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무림인이 된다는 것(2)2020.06.13.
만우가 서늘한 살기를 담아 말하자 이방이 눈을 미친듯이 깜박였다. 불과 호흡 몇 번 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방에게는 마치 영겁의 시간의 굴레 속에 빠진 것 같았다. 역모를 일으킨 역모의 주범들이 내금위에 끌려가 받는 고신도 이 고통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줄줄줄 이방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고통을 내지르지 못할 정도의 극한의 고통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신음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툭. 만우의 손가락이 견분혈을 두드리자 이방의 입에서 꺼헉하는 소리와 함께 격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이제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네?”
이방은 두려운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그것도 손가락으로 목 뒤를 건드린 것 만으로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막 대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 말은…….”
만우는 이룡검의 검병을 툭툭 쳐보였다. 이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고보니 자신은 어사에게 이미 찍혔다.
“네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거지.”
동군영은 그렇게 말한 적 없었다. 그리고 나라의 죄인인 이방을 동군영도 아닌 역졸 신분인 만우가 손 대는 것도 국법에 맞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법보다는 눈앞의 주먹이 무서운 법이다.
“이, 인육을 파는 놈들…….”
검인의 안색이 변했다. 소령이 인육을 파는 놈들에게 붙잡혔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만우!!!”
“……너.”
만우의 목에서 괴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만우의 몸에서 발산한 살기가 마치 안 보이는 손처럼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이 턱하니 막히고 눈 앞이 뿌옇게 변했다. 감히 인간의 몸으로 받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살기를 마주한 이방의 바짓춤이 뜨끈하게 젖었다.
“어딘지 제대로 가리켜. 손가락으로. 알았어?”
덜컥덜컥 이방의 고개가 사정없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
“시전이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잖아.”
방매는 인상을 팍 쓰고는 부여현의 저잣거리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는 이들의 뒤를 은밀하게 따라붙었다.
“개판이야. 이런 종이 쪼가리 돈이라니.”
방매는 고개를 내저었다. 방매의 손에는 저화라 하여 임금의 칙령으로 새롭게 유통되기 시작한 종이쪼가리들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이게 은부스러기나 은병, 오승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얼마든지 그냥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부여현에 들어와 돈이 되는 것은 무력을 앞세워 닥치는대로 독점을 한 무림 세력들로 인해 부여현의 시전은 완벽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더 곤궁해진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저걸 들고 어디로 가는거지?”
방매는 시전을 돌아다니던 와중 무림 방파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던 노점들을 저화 쪼가리들을 주고 그곳의 물건들을 강매하는 것을 보고는 몰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건을 샀으면, 그 물건을 다시 풀어놓아서 팔아야 하는데 저놈들은 저잣거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구?”
한참동안 저들의 뒤를 따른 방매는 저들이 작은 포구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발소리를 죽였다. 그렇게 한참 밖에서 포구를 감시하던 방매는 포구의 창고 안에서 아까 봤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무언가를 포구에 정박한 배에 옮겨 싣는 것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명에 가져다가 판다고? 아까 그것들을?’
방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사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까 저들이 저잣거리에서 사간 것들은 경강상인들이나 송상들이 들여와 파는 특산품이 아니라 백성들이 먹고 살고자 내다 파는 것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품질이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고, 명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란 소리다. 그런데 그것들을 사가서는, 배에 실어 나른다?
“무언가 냄새가 나. 냄새가.”
방매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무언가 대단히 수상쩍은 놈들이었다. 그렇게 수십 명이 그 안에서 물건들을 한참 옮겼는데, 그 와중에 방매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저게 뭐지?”
그전까지는 물건들이었다. 짚신이나 곡식을 거를 때 쓰는 키, 노끈 같은 대단히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 하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저들이 안에서 들고 나오는 것들에 천이 덮혀져 있었다.
“각이 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숨기기 위함인 것 같은데, 각이 져있는 상자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때 방매의 눈이 커졌다. 툭
“조심해 임마!”
“야. 어차피 잘라서 고기로 다질 건데 무슨 상관이야.”
저들이 나르던 것의 천 바깥으로 팔이 툭하고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그리고 ‘잘라서 고기로 다진다’라는 것을 알아들은 방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사, 사람을 먹으려고 하고 있어!’
방매가 몸을 일으켰다.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것이 목적이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방매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먹으려는 미친놈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뭐가 없을까.’
방매는 다급한 마음에 보따리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작은 은병부터 시작해 별의 별 잡동사니들이 다 들어있었다. 그 중 방매는 결연한 표정으로 하나를 집어들었다. 손가락 두 개만 한 폭의 작은 죽통이었다. 방매는 보따리에서 부싯돌까지 꺼내들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버텨, 버티자. 그래서 저 사람들한테서 돈을 왕창 받아내는거야.”
부싯돌을 딱딱 튀긴 방매가 작은 죽통, 화접자(火摺子)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화접자에 불이 화악하고 붙었다. 따악!!! 방매는 그렇게 불을 붙인 화접자를 하늘로 던지고는 몸을 뒤집으며 발등으로 화접자를 하늘 높이 올려찼다. 화르륵!!!! 흡사 별똥별이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듯한 광경이었다. 방매는 그렇게 화접자를 날린 뒤 당연한 수순으로 시끄러워지는 창고 쪽을 보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림인들. 으으.’
아무리 겁이 없는 방매라고 해도 방매가 본 저 안에 있는 무림인들만 수십이 넘었다. 거기에 인육을 취급하는 잔혹무도한 놈들이지 않은가. 방매는 자신의 신호를 보고 관아에서 관병이 달려오기를 바라면서 짚신을 벗고는 보따리에서 신발을 꺼내들었다. 양갓집 부인들이 신는 당혜(唐鞋)처럼 생겼지만 방매의 수박희의 파괴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안국방의 조씨 할아범이 신경을 써서 만든 맞춤 신발이었다. 앞과 뒤에 철을 깔았고, 무두질을 잘 한 가죽 사이에 철판을 끼워 넣어 한 대 맞으면 거의 철퇴로 맞는 것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물건이다.
‘단점이라면 무거워서 체력이 빨리 소모된다는 거지.’
방매는 이쪽을 발견하고 우루루 몰려오는 무림인, 옷에 미혼방이라 쓴 이들을 보면서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
“우, 우음…….”
소령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두운 것을 보니 실내였는데, 창문이 하나도 없는 곳에 벽에 걸어놓은 횃불이 그나마 주변을 살필 수 있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일어났나?”
순간 소령의 목 뒤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앞에 누군가 있었던 것이다. 소령은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윽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목과 양손, 다리가 모두 줄에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리는 뒤로 꺾여 있었고 손을 묶은 줄은 목과 다리에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재갈까지 물려 있었다.
“이런. 그렇게 움직이면 다쳐.”
소령은 자신을 일으켜세우는 남자의 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 밀쳐내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손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 유감이지만,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미혼방주 유자평이라고 하지. 아마 못 들어봤을 거야.”
미혼방주 유자평은 소령을 향해 음심이 잔뜩 서린 눈으로 쳐다보면서 입술을 혀로 햝았다.
“화산파와는 다르게 우리는 길거리 인생들이니까. 큭큭.”
소령은 그런 유자평의 시선에 이를 악물고 마주 노려보았다. 유자평은 그런 소령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런 눈이야.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계집들이야말로 꺾어서 정복하는 재미가 있지.”
소령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어리지만 바보는 아니다. 저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눈치를 챈 것이다.
“우음음음.”
소령은 공력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공력이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유자평은 흘흘거리며 웃었다.
“우리가 미혼방이라 불리는 이유는 미혼약에 정통해서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약에도 무능한 건 아니거든.”
유자평은 병을 흔들어보였다.
“산공약이라고. 아나?”
“……!!!”
소령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산공약(散功藥)이라 함은 무림인의 내공을 흩트려 버리는 약이었다. 소령은 자신의 내공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산공약에 의해 전부 사라져 버린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조선에 오길 잘했어. 중원이었다면 그 매화 문양을 보면 찍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겠지. 하지만 여긴 먼 조선이 아닌가? 네년 하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누가 알까.”
유자평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숫처녀의 육질은 별로 맛이 없거든. 남자를 아는 몸이 돼야 적당히 연해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지. 그래서…….”
소령의 눈이 흔들렸다. 유자평의 손이 뱀처럼 자신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령의 두 눈에 눈물이 서렸다. 아무리 그녀가 화산파의 고수라고 해도 그녀는 아직까지 어린 소녀일 뿐이다.
“크핫핫핫! 좋아. 그거 좋다고!!!!”
유자평은 콧대 높은 화산파의 여고수인 소령의 두 눈에 눈물이 서리자 가학적인 희열을 느끼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우으. 못 참겠다.”
유자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춤을 붙잡았다. 소령은 그런 유자평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유자평의 광소가 마치 귓가에 인이 박히듯 날아들었다.
‘누구라도, 제발.’
콰자자작!!!!
“우으.”
“누, 누구냐!!!”
그런데 그때, 소령의 간절한 소망을 누군가 들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유자평이 황급하게 바지춤을 다시 끌어 올렸다. 창고의 허름한 나무 벽이 펑하고 박살이 나더니 그곳으로 파편과 함께 웬 여자가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퉷.”
방매는 입으로 들어온 나뭇조각을 퉷하고 뱉어내고는 고성이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유자평과 눈물자국이 가득한 소령을 본 방매의 눈에 번쩍하고 불꽃이 튀었다.
“야 이 XXX야!!!!!”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했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방매는 모든 분노를 발끝에 담았다.
“어, 어어, 어!!”
미혼방주 유자평은 이류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인이었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방매와 엉거주춤하게 끌어올린 바지춤 때문에 날아오는 발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으적!!!!
“꺼, 꺼억…….”
금강불괴를 익혔거나 소림의 특수한 외공을 익혔다면 모를까, 남자의 급소는 그 어떤 무인도 단련할 수 없는 곳이다. 화경 정도가 되어 호신강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모를까 초절정급의 고수라고 해도 한 대 제대로 맞으면 항거불능이 되는 곳이 바로 남자의 급소다. 그곳에 정확하게 꽂힌 방매의 발끝은 그 안에 든 무언가를 단호하게 으깨버렸고, 유자평은 눈을 까뒤집으면서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괜찮……아? 너는?”
“으으으읍!!!”
방매는 소령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의주에서 만난 그 앙큼한 계집이었기 때문이다.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난 방매는 뒤에서 들리는 많은 발자국 소리에 황급히 보따리에서 손칼을 꺼내들었다.
“푸하…… 하악, 하악.”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흐아아아앙.”
소령은 방매의 얼굴을 보고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다는 것과 서러움이 한 번에 복 받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저기 있다!!”
“바, 방주님!!!”
“화산파 계집이 풀려났다!!”
방매를 쫓아 우르르 달려온 미혼방도들이 기절한 유자평과 풀려난 소령을 보고 움찔했다. 방매는 이를 악물었다.
“치사하게 독이랑 암기를 쓰냐!”
“치사하다니! 감히 우리의 독문병기와 무공을!!!”
겨우 하독(下毒)하는 정도가 무슨 무공이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미혼방도들은 자신들이 독공(毒功)을 익히고 있다고 주장하곤 했다. 방매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이리로 뛰어들 리도 없잖아! 이 치사한 놈들아!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내냐!!”
“저년이!!!”
소령은 그사이에 사지를 묶은 끈을 모두 풀어내고는 두 눈에 살기를 피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