했지만, 갑자기 자신이 들어온 입구가 쿠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턱하고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그 탓에 덜컥 겁 먹은 김향은 주변에 몸을 숨기고 혹시 누군가 쫓아들어오지 않는지 바깥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갇혔어?”
김향은 멍한 눈으로 앞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김향의 발아래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땅이, 벽이, 천장이. 그녀가 서 있는 공간 자체가 미친 듯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향은 그 바람에 사방에서 튀는 돌가루에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김향은 머리를 감싸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움직아다가 넘어지면 다칠 것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당황하지마. 향아.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면 호랑이가 물어가도 살 수 있다고 했어.’
김향은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던 진동이 어느 순간 뚝하고 멈췄다. 그러자 조심스레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감쌌던 팔을 푼 김향의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여기…… 뭐지?”
땅이 움직이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뻥 뚫린 공동 같은 곳이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김향은 사람 한 명 정도가 지나가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복도가 생겨난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가보자. 향아. 가보자.”
김향은 덜덜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미로 안으로 향했다. *****
“그게 다야?”
“네, 검주.”
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만우에게 임수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기관진식을 처음부터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통채로 망가져버리구요. 그러니까.”
만우는 풀이 돋아있는 언덕을 발로 탕탕 쳐봤다. 백마강 강가에 난 동굴 위의 언덕이었다.
“위에서부터 뚫고 내려가서, 중간부터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의 도굴꾼들에게 들은 이야기니 의심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
최고의 도굴꾼들. 그들은 중국의 역대 황실이나 귀족들이 묻힌 묘를 찾아 그곳에서 진귀한 것들을 훔쳐서 바깥에 내다 파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런 힘있는 귀족가들은 도굴꾼들을 대비해 기관진식을 묘에 설치한다. 그리고 그것을 뚫어내는 이들이 바로 도굴꾼이다. 기관진식을 설치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런 기관진식을 해체하는데 가장 정평이 나있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도굴꾼이다. 스윽 만우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선 마교, 무림맹, 하오문, 은월루의 고수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턱짓으로 땅을 가리켰다.
“뭐해? 파?”
만우의 명령에 고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으으으…….”
팅!!! 파바바박!!!
“꺄악!”
겁을 잔뜩 먹은 채 조금씩 어두운 통로를 헤치고 나아가던 김향이 머리를 감싸쥔 채 풀썩 주저앉았다. 얇은 실 같은 것이 정강이 부근에서 툭하고 끊어지더니 세찬 바람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꺄아아……아?”
김향은 한참동안 비명을 내질러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자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쳐다봤다. 키가 큰 남자라면 머리를 숙이고 걸어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았지만, 또래에 비해 더 작은 김향에게는 높기만 한 천장이었다. 그런데 김향의 눈에 성인의 머리 높이를 노리고 쏘아진 화살들이 깃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도로 벽에 빽빽하게 박힌 것이 들어왔다.
“화, 화살.”
김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활이란 것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라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김향은 이게 일종의 함정이란 것을 깨달았다. 활이라 함은 모름지기 사람이 당겨야 했지만, 사람이 당겨서 화살이 날아온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 벽에서 나왔어.”
김향은 무서운 와중에도 찬찬히 벽을 살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데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김향이 깨달은 것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어른의 높이에 맞춰서 만들어진 함정 같은데....”
첫 번째 함정이었기 때문에 김향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화살이 정확히 딱 어른의 머리 높이에 틀어박혔기 때문에 김향은 그럴 것이라 추측만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김향은 배를 바닥에 깔고 몸을 바짝 엎드렸다. 높이 때문에 살았지만, 만약 더 낮게 화살이 날아온다면 김향은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높이를 만들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버그적, 버그적. 바닥에 배를 깔고 앞으로 기어가자 배 부분이 차가워졌다. 바닥이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향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팅!! 서컹! 서컹!
“꺄악!”
김향은 자신의 뒷통수 바로 위로 바람소리가 숭숭 나는 것을 들었지만 엎드려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김향이 머리로 낮게 깔린 선 하나를 끊자 딱 어른의 무릎 높이를 노리고 양 옆의 벽이 열리더니 시퍼런 칼날이 나와 사정없이 허공을 할퀸 것이다. 김향이 서 있었다면 그대로 다리가 잘릴 뻔했다. 김향은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은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팅! 쐐액!!!! 팅! 푸화아악!! 팅! 써컹! 김향은 그 상태로 함정들을 마구 발동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배를 깔고 엎드린 것이 주효했다. 김향은 작았고, 엎드려도 성인에 비해 터무니 없이 몸이 얇았다. 그 떄문에 다 큰 어른이 배를 깔고 똑같이 했으면 당할 뻔한 함정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김향의 머리 위로 암기가 날아다녔고, 어떤 함정에서는 뿌연 독연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연기는 천장에 붙어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어떤 함정에서는 불쑥불쑥 철창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던 김향의 머리 위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릎과 팔꿈치는 다 까져서 피가 맺혀있었고 차가운 바닥에 붙이고 기어다녔기 떄문에 배는 얼얼한 것이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기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막막한 상황에서 김향의 머리가 어딘가에 닿았다. 덜그럭
“힉!”
자신의 머리가 닿은 곳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기겁한 김향이 뒤로 기어서 물러났다. 또르륵 뚝!
“꺄아아아악!!!”
그런데 그 때 무언가 또르륵거리면서 뚝하고 김향의 눈앞에 떨어졌다. 하얀 백골이었다. 텅 빈 백골의 동공이 눈 앞에 떨어지자 놀란 김향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하…… 어?”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킨 터라 함정이 발동될까 뜨악한 김향이 다시 배를 깔려는데, 김향은 자신이 좁은 복도를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네.”
아니, 정확히는 복도와 복도 사이에 있는 작은 방에 도착했다. 김향이 기어 나온 복도가 방 끝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방에는 앉은 채 죽은 듯 보이는 해골이 있었다. 그 해골의 머리가 김향의 눈앞으로 떨어진 것이다.
“으으…… 무서워.”
김향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죽은 자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유골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골을 쳐다보던 김향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꼬르륵!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격하게 움직였기 때문인지 허기와 갈증이 김향에게 찾아온 것이다. 김향은 조심스럽게 작은 방을 둘러봤다. 어둠 속에 눈이 익은 것인지 불빛이 없음에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김향이 자세히 보니 동굴 벽면에 푸르스름하게 발광하는 이끼 같은 것들이 붙어있었다.
“배가 고파. 왜 이러지?”
김향은 그 벽면에 붙은 이끼를 보자 침이 꿀꺽하고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김향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벽면에 붙은 이끼를 떼어내어 입에 넣었다.
“화!”
푸른 이끼이기 때문에 비린 맛이 날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향긋한 풀내음이 입안을 채웠다. 김향은 놀란듯 눈을 번쩍 뜨고는 정신없이 이끼를 뜯어먹었다. 하지만 무림인들이 그런 그녀를 보았다면 기겁하면서 그녀를 뜯어 말렸을 것이다. 스스로 발광하는 푸른 이끼, 청석균(靑石菌)은 복용한 자의 내공을 크게 늘려준다는 천년석균(千年石菌)에 비하면 못하지만 그래도 1년에서 5년 정도의 내공을 늘려준다는 영약이었다. 그게 조금 있는 것도 아니고, 벽면 하나를 가득 뒤덮을 정도로 가득 있었다. 무림인에게 가져다 팔면 손바닥만 한 크기에 못해도 금자 하나는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영약이지만, 그 벽면에 붙어있던 것들이 김향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쩝, 쩝, 우걱, 우걱 그렇게 한참동안 벽면에 붙은 푸른 이끼, 청석균을 뜯어먹던 김향은 어느 순간 강렬한 갈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의 석면 중 하나에 작은 홈이 파여 있고, 그곳에 투명한 액체가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김향의 눈이 반짝였다.
‘향기.’
분명 처음만 해도 이 방 안에는 팍팍한 돌 냄새만 났다. 그런데 지금은 향긋한 향기가 방 안에 떠돌고 있었다. 바로 천장을 따라 벽면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나는 향기였다. 후르릅! 벽면에 고인 물은 두 모금 정도면 끝이었다. 하지만 김향은 그것을 마신 순간 천상의 감주보다도 향긋한 것이 그녀의 갈증을 깨끗하게 씻어준다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청석수(靑石水). 이 역시도 공청석유 같은 경천동지할 약성을 지닌 전설의 기보는 아니었지만 청석균만 한 약효를 지닌 것이 무려 한 손 가득 찰 정도로 고여 있던 것을 김향이 마신 것이다.
“하아아…….”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김향은 느끼고 있지 못 했지만, 그녀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만족감에 눈을 감고 있던 김향의 눈이 순간 커졌다.
“아, 아아?”
갑자기 자신이 설원 한복판에서 북풍한설의 삭풍을 맨 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은 극심한 추위가 덮친 것이다. 그런데 뱃속에서는 용암 같은 것이 드글거리며 들끓었다. 놀란 김향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순간, 김향의 눈에 좌정한 채 앉아있던 백골이 들썩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
갑자기 추워지고, 뜨거워지는 와중에도 김향의 눈이 커졌다. 마치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썩거리던 백골에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확하고 튀어나오더니 김향에게로 달려들었다.
“아…….”
검은 무언가가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느낀 순간, 김향의 눈앞이 흐려졌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흡사 땅에서 거대한 손이 그녀를 끌어당기는 듯 했다. 그렇게 김향의 눈은 감겼고, 백골에서 튀어나온 검은 무언가가 그녀의 몸을 덮쳤다. *****
“이래서는 끝이 없다!”
언살은 또 다시 백 기의 기마대가 지나간 흔적만을 발견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설운은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린 채 언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살풍대. 말로만 들었던 원 황실의 망령인 살풍대는 신출귀몰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잡을 수 없는 바람 같은 기마대였다. 임금의 어명을 받고 곧바로 꾸려진 오위 출신의 정예와 함께 살풍대를 추적하기 위해 나선 설운과 언살은 이미 그 살풍대가 한양을 돌아 옆으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추적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보병 위주인 오위의 정예를 이끌고 말을 타고 내달리고 있는 살풍대를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살풍대도 쓸데없는 분쟁은 피하고 싶은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은 이리저리 돌아서 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으로 그들을 추적하는 설운의 부대보다 살풍대가 월등하게 빨랐다.
“선택을 해야 한다. 설 장군.”
임금으로부터 장군검을 하사받아 젊은 나이에 장군이라 불리게 된 설운이지만 500이 넘는 정예를 통솔해보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반란군으로써 이천우의 안주군의 부장으로 결사대를 이끌긴 했지만, 그것과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병사의 보급부터 시작해서 사기와 체력, 그리고 동선까지 적을 추격하면서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했던 것이다.
“그전에 그 말투부터 고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