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제부투혼(3)2020.07.14.
“형님. 설마?”
사람의 감이란 때론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독안귀 명청은 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했다. 부여에 모여든 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찾아헤멨지만 제부투혼은 나오지 않았다. 부여 인근에 있다고만 했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한 장소가 나오진 않았다. 꿀꺽. 명청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살폈다. 그런데 그 순간 동굴 입구에서 뾰죡한 비명소리와 함께 기절했던 김향이 일어나 강도 중 한 명의 손목을 꽉 깨물고 동굴 안으로 도망치는 것이 명청의 귀에 들어왔다.
“저, 저런 무식한. 야! 가서 막아! 가서 막으라고!!!”
“어? 어?”
명청이 고함을 지르자 아래에 있던 강도들도 위를 쳐다봤다. 그곳에 도를 찬 무림인인 명청이 있는 것을 본 강도들이 안색이 하얗게 변해서는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땅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얼마나 심하게 흔들렸는지 명청이 있는 곳을 넘어 백마강에 물결이 요동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쿠르릉!!!! 김향이 들어간 동굴의 입구로 거대한 돌이 내려와 턱하니 막혔다. 명청은 입을 쩍 벌렸다. 그냥 동굴이라면 저런 기관진식이 있을리 없다.
“저기다! 제부투혼이 가리키는 그 장소!!!!!”
*****
“원? 원이라 하였소?”
“예, 전하. 황상께서 보내신 교지이옵니다.”
대전에 선 유사길이 두 손으로 명 황제의 서신을 올리자 임금은 그것을 펼쳐 읽어내려갔다. 순식간에 그 안에 든 내용을 읽어내려간 임금의 두 눈에 분노가 서렸다.
“감히. 망국의 망령 따위가!”
원에 대한 적개심 이전에 이건 조선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백 기가 넘는 기병이 마음대로 조선에 넘어왔다는 것은 조선을 무시하는 처사다. 당연히 임금으로써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의주에서 온 파발은 없는가?”
“없사옵니다 전하.”
임금의 추상같은 물음에도 답은 없었다. 유사길은 고개를 저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하. 정녕 저들이 살풍대라면 조선의 그 어떤 파발도 저들보다 빠를 수 없…….”
“있사옵니다. 전하.”
그때 운검 권희달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운검인 그가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조정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새벽에 도착한 전서구이옵니다.”
“전서구? 누가 보낸 것인가. 의주부사인가?”
“아니옵니다. 검주 만우. 그자의 수하가 보낸 것이옵니다.”
유사길의 눈이 번쩍였다. 검주 만우라면 황제가 보낸 밀지의 목표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 검주의 이름이 임금의 최측근인 운검의 입에서 나왔다.
“검주의 수하가? 검주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들었거늘?”
임금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임금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살풍대…… 그 망령들을 내…….”
그 전에 이 살풍대를 처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무인지경 넘나들 듯 기병이 백 기, 그것도 고려를 짓밟았던 원의 망령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놔둘수는 없었다.
“살풍대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어중이 떠중이들로는 상대가 불가능할 터. 그대는 아는 것이 있는가?”
원의 기병대의 위력은 조선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중에서 직접적으로 그들과 전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장수는 조선에는 없었다.
“이번에 소신을 수행해 온 무관 중 하나가 있사온데…….”
유사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때쯤 언살, 그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권희달이 임금 앞을 막아섰다.
“전하. 모화관 쪽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 같사옵니다.”
“모화관?”
임금이 유사길을 쳐다봤다. 유사길은 어깨를 움찔했다. 모화관이라면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 무슨…….”
“살풍대에 이어 궐 내에서까지 난리라....개판이구만.”
임금의 입에서 험한 말이 터져나왔다. 권희달은 그런 임금 앞에 부복했다.
“소장의 불찰이옵니다 전하.”
권희달은 조선제일검이자 왕의 최측근 호위무사다. 하지만 그가 궐 전체를 수호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나왔다.
“우림위(羽林衛)는 어디에 있는가? 우림위장은?”
궐내 수비를 맡는 정예 수비대는 금군(禁軍)이라 통칭되는 세 집단이었다. 내금위와 겸사복, 그리고 우림위. 이 세 집단이 번갈아 100명씩 번(番)을 나누어 궐내의 수비를 담당한다. 그 외에도 일반병들이 있지만 궐내를 수비하는 가장 정예들은 바로 이 세 집단이다. 오늘은 우림위가 궐내의 수비를 담당하는 날이었다.
“우림위장은 당장 우림위를 파견하여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소상하게 보고하라!!!”
임금의 진노가 우림위장에게로 향했다. *****
차앙!!!! 설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검 위를 묵직한 기세가 짓눌렀기 때문이다. 설운은 검을 쥔 두 손에 힘을 줘 상대방을 밀고는 상대방의 가슴팍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쿵!! 검집을 들어올려 설운의 발차기를 막아낸 언살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모화관 정원에서 부딪친 둘이 거리를 벌렸다.
“네놈은 누구냐!!!”
설운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나왔다. 언살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의 얼굴을 가로지른 흉터가 꿈틀거렸다.
“사신 유사길 님의 수행원이오.”
“하. 수행원이라?”
설운이 모화관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설운은 계방의 좌익찬으로 자리를 비운 상관인 좌익위 이찬을 대신해 세자 양녕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궁전에서 빈객 이숙에게 세자로써 교육을 받던 세자 양녕이 또다시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세자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봤자 궐 안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설운은 세자를 수행하는 호위로써 세자의 행적을 찾아 궐 이곳저곳을 누볐다. 그러던 설운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모화관이다. 그 모화관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명나라의 사신이라고 하지만 명 황실은 이제 막 연왕 주체가 황위에 등극하여 혼란스러운 때다. 그 때문에 국력의 차이가 명백함에도 연왕 주체, 이제는 영락제가 된 그가 사신을 보내 조선과 우의를 다지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신 유사길은 조선 임금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무기를 소지한 자들은 최소한의 수행원을 제외하고는 궐 밖에 뒀다. 그런데 모화관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원체 이곳이 명나라 사신이 머무는 곳이라 주시하는 자들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쿵쿵쿵! 설운은 망설이지 않고 모화관의 대문을 두드렸다. 모화관은 작은 정원까지 딸린 독채였다. 명나라 사신을 위해 조선에서도 신경을 썼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건물이었다. 끼익 설운은 계방의 무인이다. 계방은 세자를 비롯하여 왕족을 호위하는 임무를 띈 곳이다. 그러니 모화관에서 느껴지는 이 기운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권한이 얼마든지 있었다. 샤악!
‘누군가 있다.’
설운은 자신이 문을 두드린 순간 사방으로 발산되던 강렬한 기운이 씻은 듯이 갈무리 된 것을 보고는 긴장을 끌어 올렸다. 이 정도로 기운의 수발이 능숙한 상대라면 설운보다 아래가 아니다. 최소한 초절정에는 올라야 기운의 수발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한 것이 바로 언살이었다.
“수행원이 이토록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그대 같은 무인이 있다는 것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
설운은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미 한차례 충돌이 있었으니 우림위가 몰려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언살은 낭패한 표정이었다.
‘내 검이 통하지 않았다고?’
원래라면 유사길을 도와 조선 내에서 공식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막 모화관에서 나서려는 찰나 설운과 충돌한 것이다. 그리고 언살은 자신의 검이 막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다시 무공을 복구하였는데!’
금의위장이었던 언살은 만우에게 당해 사지의 근맥이 끊어지고 폐인 판정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영락제는 손을 내밀었고 그를 언살로 삼았다. 황실 어의의 하늘에 다다른 의술과 황실의 영약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특수한 약과 치료법으로 끊어진 근맥을 다시 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되찾은 무위인데,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려보이는 조선의 무관에게 검이 막힐 줄이야.
“답하라!!!”
설운은 인상을 굳히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모화관 안에 남아있던 다른 언살들이 슬며시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우르르!!! 그런데 그때 모화관의 문을 통해 우림위장을 위시한 우림위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우림위장이면 종2품의 높은 벼슬이다. 그를 알아본 설운은 즉시 검을 내리고 그에게 목례했다.
“전하께서 대전에 계시는데 이 무슨 소란인가!”
우림위장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채로 노성을 터뜨렸다. 대전에서 명나라 사신을 대동한 어전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림위의 잘못이 가장 컸다. 그러니 그가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수상한 자이옵니다.”
“수상한 자?”
우림위장이고, 종2품의 높은 벼슬이라고 하지만 그는 권희달이나 설운, 이찬처럼 무예를 파고든 무장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살을 보고서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
“소장과 비슷한 수준의 무인인 듯 싶사옵니다. 그리고 소장이 아는 바로는 명의 사신이 대동한 이들 중 이런 수준의 무인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
“무인?”
우림위장이 언살을 쳐다봤다. 언살은 우림위까지 몰려오자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이내 언살은 입을 열었다.
“대명(大明) 황제폐하의 밀명을 수행하고 있었소. 오늘 유사길 나리께서 그 이야기를 어전회의에서 꺼내셨을 터이니, 가서 알아보시오. 그게 빠를 것이외다.”
“으음…….”
명나라의 황제와 어전회의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우림위장이 움찔했다. 그가 함부로 끼어들 자리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하필이면 우림위의 번이고, 우림위장은 그런 우림위의 수장이다. 우림위장은 설운에게 말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좌익찬 설운, 그대가 저자를 주시하라.”
“예.”
우림위장은 설운과 언살을 곱지 않은 눈으로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모화관을 빠져나갔다. 언살이 말한 것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함이다. 우림위장이 사라지고 난 뒤 설운과 언살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불편한 언살의 표정이 그대로 설운의 두 눈에 비춰졌지만 설운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진위 여부도 파악하지 않고 검을 들이댄 것에 대한 사과는 없는건가?”
당연히 언살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설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내 임무요. 궐 안에 수상한 자가 들어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젊은 친구가 벽창호 같은 성격이군.”
“당신은 쥐새끼 같은 성격인가보오?”
“뭐라?”
화악!!! 한차례씩 말로 주고 받은 언살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설운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서 언살은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전투 경험이 많군. 어떻게 저런 나이에.’
설운은 많이 쳐줘도 30대 초반,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런데 초절정인 자신과 동수를 이루는데다가 자신의 허장성세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수많은 사선을 겪었다는 뜻이다. 상대의 살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자신과 비슷하거나 강한 상대와 수십 번 이상 싸워봤다는 소리다. 설운이 만우와도 붙어보고, 무각에 갇혀 만우의 사인방과 세 달이 넘게 매일같이 굴렀다는 것을 모르니 설운의 경지와 수준이 언살에게는 불가해일 수밖에 없었다. 설운은 모화관의 문을 버티고 장승처럼 섰다. 언살을 비롯한 다른 언살들이 나가는 길목을 혼자 막고 서있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쯧.”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언살은 혀를 찼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림위장이 터덜거리며 돌아와서는 언살과 설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상전하께서 좌익찬 자네를 찾으시네. 그리고 그쪽……도 전하께서 찾으시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시오.”
명나라 사신의 수행원이란 것이 밝혀진 이상 우림위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유사길의 수행원도 아니고, 무려 명나라 황제의 밀지를 전달해주기 위해 올 정도라면 명나라에서도 결코 낮은 지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살과 설운은 우림위장을 따라 어전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언살과 설운은 묘한 거리를 유지했다. 상대를 반드시 자신의 눈 안에 두겠다는 태도에 우림위장만 뒷통수가 근질거려 신경질을 냈다.
“주상전하를 뵙사옵니다!”
어전에 들어선 설운은 곧바로 부복했다. 나라의 지존을 앞에 두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울 수 있는 이들은 조선의 관리가 아닌 유사길이나 언살이 유일했다.
“계방의 좌익찬 설운은 고개를 들라.”
설운은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러자 패기 넘치는 임금이 씨익 웃음을 만면에 머금은 채 설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케도 그 자리를 유지했군.”
“전하의 성은 덕분이옵니다.”
설운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로 상장 이천우의 부장이 되어 조사의의 반군과 싸웠다. 이천우는 패배를 하였지만 설운은 조사의의 후방을 괴롭힌 공이 인정되어 좌익찬의 자리를 유지했다.
“지난번에는 공으로 과(過)를 씻었으니, 이번에는 공을 세울 차례인가?”
“…….”
설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금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서 씩 웃었다.
“다른 장군들은 할 일이 바쁘지. 더군다나 그대의 무위는 저번에 세운 공으로 증명이 되었고. 거기에 적게나마 별동대를 운용해 본 경험까지 있지 않은가?”
“그, 그렇사옵니다.”
임금이 왜 저런 말을 꺼내는지 전 사정을 모르는 설운은 바보 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설운을 보고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은 임금이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신들은 들으시오.”
“하명하십시오 전하!”
임금의 위압감이 대신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패도를 걷는 임금의 위압감은 그가 제왕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정6품 좌익찬(左翊贊) 설운을 우림위 50기와 오위(五衛) 소속 정예 500을 이끄는 장(將)으로 삼아 조선의 국토를 무단으로 침범한 옛 원(元)의 망령의 추살을 명한다. 좌익찬 설운은 과인의 앞으로 오라!”
설운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