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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무림인이 된다는 것(4) (154/400)

154. 무림인이 된다는 것(4)2020.06.20.

16553227168826.png“그리고, 다 내쫓아 버리면 자네가 찾고자 하는 그 아이와 마교의 고수들은 무슨 수로 찾을 셈인가?”

16553227168837.png“끄응…….”

동군영에 의해 부여현의 관리들이 모두 파직을 당하게 되었다. 그중 심한 몇몇은 유배까지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현재 부여현의 관아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현감이 없으니 현의 대소사를 관장할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현이나, 더 큰 군이나 목에서 사람을 보내자니 떡하니 버티고 있는 동군영이 문제였다. 암행어사. 암행어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 누가 이곳에 와서 대리직으로 현감을 맡고 싶어 할 것이냔 소리였다.

16553227168826.png“만우 자네가 직접 하면 국법에서 어긋나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자니 또 저들이 활개를 칠 것 같고…… 허어.”

동군영은 모순적인 상황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만우는 피식 웃었다.

16553227168837.png“동 어사야 말로 일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단순하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27168837.png“우리는 어명을 받아 부여현에 온 거야. 부여현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러니 사용할 수 있는 건 다 사용해서 어명을 완수하면 돼.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그 후에 대응하면 되는 일이고.”

몇 수 앞을 내다본다? 말은 좋다. 하지만 무림인은 당장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칼끝에서 사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아무리 그려봤자 당장 코앞을 보지 못하면 끝장이다.

16553227168826.png“단순……하게?”

16553227168837.png“그래.”

만우는 고개를 돌려 검인을 쳐다봤다. 임시직이라고는 하지만 검인과 정의대원들은 임금으로부터 관직을 제수받았다. 그러니 그들이 할 일이 없다고는 못 할 것이다.

16553227168902.jpg“마교라니. 그게 사실인가?”

하지만 검인은 전혀 다른 부분에서 만우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16553227168837.png“그래. 모르고 있었어?”

16553227168902.jpg“아니,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만우 네가 왜 그들을 쫓는지는…….”

16553227168837.png“내 관리 하에 있던 사람을 데려갔어. 그놈들이.”

검인의 눈이 커졌다. 감히 간도 크게 만우의 사람을 건드리는 무림인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16553227168837.png“내 건 줄 몰랐겠지. 어디 써 붙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되는 건 아니다. 검인은 만우의 눈에 형형하게 서려있는 안광을 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미혼방에 마교도 만우의 손에 걸리면 그냥 순순히 두 발로 걸어 나가지는 못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553227168837.png“몰랐지. 모를 수 있겠지. 하지만 무림에 몰라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만우가 웃으면서 섬뜩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농담일지 몰라도 만우가 말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16553227168837.png“어쨌든.”

만우는 붓을 들어 동군영 앞에 놓인 종이 위로 줄을 그어 네 등분을 했다.

16553227168837.png“부여현을 네 곳으로 나눌 거야. 동군영. 너는 북. 검인과 정의대는 동. 교수와 기린대는 서. 그리고 나는 남쪽. 그리고…….”

만우는 고개를 돌려 임수미를 쳐다봤다. 임수미는 자신도 모르게 혀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자신을 이토록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게 만드는 사내는 만우가 유일했다.

16553227168837.png“하오문. 너희는 너네 말고 방파 애들 데리고 샅샅이 뒤져.”

16553227199765.png“마교…….”

16553227168837.png“그리고 교수!”

16553227168902.jpg“……예.”

철권 교수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존심이 남았다는 것처럼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답이 가장 공손하다는 것은 대답하는 본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16553227168837.png“기린대? 그 애들 데리고 순찰 돌아. 그러다 마교 애들 만나면 무조건 시간 끌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16553227168902.jpg“순찰……인 겁니까?”

16553227168837.png“왜. 아무것도 안 하게?”

만우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했다. 초절정 고수라 하더라도 눈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은 패기가 흐르는 눈이었다. 교수는 슬쩍 눈을 피했다.

16553227168902.jpg“아니, 잡아도 됩니까? 마교 놈들 따위야…….”

철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16553227168837.png“그게 네 자존심에 도움이 된다면.”

16553227168902.jpg“……좋습니다. 대신 마교 놈들을 잡는다면 이 철권과 기린대를 가게 해주십시오.”

16553227168837.png“가겠다?”

16553227168902.jpg“중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철권이 결과적으로는 두 손을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수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광폭함과 다혈질로 소문이 자자한 철권이다. 그가 지금 만우에게 사실상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16553227199765.png‘역시 괴물.’

임수미는 역시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괴물이라 만우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27168837.png“그래. 한 놈이라도 잡으면.”

16553227168902.jpg“약속해 준 거요?”

16553227168837.png“아니라 그러면. 본주에게 뭐라고 할 힘은 있고?”

16553227168902.jpg“검주, 검주란 이름을 믿는 수밖에.”

검주란 이름에 대해 만우가 별 애정이 없다는 건 교수는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무림인에게 그런 별호는 곧 명예이고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6553227168837.png“그건 마음대로 하고.”

교수의 일까지 정리가 되자 만우가 고개를 돌려 앉은 이의 면면을 죽 훑었다. 정의대의 검인과 기린대의 철권. 하오문의 임수미와 어사 동군영까지. 임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이 모두가 한 문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면 구파일방만큼이나 화려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 성(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거기에 검주 만우. 한 성이 아니라 한 주(州), 아니 중원 전체를 놓고 봐도 영향력이나 명성으로만 따지면 견줄 사람이 없는 무림의 절대고수다. 그런 이들이 부여군도 아닌 부여현에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으니 기함할 일이었다.

16553227168837.png“마교. 그리고 제부투혼.”

만우의 눈이 시퍼렇게 빛을 토해냈다.

16553227168837.png“제부투혼을 찾는 순간, 부여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야. 무림이고 뭐고 싹 다 조선에서 꺼져야 한다는 소리지.”

만우의 몸에서 한 줄기 공력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공력은 이내 거대한 폭풍이 되어 그곳에 앉은 사람들의 몸을 두드렸다.

16553227168837.png“마음에 안 들면 손 들어.”

공력으로 만든 폭풍을 몸에 휘감은 만우 앞에 손을 들 용자는 그 안에 단 한 명도 없었다. *****

16553227168902.jpg“야! 개문아! 이것 좀 날라라!”

16553227168902.jpg“예 어르신!!!”

개문이라 불린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어르신이라고 부르자 부여현을 끼고 도는 백마강의 선적장에서 일하는 관리자가 어깨를 쭉 폈다.

16553227168902.jpg“어르신이라니! 진짜 어르신이 들으시려면 경을 치려고?”

16553227168902.jpg“앗. 그렇습니까? 헤헤.”

어르신 한 마디로 관리자의 기분을 하늘이 뚫고 날아갈 것처럼 좋게 해준 개문이라 불린 청년은 거의 화술의 달인이었다.

16553227168902.jpg“읏차!”

관리자에게 아부를 한번 떨어준 개문은 서둘러 짐을 어깨에 얹었다. 관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일을 안하면 다른 인부들에게 미움을 사기 때문이다. 처세술의 달인처럼 적절하게 관리자와 인부들 사이에서 줄을 탄 개문은 해가 뉘엿뉘엿 져갈 때쯤 일을 끝내고 품삯을 받았다.

16553227168902.jpg“옛다.”

16553227168902.jpg“헤헤. 감사합니다요 어르신.”

16553227168902.jpg“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니까. 흠흠.”

품삯으로 약간의 곡식을 받은 개문은 곡식이 든 주머니를 기분 좋게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선적장을 빠져나와서는 부여현의 저잣거리를 지나쳐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타닥! 개문이라 불린 청년이 사라진 곳으로 누군가 한 발 늦게 도착해서는 땅을 쿵하고 찍었다. 개문을 놓친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개문을 쫓아온 추격자의 눈이 커졌다.

16553227168902.jpg“……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진 추격자의 목에는 가느다란 은침이 박혀있었다. 그냥 은침이 아니라 그 끝에 시커먼 극독이 발린 은침이었다. 부스럭. 관리자 앞에서 간과 쓸개라도 다 빼줄 것처럼 굴었던 개문이라 불린 청년이 근처 초가집 지붕 위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쓰러진 추격자를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16553227168902.jpg“또 바꿔야 하나.”

개문, 아니 광문자는 손으로 인피면구를 부욱 찢어서는 옆에 탁하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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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인피면구지만 목숨값만큼은 아니다.

16553227168902.jpg“다섯 번째.”

개문이란 이름까지 합해 벌써 다섯 번째였다. 광문자는 어리를 데리고 간신히 부여현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이름과 신분을 계속해서 바꿔가면서 생활했다. 선적장의 짐꾼부터 시작해 상단의 잡일꾼, 나무꾼에 보부상까지. 광문자는 그렇게 변장을 해 부여현을 누비고 다니며 정보를 끌어모았다.

16553227168902.jpg‘무림이란 세계에 대해 완전히 오판을 한 탓이다.’

원래라면 부여현에도 은월루는 있어야 했다. 조선 전역에 은월루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월루에서 오판한 것은 무림 바로 그 자체였다.

16553227168902.jpg‘거슬린다고 다 죽여 없앨 줄이야. 빠져나올 시간이라도 있을 줄 알았거늘.’

부여현의 은월루는 부여현에서 작은 기루를 운영하고 있었다. 잡일꾼이나 상단의 일꾼들을 상대로 값싼 술을 팔기도 하고, 현감이나 이방 등 관리들이 잔치를 벌이는 곳으로도 사용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위아래의 모든 정보를 자연스럽게 모을 수 있어서인데, 무림인들이 들어오면서 완전히 상황은 달라졌다. 무력. 무력 하나를 앞세운 무림 방파들 중 한 곳이 은월루가 운영하던 기루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다. 그러면서 은월루 소속의 정보원들을 모두 죽였다. 그것도 모르고 부여현에 들어와 은월루의 안가에 숨으려고 했던 광문자와 어리는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6553227168902.jpg“누군가 부여현을 통합한 것 같군. 무분별한 움직임이 사라진 걸 보면.”

은월루의 지원 없이 광문자가 변장할 수 있는 신분은 최하층 외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질이 괜찮은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었지만, 분위기 정도를 살피는 것은 가능했다.

16553227168902.jpg“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나…….”

하지만 광문자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도 따라붙은 추격자는 하오문의 소속의 정보원이었다. 계속해서 쫓아다니는 것이 길면 꼬리가 잡히는 법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 먼저 역으로 공격해 없앤 것이다.

16553227168902.jpg“마교 놈들이 언제 쫓아올지도 모르고.”

부여현으로 들어와 여러 신분으로 변장을 하면서 숨어들었기 때문에 정보 쪽의 전문가가 없는 마교 고수들의 추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추격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광문자가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음에도 어리가 그 압박감과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앓아누웠다. 그 바람에 도주 속도가 떨어져 하마터면 저들에게 잡힐 뻔했다.

16553227168902.jpg‘하오문 같은 정보단체가 붙으면 얼마나 더 무서워질지.’

마교 고수들은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과 독기, 광기로 무장한 채 광문자 뒤를 끊임없이 추격했다. 어리 때문에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지 못 한 것을 근거로 투귀대원의 지독한 추격을 받았던 광문자는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음에도 그 정도로 자신을 쫓았는데, 제대로 된 정보가 그들의 손에 쥐어지면 얼마나 두려워질지 감히 예상도 되지 않았다.

16553227168902.jpg‘검주, 검주 만우. 그자가 필요한데.’

광문자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만우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부여현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안정이 된 상태였고 말이다.

16553227168902.jpg‘앞뒤 분간 못 하고 날뛰던 그 삼류 무뢰배들을 이 정도로 얌전하게 만들려면…….’

투귀대 정도 되는 무시무시한 고수들이어야 할 것이다. 광문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코너를 돌았다. 멈칫. 광문자의 어깨가 흠칫하더니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광문자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옆집의 초가지붕 위에서 일어났다.

16553227168902.jpg‘아가씨!’

광문자가 이를 악물었다. 섬뜩한 마기를 품은 고수들이 광문자가 안가로 삼은 곳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27168902.jpg‘전부는 아니야.’

광문자를 쫓았던 마교 고수들은 총 여섯 명이다. 하지만 지금 광문자가 감지할 수 있는 마기는 세 개 정도였다. 둘로 나눠서 자신들을 찾는 듯, 나머지 세 명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16553227168902.jpg‘그나마 다행이다.’

광문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흡을 안정시켰다. 살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이 살행이기 때문에 살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 숨기고 압축하느냐고 살수의 등급을 가른다. 그런 점에서, 동방제일살객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광문자는 중원에서도 견줄 상대가 몇 없는 최고 살수(殺手)다.

16553227168902.jpg‘경계하는 것을 보니 나를 못 찾았기 때문인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저 정도 수준이 되는 고수들이 안에 광문자가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섣불리 진입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살수를 상대하는데 익숙한 고수들이란 뜻이지만, 어리를 보호해야 하는 광문자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16553227168902.jpg“후우우우.”

광문자는 품속에 손을 넣어 단도를 양손에 꺼내들었다. 살수가 되어 상대방에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거기에 그냥 상대도 아니고, 무려 마교의 고수다. 그 때문에 광문자는 자기가 부릴 줄 아는 재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부려볼 셈이었다.

16553227168902.jpg“간다.”

광문자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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