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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검주의 무서움(3) (157/400)

157. 검주의 무서움(3)2020.06.30.

16553227924528.png“악궁 테무르.”

16553227924537.png“광호검 기무!”

낭황 우결지와 살풍대가 조선에 도달했다면 그 이유는 두 명의 죽음 때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감령과 필두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16553227924528.png“……뭐 하는 거지?”

그런데 그때 우결지가 말을 넘긴 이에게 품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보여주는 것을 보고 감령이 중얼거렸다. 말을 내어준 이가 고개를 흔들자 우결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 때 필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16553227924537.png“저…… 저거 우리 같은데?”

16553227924528.png“뭐?”

감령이 놀란 눈으로 필두를 돌아봤다. 필두는 고개를 저었다.

16553227924537.png“아니. 정확하진 않은데. 그런데…… 용모파기였는데…….”

16553227924528.png“……설마.”

장강의 수적들은 전부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의 특성상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선이 어디에 뜨는지 잘 보고 있다가 얼른 줄행랑을 쳐야하기 때문에 시력으로만 따지면 필두가 감령보다 몇 배는 더 나았다. 그러니 필두가 잘못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16553227924528.png“우리의 용모파기?”

16553227924537.png“……아마도?”

감령은 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렸다. 무려 낭황과 살풍대다. 그리고 그들이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용모파기를 꺼내들었다는 것은 광호검 기무와 악궁 테무르를 죽이는데 일조한 것이 감령과 필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16553227924537.png“……수채. 무사하겠지?”

16553227924528.png“산채는…… 어떻고?”

감령과 필두의 용모파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녹림과 장강의 총채주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만우를 따라다녔던 일행 중에 중원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것은 감령과 필두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감령과 필두의 용모파기까지 가지고 있는 저들이, 과연, 감령과 필두이 본거지인 녹림과 장강을 그대로 뒀을까?

16553227924537.png“야. 감령. 어디 가?”

필두는 자신의 옆에 있던 감령이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불렀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감령이다.

16553227924528.png“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으로 가야지. 너야말로 뭐해. 빨리 와.”

감령은 남쪽을 가리키면서 필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필두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감령을 쳐다봤다. 감령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16553227924528.png“목숨이 제일 중요하지.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보지는 말고…….”

16553227924537.png“의리는 어디로 가져다 팔아먹고?”

필두가 빈정댔지만 감령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27924528.png“내가 살아야 의리를 지키지.”

16553227924537.png“……그래. 너 잘났다.”

필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는 필두가 감령에게 말했다.

16553227924537.png“가다가 전서구 날릴 수 있는 데나 찾아보자고.”

16553227924528.png“전서구?”

16553227924537.png“검주 대협. 대협께 알려야지. 그래야…… 우리도 엉덩이 붙이고 살 수 있을거 아니야?”

16553227924528.png“그, 그래. 네 말이 맞다!!”

감령이 필두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

16553227984891.jpg“응? 객사에 손님이 온 모양인데?”

익주동가 가주 동만익의 동생 동백익은 고개를 갸웃했다. 익주동가는 익주를 넘어 부여까지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였고, 고려시절만 해도 대대로 관직에 많은 이들이 진출했기 때문에 항상 부여에 방문을 할 때마다 부여현의 객사에서 머물렀다. 익주동가에서는 관아조차도 익주동가의 허락이 없이면 밭 하나 개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근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인 것이다. 동백익은 저잣거리에서 조카인 동군영과 비슷한 사람을 보고는 기분이 뒤숭숭한 상태에서 소란스러운 객사의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27984891.jpg“그러고 보니 현감도 나오시지 않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익주동가에서 사람이 나오면 늘 버선발로 마중을 나오던 부여현감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백익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늘 그런 현감의 행동이 부담스러웠기 떄문이다.

16553227984891.jpg“관아에 가서 익주동가의 동백익이 왔다고 고하거라. 우리는 객사에 가 있을 터이니.”

16553227984891.jpg“예, 나리.”

하인 하나를 관아 쪽으로 보낸 동백익은 말을 묶어놓은 뒤 가벼운 차림새로 내려 객사 대문을 밀어젖혔다.

16553227984891.jpg“……음?”

항상 텅 비어 있었던 객사에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동백익이 등장했음에도 아무도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16553227984891.jpg“파천서생 마일, 검주 대협을 뵙습니다.”

16553227984891.jpg“나찰사화 옥령. 검주 대협을 뵈어요.”

한어(漢語)가 들리자 동백인은 인상을 굳혔다. 그도 귀가 있는터라 부여군, 그중에서도 특히 부여현이 중원에서 들려든 무뢰배들로 인해 지극히 혼란스럽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직접 와서보니 무질서는 커녕 가끔 보이는 명나라 사람들도 무언가를 조심스러워하고 있어서 뜬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관아의 객사에서 명나라 사람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16553227984891.jpg“허어…….”

흡사 왕이 적국의 사신을 맞는 것처럼 객사 앞에 나와 앉은 젊은 청년 주변으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이들이 날개를 펼치듯 서 있고, 그 앞에는 서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붉은 장포를 입은 미녀가 서 있는 것을 본 동백익은 눈을 크게 떴다.

16553227984891.jpg“저게 대체…….”

16553228014782.png

  본래 관아의 객사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동백익처럼 저명한 명문가에서 방문을 하거나, 한양에서 명을 받고 내려온 관리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6553227984891.jpg“저 청년이 대체 누구길래.”

동백익의 두 눈에 궁금증이 가득 서렸다. 동백익의 맑은 눈동자에는 삐딱하게 앉아 팔짱을 딱 낀 만우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

16553228014793.png“마일? 옥령? 그런데?”

만우의 얼굴에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기운이 팍팍 뿜어져 나왔다. 열심히 숨어서 다니다가 이제와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16553227984891.jpg“투귀대의 주창 대주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만우의 심기를 읽었음에도 마일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곳은 엄연한 적국이기 때문이다.

16553228014793.png“그건 알겠고. 온 이유가 뭔데.”

옥령은 만우의 눈치를 살폈다. 중원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무림십좌 중 일인인 만우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마교에는 고수들이 많았지만 만우의 나이에 절대고수에 오른 이는 없었다.

16553227984891.jpg“먼저 오해를 풀고 싶었습니다. 김향. 그 아이에 관한 오해말입니다.”

16553228014793.png“오해?”

만우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마일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16553227984891.jpg“저희가 납치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화, 사화가 무너진 잔해 속 쓰러져 있는 김향 그 아이를 발견하고 ‘구출’한 것입니다.”

16553228014793.png“…….”

만우는 마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나찰사화 옥령을 쳐다봤다. 나찰사화(羅刹死花). 꽃이긴 꽃이나, 죽음을 몰고 다니는 꽃이라 하여 나찰사화란 별명이 붙은 그녀는 무림의 미녀로 대표되는 몇 안 되는 미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순둥해 보이는 얼굴인 것이, 거짓말을 못 하게 생겼다. 생긴 것을 보고 무림에서는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얼굴만큼 성격을 보여주는 창구가 없기도 했다.

16553227984891.jpg“정말입니다.”

마일은 옥령에게 이곳에 오기 전에 신신당부를 했다. 되도록 짧게, 모든 대답을 하라고 말이다. 마일은 옥령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혈성이 가진 흉성이 폭발한다면 모를까, 평상시의 옥령은 나찰사화라는 별호가 어울리지 않는 얌전하고 순진한 성격이다.

16553228014793.png“흐음…… 뭐, 그렇다고 해두지. 판단은 그 아이를 본 다음에 내리기로 하고.”

만우가 너무나도 쉽게 대답하자 그것을 본 소령과 방매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16553228054049.png“만우! 설마 저 불여시 같은 게 말하는 거에 넘어간거야?”

16553227984891.jpg“맞아요 검주 오라버니! 마교 고수의 말을 어찌 믿어요!!!”

방매와 소령 모두 질투심에 말한 것이지만 다른 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항상 무림에 피를 불러오는 이들이 바로 무림에서 바라보는 마교인들이다.

16553228014793.png“그러면. 정파나 사파의 말은 믿을 수 있고?”

하지만 만우는 정사지간의 중립적인 존재다. 만우는 정파라고 해서 믿지 않았고 마교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았다. 만우에게 무림인은 딱 두 종류일 뿐이다. 검을 숨긴 자와 검을 숨기지 않은 자. 검 끝에 살아가는 이들의 운명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16553227984891.jpg“…….”

16553227984891.jpg“…….”

만우의 태연한 대답에 검인과 교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파바밧!하고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16553228014793.png“믿고 말고는 본주가 결정한다.”

만우의 묵직한 목소리가 불꽃이 튀던 둘의 시선을 떼어놓았다. 마일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16553227984891.jpg‘만만치 않군.’

파천서생 마일은 마군자 마원의 아들로 마교에서도 대대로 교주의 책사를 배출한 가문의 일원이다. 정파에 제갈세가, 사파에 사마세가가 있다면 마교에는 마가(馬家)가 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16553227984891.jpg‘검주라 하길래 쉬울 것이라 생각했건만.’

마일도 일찍부터 아버지 밑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지만, 소교주이자 투귀대의 대주인 주창을 모시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과신했는데, 그것이 조선에 와서 철저하게 무너졌다. 벌써 두 명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를 조선에서 잃은 것이다.

16553228014793.png“그렇지 않나?”

만우는 눈을 굴리는 마일에게 말했다. 마일은 만우의 입가에 서린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27984891.jpg“예, 검주.”

16553228014793.png“그렇다면 데려와. 김향.”

만우는 손가락을 까닥했다. 만우는 마일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제갈이니 뭐니 머리를 쓰는 놈들과 눈빛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림 출도 초기에는 제갈이란 성씨를 쓰는 이들의 혓바다에 넘어가 몇 번 이용당한 적도 있었지만, 만우는 그들에 대한 완벽한 대처법을 찾아냈다. 주도권. 주도권을 한 번 손에 쥐고 몰아부치면 끝난다. 무림십좌 중 검주라는 별호를 쓰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함부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6553228014793.png“내가 직접, 김향 그 아이에게 묻고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도 방법이 있으니까.”

저놈들이 김향에게 무슨 짓을 해놨을지 만우는 마일을 믿지 않았다. 무림에는 무공 이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사술들이 범람했다.

16553228014793.png“그래서. 이제 와서 순순히 비는 이유는?”

만우는 이제야 마일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지금까지는 김향을 납치한 것이 아니라 ‘데려갔음’을 입증하기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반색한 마일이 입을 여는 순간, 객사의 대문쪽이 시끄러워졌다.

16553227984891.jpg“군영아!!”

16553228082838.png“수, 숙부님?”

16553227984891.jpg“이놈의 자식아! 너 맞지? 어? 저잣거리! 맞잖아!!!”

16553228082838.png“으으…….”

동군영을 필두로 동군영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이가 더 들은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하인들이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우르르 따라들어왔다.

16553228082838.png“만우! 나 좀 살려주시게!!!”

16553228014793.png“뭐?”

만우를 발견한 동군영이 쪼르르 달려 만우의 뒤로 숨었다. 만우는 황당한 얼굴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16553228014793.png“뭐하는 겁니까 나리?”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만우는 동군영에게 존댓말을 썼다. 하지만 대단히 불손하기 그지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동군영은 만우의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16553228082838.png“내 숙부. 으으으…… 왜 하필이면 딱 오늘 부여에 오신거야. 아니, 객사에는 왜 오신거고.”

16553227984891.jpg“왜 왔긴! 우리 익주동가가 부여에 오면 늘 거처로 사용하는 것이 여기 객사다 이놈아!!”

동백익이 소매를 걷은 채 씩씩거리며 동군영에게 삿대질을 했다. 갑작스레 난입한 동군영과 동백익, 그리고 그 하인들에 의해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16553228113562.png“그, 그럼 대협. 저, 저희는.”

임수미가 조심스럽게 만우에게 말했다. 사실 그녀는 당장 이 자리를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어 눈을 굴리고 있었다.

16553228113562.png‘우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는 걸 알면…… 으으으.’

임수미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조선에까지 와서 여기저기 치인다는 것이 서글펐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거기에 은월루의 안가를 알려준 것은 하오문이다. 그러니 만우가 관리한다는 그 김향이란 아이가 마교에 의해 납치되듯 사라진 것도 결국 하오문이 그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걸 만우가 알게 되면 하오문은 한층 더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16553228014793.png“어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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