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복마전에 들어서다(4)2020.06.02.
‘검 교두님이 그러실 리는 없지만…….’
하지만 검인은 매화극검 검인이기 전에 정의대의 대주다. 정의대에는 구파일방의 콧대 높은 무인들이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리라.
“그런데 사림곡의 철권이 왔다하면, 그 놈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아! 역시 방주님이십니다!”
“뭐 이런 것 가지고.”
미혼방주가 수하의 아부에 어깨를 으쓱이며 좋아했다. 그때 미혼방주가 수하에게 말했다.
“네놈은 이곳 관리나 잘하여라. 요즘 들어 새롭게 들어오는 놈들이 적어. 더 늘려야 한다. 투전판에 인력을 더 충원해라. 적당히 쓸데없어진 놈들 데려다 팔아버리고.”
“예. 방주님.”
소령이 이를 앙하고 꺠물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저놈들에게 뛰쳐나가 당장이라도 죽여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은 최소한 수십 명이었다. 아편굴에서 나온 이들만 수십 명이니 저 안에 저 정도의 수가 더 있기만 해도 소령은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으아…… 으아아아! 아편을, 제발 아편을!!!”
그런데 그때 아편굴에서 누군가 질질 끌려나왔다. 미혼방도의 손에 붙잡힌 웬 양인 하나가발버둥을 쳤지만 삼류라도 무공을 익힌 무인 앞에서는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방주님이 계시는데 무슨 소란이냐!!”
방주에게 아부를 떨던 수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양인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방도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돈이 부족한데 자꾸만 아편을 달라고 해서 말입니다.”
“뭐? 저 망할 놈이!”
방주 앞에서 이런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에 화가 난 방도 중 하나가 달려들어 중년 양인의 몸을 두들겨 팼다.
“어이쿠, 어이쿠! 으으. 아편…… 아편…….”
얻어맞는 양인은 몸을 새우처럼 말고 끙끙거렸지만 그 와중에도 아편을 찾았다. 눈이 풀려있는 것이 중독이 되도 보통 중독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 양인을 본 소령의 눈이 커졌다.
‘목에 점. 그리고 흰 털!’
바로 엄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엄지의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툭하고 기절을 하자 방도가 침을 탁하고 뱉고는 미혼방주에게 허리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방주님.”
“쯧. 눈을 보니 맛이 간 놈이다. 중원으로 가져다 팔아.”
“예! 하지만 이놈의 몸을 보아하니 노예로는 쓸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정육(正肉) 쪽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제 값만 받아라.”
“예, 방주님.”
소령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청각은 잘못 되지 않았다.
“새끼. 약을 먹인데다가 두드렸으니 살이 연하겠는데? 킬킬.”
방도가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기절한 엄지 아버지의 목덜미를 잡고는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 인두겁을 뒤집어 쓴 악마 같은…….”
소령의 두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조심스레 방도의 뒤를 따라 기척을 죽이고는 쫓기 시작했다.
“……쥐새끼가 있다.”
소령이 사라지자 미혼방주의 눈이 소령이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미혼방주의 말에 방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예?”
“쥐새끼. 커다란 쥐새끼. 잠행술은 익히지 못한 것 같지만…… 정파의 나부랭이 같은데.”
“설마, 정의대…….”
“아니. 한 놈이었다.”
미혼방주는 무공 실력은 고작 이류에 불과했지만 미혼방을 세우기까지 별의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이다. 별 볼일 없는 삼류 방파나 뒷골목일수록 더 치열한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혼방주는 허술한 소령의 잠행술을 단박에 간파했다. 소령의 무공은 일류일지 모르나 그녀가 살면서 잠행술을 펼쳐본 적은 채 다섯 번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잠행술은 삼류보다도 못 했다.
“정육점으로 애들을 보내. 미리 알려놓고 독을 깔아둬라. 함부로 덤벼들었다가 애멀게 죽지 말고. 분명…… 애송이다.”
거기에 살기도 제대로 숨기지 못했다. 미혼방주는 비릿하게 웃었다. 미혼방주에 오르기까지 자신보다 약한 이들만 상대한 것도 아니다. 미혼방주는 자신보다 강한 이들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정파 나부랭이라면 독과 암기만으로도 잡을 수 있다. 거기에 애송이라면야…….”
실전이 아닌 온실 속에서 자라난 화초를 상대하는 일 따위, 밑바닥을 달려 그 자리에까지 오른 미혼방주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정파 놈들의 육질을 맛보고 싶으신 어르신들께 보내드리면 좋아하실거다.”
“예, 방주님.”
미혼방주의 잔인한 미소에 방도도 비슷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 철권 교수가 부여현에 도착한 것은 닷새 전이었다. 그는 기린대를 이끌고 부여현에 아무도 모르게 도착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부여현이 어떤 상황인지 돌아가기 위해 먼저 정보를 모았다. 초절정 고수인 철권과 일류 고수로 구성된 서른의 기린대는 원하는 정보를 금세 모을 수 있었다. 개판. 부여현은 개판이라는 단어 이외의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권은 자신이 통채로 세를 낸 객주의 마당에 모인 스무 명 정도 되는 방주들에게 이빨을 들어내 보였다. 그러자 위험한 패기가 물씬하고 철권의 전신에서 새어나왔다.
“사파의 최고봉인 사림곡 기린대의 대주인 바로 나, 철권이 이곳 부여현을 접수하겠다는 것이다.”
이곳의 객주는 이백이나 되는 인원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곳이었지만 지금은 쥐새끼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압적으로 서 있는 철권과 객주 지붕 위에 서 있는 서른의 기린대 때문이었다.
“조, 좋습니다. 그렇고말고. 이, 사청방의 군 모는 철권 교 대협의 명성을 중원에서도 흠모하였습니다. 이 먼 조선에서 사림곡의 영웅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정말 영광이옵니다.”
철권의 기세는 무지막지했다. 자신의 말에 거절하는 이는 살려두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살기 떄문에 눈치 빠른 삼류 방파의 방주들은 재깍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스무 명의 사파 방파면 족히 600이 넘는 인원이다. 단박에 부여현에 들어온 천 남짓의 무림인들 중 절반 이상이 철권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여현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된다. 이미 관은 부여현을 무림인들이 어떻게 하든 자신들의 주머니에 돈만 제대로 들어오면 상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철권은 부여현의 왕이 될 수 있다.
“좋아. 그렇다면 당연히 제부투혼도 이 철권이 가져간다.”
철권의 광오한 외침에 몇몇 방주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용기 있게 나서서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용기란 곧 죽음이다. 만용인 것이다.
“그, 그러시지요…….”
“그럼.”
철권이 씩 웃어 보였다. 방주들은 속으로는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김에 재물이라도 한몫 챙겨야 겠어.’
‘아예 여길 지부로 삼는 것도…….’
삼류 사파 방파들은 제부투혼을 얻어 무력을 증진시킬 계획이었지만, 사림곡의 계획으로 인해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른 쪽으로라도 이익을 얻어가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방주가 중원의 본파를 비우고 조선에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원에 지킬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뱀의 꼬리로 살 바에는…….’
그런 그들에게 조선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의협심 넘치는 정파 고수에게 끔살을 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관리들은 명보다 훨씬 더 부패해 뇌물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권 교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리면서 호탕하게 소리쳤다.
“크하핫! 좋아! 그럼 같은 가족이 된 김에 거하게 잔치를 벌이도록 하지. 어떤가?”
사림곡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려 사파 거두인 철권의 제안이다. 그것을 거절하고 자리를 뜰 만큼 간이 큰 방주는 없었다.
‘어떻게 됐으려나?’
미혼방주는 정파 나부랭이의 꼬리를 잡고는 부하들을 보냈고, 동시에 정의대에도 철권 교수가 왔음을 알렸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짚신이 허공에서 날아들더니 교수의 얼굴 한 복판에 틀어박혔다. 철썩!
“…….”
“…….”
툭. 삽시간에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철권의 얼굴에 철썩하고 부딪친 짚신이 주르륵 흘러내려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교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분노와 수치심 때문이었다.
“어떤 노…….”
분노를 터뜨리려던 순간 교수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객주의 지붕 위에 서 있어야 할 기린대 고수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객주의 지붕 위에는 기린대 고수들 대신 마당 안을 굽어보는 처마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어대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허, 허어어어억!!!!”
그곳에 모여든 방주들은 분노한 철권이 단박에라도 짚신을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 말쑥한 젊은이를 잡아다가 목을 뽑아버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철권의 반응이 이상했다. 귀신을 본 것처럼 철권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철권을 향해 처마 위에 앉은 남자가 손을 흔들어보였다.
“본주인데. 왜. 불만 있어?”
만우. 상큼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만우의 얼굴을 본 철권의 얼굴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하얗게 탈색됐다. ***** 철권이 만우를 보고 안색이 하얗게 변했을 바로 그 무렵. 소령은 부여현 북쪽 유역의 백마강의 이름 없는 한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구릉 위에 배를 납작 붙이고 엎드려 있었다.
‘피냄새.’
엄지의 아버지를 데리고 아편굴에서 나온 미혼방도가 도달한 곳이 바로 이 작은 포구였다. 포구라고는 하지만 그냥 나룻배 같은 것들이 말뚝에 몇 대 묶여있는 곳이었지만 그 포구 앞에 커다란 창고가 있다는 것이 특이한 포구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강렬한 피냄새가 사방으로 번져나왔다.
‘정육. 인육을 내다파는 놈들이야.’
소령은 이를 까득하고 갈았다. 믿을 수 없지만 소령은 명 황실의 높은 관료들이나 기이한 섭식 취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은밀하게 인육을 먹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인간이나 돼지나 소나, 결국 같은 피와 살을 가진 생물인데 잡아먹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명 황실은 물론이거니와 인육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무림에서도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있긴 했다. 하지만 재물과 권력을 쥔 이들은 남들이 누리지 않는 것들을 누리고 싶은 법이다. 금지되어 있는 것, 하지만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으로 남보다 우월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모든 행위들. 그중 하나가 인육을 먹는 것이다.
‘많아.’
피냄새가 은은하게 번져나오는 창고가 바로 이 미혼방이라는 놈들아 아편굴에서 완전히 맛이 간 사람들을 인육으로 만드는 정육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에서 아편굴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최소한 오십.’
미혼방이 아무리 삼류 방파에, 삼류 무인들만 즐비한 곳이라고 해도 소령 혼자서 저곳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 행위다. 소령이 최소한 절정에 든다면 모를까, 지금 수준으로는 아무리 매화검을 익혔다고 해도 불리했다.
‘돌아가서 팽 대협에게라도 알리면…….’
정의대주인 검인은 정의대 고수들의 쓸데없는 경거망동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하지만 인육을 거래는 놈들이 있다면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팽대수 정도면 그녀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팽대수는 그 성격이 호탕하고 화끈한 만큼 소령을 자신의 친동생처럼 귀여워했기 때문이다. 소령이 막 자리를 뜨려는 순간, 창고의 문이 열리더니 미혼방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뭐? 방주께서 위험?”
“그래! 도우러 가야 한다고!”
“가자 얘들아!!!!”
“예!!!”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이들이 거의 마흔 명에 달했다. 그것을 확인한 소령의 눈이 반짝였다. 창고 안에 열명 남짓만 있다면 소령 혼자서도 얼마든지 상대가 가능하다.
‘엄지 아버지는 구해야 하니까.’
엄지의 아버지가 팔려나가기 전에, 혹은 정육 당하기 전에 구해내야만 한다. 저 안에서 피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은 저 안에서도 정육을 하고 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스스슥! 소령이 조심스럽게 보법을 밟으면서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창고 쪽으로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릿한 혈향이 짙게 풍겼다. 사실상 이번이 첫 강호출도인 소령에게는 절로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역겨운 냄새였다.
‘윽.’
욕지기가 속에서 치밀어 올랐지만 소령은 이를 꽉 깨물고는 참았다. 자신은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덜컹!!! 소령이 창고의 문을 발로 박차고는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딱 맞게 주조된 검을 빼들고는 안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핫! 진짜잖아?”
그런데 그때 안에 있던 미혼방도 하나가 히죽 웃으면서 소령을 보고는 소리쳤다. 소령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당겨!!!!!”
촤악!!!!
“윽?”
미혼방도가 손을 휘저음과 동시에 소령의 발밑에 깔려있던 바닥이 움직였다. 소령은 자신이 거대한 그물 위에 올라와 있음을 깨닫고는 얼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