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복마전에 들어서다(3)2020.05.30.
“대주!”
쾅!!!! 다도(茶道)를 즐기고 있던 검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자신의 방문을 저리 길거리 거지를 걷어차듯 걷어차면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정의대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가만히 계실 생각이십니까?”
“어찌하여 그러시는 겁니까. 맹호도(猛虎刀).”
씩씩거리며 호랑이가 음각된 도를 허리춤에 찬 채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람은 북경제일도 팽대수였다. 맹호도는 그의 또 다른 별호였다.
“어찌하다니. 그걸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검인의 얼굴에서 짙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정의대가 머물고 있는 것은 저잣거리의 주막이나 객주가 아니었다. 검인이 어사로 임명되고, 나머지 정의대원들이 전부 말단 관직인 장사를 제수 받았기 때문에 부여현의 객사(客舍)에 머무르고 있었다. 즉, 관아 안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바깥의 혼란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진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시오. 부여 현감. 그 작자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오? 그렇다면 이 팽대수가 가서 그놈의 다리 몽둥이를 분지르겠소.”
하북팽가의 혈족들은 모두 괄괄한 성격을 지니기로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혈질적인 것으로는 팽대수가 팽씨 성을 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사파 저리가라였다. 그런 팽대수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그대로 관아에 달려가 현감을 두드릴 기세였기 때문에 검인은 일어나 팽대수를 붙잡았다.
“맹호도!!”
“대주! 바깥에 활개를 치고 다니는 사파 무리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거기에 정파란 놈들은 어떻소이까! 이곳이 중원인 줄 아는 것처럼 무도하기 그지 없소!”
“정의대는 무림맹에서 내려온 임무를 띄고 온 것이외다!”
검인의 고민은 바로 그 부분에 있었다. 분명 조선의 임금으로부터 어사 자리를 제수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선의 임금과 거래를 한 것이다. 제부투혼을 찾아내어 그것을 임금에게 넘기는 대신, 그 대가로 조선에서 이동의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중원에서 온 자신들이, 정식 관리도 아닌 정의대가 부여현의 치안을 잡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정의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제부투혼을 회수해 그것이 중원으로 들어와 혼란을 야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대주. 아니 매화극검!”
팽대수의 두 눈이 불꽃을 토해낼 것처럼 이글거리자 검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폭급한 성격의 양반은 정말로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나라고 맹호도의 기분을 모를 것 같소? 아니, 맹호도만 못 참는 것 같소?”
의(義)와 협(俠)을 위하는 무림맹의 정의대(正義代). 분명 지금 정의대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정의대란 이름과 의와 협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인은 한 대를 이끄는 대주로써 악역을 맡아야만 했다.
“이곳은 조선이외다. 조선! 명이 아니란 말이오! 의와 협을 지킨다는 맹호도의 깊은 의기는 알겠으나, 조선의 일은 조선에 맡겨야 하는 법이오!”
“양인들을 겁박하고 질서를 흩뜨리고 있는 그놈들이 중원에서 온 놈들이란 말이오!!”
팽대수의 말이 틀린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게 검인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틀리지 않은 일을 틀렸다고, 참으라고 해야 하는 것이 검인의 성격에 쉬울 리 없다.
“하지만 현감은 우리의 개입을 거절하였소.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그러니 우리도 끼어들 여지가 없소.”
“현감 따위는 이 도 하나로…….”
“관에 척을 질 생각이오? 잊지 마시오. 지금은 맹호도도 조선의 관직을 받았소이다!”
“…….”
팽대수는 답답하다는 듯 도극으로 바닥을 쿵하고 찍었다. 검인은 가까스로 진정한 팽대수를 보면서 화제를 돌렸다.
“하오문의 소재는. 아직도 찾지 못 하였소?”
“고작 열 명 남짓이오. 정의대는. 거기에 중원에서 넘어온 놈들의 횡포가 점점 극심해지고 있소. 양인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단 말입니다.”
양인들의 마음이 닫히고 있다. 검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양인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았다. 거기에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하오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양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칼을 든 이들이라면 학을 떼는 부여의 양인들이 정의대의 탐문에 순순히 협조를 해줄리 없다. 그들 눈에는 정의대나 분탕질을 치고 있는 놈들이나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명령. 다 좋소. 허나.”
팽대수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림맹도 결국은 의와 협을 위해 뭉친 곳이오. 그런데 무림맹의 명령이 핍박받는 양인들을 도와주는 것보다 우선시한다는 것을 이 맹호도는 받아들일 수 없소.”
“맹호도!”
검인은 이마를 짚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팽대수가 단독행동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제부투혼이 발견이 되면 기꺼이 정의대원이 될 것이오. 허나 이 팽 모는 도(刀)를 드는 순간 의와 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하였소.”
하북팽가는 지모가 부족하지만 용맹과 의리는 무림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다. 거기에 사실상 명 황실에 진출한 장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그들은 연경(북경)의 치안을 맡을 정도로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서 자라온 팽대수에게 현재 부여의 상태는 정의대가 직접 나서야만 하는 수준이었다. 중원에서 온 무림인들이 똥을 싸놨으니, 그걸 치우는 것도 중원 무림인의 숙명이다.
“대주. 대주는 소령이나 말리시오.”
“소령이? 설마!”
“가장 분개한 것은 소령이오. 내 단독으로 움직이겠다고 하였으나 그 어린애마저 끌어들일 생각은 없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삼류 문파들이 부여에 모여들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면 다른 비열한 술수들을 쓰게 되어있다. 독이나 암기 같은 것 말이다. 팽대수야 그들이 그런 암수를 쓴다고 하더라도 벗어날 자신이 있지만, 소령은 아니다. 일류에 불과한 소령은 삼류문파의 지저분한 수작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대, 대주!!!”
그런데 그 때 비구니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정의대원으로 조선에 파견된 아미파의 연화수(蓮花手) 미오였다. 검인의 안색이 변했다.
“소령이가. 소령이가.”
소령과 더불어 유일한 여성이었기에 검인은 소령을 미오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그 미오가 안색이 변해서는 혼자 뛰어 들어온 것이다.
“사라졌습니다!!!”
“늦었군.”
“소령아!!”
안색이 완전히 변한 검인이 뛰쳐나갔고 그 뒤를 팽대수와 미오가 뒤따랐다. ***** 소령의 별호는 소매화(笑梅花)다. 늘 밝게 웃었기 때문에 웃는 매화라는 별호가 붙은 것인데 소령은 이 별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더 강해 보이고, 멋있는 별호를 가지고 싶었는데 소매화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웃던 소령도 오늘만은 표정이 심각했다.
‘아편굴이라고 했지?’
중원의 무림인들이 이곳 부여현에 그들과 함께 들여온 것 중에 가장 많은 패악을 끼치고 있는것 중 하나가 바로 아편이었다. 아편. 양귀비꽃을 추출하여 만든 그 중독성 강한 마약은 무림인들에게는 별다른 부작용을 낳지 않았다.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무림인들에게 그 아편은 한번 운기조식을 하면 몸에 쌓인 노폐물들을 몰아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니었다. 아편을 장복하면 일반인은 이지를 잃어버린 실혼인이 된다. 그 때문에 중원에서는 아편을 일반인에게 유통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일반인에게 아편을 유통하다가 걸리면 예전 무림공적이었던 혈교의 무리라 그 즉시 그 문파 전체가 토벌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아편을 들여와 유통하는 놈들이 있다고 했어.’
하지만 조선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 때문에 아편을 들여온 무림인들은 그것을 비싸게 팔아먹으며 거리낌 없이 일반 양인들에게도 아편을 유통시키고 있었다. 한 번 아편을 복용하면 그 강력한 중독성으로 인해 아편의 가격이 거의 쌀 한 말이나 될 정도로 비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돈을 구해와 내밀었기 때문에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부여에 들어온 이들이 알아챈 것이다.
‘인신매매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어.’
부여현을 비롯하여 부여군에는 홍산현, 임현군, 석성현 네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 네 현 전체에 아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편을 장복하여 실혼인이 되었거나 아편의 노예가 된 양인들을 중원으로 데려가 노예로 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엄지. 네 아버지는 내가 찾아다 줄게!’
매화를 소매에 수놓은 소령을 간 크게 건드리는 무림인들은 부여현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검인은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소령이 외출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말을 들을 소령이 아니다. 그녀도 어엿한 일류 무인이었고 매화검을 수준까지 익힌 여검객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항상 검인의 눈을 피해 도망을 나가곤 했는데 그러다 만난 것이 바로 부여현에 살고 있는 엄지라는 소녀였다. 이제 여덟 살이나 됐을 법한 그 아이가 길거리에서 군침을 흘리며 만두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소령이 만두를 사준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열심히 사는 백성들을…….’
소령은 이를 악 물었다. 엄지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 없이 태어난 엄지를 그녀의 아버지는 알뜰살들하게 젖동냥을 다니며 키웠다. 양반집에 가서 머슴일을 하기도 하고, 양반의 논을 대신해서 경작해 주는 등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알았던 그녀의 아버지가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노름과 아편. 무림인들이 부여현으로 들어오면서 만든 유흥에 그녀의 아버지는 순식간에 중독이 된 것이다. 평생을 정직하게 땀만 흘리면서 살아왔던 촌부에게 노름과 마약이 주는 희열은 짜릿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엄지의 아버지는 엄지조차도 나 몰라라 한 채 노름과 아편에 빠져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제 여덟 살밖에 안 된 엄지는 방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최근에 들어서는 집에 먹을 것까지 떨어져 그 어린아이가 저잣거리를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혼방(迷魂房)!?’
소령은 아편굴의 경비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그냥 삼류 무뢰배나 파락호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무림방파라는 소리였다. 물론 구파일방이나 사림곡에 비해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작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개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어쩌지?’
물론 소령이 검인에게 엄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도움을 요청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인은 그런 소령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검 교두님은 겁쟁이야.’
미혼방을 보고는 혼자서 대적하기 어렵겠다고 느낀 소령은 검인을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매화극검 검인은 초절정의 극초입에 선 고수이기 이전에 소령의 무공 교두이기도 했다. 그가 한 번 아니라고 하면 절대로 번복하는 일은 없다. 그랬기 때문에 소령은 검인에게 돌아간다는 가능성 자체를 지워버렸다.
“내가 구해줄게.”
소령은 엄지에게 물어 그녀의 아버지의 생김새를 들었다. 다행히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흰털이 난 목에 난 점!”
소령은 숨을 죽였다. 엄지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는 아편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그 앞에 선 경비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뚫어?’
소령의 실력이라면 삼류 방파의 경비 따위는 몇 번 검으로 슥슥 그으면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독을 쓰거나 암기를 쓰면, 아니 숫자만 많아도…….’
인간의 탈을 슬슬 벗어나기 시작하려는 절정이 올라선다면 모를까, 일류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간의 범주에 속해있다. 그러니 적의 수가 얼마나 되고, 안에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응?”
그런데 그때 아편굴 안에서 수십 명의 무인들이 걸어나왔다. 제각기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별 볼일 없는 이들이지만,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미혼방의 무인들인 것이다. 그중 가장 앞에 선 이는 화려한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뱀 같이 생긴 얼굴을 보아하니 저자가 방주인 것 같았다.
“뭐라? 누구?”
“처, 철권 대협이…….”
“철권? 사림곡의 철권? 기린대주 그자가 왜 이런 작은 현에?”
“모, 모르겠습니다.”
소령의 눈이 커졌다. 사림곡의 철권이라면 의주에서 이미 마주친 적이 있었다.
사파의 연맹인 사림곡에서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사파의 거두이자 기린대주인 철권 교수의 이름이 미혼방주 입에서 나오자 소령은 귀를 기울였다.
“아마 부여현에 있는 저희 같은 사파 방파들을 모아서 무언가 하려는 것 같은데…….”
“망할! 여기서까지 우리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겠다는 소리구나!”
미혼방주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곳 부여현에 있는 무림 문파나 방파들 중에는 다른 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세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역만 공고히 하면, 왕처럼 살 수 있었는데 자신의 머리 위에 새로운 왕이 생기는 셈이다.
“객사에 머무르고 있는 정의대 놈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가서 슬쩍 흘려. 철권이 부여에 왔다는 걸.”
“정의대에요?”
미혼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표정의 수하에게 미혼방주는 혀를 쯧하고 찼다.
“그리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야! 그러니까 자꾸만 돈이 비는 것 아니냐. 설마 네놈이 착복하는 것이냐?”
“바, 방주님. 감히 속하가 어찌…….”
미혼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똘똘한 놈이라면 자신이 수하로 부리지 않을 것이다. 진작 죽여 없앴을 것이니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의대가 잠잠하다고는 하나 어쩌면 그건 우리들이 너무 별 볼일 없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콧대 높은 구파일방 놈들이 아니더냐?”
미혼방주의 말에 소령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설마 말이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도 정파였지만 정파의 인물들이 얼마나 명분과 명예를 따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