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무림인이 된다는 것(1)2020.06.09.
만우는 검인의 뒷덜미를 잡은 채로 부여현 내 가옥 몇 채의 기왓장을 부수면서 허공을 격해 머물고 있는 부여현감이 업무를 보는 부여현의 관아에 떨어져 내렸다.
“나리이!!!!”
쩌렁쩌렁!!! 놀란 포졸들이 만우를 보고 달려오기도 전에 만우가 배에 힘을 주며 소리를 쳤다. 그러자 관아 전체가 찌르르 울리며 고성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탁!
“이게 뭐하는 짓인가!!!”
검인이 만우의 손을 풀어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검인의 성격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만우에게 다짜고짜 친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뭐긴. 무림맹이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뜻이지.”
“그것과 나를 이곳 관아로 데려온 것이…….”
“소령이. 찾아야지. 관아의 힘을 이용해서. 그냥 찾겠다고?”
“…….”
검인은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무림의 행동에 익숙하다보니 자신이 명색이나마 왕으로부터 관직을 제수 받았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기껏해야 열 몇 명인 정의대 애들로 부여현을 어떻게 다 뒤지겠다고. 어디서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거잖아.”
“맞네. 그런데…….”
“만우? 만우 자네가 왜?”
그때 관아 안쪽에서 동군영과 척사영이 뛰어나왔다. 동군영은 갑작스런 만우의 등장에 놀란 표정이었고 척사영은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척사영은 만우의 사자후에 담긴 공력을 느끼고는 만우가 도착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큰일입니다. 여자아이. 나이는 십 대. 여기 이놈의 사매가 실종됐습니다, 나으리.”
“실종? 여자아이가?”
“네. 이쪽도 임금께서 관직을 제수해 주셨다고 하니 같은 녹을 먹는 입장입니다요.”
만우가 눈짓을 하자 검인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소생, 무림맹 정의대주 검인이라고 하오. 중원에서 왔소이다. 조선의 임금께 작은 관직을 제수 받았소이다.”
어떤 관직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제부투혼을 회수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그런 검인을 한번 째려봐 주었다. 검인은 조선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통역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냥 대충 그런 줄 알고. 도움을 받아야 겠습니다 나으리. 아무래도 정보는 관아가 빠삭하지 않겠습니까?”
하오문도 있지만 하오문은 지금 만우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눈치가 있다면 지금 만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눈치를 채고 정보를 들고 올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들 머리가 돌인 놈들밖에 없는 것이고.’
검주 만우의 눈치를 보지 않을 무림인은 없다. 그러니 만우의 눈치를 봐서라도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알아서 만우에게 먼저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관아의 협조만 구하면 된다.
“바쁘시겠지만 부여현을 잘 아는 이들을 모아주십쇼 나으리.”
말끝마다 나으리를 붙이고 있었지만 만우의 말은 숫제 명령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동군영이 척사영을 데리고 관아를 급습하여 암행어사의 출현에 관아 전체의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는 와중이었다.
“알았네. 여봐라!!!”
척사영을 대동한 동군영에게서는 제법 어사 같은 태가 났다. 하도 기라성 같은 이들을 많이 만났더니 이런 작은 현의 현감 앞에서는 소심증이 도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예. 예 나리.”
동군영의 고성에 바짝 겁을 집어먹은 이방, 향리 중 최고직인 책임 향리인 이방이 허리를 넙죽 숙였다.
“만우의 말대로 이곳에 대해 빠삭한 놈들을…… 아니다. 네놈이 다녀오거라.”
“예, 예잇????”
이미 부여현감은 척사영에 의해 단칼에 제압이 된 뒤였다. 부여현에 도착해 이곳의 처참한 상황을 목도한 동군영이 관아로 달려가겠다는 것을 척사영이 호응하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다른 역졸은 필요 없었다. 척사영 혼자면 부여현 전체의 관병들이 달려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문을 부수고 들어간 척사영의 단 일 검에 부여현감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암행어사의 출현은 부여현감 같은 작은 지방의 관리에게는 저승사자가 강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현감이랑 같이 한양으로 보내주리?”
만우의 곁에 있으면서 만우를 조금 닮기라고 한 것인지 이방에게 눈을 부라리는 동군영의 모습이 낯익었다. 만우는 히죽 웃으면서 입술을 비틀었다.
“아, 아닙니다.”
이방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현감만큼 중죄는 아니지만 이방도 깨끗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동군영의 한 마디에 이방은 허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호오. 그냥 막 써도 됩니까 나으리?”
기골이 장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방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만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세는 이방을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 나리…….”
“그러시게. 막 써. 벌 받는다고 생각하고 너도 잘 하고.”
만우는 마음에 든다는 듯 히죽 웃고는 성킁성큼 이방에게 다가와 이방의 목 뒷덜미를 틀어쥐었다.
“검인!”
“왜, 왜 난 부르는가!”
화산파의 무공교두인 검인은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하는 사람이 정말 간만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과거에도 만우는 자신을 이렇게 대했다.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죽자고 노력했지.’
그 노력이 빛을 봐 초절정에 한 발을 걸친 상태인 것이다. 만우는 씩 웃으면서 손을 까닥였다.
“이리 와. 알아서 잡혀. 내가 가서 잡기 전에.”
“…….”
이방은 이미 만우의 손에 뒷덜미를 잡히고는 병든 닭처럼 얌전해진 뒤였다. 검인은 그런 이방을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저벅거리며 만우에게 다가갔다.
“살살 잡으시게. 너무 세게 잡으면 숨이 막히네.”
스윽 검인이 만우에게 목깃을 들이밀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부탁했다. *****
[호랭아!!!!]
소령이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절대로 그녀의 의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소령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이들과 함께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에, 검인과 이방의 목덜미를 잡고 날아오른 만우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꽈르릉!! 사자후를 내지른 만우 주변으로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마치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소리였기 때문에 저자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허공을 쳐다봤다. 콰아아!!! 기왓장을 박살을 내며 허공으로 날아오른 만우 옆으로 허연 형체가 쉭하고 지나가더니 허공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호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선은 잔뜩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랑이 아니라 호선이라구요!”
“아니, 호랭이를 호랭이라 부르지. 그러면 뭐라고 부르냐.”
만우는 오른손에 든 검인을 들어보였다.
“너네 묵었던 곳. 어디야. 소령이 물건 있는데.”
“저, 저기네.”
갑자기 나타난 묘령의 여인이 만우만큼이나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은 검인이다. 호선은 그런 검인에게 교태 섞인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만우에게 한 대 얻어맞고는 울상을 지었다.
“500년이나 묵은 것이 어디 사람을 홀리려고!”
“우씨!”
“빨리 안 가? 가서 여자아이 냄새 나는 거 기억해. 그리고 그거 쫓아. 나는 나대로 찾을 테니까.”
“……냄새? 저는 사냥개가 아니라 호…….”
오싹! 호선의 팔뚝에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만우가 쏘아보낸 살기 때문이다. 만우는 그런 말장난 하고 있을 시간 없다는 듯 강렬한 살기를 발산해댔다. 호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때라면 혹시 모르지만 이 지랄 맞은 인간의 심기를 지금 거스를 필요는 없다. 호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스슥하고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호선이 가장 익숙해진 도술 중 하나인 축지법이었다.
“귀, 귀신?”
이방이 히익거리며 놀랐다. 하얀 장삼을 걸친 호선이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그런 이방이 놀란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야. 너, 염소수염!”
“나, 나는 염소수염이 아니라…….”
이방은 하늘을 나는 혼란스런 와중에도 염소수염이란 말에 발끈하려다가 만우와 눈이 마주치고는 깨갱했다. 늘 수염이 부족해 염소수염 소리를 듣는 것에 거의 학을 뗄 정도의 반응을 보이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부여현에서는 현감을 제외하면 관리들 중 이방이 가장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은 이 작은 부여현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를 만끽하며 누리던 작은 산의 여우였다. 그런 여우가 갑자기 저 큰 백두대간에서 뛰어노는 호랑이, 아니 창천을 넘나드는 용(龍)을 만났으니 찍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가 뒷돈 받아먹은 놈들 중에 가장 무식한 놈들이 누구야?”
“무식…….”
타닥! 만우는 눈이 뱅글거리며 돌아갈 기세인 이방의 상태에 하는 수 없이 근처 건물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우득!
검인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뒷덜미가 잡힌 채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이 중원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중원이었다면 이 창피한 꼴을 온 무림동도들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두 번 다시 화산파에서 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장 무식해 보이는 놈들. 그런데 너한테 돈 많이 먹인 놈들.”
무식하지만 관리인 이방에게 돈을 먹인다? 뭔가 모순적인 말이었지만 만우의 말은 무림의 삼류 방파들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놈들은 무식해서 당장 자기 방파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관리들에게 돈을 먹이지만 자신들이 벌이는 일이 어떤 부작용이 되어 돌아올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말마따나 그놈들이 건드린 이의 지인이 무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이라 치자. 만약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그런 이들은 피해서 건드리던가, 일단 건드렸다면 난다 긴다 하는 그 지인보다 더 뛰어난 이들에게 줄을 댈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무식한 놈들이면 일단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방파에 이익이 되거나, 손해를 끼친다면 칼을 들고 달려들어 쑤실 놈들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하는 놈들이 무림에서는 곧 무식한 놈들이기 때문이다.
“그, 무식한 놈들이라면…….”
만우의 말을 들은 이방의 눈이 흔들렸다.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방이 대번에 떠올릴 정도면 상당히 인상적으로 무식한 놈들이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니 저도 잘 모르는 일이지만…….”
“확. 빨리 말 안 해?”
이방의 말이 길어지자 만우가 성난 표정을 지었다. 여기저기 눈알을 굴리는 것이 영락없는 간신배의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염소수염 다 뽑아버린다?”
만우는 이방의 염소수염을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뿌득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자 이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 나이에 수염 없는 사내는 내시밖에 없다. 내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이방은 화급하게 말했다.
“부, 북쪽의 백마강 인근에 있는 웬 포구를 빌려달라는 놈들이 이, 있었습니다.”
“포구? 왜? 뭘 내다파려고?”
제부투혼을 찾기 위해 조선에 왔을 놈들이다. 하지만 삼류 방파에도 결국 힘의 논리는 작용하기 때문에 제부투혼 대신 다른 이익을 위해 노선을 튼 놈들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부여현 전체가 이 정도로 시름시름 앓을 리 없다.
“모,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하게는…….”
“몰라?”
만우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놈이 발뺌을 하는 것이다. 아직 이방은 누가 더 무서운 존재인지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뿌득! 만우의 손가락에 공력이 실렸다. 동시에 만우는 두말 하지 않고 이방의 혈을 눌렀다. 인간의 신체의 기혈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후두 끝, 결분혈.
“!!!!”
이방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이방의 입이 떡하고 벌어지더니 학질이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검인은 그런 이방을 보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분근착골(分筋錯骨)…….”
무림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엄격하게 금지된 점혈법이지만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는 점혈법이었다. 아니, 점혈보다는 고문에 가까웠다. 근육을 분리하고 뼈를 발라낸다는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바로 오기 때문이다.
“가, 가가가가각!!!”
만우의 손에는 일말의 자비심도 실려 있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이방이란 놈도 현감의 옆에 붙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놈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지금도 입을 다무는 놈이다.
“아프지? 어디. 일다경이라도 버틸 수 있나 볼까?”
분근착골은 인간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겨준다. 공력을 이용해 말 그대로 근육을 찢고 뼈를 부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만 받아도 병신이 된다. 무공을 수련한 무인들이 그렇다는 소리다. 무공은커녕 제대로 된 운동도 하지 않은 민간인이라면?
“말할 생각이 들었다면 눈을 깜박여.”
깜박깜박깜박깜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